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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8 |
[문화현장] 환경운동가 미야타 유지
관리자(2010-08-03 09:19:21)
환경운동가 미야타 유지 그의 걸음걸음에 녹색희망이 피어난다 “우리 스스로가 문제의식을 가질 때 환경은 더욱 아름답게 보전될 수 있습니다. 작은 행동이 모여 큰 행동의 변화를 이루듯이요.” 일본 출신의 환경운동가이자 평화운동가 미야타 유지(28)는 지구를 걸으며 환경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가 도보운동을 시작한지는 올해로꼭 4년 째. 지난 2007년, UN 평화대사인 폴 콜먼 씨와 함께 중국에서 열린‘그린 올림픽 위크’에 참가가 그 시작이었다. 그는 8개월 동안 중국 푸젠성 푸어주에서 텐진에 이르는 2200km를 걸으며 환경의 중요성을 전파했다. 이후 그가 다녀간 나라는 일본을 포함한 대만, 베트남, 중국, 한국. 그 거리만 해도 2700여 km 이르고, 현재까지 심은 나무는 대략 700여 그루에 달한다. ‘한국’과의 뿌리 깊은 인연 지난 6월, 그가 다시 한국을 찾았다. 2008년과 2009년에이은 세 번째 방문이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이슈되고 있는4대강 사업 현장을 둘러보기 위해서다. 그는“강은 그대로흐르는 게 가장 좋다”는 말로 4대강 사업에 대한 반대의 뜻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한국과의 첫 인연은 2007년 유학시절이다. 그는 일본 게이오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 유학와 연세대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당시 한국어를 한 마디도 못했어요. 어느 날은 길을 잃어헤매고 있는데, 지나가던 분이 경찰서에 데려다주며 도움을 주더군요. 한국 사람의 마음이 맑고 따뜻하다고 생각했어요.”2008년에는 8월 중순‘람사르 총회’를 기념하기 위해 다시 한국을 찾았다. 전북 새만금갯벌에서 출발, 서남해안을따라 람사르 총회가 열린 창원까지 650km를 걸으며‘갯벌의 중요성’을 역설했다.이후 2009년에는 UN이 정한 세계 평화의 날을 기념해열리는‘지구축전’을 알리기 위해 한국에 왔다. 영양‘한의비’에서 출발해 포항-경주-울산-부산-제주를 걸었다. 영양‘한의 비’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오키나와에서 희생된한국인을 위한 추모비다. 1944년을 전후해 경북 북부지역에서 조선인 3천명이 강제 징용으로 오키나와에 끌려 갔다.그 중 1천 200여 명이 다시 조국의 땅을 밟지 못했다. 이들의 아픔을 위로하기 위해 일본인 700여 명이 700만 엔의 성금을 모아 세운 비가‘한의 비’다.그는“일본의 실수로 가장 가까워야 할 한국과 일본이 가장 먼 나라가 됐다”며“일본인의 한 사람으로서 더욱 미안하다”고 말했다. 또한“일본이 지난 날의 실수를 인정하고 반성해 양국 간의 우호가 증진되길 바란다”며“양국이 함께 환경문제에 대해 고민한다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녹색희망을 심다 어릴 적, 그는 언제나 혼자였다. 관심은 언제나 우등생인형이 차지했다. 그는 형에 대한 콤플렉스와 공부에 대한 압박감에 시달렸다. 급기야, ‘집착증’까지 생겼다. 결국 그는학교를 그만둬야 했다.“그때만 해도 너무 힘들었어요. 형이 공부를 잘해서 무엇을 해도 형한테 비교 당했지요. 그런 콤플렉스 때문에 점점이기적으로 변해갔어요. 그러던 중 폐에 문제가 생겨 병원에입원했는데, 그때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알게 됐어요.”그의‘집착증’은 환경운동을 하며 크게 호전됐다. 욕심을비우니 마음의 병이 사라졌다.스승 폴 콜먼 씨와의 인연은 우연히 닿았다. 2007년의 어느 날, TV를 보던 그는 지구 곳곳을 걸어 다니며 나무를 심던 폴 콜먼 씨를 알게 됐다. 그렇게 둘은 중국 곳곳을 함께 누비며 환경을 위한 메시지를 전했다. 이후 그는 폴 콜먼 씨에게서 독립, 홀로 환경운동을 시작한다.“대부분 혼자 걷는다고 하면 외로울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저는 외롭지 않아요. 제 걸음에는 저를 도와주는 수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니까요. 비록 같이 걷지는 못해도 마음으로 함께걷기에 외롭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는 곳마다 수많은 분들이도와주니 감사할 뿐이지요.”그렇게 4년의 시간이 흘렀다. “잘 곳이 없을 때는 길거리에서 잠을 청하기도 해요. 그럴 때면 마을의 무덤가로 가죠.그곳에는 도둑도, 나쁜 사람도 오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걷다보면 가끔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어요. 그럴 때면도움을 준 분들과 저를 응원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다시 힘을 내죠.”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베트남. 이곳에서1955년부터 1975년까지 계속된 전쟁은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뿐만 아니라 전쟁이 끝난 지금까지도 당시에 사용된 무기와 화학약품으로 인해 피해자 본인과자녀들이 장애를 입고 있는 실정이다.“베트남의 한 고아원에서 아이들을 돌봐준 적 있어요. 전쟁이 끝난 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때의 후유증이 남아있더군요. 그때 사용한 무기와 화학약품으로 인해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고아원에 버려졌죠. 아무런 죄 없이 전쟁의 피해를 입은 아이들을 보며 그때의 참상을 다시 돌아보게 됐어요.” 희망을 안고, 오늘도 걷는다 이제 그의 목표는 유럽이다. 2012년까지 영국 런던에 도착, 런던올림픽에 맞춰 유럽 지역에 환경과 평화의 메시지를전달할 계획이다.“어떤 사람은 환경운동이 정부나 NGO 단체에서만 하는일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우리 모두가 환경운동가가 될 수 있어요. 길가의 쓰레기를 줍거나 혹은 분리수거 등도 일종의 환경운동이죠. 작은 행동이 모이면 큰 변화를이룰 수 있듯이 조그만 실천이 지구를 바꿉니다.”그는 오늘도 걷는다. 지구의 환경이 아름답게 보전되길 바라며 느리지만 꾸준히 걸음을 옮긴다. 그의 걸음걸음에 녹색희망이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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