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9 |
얘기보따리의 소리로 엮는 전주이야기 - 전주 막걸리가
관리자(2010-09-03 14:20:58)
얘기보따리의 소리로 엮는 전주이야기 - 전주 막걸리가
걸쭉한 막걸리 한 사발에 설움 한 줌 날리고
- 문신 시인·전북작가회의 사무처장
(아니리)
예로부터 전라도 따흔 인심 좋고 물맛 좋기로 소문난 곳인디,
기중 전주가 어찌 으뜸 아니겄는가? 꽃심땅 맑은 물이 솜씨 좋은 주모를 만
나 누룩에 쌀이 어울어져 전주 막걸리가 되었것다. 그러니 이 광대 그 맛난
역사를 어찌 아니 이를쏘냐? 오날날 교동이라 이르는 자만동 맑은 물로 막걸
리를 맹그는디, 맹글어도 꼭 이렇게 허던 것이었다.
(중모리)
백설보다 고운 햅쌀 한 말 두 말 물에 부서
시 번 니 번 씻고 난 뒤 열두 시간 불리난다
물기 쪽 뺀 연후에난 삼베천에 담고서리
짐으로만 폭폭쪄서 꼬두밥을 짓는구나
지나가던 아해 하나 꼬신 냄새 맡았던지
실금실금 깐치발로 부신햇밥 훔칠적으
"아야 이놈아, 술 한 잔 거저 마른다."
꼬두밥을 채에 담고 바람솔솔 식힌후으
누룩으 버무리는디 고 누룩이 기가 막혀
연꽃 같은 발꿈치로 자근자근 디딘 끝에
한옥마을 골방속으 누룩꽃을 피웠더라
전주천 내린 바람 맑은 기운 담았는가
살랑살랑 고운 기운 누룩속속 스몄더라
잘게 부신 누룩에다 고슬고슬 고두밥을
참숯다린 항아리에 자분자분 담는구나
차고 맑은 물 한 대접 지성으로 떠다 붓고
하로 이틀 사흘나흘 보름날이 가까울 적
보글보글 오글오글 자글자글 익난 소리
두근두근 울렁울렁 입안 가득 침고이네
웃술 걸러 청주하고 아랫술은 약주인디
용수박아 막거르면 요놈이 막걸리라
술빛깔이 탁허다고 탁배기라 부르난 놈
모심다가 마신다고 농주라 이르난 놈
이름이사 어찌됐든 고운 향기 입에 가득
홀짝홀짝 달콤한 술 벌컥벌컥 배부른 술
(아니리)
새 술 익어 걸렀으니 어디 냄새만 맡고 있을 놈이 누가 어디 있것느냐? 전주
주모 눈치 알고 술상 갖춰 안주 채려 내오는디, 전주십미 육해공군 주모손을
거친후엔 하나같이 산해진미던가 보더라. 입이 근질근질 목이 벌렁벌렁허신
지나가는 과객님들 머뭇머뭇 주볏주볏 허들말고 주효한번 드셔보시는디
(휘모리)
한 잔 술으 입가심은 야채과일 홍동백서, 두릅에 더덕이요 당근에 마늘쫑,
풋고추에 오이 토막, 고구마에 배추 뿌리, 파전에 부침개요, 시원허다 아욱
국이라.
두잔 술으 해군 안주 굴한접시 다슬기, 소라고둥 꼬막무침 희희낙락 꼴두기
회, (아따, 이건 인자 시작이여.) 나근나근 키조개에 보들보들 문어살, 아구찜
에 굴비요 거그다 불끈불끈 해삼이라, 새우구이 군꽁치를 날름날름 덥석덥
석 자시는디. 애고 숨차라. 은근슬쩍 광어회, 고사리 넌 매운탕에 어절씨구
쭈꾸미, 삼합으 홍어로 끝나는가 힛더니, 오매 시상으, 덥석덥석 꽃게장, 꿈
틀꿈틀 산낙지에 자그마한 활전복도 올라오니 상우엔 나이타 하나 놀 자리
가 없던 것이더라.
(아니리)
이것으로 끝난다면 이 광대가 어찌 주효가를 허것느냐, 쪼까 더 들어보시라.
(휘모리)
육군이라 놀겠느냐? 육회에 편육, 수육에 족발 정도로 명함 내밀기는 그렇
고, 공군이 잡아온 쩍 벌리고 누운 백숙, 옻닭으로 끝을 보는디, 치즈에 햄버
거 빼고는 돌고 돌아 상을 채우니, 아, 끝이 없던 것이니, 삼군통제사가 바로
전주 주모 아니던가 허는 말이드라.
(중모리)
소주 맥주, 섞어불면 비틀비틀 휘청휘청
와인 양주, 붓고나서 전전긍긍 욱신욱신
오십세주 폭탄주에 지끈지끈 휘청휘청
병에든 화학 술에 속 베리던 술꾼님들
막걸리에 푸진 안주 싱글싱글 흥얼흥얼
막걸리로 전향허는 양반님들 늘어가네.
(아니리)
술과 안주 그 사이에 이야기와 흥이 엮어지니 요즘 말로 통섭이 따로 없던 것
이더라. 깨고나면 스트레스가 스레트로 층층히 쌓이는 양반님들! 헬스클럽
사우나에 별짓을 다 히바도 어찌 속이 개운할까마는, 이 자리서 전주막걸리
를 자시는 어화 우리 벗님네들 이 광대 오늘 마지막 뽀나스를 드리나니, 그
거시 무엇이냐? 낼 아침이먼 변소간서 알게 될것이로되, 전주막걸리를 자시
고 나면 반짝반짝 윤이 나는 황금똥을 눈단 말이시, 그 뒤엔 누가 알랴, 더질
더질.
전주막걸리가 창작배경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이라는 시 구절이 있다. 그렇다. 그렇게 막걸리에 취해 돌아오는 길에는 저녁놀이 막걸리 냄새만큼이나 틉틉하고 질펀하게 서쪽 하늘에 퍼질러 있곤 했다. 그 노을에 충혈된 눈빛으로 동네 막걸리집을 나서비틀비틀 골목을 돌아가던 아버지, 큰 형, 그리고 그리운 얼굴들.생각해보면 그리울 것도 없는 막걸리집이다. 그 시절 그 막걸리집은 오래 전에 술집으로 바뀌었다가 호프집이나 소주집혹은 먼 나라에서 건너온 알쏭달쏭한 이름들로 변해갔다. 그러다보니 대개 술집이라는 일반명사를 두루 쓰고 있다.하지만 막걸리집을 그냥 술집이라고 하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막걸리집은 결코 술집이 될 수 없다. 막걸리집은 그냥막걸리집이다. ‘막걸리집’이라는 말에서는 시큼한 술내가 난다. 그 술내는 곧 사람들의 몸내이기도 하다. 들큰한 막걸리냄새와 지친 피곤기를 담은 독한 담배연기, 그리고 축축한넋두리와 유행가 한 소절이 잘 발효되어 풍기는 쉰내가 있다. 시끌벅적해도 소란하지 않고 떠들썩해도 오히려 잔잔한숨소리들이 있다. 막걸리집에서는 술잔 엎어진 자리에 술꾼들도 퍼질러 앉는다. 그러다가도 때가 되면 주섬주섬 일어나서로 기대기도 하고 끌어대기도 하면서 어두운 골목길 저편으로 사라지곤 한다. 이를테면 이것이 막걸리집 골목의 한풍경인 것이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잠시 숙연해지는 것은사람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막걸리집에서는 사람이 술을 마실지언정 술이 사람을 끌어대지는 않기 때문이다.막걸리는 이화주(梨花酒)라고도 한다. 배꽃이 필 무렵에 막걸리용 누룩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화주는 멥쌀을 가루 내어 물송편을 만든 뒤 다시 으깨어 쌀누룩과 함께 빚어 넣는데, 다 익으면 죽같이 생긴 흰빛의 술이 된다. 누룩은 주로밀로 만드는데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알려져 있다. 『조선양조사(朝鮮釀造史)』에 따르면 막걸리는중국에서 전래되었으며, 대동강(大同江) 일대에서 처음으로빚어지기 시작하여 나라의 성쇠(盛衰)를 막론하고 국토의 구석구석까지 전파되어 민족의 고유주가 되었다 한다. 좋은 막걸리는 단맛·신맛·쓴맛·떫은맛이 잘 어우르고 적당히 감칠맛과 청량미(淸凉味)가 있는데, 이 청량미는 땀 흘리며 일한 후에 갈증을 멎게 하는 힘도 있어 농주(農酒)로서 애용되어 왔다. 산의 냄새와 맛이 세고 알코올 농도는 6∼7도 정도이다.이러한 막걸리에는 오덕(五德)과 삼반(三反)이 있다고 한다. 일덕(一德)은 취하되 인사불성일 만큼 취하지 않는다. 이덕(二德)은 새참에 마시면 요기가 된다. 삼덕(三德)은 힘이 빠졌을 때 마시면 기운을 돋우게 한다. 사덕(四德)은 안 되던 일도 마시고 넌지시 웃으면 일이 성사가 된다. 오덕(五德)은 더불어 마시면 응어리 풀린다.그리고 삼반(三反)에는 첫째, 놀고먹는 사람이 막걸리를 마시면 속이 끓고 트림만 나며 숙취를 부른다 해서 근로지향(勤勞志向)의 반유한적(反有閑的)이요 둘째, 서민으로 살다가 임금이 된 철종이 궁궐 안의 온갖 미주(美酒)를 마다하고 토막의 토방에서 멍석옷 입힌 오지항아리에서 빚은 막걸리만을찾아 마셨던 것처럼 서민지향의 반귀족적(反貴族的)이며 셋째, 군관민(軍官民)이 참여하는 제사나 대사 때에 합심주로막걸리를 돌려마셨으니 평등지향의 반계급적(反階級的)이라는 것이다.오덕이든 삼반이든, 한 주전자의 막걸리에 딸려오는 안주들은 마치 푸짐한 잔칫상을 받은 것처럼 넉넉하다. 좁은 테이블이 차고 넘쳐서 겹겹으로 포개놓고도 더 나올 것들이 주방에서 끓고 데치고 무쳐지고 있다. 전주에 이처럼 막걸리 인심이 좋은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물이 좋고 들이 좋으니그 물과 그 들에서 난 곡식으로 담근 막걸리의 맛이 어떻겠는가. 아울러 좋은 막걸리를 마시고 사는 사람들의 성정은 또어떻겠는가. 그러니 막걸리나 막걸리를 마시는 사람이나 그것을 파는 사람들 모두 후덕하고 넉넉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그러다보니 전주에는 막걸리집이 참 많다. 경원동, 삼천동, 서신동 등 어느 골목을 가더라도 불빛 환하게 밝혀놓은막걸리집을 만날 수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곱다고는 못해도 곰보째보는 아닌 주모가 인간적으로 반겨준다. 거기다가 깔리는 밑반찬에는 입이 떡 벌어진다. 흥청망청이 아니라조금 더 얹었다는 뜻이다. 그 자리에서는 눈물도 한숨도 욕설도 설움도 모두 술술 풀어진다.오늘밤도 어느 골목에서는 서로 어깨를 겯고 가로등 밑을걷는 막걸리 같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밤개도 감히 짖지못할 그림자들이 골목길을 가득 채운다고 해도 오히려 넉넉할 것이다. 그것이 사람내가 아니겠는가. 골목을 걸어가는발소리가 무분별하게 꿈속까지 들려오더라도 살풋 미소지어줄 일이다. 우리 또한 언젠가는 그들의 꿈길에 한 번쯤 다녀갈 날이 분명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