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8 |
[문화시평] 연극 < 광팔자>
관리자(2010-08-03 09:18:03)
연극 < 광팔자>
창작소극장 (7월 2일~11일)
황혼의 사랑, 그 뒤에 가려진 씁쓸함
- 김정숙 무대지기 대표
어느 무더운 여름, 한적한 공원 벤치에 자리 잡고 앉아 있는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 그리고 그 할머니를 향해 연신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는 할아버지. 그들은 만남과 동시에 살포시 두 손을 포개고 어디론가 향해 걸어가기 시작한다. 그들이 지나가는 공원 오솔길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더위에 지친 듯 했던 그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이다.한가로이 공원 오솔길을 거니는 그들의 모습에서 서로에 대한 애틋함이 느껴진다, 느지막한 나이에 찾아온 설렘, 황혼의 사랑이다. 창작극회의 129회 정기공연 <광팔자>는 이런 황혼의 사랑을 아주 유쾌하고도 통쾌하게 그리고 있다.
유쾌! 상쾌! 통쾌!
남편을 사고로 잃고 혼자 살아 온 지 오래된 팔자, 느지막이 찾아온 사랑에 주저하는 법이 없는 그녀는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다. 같은 사고로 아내를 잃어 혼자된 오봉을 향해 거침없이 감정을 표현하고 급기야 함께 살자며 저돌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에 비해 소심하고 신중하기 그지없는 오봉은 팔자의 적극적인 구애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마음을 열지 못한다. 그러나 팔자의 솔직한 모습에 가랑비에 옷 젖듯이팔자에게 스며들어버린 자신을 느끼게 된 오봉은 팔자의 마음을 받아주기로 결심하면서 둘은 늦은 나이찾아온 감정을 주저 없이 표현한다. 그리고 남은 인생 죽는 날까지 함께 하기로 약속한 둘은 곧 자식들에게 이것을 알리지만 자식들의 완강하기만 한 반대에 부딪히고 만다. 이에 팔자와 오봉은 갈등한다. 결국자식과는 상관없이 우리 둘이 한평생 그렇게 살아보자고 설득하는 팔자와 달리 오봉은 끝내 마음을 접어버리고 만다.그러던 어느 날, 오봉의 결정에 가슴앓이를 하며 절망의 나날을 보내던 팔자의 집에 화재가 발생하고팔자는 재빨리 빠져 나온다. 이를 모르고 있던 오봉은 팔자를 구하기 위해 불속으로 뛰어 들고 이사고로 오봉은 어린아이처럼 변해버린다. 자신을 구하기 위해 뛰어든 오봉이 그렇게 되자 팔자는 기구한 팔자를 원망한다. 그러나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오봉을 바라보며“이렇게 평생삽시다”라는 말과 함께 결혼식을 올리게 되면서 둘은 한평생을 함께 할 것을 약속한다.이렇게 창작극회 129회 정기공연 <광팔자>는 희망을 끈을 놓지 않고 끝을 맺는다. 황혼의 사랑을 아름답게도 화려하게도 그렇다고 뭔가 대단한 것처럼 꾸미지도 않았던 이 공연에관객들은 매료된 듯 연신 미소를 보여 가며 공연장을 빠져나간다. 공연 내내 객석에서는 웃음이 끊이질 않았고 배우들의 대사 하나하나에 귀 기울이며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린아이부터 중장년층은 물론 노년층까지, 관객들은 시종일관 즐겁게 관람하는 모습을 보였다.이처럼, <광팔자>는 연극에 있어 대중성 즉 상품성을 지닌 공연이었다. 관객들로 하여금 연극에 대한 일반적인 틀을 깨고 그야말로 흥에 겨워 한바탕 논 느낌을 준다. 관객들은 보답이라도 하듯 아무런 거리낌 없이 무대 위의 배우들에게 말을걸고 손짓하며 자유로운 호응을 건넨다. 이것이 연극 <광팔자>의 힘이다. 관객과 배우의 경계선이 허물어졌고 공연장 전체의 무대화가 이루어지면서 한껏 즐기며 볼 수 있는 아니 함께 할 수 있는 공연이 되었다.무엇보다 <광팔자>의 가장 큰 힘은 시종일관 능청스러운 연기로 무대를 압도하고 다소 과장되지만 코믹하기 그지없고 자유분방하면서도 능수능란한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들에게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막 연기를 시작한 신예 배우부터 베테랑 배우들까지 특별히 누구 하나 튀지 않고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었다는 것은 그 동안의 연습의 결과일 것이다. 또한 작품을 이해하고 있는 배우들의모습이 무대 위에서 그대로 드러났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다재다능한 배우들의 모습들을 두루두루 살펴 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전북연극계의 미래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이기에 그들의 무대를보는 것만으로도 <광팔자> 공연은 성공한 공연의 예라고 볼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배우들의 연기만큼은 연극 <광팔자>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배우들을 이끌며 작품을 그렸던 연출의 역할 또한 큰 부분을 차지한다.연극 <광팔자>는 그야말로 연출의 의도가 그대로 살아 있다. 거짓 없고 솔직하며 당당하고 유쾌함이 넘친다. 어렵다못해 지루하며 공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무수한 작품들속에서 다양한 장르적 특색을 살린 작품인 것이다. 이처럼연극 <광팔자>는 연출의 그림과 배우들의 연기가 잘 버무려진 작품이다.
대중적 연극의 또 다른 표본이 되기를…
연극 <광팔자>는 소위 말하는 작품성이 뛰어나거나 그리대단하지도 그렇다고 화려하지도 않은 어쩌면 평범하기 그지없는 작품이다. 그러나 연극의 작품성이라는 잣대는 언제든지 변할 수 있으며 그것을 보는 시선 또한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작품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현대에 들어와서 연극은 하나의 대중적인 면 즉 상품성이하나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것은 연극이 대중의 관심없이는 생존하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메아리 없는 객석앞의 무대는 초라해질 뿐이다. 그 초라함은 결코 대중적이지못한 연극은 살아남지 못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람이 변하듯 관객도 변하며 시대가 변하듯 연극도 변한다. 이 같은 진리를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물론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기식의 어쭙잖은 표현은 자칫 어설픈 무대를 만들어가는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이는 단순 대중을 겨냥한 작품은 그수명이 오래 가지 못하지만 끊임없는 작품성에 대한 고민과노력은 언젠가 무대로 그리고 객석의 메아리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작품의 수명은 관객의 몫이 아닌 무대를 만들어가는이들의 몫이므로….창작극회 129회 정기공연 <광팔자>는 모처럼 연극이라는장르적 탈을 벗고 그야말로 관객과 하나되는 무대의 모습이무엇인지 보여준 작품이다. 다만 <광팔자>가 셰익스피어의『한여름 밤의 꿈』이 모티브가 되었다는 말만 빼면 말이다. 어쩌면 그것이 <광팔자>의 순수 창작성에 대한 판단을 흐리게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참으로 유쾌하고 통쾌한 연극 <광팔자> 공연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이 지속될 수 있도록 앞으로 수정과 보완이 이루어진다면 대중적인 연극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표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김정숙 극단 무대지기 대표이자 극작가이다. 전국청소년연극제 전북예선 특별상(2001, 2004, 2010), 전국연극제 경기도대회 특별상(2005), 전북연극제 희곡상(2010), 제29회 전국연극제 희곡상(2010) 등 다수의 상을 수상한 바 있다. 작품으로는『천국 안내소』『홍시열리는 집』『천국에서의 하루』『반달』등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