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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8 |
故지용출을 기리며
관리자(2010-08-03 09:18:24)
故지용출을 기리며 멈출 수 없는 노래 - 진창윤 전북민예총 회장 그는 여전히 웃고 있다. 드럼통을 반으로 잘라 기름기가 숯불 안으로 떨어지면서 담백하게 구워지는 불판 앞에서, 빨간 고무가 손바닥에 붙은장갑을 끼고 집게로 고기를 뒤집는다. 숯불에 가끔씩 기름덩이들이 떨어진다. 그때마다 그의 얼굴은 윤곽을 드러냈다. 수줍게 불판을 내려 보거나 우리들을 바라본다. 환하게 웃는 모양이 꼭 어린아이 같다. 여름밤의 하루는 그의 고기 굽는 집게로부터 깊어간다.이천 십년 오월, 뜨거운 피 흐르는 오일팔 날, 검은 아스팔트 위에 차마 식지 못하는 피 흘리며, 나 여기 왔다 가노라고, 이렇게 햇살 푸르른날, 내 가는 길, 바람처럼 가노라고, ‘마을 어귀 솔숲 곁에 있는 나무’되노라고…. 그는 이제 없다. 추계예술대학 총학생회장이었던 그, 소박하게 웃던 그가 이제 없다.“용출이형‘A4데모전’작품 내야지요”. “모내기철이라 바빠서 못내….”말끝을 흐린다. 나는 여전히 공식적인 출품 권유 전화를 한다. 마지막생의 하루 전날 통화였다. 그의 작업실에 흐트러진 옷가지가 라디오의 음악에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잠깐 논에 갔다 올 것이기에. 민중 판화가, 지용출 칼은 여유가 없다. 살갗이 먼저 칼을 알아본다. 번뜩인다.날카롭게 빛나며 세밀한 칼은 무엇을 빛나게도 하고 어둡게도 한다. 칼이 한번 바람을 가르면 되돌릴 수 없다. 칼의 일필은 붓보다 강하고 막중하다. 보통 그림은 지우기도 하고덧칠하는 과정에서 내면의 깊이를 표현하는데, 칼을 사용하는 판화는 마치 문인들의 수묵화처럼 다분히 즉흥적이고 직관적이다. 단순하고 명쾌하다. 가끔씩 칼이 느리게 움직이기라도 하면 그 지난 자리가 낯설다. 그래서 가늘고 긴 선을 파낼 때는 온몸의 신경이 외줄타기를 한다.그에게 판화는 평면성의 순함과 단색조의 미끈함이 만들어 내는, 사실주의, 서민주의, 대중주의적 매체이다. 판화의단순성과 복제성은 조선말까지 궁중의 의궤로부터 민간의오륜행실도에 이르기까지 두루 사용되었다. 환영주의를 버린 서양의 20세기 현대미술과도 만나 평면성, 자기 지시성,2차원 복제예술과 어울렸다.해방 후 5~60년대의 젊은 작가들은 추상미술운동, 서구앙포르멜운동으로 국전세력과 싸워 승리했다. 그 후 20년은서구미술에 편입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삶의 현실을 외면한 추상미술은 4·19, 5·16과 같은 6~70년대 현실을 담지 못하였다. 하여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며 민중미술이 등장한다. 굿그림, 벽그림, 걸개그림, 깃발그림, 벽보그림, 이야기그림 등 민족의 현실을 토대로 한 표현재료, 표현기법,표현방식으로 우리의 삶속에서 찾은 주제, 제재, 소재를 형상화하자는 운동이었다. 이러한 흐름에 적합한 판화가 80년대 널리 퍼졌다. 홍익대(1988년)와 추계대에 판화학과가 만들어졌다.80년대 청소년기를 보낸 지용출 작가는 83년 성동기계공고와 92년 추계예술대학 총학생회장을 거처 자연스레 민중판화가로서 길을 간다. 93년 서울민미협, 94년 김미경과 결혼, 전주로 이사, 95년 전북민미협 가입으로 본격적인 전라북도 시대를 연다. 이제 다시 자연으로… 삶은 어떤 풍경에 휩싸여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오히려 풍경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그의 1997년 첫 개인전 <풍경의 내면 전>은 새로운 풍경을 개척하고자 하는, 거칠고 어두운 민중미술의 전형을 보인다(개발지구·1995년·동판화,용머리고개·1995년·동판화, 정미소·1996년·동판, 붉은 바위1997·동판). 잠깐이었다. 그는 이듬해 1997년 개인전에서 잠자리, 달팽이, 오징어, 무청 등, 작고 일상적인 자신만의 소재를 택한다. 2001년 개인전 <오래된 나무/작은풀섶들 전>에서는“어느 집 벽에 걸린 마늘을 보며 마늘도흙을 고향으로 삼는 들풀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머니의 냄새를 지닌 젖먹이처럼 마늘에서 흙냄새가 잊히지 않는다”라며민중의 품속 같은 어머니를 연상한다(호박과 나비·2001목판화, 소라풀· 목판화·2002년, 개나리2001목판화).2002년 <MANIF 전>은 또 하나의 시도였다. 주변의 흙과 한지를 섞어 손수 만든 종이에 파꽃과 더덕·풀 연작을한다. 아담한 작품과 향토색 짙은 종이가 조화를 이룬다. 칼은 이미 칼이 아니다. 그 부드러움은 소라풀에 이르러 세밀하기가 이미 붓의 경계를 넘어 선다.언젠가 나는 민미협 수련회에서 그의 가슴근육을 보고 놀랐다. 목판을 하기 위해 팔굽혀펴기를 해서 그렇다고 했다.난 놀렸다. 허허 판화는 쉬워, 찍기만 하면 돈이니…. 사실한번쯤이라도 판화를 해본 사람이라면 안다. 얼마나 칼이 말을 안 듣는지, 미끄러운 미꾸라지처럼 자꾸만 손안에서 빠져나간다. 한번이라도 힘 조절을 못하는 날이면 끝이다. 더구나 호박 줄기 끝의 스프링처럼 가늘게 꼬인 선의 표현은 상상하기조차 싫다. 작가는 그런 선을 자유자재로 다룬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목판화답지 않은 선에 실망하기도 했다.그럴 바엔 차라리 세필로 그리지 뭐 하러 판담.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풀잎 안의 분방하고 날카로운 선과외곽선은 부드럽고 정밀한 선이 조화를 이룬다. 지독스러울만큼 극사실적인 형태, 붓이 아닌 칼로 얼마의 정성을 들여야 가능할까. 2004년 7회 개인전 <완산을 보다>, 전주 지도시리즈 전주역사박물관 작품은 의외였다. 지도라니, 순수예술이 아니잖아. 그러나 민중적 관점에서 보면 민중의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는 지도야말로 민중의 서사시다. 전통적 부감법과 다초점 양식의 전통적 미감의 21세기 부활이었다.2007년 나무시리즈 <수(樹)>는 실루엣풍의 수인판화를(수채화처럼 물을 사용하서 찍는)곁들인다. 나뭇결을 살린배경은 빈 하늘의 바람, 파도, 삶을 그린다. 그는“나무는 인간의 마음이다. 마을을 지키는 하늘과 땅이다. 우주목이다.미륵이다”라고 한다. 그래서 배경의 공기가 바람결에 흔들리는 사람들의 마음처럼 무늬가 있었다. 그는 나무 연작의 제목처럼 우리들 곁에 있는 마을 어귀 솔숲 나무가 됐다. 진창윤 전북 옥구출생이다. <사람들>, <가족>을 비롯해 4차례의 개인전을 연 바 있다. 또한 <민족미술전>, <백두대간 창립전>, <아시아 그리고 쌀> 등 수많은 단체전에 참여했다. 현재 전북민예총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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