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0.8 |
장미영·전흥남의‘꿈꾸는 노년’
관리자(2010-08-03 09:16:59)
장미영·전흥남의‘꿈꾸는 노년’ 실종된 제3기 인생 - 신경숙 장편소설『엄마를 부탁해』- - 장미영 전주대학교 교수 사회적 존재감의 실종 우리나라의 노인 5명 가운데 1명은 배우자를 제외하고는 만나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또한 배우자를 잃고 혼자사는 독거노인은 전체의11.9%,자녀와 따로 사는 부부 노인은 29.1%로 전체 노인 인구의 41%가 독립가구로 산다. 노인들이 자주 만나는 사람의 숫자는 평균 18.4명이고 이들 중 대부분인 85.7%가 친족 외에는 만나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노년기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다차원적 구조 분석」에 따르면 조사 대상인 전국의 65세 이상 노인 3천 278명 가운데정확히 20%가 자녀와 동거하지 않으면서 별거 자녀와도 접촉하지 않고 친구·이웃 등 지역사회와도 전혀 교류가 없는‘고립형’인 것으로 나타났다.1) 우리나라의 노인들은 대다수가 사회적 연계망을 벗어나 있는 것이다.신경숙의『엄마를 부탁해』는 노인이 된 엄마의 고립된 상황을 통해 보편적인 한국 노인, 특히 여성 노인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장편소설이다. 시골서 올라 온 엄마는 서울의 지하철역에서 남편을 놓친 후 어이없이 실종되어 버리고만다. 엄마의 흔적을 찾아 헤매는 자식들과 남편은, 엄마에게는 오직 가족만이 있을 뿐, 아무런 사회적 연계망이 없음을 새삼 실감한다. 엄마를 보았다는 목격자들은 한결같이‘소 눈 같은 눈과 파란색 슬리퍼를 신고 발등에 파인 상처를 지닌 노인’이라고 말할 뿐이다. 엄마의 모습은 집에서 키우는 가축의 눈같이 한없이 수동적이고 여리면서도 아픈 상처를 지닌 슬픈존재의 이미지다. 대중음악가 이적이 지적한 것처럼 노인이된 우리들의 엄마는 소설 속 엄마와 마찬가지로 자식들이 기대며 동시에 밀어낸 아픈 대상이다.나는 엄마처럼 못사는데 엄마라고 그렇게 살고 싶었을까? 엄마가 옆에 있을 때 왜 나는 이런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을까. 딸인 내가 이 지경이었는데 엄마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얼마나 고독했을까.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로 오로지 희생만 해야 했다니 그런 부당한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어.언니. 단 하루만이라도 엄마와 같이 있을 수 있는 날이 우리들에게 올까? 엄마를 이해하며 엄마의 얘기를 들으며 세월의 갈피어딘가에 파묻혀버렸을 엄마의 꿈을 위로하며 엄마와 함께 보낼수 있는 시간이 내게 올까? 하루가 아니라 단 몇 시간만이라도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엄마에게 말할 테야. 엄마가 한 모든일들을, 그걸 해낼 수 있었던 엄마를,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엄마의 일생을 사랑한다고. 존경한다고『.( 엄마를 부탁해』, 262면)가족들이 기억하는 엄마는 집안의 울타리를 떠나 본 적이없다. 엄마는 태어난 기쁨이나 어린 시절, 소녀시절이라 할만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지도 못한 채, 초경이 시작되기도 전에 결혼을 해서 한 집안의 살림살이를 전담하게 되었다. 시댁 어른들의 뜻을 받들고 시동생을 돌보고남편을 뒷바라지하면서 다섯 아이를 낳아 키우는 동안 엄마의 존재는 허공을 응시하는 무심한 소의 눈길처럼 소멸되고 만다. 엄마는 인생을 바쳐 집안을 일구었지만 정작본인은 빈껍데기가 되어 가족의 그늘에 묻혀 사회의 뒤안으로 사라져 버렸다.이와 같이 신경숙의『엄마를 부탁해』는 우리 사회가 방치해 둔 노인문제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준 소설이다. 소설 속 엄마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여성 노인의 보편적인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합성 이미지를 통한 과거의 재구성 소설은 각 장마다 딸(1장)→큰아들(2장)→아버지·남편(3장)→어머니·아내(4장)→딸(에필로그)로 시점이 전환되면서 가족들 각자가 기억하는 엄마의 파편적인 모습들이 드러난다.너는 내가 낳은 첫애 아니냐. 니가 나한티 처음 해보게 한 것이어디 이뿐이간? 너의 모든 게 나한티는 새 세상인디. 너는 내게뭐든 처음 해보게 했잖어. 배가 그리 부른 것도 처음이었구 젖도처음 물려봤구. (…중략…) 고단헐 때면 방으로 들어가서 누워 있는 니 작은 손가락을 펼쳐보군 했어. 발가락도 맨져보고. 그러구나면 힘이 나곤 했어. 신발을 처음 신길 때 정말 신바람이 났었다.니가 아장아장 걸어서 나한티 올 땐 어찌나 웃음이 터지는지 금은보화를 내 앞에 쏟아놔도 그같이 웃진 않았을 게다. 학교 보낼 때는 또 어땠게? 네 이름표를 손수건이랑 함께 니 가슴에 달아주는데 왜 내가 의젓해지는 기분이었는지. 니 종아리 굵어지는 거 보는 재미를 어디다 비교하겄니. (…) 봐라, 너 아니믄 이 서울에 내가 언제 와보겄냐『.( 엄마를 부탁해』, 93~94면)가족들이 생각하는 엄마는 현재적 상황이 아니다. 기나긴세월동안 희생으로 점철된 고단한 삶에 대한 반추는 엄마를또 다시 이타성의 화신으로 신비화시키는 우를 범하고 만다.소설 속 가족들은‘지금 여기’에서 생각하는 현재적 노년의식을 갖고 있지 못하다. 마치 엄마에게는 이타적인 과거만있고 살아있는 존재로서의 즐거운 현재나 희망어린 미래가실종된 것처럼 말이다.이젠 당신을 놔줄 테요. 당신은 내 비밀이었네. 누구라도 나를생각할 때 짐작조차 못할 당신이 내 인생에 있었네. 아무도 당신이 내 인생에 있었다고 알지 못해도 당신은 급물살 때마다 뗏목을가져와 내가 그 물을 무사히 건너게 해주는 이였재. 나는 당신이있어 좋았소. 행복할 때보다 불안할 때 당신을 찾아갈 수 있어서나는 내 인생을 건너올 수 있었다는 그 말을 하려고 왔소.(…중략…) 나는 이제 갈라요『.( 엄마를 부탁해』, 236~37면)엄마의 시선으로 드러난 엄마의 숨겨진 사랑 이야기는 뜻밖에도 욕망을 가진 한 여성으로 엄마를 바라보게 한다. 그러나 이 또한 일생동안 한 번쯤 있을법한 에피소드 정도로그치고 만다. 가족만으로 충족되지 않는 사회적 존재로서의엄마는 가족 아닌 다른 사람과의 만남에서 큰 위안을 받았을텐데 말이다. 엄마의 비밀은 엄마 혼자서도 사회적 연계망을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노년이 되면서 엄마는 스스로 그 조촐한 사회적 연계마저 단절시키고 만다. 이로써신경숙이 그려낸 노년의 엄마는 우리 사회가 조성해낸 관념적 모성 이미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박제화 된 인물로 남는다. 노년화 된 엄마의 자아과 삶은 소설에서조차 자연스럽게 반영되지 못한 채 엄마의 인생 자체에서 실종된 상태인 것이다. 사회적 합의의 수정 노년은 자식을 키우던 예전의 시간들과 사뭇 다른 시기이다. 노인이 된 엄마는 단지 나이만 먹은 것이 아니라다른 사람에게‘부탁해’야할 정도로 소통할 가족조차사라진 절대 고독의 상태에있다. 소설 속 상황처럼 노년은 자식들과의 대화가 겨우 전화 통화로만 가능할 정도로 가족으로서의 역할이나 활동으로부터도 멀찌감치 물러나 있다. 노년을 맞은 부모는 이미자식으로부터도 감정적 동질감을 느낄 수 없는 것이다.이제 우리 사회는 추억의 엄마와 거리두기를 할 때가 되었다. 우리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희생이 미화되었던 과거 대신노년이 된 엄마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만들어내야 한다. 노년은 죽음을 기다리거나 죽음에 대한 공포에 떨어야만하는 방치된 생명이 아니어야 한다. 웰빙(well-being)과 마찬가지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품위를 잃지 않는 웰엔딩(well-ending)에 대한 새로운 모색이 필요하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