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기보따리의 소리로 엮는 전주이야기 전주팔경 유람가 덕진에 배를 띄워 순풍에 돛을 펴니 - 문신 시인·전북작가회의 사무처장 한벽(寒碧)에 기댄 몸이 세류 옥류 들이켠 듯근심걱정 사라지고 정신이 청연(晴烟)하여시절이 다가(多佳)하니 호연지기 겨루리라한 폭 사후(射帿)에 일필휘지 출사표를 던져두고덕진(德津)에 배를 띄워 순풍에 돛을 펴니채련(採蓮)하던 여인들의 노랫소리 아득해라비비(飛飛)정에 배를 묶고 한내를 바라보니완산고을 인재들이 영락없는 낙안(落雁)이라위봉(威鳳)의 자취 찾아 구이구산 돌아 나와등용문이 예로구나 저 폭포(瀑布)를 오르난데첩첩산세 남고(南固)하여 난공불락 따로 없어일락서산 모종(暮鐘) 소리 천지간에 길게 우네동포(東浦)에서 배를 얻어 고산천을 거스르니소금배난 젓갈배난 귀범(歸帆)마다 만선이라청운(靑雲) 기린(麒麟) 꿈이런가 천문을 살펴보니북극성이 좌로 돌아 여의주를 토월(吐月)하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기린토월, 한벽청연, 남고모종, 다가사후, 비비낙안, 덕진채련, 위봉폭포,동포귀범을 전주팔경이라고 하였다. 중국의 소상팔경-소상야우(瀟湘夜雨), 동정추월(洞庭秋月), 원포귀범(遠浦歸帆), 평사낙안([平沙落雁), 연사만종(烟寺晩鐘), 어촌석조(漁村夕照), 강천모설(江天募雪), 산시청람(山市晴嵐)-에서 차용한 흔적이 역력하지만, 어찌되었건 전주팔경은 전주만이 가진독특한 풍광을 집약하여 보여주고 있다.굳이 전주팔경이 형성된 시대를 추정해보자면, <열녀춘향수절가>에 이도령이 장원급제한 후 암행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내려가는 여정 중에 전주팔경을 둘러보는 대목을 참고할 수 있다.“…어사또 행장을 차리는데 모양 보소. 숱 사람을 속이려고 모자 없는 헌 파립에 벌이줄 총총 매어 초사갓끈 달아 쓰고 당만 남은 헌 망건에 갖풀관자 노끈당줄 달아 쓰고 의뭉하게 헌 도복에무명실 띠를 흉중에 둘러매고 살만 남은 헌 부채에 솔방울 선추달아 일광을 가리고 내려올 제 통새암, 삼례 숙소하고 한내, 주엽쟁이, 가리내, 싱금정 구경하고 숩정이, 공북루 서문을 얼른 지나남문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소강남 여기로다. 기린토월(麒麟吐月)이며 한벽청연(寒碧晴煙), 남고모종(南固暮鍾), 곤지망월(乾止望月), 다가사후(多佳射侯), 덕진채련(德眞採蓮), 비비낙안(飛飛落雁),위봉폭포(威鳳瀑布), 완산팔경을 다 구경하고 차차로 암행(暗行)하여 내려올 제 각읍 수령들이 어사 났단 말을 듣고 민정(民情)을 가다듬고 전공사(前公事)를 염려할 제 하인인들 편하리요….”이를 통해 적어도 전주팔경은 조선 후기에 이미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그런데 몇 년 전 신전주팔경을 선정한 적이 있다. 전주시민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가장한국적인 주거형태를 간직하고 있는‘한옥마을’이 1위를 차지했다. 이어 덕진공원, 경기전, 전동성당, 전주월드컵경기장, 풍남문, 동물원, 객사 등이 뒤를 이었다. 기존의 전주팔경 중 덕진공원만포함됐을 뿐 나머지 7곳은 모두 제외돼 큰 차이를 보였다.하지만 어쩐지 신전주팔경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다. 자연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만, 인공물은존재하는 대신 기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즉 자연물은 그 자체가 존재의 목적이지만 인공물은 하나의 기능적 수단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전주팔경이 구체적인 순간의 자연 미학을 중심으로 선정됐다면, 신전주팔경은 인간의 손길로 재단해 낸 기능으로서의 인공 미학이 반영되었다는 말이다.기린봉이 전주팔경의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보름달이 둥실 떠오르는 맑은 여름날이어야 하고, 여기에 그 달빛을 덥썩 받아 안은 남천과 서천의 물결이 있어야 한다. 비비낙안은 어떤가? 전주천의 끝 비비정가에 기러기가 내려앉아 노니는 풍경이어야만 한다. 남고모종은 노을이 지는 남고산옛 성터에서 들려오는 쇠북소리를 말하고, 다가사후는 천양정에서 활쏘기 하는 한량들의 풍류를일컫는다. 이렇듯 전주팔경은 아주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의 교차 속에서 형성되는 찰나의 풍광이다. 그러니 늘 곁에 두고도 볼 수 없는 것이 전주팔경이다. 그 귀함이 전주팔경의 오랜 생명력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