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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9 |
[문화시평] 음악드라마 < 사연>
관리자(2010-09-03 14:18:36)
음악드라마 < 사연> 소극장 판 (7월 24일~8월 2일) 연주와 이야기의 행복한 융합, 그 결실을 위하여 - 곽병창 우석대학교 교수 바야흐로 융합의 시대이다. 누군가는‘비빔’의 시대가 왔다고 말하기도 한다. 낯선 것, 이질적인 것, 동화할 수 없어 보이는 것들 사이의 뜨거운 동화와 융합의 움직임이 점점 더 거세지는 느낌이다. 냉장고가 온도계 노릇,정수기 노릇, 제빙기 노릇 등의 점잖은 진화를 넘어서서 위성티브이 수신기를 장착하더니 급기야는 와인셀러의 기능까지 다 담는다고 한다. 그 현란한 컨버젼스(convergence) 현상을 두고 전라도 판소리와 비빔밥의 미학이 바로 그것이었다며‘애향적으로’자랑스러워하기도 했다. 그런지 어떤지는 판소리와 비빔밥의 미래를 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하지만 원래판소리의 왕성한 생명력의 바탕에 주변의 잡다한 소리들을 다 쓸어 담아새로 창조해내는 융합적 세계관이 깔려 있었음은 분명하다. 선율에 담긴‘사연’을 듣다 그런 점에서 젊은 국악인들이 장르와 장르의 경계를 넘어서서 새로운 공연물들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것은 매우자연스럽고 고무적인 일이다. 물론 그 융합과 경계 넘기가잘 계산되고 정제되어서 완성도 높은 공연으로 이어지는순간을 최상의 성공적인 융합이라 부를 수 있을 테지만,창의적인 생각을 가진 이들의 시도는 그 자체로 이미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이른바 퓨전적 실험에 매진해 온대금연주자 이창선의 존재가 그래서 예사롭지 않다. 그가이번에 내건‘음악드라마’라는 형식도 참신하다. 물론 그이전에 몇몇 연주자들이‘콘서트라마’라는 이름으로 실험적인 무대를 선보인 적은 있었지만 그 이름이 주는 어정쩡한 느낌보다는 본격적으로 내건‘음악드라마’라는 이름이좀 더 명료한 인상을 준다.그들 자신의 표현대로라면‘음악 속에는 이야기가 담겨있다.’그렇다면 이번 공연은 퓨전적 실험이라기보다는오히려 음악의 본질적 모습에 충실한 공연이었던 셈이다.이미 오랜 시간 동안 음악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져왔으니 말이다. 연주자 자신이 연주 사이사이에 마이크를잡고 곡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동료연주자들과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통해서 관객을 친숙하게 무대로 끌어들이는 방식은, 오늘날처럼 음악이 규격화해서 상자곽 무대 안으로 들어가기 이전의 자연스러운 원초적 모습을 연상시킨다. 관객들은 그만큼 포근한 심정으로, 마치 청소년기에 음악하는 친구네 집에 놀러가서 이야기와 음악을 듣고 또 때로는 끼어들어서 간섭하기도 하며 놀던, 그 오래되고 편안한재미를 새삼스럽게 누리는 듯한 기분에 젖는다.이창선의 연주는 때로 격정적이고 때로 섬세하며 부드럽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관객의 호흡과 감정의 결을 읽을 줄아는 좋은 눈과 귀를 지닌 연주자이다. 이는 그가 오랜 시간동안 현장 연주를 중심으로 활동해온 중견연주자의 면모를지녔기에 가능하다. 불과 100석 안팎의 소극장 무대에서 청중들과 호흡하며 이끌어가는 그의 연주는 그런 점에서 청중의 감성을 파고들기에 모자람이 없다. 여기에 만만치 않은실력들을 지닌 동료연주자들의 솜씨 또한 이 팀이 가진 저력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베이스, 일렉트릭, 드럼까지 모두 4명으로 이루어진 단출한 팀이지만, 그들에게서는 오랜 시간동안 열정적으로 한길에 매진해 온 이들만이 갖출 수 있는현란한 기교와 무대 위에서 단련된 예술적 자부심, 그리고서로의 연주에 대한 깊은 신뢰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리더이창선의 예기치 못했던 입담까지 곁들여져서, 열정과 실력,그리고 친근한 분위기 등이 고루 곁들여진 깔끔한 공연을 만들어냈다.이들은 말한다. ‘한 편의 음악이 만들어지기까지는 그 음악만이 가지는 이야기 구조가 있다’고-. 그리고 그 이야기구조를 연주 속에 풀어내는 공연을 만들고자 했노라고-. 이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음악드라마’로의 성장을 기대하며… 하지만 좋은 공연 앞에서는 항상 또 다른 욕심이 슬금슬금고개를 쳐드는 법-. 앞으로 더 좋은 무대를 위해서 몇 가지아쉬움을 짚어 본다.우선‘음악드라마’라는 이름에 충실히 값하기 위해서는,극적 요소에 대한 좀 더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할 것 같다.드라마는 본질적으로 두 가지 힘 또는 생각 사이의 얽히고설킨 우여곡절을 그 본질로 한다. 그리고 그 점이 드라마를 재미있게 만드는 결정적 요소이기도 하다. 공연의 첫머리에 출연료 문제를 둘러싸고 리더와 티격태격하던 베이스 연주자의 모습에서 그런 극적 요소의 실마리를 보았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고 이야기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그 에피소드는 그것대로 짧지만 재미있는 상황설정이었다. 이후의 이야기 전개에서 그만한 극적 요소를 더 찾아낼 수는 없었을까?그런 요소들이 각각의 곡들과 좀 더 자연스러운 연결고리를가지고 만날 수는 없었을까? 장터에 간 어머니를 기다리던소년의 이야기를 조금 더 발전시킬 수는 없었을까? 곡들에얽힌, 또는 곡들 사이의 사연이 좀 더 적극적으로 펼쳐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다. 굳이‘음악드라마’라는 형식을 선택했고, 거기에‘사연’이라는 제목을 내세웠으니 말이다.더 사소한 아쉬움 몇 가지-. 대금연주자의 헤드셋 마이크는 시종 연주자를 괴롭히면서 마치 채널이 맞지 않은 라디오같은 잡음을 냈는데 다른 기술적 방안을 찾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리더를 제외한 나머지 연주자들이 너무 편안한 일상복 차림이었던 게 좀 거슬렸다. 이런 공연에서 반드시 무대의상을 갖춰 입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리더의 의상과도 서로 안 어울리는 느낌이어서 아쉬웠다.개별적으로 연주되는 곡들 사이에 이야기가 흐르게 하는것-. 그래서 각각의 곡이 큰 틀의 이야기 속에서 나름의 역할을 갖고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 거기에 몇 가지 기술적인 세련미를 더할 수 있다면 이들이 새로 내세운‘음악드라마’라는 형식의 공연은 충분히 의미 있고 성공적인‘융합’의한 사례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각각의 곡들이 지닌 아름다움과 힘, 그리고 충실하고 탄탄한 연주솜씨들에 고무되어서 슬며시 얹어보는 트집이다. 곽병창 극작, 연출, 공연기획, 축제 감독 등으로 종횡무진 살아온 전방위 현장예술인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희곡강독 희곡집「강 건너 안개 숲」, 평론집「연희, 극, 축제」외 다수가 있다. 현재는 우석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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