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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8 |
[서평] 『강남몽』
관리자(2010-08-03 09:20:05)
『강남몽』 강남제국, 한국 현대사의 슬픈 연못 - 서철원 소설가 왜 하필‘몽자류’소설인가? 그것은 한바탕 허망한 꿈에 지나지 않을진대, 황석영의『강남몽』은 꿈이 아닌 사실의 이야기다. 또 그것은 슬픈 과거이며 현실인 동시에 역사이기도 하다. 황석영은『강남몽』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토한다. 여전히 한국 자본주의 아성으로 군림하는‘강남제국’, 그 형성 배경을 한 권의 소설 속에 기록함으로써 오래 묵은 화두를 털어낸다.이 소설은 소설 속에 말이 풍성하다. 말로써 글이 넘치는 싸구려 말들보다 글 속에 말이 풍성한 호된 글귀에 안도한다. 책을 읽어 내려가는 독자는 소설의 서사로부터 밀려나가지 않고 오히려 서사 안으로 스며든다. 여기에 황석영 문학의 힘이 실려 있다. 이는 멀리 있는 것을 가까이 앞당겨보려는 소설과 다르다. 가까이 있는 것을 멀리 보내려하는 것과도 차원을 달리한다. ‘강남’을 통해 되새긴 비극적 한국 현대사 『강남몽』은 여럿의 소설인 듯하면서도 결국은 하나의 소설이고, 하나의 서사인 듯하면서도 결국은 다주체의 서사이다.서로의 꿈과 꿈을 넘나드는, 그 알 수 없는 호접몽(胡蝶夢)의흔들림 속에서 황석영의 서사력은 거침없이 기침한다. 유물론이 메마른 시대에, 시대적 각성 없이 세상을 간파하고 생의 여지를 남기는 일은 어렵다. 황석영은 묻혀버린 역사를파헤쳐 그 극명성을 진정하고자 소설을 쓴다. 따라서 황석영의‘말많음’의 표현양식은 감성적으로 떨어져보여도 그것을뛰어넘는 강인한 서사력 때문에 시대적 각성으로서 재해석되고 인정받는다.이처럼 역사를 되짚어 올라가는 일은 강물을 거스르는 연어들의 회귀본능처럼 단순하지 않다. 철따라 흘러가는 기러기의 생태적 본능과도 엄연히 다르다. 역사란 말 그대로 우리가 살아온 과정이며, 앞으로 살아갈 날들의 배경인 것이다. 그것은 한줄기 혼몽처럼 어지럽거나 혼란스러운 것이라기보다 다만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어렵다.황석영은 서울 한복판‘강남’의 한 백화점 붕괴를 기점으로 여럿의 에피소드를 통해 우아하면서도 비극적인 한국 현대사를 복원한다. 지난 세기 지배이데올로기 안에 감추어진강남의 역사를 파헤치는 과정은 작가로서 고투의 작업이었을 것이다. 현재의 삶을 규정하는 역사, ‘강남개발’그것은출발부터가 허점과 오류로 이어져 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꿈’의 영향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어떤이는말한다.“ 우리시대의거장황석영만이쓸수있는 강남 이야기”라고. 적나라하게 드러나 한국 자본주의의 폐단 『강남몽』은 일제강점기에서 광복, 6.25한국전쟁, 산업화의 물결을 거슬러 한국 자본주의의 극심한 폐해를 다섯 개에피소드로 엮어간다. 에피소드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 그러나 하나의 매듭으로 연결된 각각의 캐릭터를 통해 한줄기 서사의 강을 이룬다.1장‘백화점이 무너지다’는 박선녀를 주인공으로 해서 강남의 화류계 세계를 조명한다. 6, 70년대를 거치면서 산업화의 기운을 쫓아가는 밤나방들의 사투는 가히 사실적이다. 한쪽이 일어서면 다른 한 쪽이 어김없이 허물어지는 양육강식의 전개는 실로 참담하다. 여기에 부동산 투기, 주먹세계, 정치와 밀착한 부정과 비리, 이러한 모순의 악순환을 거쳐 강남의 화류계는 살아난다. 그러나 정작 강남을 둘러싼‘꿈’이야기는 백화점 붕괴로 시작된다. 이것이 의미하는‘반전’효과는 깊고 치명적이다.2장‘생존만으로는 충분치 않다’에서는 일제강점기 일본헌병대의 밀정 노릇으로 시작된 김진의 생애를 그린다. 해방이 되자 김진은 미군정청 특무기관인 CIC의 요원으로 활략하면서 제주 4.3민중항쟁과 여순민중항쟁을 탄압하고 무차별적으로 진압한다. 한국전쟁 후에도 미군과 관계를 유지하면서 정치계와 군사계 안팎에서 누차 살아남는다. 5.16 군사쿠데타를 거친 후 건설업에 뛰어든 김진은 큰 성공을 거든다. 미군으로부터 강남땅까지 불하받는다. 여기에 아파트와백화점을 지어 올리지만, 백화점은 얼마가지 않아 부실공사로 붕괴된다. 박선녀는 김진의 후처이다. 이는‘강남몽’을 꿈꾸어온 한국 자본주의의 비극적 결말을 암시한다.3장‘길 가는 데 땅이 있다’는 심남수를 통해 강남 개발이전의 부동산투기열전을 조명한다. 제3한강교 건설을 앞두고‘말죽거리 신화’가 시작될 무렵 제대 후 백수로 지내던 심남수는 우연히 부동산업자 박기섭을 만난다. 일명‘떼기’라는 부동산투기가 성행하던 시절이다. 심남수와 박기섭은 청와대로부터 정치자금 축적을 위한 부동산투기 지시를 받는다. 또한 서울시가 남서울 개발을 추진하면서 심남수와 박기섭은 막대한 이익금을 챙긴다. 심남수는 박선녀의 연인이었으나 강남 특혜분양사건에 휘말리기 직전 일본으로 도피한다. 70년대 산업화가 가속화 되면서 한국사회는 개발이라는명분하에 정치경제적으로 부정의 극에 이른다. 특히 3장은강남 개발을 둘러싼 정경유착 구도를 실감 있게 그려내면서소설의 속도감을 배가시킨다.4장은‘개와 늑대의 시간’이다. 생존 도구가 딱히‘메탈’이나‘각목’으로 국한되는 조폭들의 세계를 다룬다. 충장로파 홍양태와 북구파 강은촌 간의 주먹 이야기다. 이 둘을 대표로 강남을 둘러싼 구역쟁탈은 전쟁을 방불케 한다. 박정희의 유신체제를 지나 전두환의 신군부체제로 돌입하면서 정계와 유착, 그리고 배신을 반복하며 피비린내 나는 조직다툼을 벌인다. 홍양태는 주먹으로, 박선녀는 술장사란 명목으로동업을 한다. 결코 오래가지 못하지만, 돈을 벌어들이기 위한 목적이라면 술이든 주먹이든 땅이든 권력이든 서로 관계맺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꿈’같은 이야기다. 결국 이모두는 몰락하게 되지만.5장‘여기 사람 있어요’는 붕괴된 백화점 지하에서 박선녀와 함께 살아남은 임정아의 가족사를 그린다. 10여일을 버티다 박선녀는 죽게 된다. 불구가 된 아버지와 식당 보조 일을하는 엄마와 함께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임정아는 구조된다.70년대 개발시대에 경기도 광주대단지로 몰려든 가난뱅이들의 생존은 처절하다. 이곳에 휩쓸린 임정아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생존일기는‘강남’과 무관한 스케일인 듯하지만, 결국 강남개발을 둘러싼 보편적이면서 치명적인 이야기다. ‘가난뱅이들을 위한 천국’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마지막 에피소드이기도 하다.필경,『 강남몽』은일장춘몽이나남가일몽처럼꿈과현실이대별되는‘몽자류’소설로는 적당하지 않다. 오히려‘몽유록’소설 쪽에 가까운데, 현실비판과 역사의식이 증폭된 교술성 내지는 서사성이 이를 반증한다.『강남몽』은인터넷연재때부터호응을얻었다.‘ 강남개발’이라는 명분으로 저질러진 한국 자본주의의 폐단을 그린 사실적‘몽유’의 이야기다. 찬찬히 읽다보면 의분에 차오르고 몸서리치게 된다. 나중엔 울화병마저 도진다. 더 읽다보면‘강남제국 형성사’에 번쩍 눈이 뜨지만, 정작 책을 덮은 뒤에는오히려 씁쓸하고 울적한 기분에 젖어든다. ‘강남’은 왜 한국현대사의 화려하면서도 슬픈 연못이 되어야 했을까.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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