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8 |
[문화현장] <문학동네 사람들과 나>
관리자(2010-08-03 09:18:51)
한승헌 변호사가 들려주는 <문학동네 사람들과 나>
(6월 30일) 최명희문학관
그들이 있어 참으로 행복했다
“나의 세 가지 복 가운데‘사람 복’이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문인들과의 친분에도 불구하고‘문학적 농사’에는 소출을 올리지 못해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문학 아닌 문인들과의 얽힘에서도 많은 배움과 깨달음과 보람을 얻을 수가 있었는데, 그것은 나의 행운이자 행복이었습니다.”
문학인과 문학을 사랑한 변호사
동백림사건, 긴급조치, 인혁당사건,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등 현대사의 굵직한 고비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이있다. 때로는 변호사로, 피고인의 한 사람으로서 무고한 이들과 고락을 함께해 온 한승헌 변호사다.한 변호사는 유독 문인들과 친분이 두텁다. 그 스스로도“나는 법조계 말고는 문학 분야 단체에 이름을 얹고 있었다.본시 단체 선호형이 아닌데, …. 그런 단체의 행사나 문인들과의 교분을 통하여 문학동네의 풍토에 젖어보는 것이 좋았다”고 고백한다.지난 6월 30일, 최명희문학관에서는 한 변호사와 함께하는 특별한 문학여행이 마련됐다. 이날 강연에서 그는‘문학동네 사람들과 나’를 주제로 고난과 역동의 세월을 함께 헤쳐온 문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날 강연은 근·현대문학사의 한 단면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소중한 자리였다.그의 이야기는 통영검사 시절부터 시작됐다. 1961년 통영에서 검사생활을 하던 그는 당시 통영여고 미술교사로 근무하던 김종근 화백(훗날 부산여대 교수)과 함께‘시화전’을 열었다. 그는“통영이 그토록 이름난 문화예술인을 배출한 고장인 줄도 모르고 무모한 짓을 벌였다”고 고백한다.
한국문단의 비극과 함께한 세월
시간을 넘긴 사진 속에는 안수길, 이항녕 씨 등이 등장한다. 1965년 남정현 작가의 소설「분지」필화사건의 재판을마치고 나온 문인들의 모습이다. 이 사건으로 소설가 남정현은 반공법 위반으로 기소돼 실형을 선고 받았다. 당시 소설가 안동림의 부탁으로 <분지> 사건의 변호를 맡은 그는 그렇게 시국사건 변호의 첫발을 내딛었다.당시 반공법의 두려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문단의 가혹한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한 변호사의 지인 중에는 변호인과 피고인 사이로 만난 경우도 종종 있다. 그 중에는 고은 김지하 김진명 남정현 마광수 문익환 송기원 임중빈 임헌영 이호철 황석영도 있다.당시 그는 형사소송 패소율이 높은 변호사였다. 그런데도재판이 끝난 후 피고인들은 모두 그에게‘고맙다’고 말하곤했다. 그가 걸어온 길, 그가 맡았던 사건이 어떤 것들이었는지를 드러내는 대목이다.“언젠가는 누군가 나더러‘한승헌 변호사가 변호한 사람치고 징역 안 간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시오’라고 말한 적 있었습니다. 그래서‘내가 변호한 사람치고 풀려나지 않은 사람없소. 만기를 채웠을 망정’이라고 응수했지요.”결국 군부독재의 눈 밖에 난 그는 반공법 위반으로 두 차례에 걸친 옥살이와 고문을 겪었다.그가 빛 바랜 사진 한 장을 가리켰다. 그 중 가운데 위치한문학평론가 김우종이 눈에 띈다. 이 사진은‘문인 간첩단사건’으로 구속됐던 김우종이 석방되던 날의 모습이다. ‘문인간첩단사건’이란 1974년 서울지검 공안부에서 이호철 김우종 정을병 장병희 임헌영 등 문인 5명을 반공법 및 국가 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한 사건을 말한다.“이들이 국제회의나 세미나 등에 참석하느라 일본에 갔을때, 『한양』의 두 김 씨로부터 향응과 돈을 받고 그때를 전후에 그 잡지에 기고를 하여 반국가 단체를 이롭게 했다는 것이죠. 그런데 조사해 보니『한양』지가 위장잡지였고, 발행인·편집인이 북한 공작원이라는 것은 아무 근거 없는 일방적인 주장이었다는게 드러났습니다. 이 사진은 김우종 씨가석방되던 날 우리 모두가 마중 나갔을 때 찍은 거예요.”오래된 편지 한 장이 보인다. 「귀천」의 천상병 시인이 한변호사에게 보낸 편지다.“천상병 시인은 문인들만 만나면 담배값, 밥값 달라고 손내미는데 일등이었어요. 하여튼 매일 출판사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손을 내밀었죠. 그래서 천상병 시인이 나타나면 다들수금하러 온다고 할 정도였어요. 그런데 천 시인이 동백림사건이라는 어마어마한 사건에 연류된 거예요. 제가 변호를맡았는데 나중에 석방된 후에 저녁을 사겠다고 하더군요. 문단 친구들이 그걸 알고는 처음 있는 일이라고 호들갑 떨던기억이 납니다.”동백림 사건(동베를린 사건)은 1967년 7월 8일, 중앙정보부에서 발표한 간첩단 사건이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대한민국에서 독일과 프랑스로 건너간, 194명에 이르는 유학생과교민 등이 동베를린의 북조선 대사관과 평양을 드나들고 간첩교육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천상병 시인 역시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고문을 당했다. 서울대 상대 동문이자 친구였던강빈구 당시 서울대 상대교수로부터“동독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도 고발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천 시인에게 강빈구 교수로부터 막걸리 값으로 빌린 돈을‘공갈로 뺏은 것 아니나며’추궁을 했었죠. 이후에 석방이 되긴 했지만 정보형사들이 항상 미행하고 감시했어요. 그래서어느 날 지방으로 떠났지요. 이 편지는 그가 부산에서 보내온 편지입니다. 여기에도 미행에 대한 얘기가 적혀 있어요.”김지하 시인의 오적필화사건도 빠트릴 수 없는 이야기다.오적필화사건(五賊筆禍事件)이란1970년『사상계』에 실린김지하의담시(譚詩)「 오적」(五賊)으로인해관련자들이옥고를 치른 사건이다.“내가 법조계에서 가장 존경하는 선배인 이병린 변호사님과 함께 김 시인을 변호했죠. 그 후 구속 피고인들은 모두 보석으로 풀려났는데, 김 시인은 지방에 있는 결핵요양소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서울형사지법 재판부의 판결에서 제외됐던 김 시인에 대해서는 후일 74년 민청학련 사건에 그가 연루돼 군법회의에서 재판을 받게 됐을 때, <오적>사건도 이송·병합돼 어물쩍 유죄 판결에 휩쓸렸지요.”그는 문학평론가 백철, 소설가 최명희, 시인 신석정, 신경림, 김남조 등 수많은 문인과의 인연을 소개했다.이날 자리에서 한 변호사는“개인적으로 그 시절은 내 인생에 큰 자양분이었다”며“그때만 해도 서로 만나고 부딪히면서 문학공간을 형성했는데, 이제는 인터넷이 발달해 직접마주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지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오늘 이 자리가 지난날의 추억을 되돌아보는 의미 있는 과거 기행이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