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9 |
[문화시평] < 조각-여름나들이> 전
관리자(2010-09-03 14:18:47)
< 조각-여름나들이> 전
전북대학교예술진흥관 (7월 27일~8월 8 일)
무더위를 식히는 청량한 조각의 세계
- 최병길 원광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전북 전주시 한옥마을의 서북쪽 입구인 어진길 32번지에 위치한 전북대학교 예술진흥관은 너른 잔디밭과단아한 건물, 그리고 그 속에 위치한 아담한 전시공간이 이채롭다.
전통과 현대를 아우른 조각전
2010년 7월 27일~8월 8일까지의 일정으로 전북대학교 예술학과 미술학과 조각전공 교수 및 강사진의 작품을 선보이는 <조각-여름나들이>전은 소품전이다. 주제를보자면 대부분이 작가의 주관주의에 입각한 자아의 내면세계의 표현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재료에서는 대리석, 오석,청석, 고흥화강석, 도예, 알루미늄, 동판, FRP, 고재, 나무등으로 다양하며, 기법 또한 각 재료가 지니고 있는 물성과이미지를 융합할 수 있는 방향으로 다양하게 전개되었다.이 전시회의 작품들은 말 그대로 전체적으로 크기가 작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작품이 그만의 이미지를 전달하는조형적 호소력에 있어서만큼은 남다른 독특한 일면이 있었다. 다만 여기서 애석한 점을 굳이 밝히자면 팜플릿에 실린일부 작품사진이 실제 전시된 작품과 상이하다는 점이며, 아울러 지면 사정상 일부 작품만을 평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양해를 구하는 바이다.전시장으로 통하는 복도의 좌측 벽면에도 전시 작품의 일부가 벽에 걸려 있었는데, 시선을 끄는 작품은 김성균의 <콤퍼지션(Composition), 2010>이었다. 마치 우리네 여성용전통 한복의 윗저고리 윤곽선을 연상시키는 이 목조는 결이아름다운 나무토막과 그렇지 않은 나무토막을 서로 접합시킨작품이다. 작품 중앙부의 섬세한 결을 가진 나무토막들이 결이 거의 없는 투박한 질감을 가진 나머지 나무토막들과의 조화는 매우 섬세한 대비적 처리로 인하여 우아함이 묻어나고있다. 그러면서도 중앙부 좌측의 나무토막들이 좌측으로 삐져나오게 처리한 배치상의 변형을 시도함으로써 좌우 저고리날개의 길이나 면적에서도 변화를 가져왔다.본 전시공간의 좌측으로 시선을 돌리니 한정무의 <우리는알 수 없었던 일, 2008>이 한 눈에 들어왔다. 정중앙의 하늘을 비상하는 새 한 마리와 그 아랫부분에 세 개의 못이 박힌사물 덩어리가 직사각형 패널 위에 새겨지거나 부착되어 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또 다른 특징이 돋보였다. 흰색의 새와 그 하단의 사물 덩어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적색, 청색 등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동력의 근원지를 찾아보았으나 외부와 연결된 전선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러한 연유로 관람자에게는 작품의완성도가 새로운 시각으로 다가왔으며, 제작상의 궁금증을고조시키기에도 충분했다.그 옆으로 시선을 돌리자 두 다리를 벌리고 의젓하게 서 있는 토르소 형상의 도예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엄혁용의 <남+여, 2005>로서 트랜스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그는 늘 포스트모던 경향에 주목해왔다. 작품의 기면이 회화작품처럼다채색의 조화로 처리한 점, 그리고 우연하게 생긴 것인지아니면 필연적으로 접근하려고 한 것인지 모를 균열 효과는작품의 주제와 어울리면서 묘한 충동을 유발한다. 특히 남성의 몸으로 태어났지만 생리적 성향에서 여성화되어 있는 사람들의 묘한 심리적, 육체적 갈등도 조형적으로 잘 마무리된듯하다. 작품 상단 중앙부에서 하방으로 굵직한 직사각형 홈을 파내며, 남성 성기를 제거한 하단의 도드라진 윤곽 사이의 묘한 대조로 마무리된 것이다. 특히 의젓하게 버티고 서있는 인체의 전체적인 포즈는 트랜스들이 이 세상을 향하여정체성의 인정을 요구하는 당당한 울부짖음으로 다가온다.그리고 전시공간의 중앙에는 미술학과 조각전공의 두 교수작품인 계낙영의 <대지>와 정현도의 <심흔(心痕)>이 위치해 있다. 양자는 공히 돌이라는 재료를 통하여 자신의 이미지를 발산해오고 있다. 하지만 전자는 지구의 지질학적인 역사성이나 시원성 등을 돌의 굵직한 양괴적 해석에 치중함으로써 묵중한 느낌을 주는 반면에, 후자는 섬세한 타원형의터치들을 표면에 반복함으로써 작가 자신의 내면적 심상의흔적을 관조자에게서 은은한 파도처럼 일렁이게 하는 특성이있다.전시공간의 오른쪽으로 이동하면서 김동헌의 <가족여행>이라는 대리석 조각이 시선을 끈다. 큰 물고기의 등에 올라타고 인생 여행을 하는 가족의 이미지가 정겹다. 특히 가운데에 위치한 아버지로서의 작가 본인이 앞에 앉아 있는 부인의 머리채를 붙들고 있는 형상은 여성 중심화되어 가는 현대풍조를 대변하는 일면이 있거니와 작가 본인의 부인에 대한애틋한 애정과 의지도 은연중에 내재시킨 듯하다.오른쪽 바닥에는 이길명의 목조인 <재탄생(Rebirth)>이있다. 그 이미지의 전달에 있어서 매우 초승달 모양의 긴 막대를 일정한 간격으로 홈을 파가는 가운데 각각의 음각 공간에 다시 양각 형상을 위치시킨 조각기법은 작가가 자신의 이미지를 섬세한 터치로 응집력 있게 표현해내려는 노력으로비쳐진다.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번 조각전은 전시공간의 왜소함에서 작품의 스케일을 축소시켜 버렸지만, 작품의 밀도는 거의변함이 없어서 감상하는 데는 또 다른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다. 푹푹 찌는 무더운 여름날에 관조자가 작품이 지나치게 압도당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으니 그 어디에이만한 청량한 예술문화 피서지가 있겠는가? 작품을 감상하고 나오는 길에 안내 직원의 친절한 설명과 함께 다음번 전시팜플릿을 받아들면서“이러한 전시 일정이 많은 예술 애호인들에게 알려진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해보았다.
최병길 1956년에 태어나 원광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원광대학교 대학원 회화과(미술학 석사, 조각 전공), 홍익대학교대학원 미학과(문학 석사, 미학 전공), 원광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철학 박사, 미학 전공)를 졸업했으며, 현재 원광대학교 미술대학 환경조각과 교수로 재임 중이다. 저서로『인체조소』,『 근대조각사』『, 세계조각의역사』『, 인체해부학』등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