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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8 | [정철성의 책꽂이]
아, 매월당!
정철성 문화저널 편집위원(2003-09-05 14:00:51)
봄이 오기 직전 세상을 등진 당대 문장 이문구의 행적을 다시 둘러 볼 기회를 갖지 못하고 철이 바뀌었다. 떠나면서 부탁하기를, 화장하여 뼈를 뿌리되 남김이 없도록 하고 자신의 이름을 내세워 비석을 세우지 말라고 했단다. 뒷자리의 깨끗함이 천연덕스럽게 늘어지면서도 군더더기가 없는 그의 문장을 닮았다. 둘인지 셋인지 크게 나뉜다는 문단에서 소통을 주장하여도 좌우에서 말이 없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말년의 작은 소동도 그런 주장의 끝에 있었을 것이다. 올 장마가 유난하여 이레 동안이나 햇빛을 보지 못한 적이 있었다. 그 동안 이문구의 소설을 다시 읽었다. 여기서『우리동네』『관촌수필』을 젖혀 두고『매월당 김시습』을 거론하는 것은 나중 작품의 성취가 더 높아서가 아니라 작금의 세태에 비추어 생각나는 것이 많아서이다. 『매월당 김시습』은 한시가 많이 인용되고 한자어가많아서 쉽게 읽히는 소설이 아니다.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인 토속어의 빈번한 사용도 걸림돌이다. 이문구가 사투리를 사용하는 솜씨는 이미 소문이 파다하다. 실존인물인 한 친구의 행장을 겸하여 쓴『유자소전』에는 독특한 보령 사투리의 예가 있다. "아 그 개갈 안 난다는 말처럼 개갈 안 나는 말이 워디 있간됩세 나버러 개갈 안 나게 묻는다야." 전라도 말의 거시기 정도에 해당할 이런 말은 듣는 이로 하여금 절로 웃음을 깨물게 한다. 『매월당 김시습』에도 감칠맛 나는 입말이 줄줄이 쏟아져 나온다. 쓰임새가 없으면 국어사전에 표제어로 올라 있다 하여도 이 시대의 한국어라 할 수 없다. 이문구의 소설은 반쯤 죽은 이런 말들에게 생기를 불어 넣고 있다.자리가 좁아 일일이 점검할 수 없으나 매월당이 문도들과 더불어 초막을 짓는 장면은 짤막하면서도 빈틈없는 묘사가 눈에 보이는 듯하여 읽어봄직하다. 겨울에 눈에 갇혀도 설해가 없도록 집터를 우묵하게 팠다. 튀는 돌로 맞담을 치고 흙으로 메지를 넣어 담벽이 곧 바람벽이 되게 하였고, 앞쪽은 중깃을 세운 위에 싸리로 가시새를 대고 맞벽칠을 하여 바람벽이 곧 담벽이 되게 하였다. 천장은 서까래 위에 뻥대와 화라지로 산자를 받아 삿갓반자로 꾸미고, 지붕은 따로 뜸을 엮어서 이엉을 이었으며, 산죽을 엇결어서 문살을 삼고 처마엔 솔가지를 쪄다가 송첨을 달아서 차양이 되게끔 하였다. 최근에 두툼한 심경호 저 『김시습평전』이 나왔다. 『평전』은 김시습의 일생에 붙어 다니는 몇몇 일화의 사실성을 의심한다. 전기는 당연히 정확한 연대와 정황의 파악에 주력하고 실제와 소문의 차이를 밝히려고 노력한다. 매월당 김시습의 행적에서 적어도 네 개의 일화가 두드러진다. 다섯 살에 세종이 불러 어전에서 시를 지었고, 사육신의 시신을 수습하여 노량진에 묻었고, 봉원부원군 정창손을 맞대 놓고 욕보였으며, 대제학 서거정의 이름을 부르며 거들먹거렸다는 것 등이다. 『평전』은 다섯 살이 아니라 아홉 살 무렵이었음을 논증하고, 조숙한 천재의 예가 드물지 않았다고 예를 들어 설명한다. 두 번째는 전하는 이야기라 확인할 수 없고, 정창손이 봉욕한 것은 사실이나 서거정이 연루된 것은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비하여『매월당 김시습』은 일화들을 모두 사실로 취급한다. 이문구는 작가의 말에서 "당대의 지성과 기개와 고절의 표상인 생육신으로서의 매월당의 모습보다 새롭고도 파격적인 의식과 주제와 방법을 제시한 문인으로서의 매월당. 선구적인 저항시인으로서의 매월당. 그리고 그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에 더 관심이 많았다고 하였다. 소설이 어린 모습을 잘 구현하였다면 사실의 확인에 치밀하지 못하다 하여도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 소설에서 매월당은 주로 설악산에 거주하며 유자한의 초청으로 양양에 다녀오기도 한다. 매월당의 나이가 이미 오십을 넘어간 시기이고 그가 무량사에서 입적하기 전이다. 중요한 사건들은 모두 매원당의 회상 속에서 전개된다. 이런 회상을 매개하는 것이 그가 남긴 시편들이다. 인용된 시들은 자전적 기록의 예로서 그때마다 매월당이 만난 사람과 풍경, 그리고 매월당의 느낌을 확인하는 도구가 된다. 매월당의 삶은 세조의 찬탈을 계기로 급변한다. 과거를 포기한 뒤 집을 떠나 관서, 관동, 호남을 두루 여행하였다. 금오산, 수락산, 설악산에 머무르다가 무량사를 마지막 거처로 삼았다. 그 동안 그는 끊임없이 통치 이데올로기인 유교의 가르침과 세조에서 성종 조에 걸친 현실 정치의 타락 사이의 어그러짐에 괴로워하였다. 단종의 충신이었던 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응부, 유성원의 이름은 익숙하다. 사육신이라 칭하게 된 것은 남효온의『육신전』에서 비롯한다고 한다. 사육신 외에도 "죽기를 보람으로 여긴 영혼이 자못 허다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세조의 충복이었던 정창손, 김질, 한확, 권남, 홍달손, 홍윤성, 신숙주, 정인지, 한명회 등은 한데 묶어 부르지 않는다. 작가는 이들 공신들의 이름을 여러 번 열거한다. 그때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인물도 여럿이다. 역적이 나면 그 일족의 사내는 대개 죽이고 더러 귀양 보내고, 어머니, 아내, 첩, 딸, 며느리, 손녀는 노비로 삼아 다른 재산과 함께 나누어 주었다. 신숙자가 "제 공로만 믿고" "궁중의 종으로 목숨을 지탱하던" 열여덟 살 단종비를 종으로 내려달라 청하기까지 하였다는 말이 남아있다. "민간에서 신숙주를 저주하다 못해 생으로 꾸며낸 뜬소리"일 수도 있다. 여하튼 서로 교유하며 친구로 지내기도 했을 정적의 가족에게 씌운 연좌는 인간의 길이 아님이 분명하다. 『매월당 김시습』에 등장하는 성명들은 두 부류 가운데 하나에 속한다. 남효온으로 대표되는 청담파는 앞에 속하고, 일신의 영달을 꾀하여 출사한 인물들은 뒤에 속한다. 정치적 사안에 대하여 일절 입을 다물고 문화사업에 참여하였던 서거정의 경우 분간이 쉽지 않다. 그의 처신을 두고 당대에도 말이 많았던 것이 소설에도 나오는데 후자라고 평가하는 쪽이다. 그러나 매월당은 문장으로일가를 이룬 서거정에 대하여 한 수 접어주는 태도를 취한다. 작가가 매월당의 스승이자 자신의 조상인 이계전에 대하여 공신이 된 사실은 기록하되 평가는 아끼는 것과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매월당은 김질 등이 득세하자 "도대체 이 백성들이 무슨 죄를 그리 크게 졌기에 하필이면 그런 것들이 그런 자리에 앉는단 말이냐"고 두 번씩이나 탄식한다. 그러나 이 말은 지배계층의 한 사람이었던 매월당의 의식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정치적 의사결정의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있었던 민초로서는 그저 수군거리는 것밖에 아무런 여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민심은 천심이었지만 귀 기울이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물론 소설에는 성이 없고, 더러 이름도 없는 평민들이 등장한다. 매월당이 설악에서 만난 도끼질하던 사내, 양양 코머스 기생 소동라, 그리고 매월당의 외가에서 온 천석이 등은 소설의 전개에 결정적인 구실을 한다. 천석은 노량에 사육신의 시신을 묻을 때 손발이 되었던 인물이다. 소설 가운데 가장 극적인 장면이 이곳이다. 천석은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인물 가운데 가장 돋보인다. 수자리 살던 늙은이의 딸 꼭지에 대한 연정이 천석의 성격에 일정한 영향을 끼쳤음을 암시한 것은 일이 끝난 후 천석이 자연스럽게 울릉도로 사라진 것과 잘 어울린다. 금성대군 녹사의 땅에 도지를 붙이던 농부를 등장시켜 그로 하여금 묘지의 위치가 전해지게 한 것도 작가의 안배이다. 여기서 매월당은 "삿갓만한 옴팡간은 사람이 있는데, 솟을 대문 관가에는 사람이 없"다고 비판한다. 밑바닥의 삶을 겪어본 후 사람의 행실이 출신과 상관없음을 깨달았으나 여전히 기준은 관가에 있으니 이 매월당은 타고난 먹물뜨기이다. 매월당을 어떻게 보느냐는 우리의 과제이다. 『금오신화』를 두고 매월당이 "천년 후엔 능히 알아볼 자가 나오리라고 장담하였다"한다. 작품에 대한 해석이 인간에 대한 평가와 동일시되는 시점이다. 매월당을 여러 측면에서 보면 새로운 인물이 나타날 수도 있다. 듣건대 매월당은 시상이 떠오르는 대로 쓰고, 쓰고 나면 흐르는 물에 던져버린 것이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문구의 매월당은 언제라도 필요하면 자신이 예전에 지은 시를 암송하는 것으로 나온다. 이런 것은 문제가 아니다. 시인이었을 뿐 아니라 소설가였던 매월당의 소설이 가볍게 언급된 것이나 유불선을 두루 섭렵하였다는 사상편력의 흔적이 드문 것이 아쉽다. 매월당을 담기에 소설 한 권은 턱없이 작다. 작가가 부탁한 대로 빈곳을 채우고 굽은 곳을 바로잡은 소설이 또 나올 것이다. 『매월당 김시습』을 다시 읽으니 십 년 전에도 예기가 선연하여 뜨금하였거니와 지금도 여전히 머리털이 곤두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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