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9 |
이현근의 농촌학교 이야기
관리자(2010-09-03 14:21:08)
공교육 돌아보기
지역의 인재란 어떤 인재여야 하는가
- 이현근 임실지사초등학교 수석교사
교사에게 방학은 재충전의 시간이다. 방학이 없다면 교사는 학기 중 받은 스트레스를해소할 시간이 없다. ILO(국제노동기구)는 1970년대‘교사의 스트레스는 전쟁터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교사에게 방학은 회복을 위한‘쉼’의 시간이다. 그리고 준비의 시간이다. 교사들은 충전을 위해 연수를 받거나 책을 읽는다.
공교육이란 무엇인가
올 방학에 읽은 책은 핀란드교육에 대한 책이었다. 방학하는 날, 서점에 가서 핀란드교육에 관한 책을 여러 권 골랐다. 그 중 두 권을 읽었다. 책을 읽으며 공교육, 사교육,그리고 갈등으로 둘러싸인 자율형 사립고(자율고)에 대한여러 생각이 났다.지난해‘행복한 화요일에 책읽어’에서『바보 만들기』(민들레)를 읽으며‘왜 사람들은 학교교육을 받으면서 바보가되어 가는가’에 대해 존 테일러 개토의 소리를 들었다. ‘우리는 학교를 다니며, 공교육을 받으면서 어떤 바보가 되어가고 있다’는 개토의 말에 공교육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단호하게‘그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없었다. 우리는 교육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공교육을 바로 세우기 위한 혁신적인 방안을 찾고 있다. 다소 엉뚱한 질문이다.‘ 공교육이뭘까?’공교육은 한자로‘公敎育’이라 쓴다. 여기서 공(公)은‘공평하다’는 말뜻이 있다. 그리고‘관청’이라는 말뜻도 있다. 지금의 공(公)교육은 똑같은 학습꺼리를 학교라는 공(公)이 제공하는 자리에서 배우는 학교교육을 말한다. 공(公)교육이라는 말의 맞은편에 사(私)교육이라는 말이 있다. 사(私)는‘가족’이라는 말 뜻,‘ 개인’이라는 말뜻을 가지고 있다. 또는‘편애’라는 뜻도 있다. 요즘의 사교육은학원이 도맡아 하는 교육을 말한다.지금의 현실은 공교육 기관에서 가르치는 것과 사교육기관에서 가르치는 것이 똑같다. 이 두 말을 되새겨 보면공교육은 어느 책에서처럼 국가가 만드는‘붕어빵’이고 사교육은 학원이 만든‘붕어빵’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국가에서 제공한 공평한 기회, 공교육에 만족하지 않고 사교육을 찾는다. 이는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다.어떨 때는 경쟁을 위한 사교육이 아닌 개인의 잠재력 개발을 위해 사교육을 찾기도 한다. 사(私)라는 한자어는‘아름답다’라는 말을 담고 쓰였었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학원 사교육이 아닌 개인의 잠재력 개발을 위한 사교육, 가족의 전통과 철학을 이어 가기 위한 사교육이라는 말이 있음을 우리는 잊으며 살고 있다.우리가 잊은 또 한 가지 공교육은 공(共)교육이다. 교육의 공공(公共)성을 살리기 위해 필요한 말이다. 공(共)은‘함께, 같이, 하나로 합하여’라는 말뜻이 있다. 이 말은 마을과 고을을 중심으로 함께 한 우리 조상들의 공동체(共同體)교육을 떠오르게 한다. ‘마을이 학교’였던 공동체성 되살려야 한다. 함께 어울려서 서로 배우며 살기 위한 공(共)교육은 교육 철학을 외국에서 찾지 않아도 우리네 삶속에훌륭한 교육철학이 있음을 보여준다. 공동체 안에서‘살며,배우며, 사랑하며’살아가는 고을이 되도록 개인(私)의 잠재력을 키우는 공(私)교육과 공(共)교육을 공(公)교육이 지원했으면 한다.
꿈을 키울 수 있는 교육
1980년대에 선진국(미국, 영국)들은 경쟁이라는 교육방식을 선택하게 한다. 그것이 실용적인 방법이라 했다. 그리고‘더 많은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는 학생들 간의 경쟁을강화시켜야한다’고 했다. 그러나 핀란드는 반대로‘협력’을 선택했다. 1985년에 우열반을 폐지하며‘교실에서의 경쟁은 필요 없고 협력만이 살길이다’하고‘교실에서의 협력을 위해 성적표에선 등수를 뺐다’고 한다. 1971년 이후 핀란드는 정권은 바뀌어도‘협력’이라는 교육철학은 결코 바뀌지 않았다고 한다. 이‘협력’이 교육의 원칙이 된 것이다. 그 까닭은 바로 경쟁보다는 협력이‘생존’을 위해 더실용적인 방법이라고 보는 지혜를 가졌기 때문이다.자율고 지정과 취소로 인해 전북교육청과 교육과학기술부, 해당학교와 지역 시민단체가 서로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자율고는 지역인재를 육성을 위해 필요하다는 찬성 쪽과 지역의 평준화 정책에 미치는 악영향이 크다는 반대쪽논리가 팽팽히 맞선다. 익산과 군산에서 일어나는 자율고논란이 해결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 어른들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지역이 필요한 인재에 대해서부터 재정의해야 한다.‘ 훌륭히키워(?) 서울로보내서, 30년뒤에국회의원이되기 위해 다시 지역사회로 내려오는 사람과, 훌륭히 키워(?) 지역에서 함께 살며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가는사람’중에서 누가‘우리’곁에 있어야 할 사람인가를 고민하며 자율고 문제를 풀어 갔으면 한다. 누가 큰바위 얼굴일까를 어른들은 고민해야 한다. 자율고 지정과 취소와 관련하여 입학 설명회에 참석한 학생들은 상처를 입을 것이지만, 이보다 훨씬 많은 지역 사회에서 살아갈 대다수의 일반학생들의 상처는 더 깊을 것이다. 지역이 필요한 인재에 대해서는 효율성을 따지지 말고 효과성을 따져야 한다.지역의 인재란 어떤 인재여야 할까(?)를 질문한다. 마을이장을 지내고 군수가 된 뒤, 도지사가 된 현 경남 도지사는 지역학교인 남해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다. 지역학교를졸업하고 지역사회에서 삶의 뿌리를 내리고, 열심히 살고있는 지역의 인재들이 지역의 미래여야 한다. 그래야 이 지역에서 살며, 배우며, 사랑하며 살아가는 청소년들이 꿈을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