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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9 |
125회 백제기행│유럽축제기행(8월 10일~18일)
관리자(2010-09-03 14:21:16)
유럽의 매력에 빠지다 - 배숙자 전북대학교 입학사정관 드디어 디데이가 밝았다. 날씨도 쾌청하고 우리들 스무 명의 기분은 더욱 맑았다. 일단 인천공항까지는 부족한 새벽잠 보충에 들어갔다. 그 와중에 단장님 부부는 고구마로 시작하여 각종 먹을거리로 우리를 사육(?)하셨다.오후 1시 25분, 인천공항을 이륙하여 역시 8월 10일 오후5시 46분경(한국시각 11일 오전 10시 46분) 오스트리아의 비엔나공항에 도착했다. 무려 4104마일을 날아왔다. 기온은 섭씨 25도. 연결편이 약간 연착된다하여 공항 내에서맥주팀과 쇼핑팀으로 나뉘었다가 짤쯔부르크행 비행기에 올라 약 45분가량 비행 후 도착, 가이드와 랑데부 후 숙소인포인트호텔에 짐을 풀었다. 미즈와 미스터가 뒤죽박죽되어어떤 부부는 아예 남녀가 뒤바뀌었고, 어떤 부부는 둘 다미즈였지만 그런 것에 구애받기에 우리는 너무 들떠있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 짤쯔부르크 유럽에서 처음 맞는 아침. 짤쯔부르크의 공기는 상쾌하여 저절로 심호흡을 하게 되었다. 지금도 나라 전역에소금을 공급하는 이‘소금의 성’즉 짤쯔부르크의 아침은 모짜르트의 음악으로 시작된다고 한다. 레지덴츠 광장의종이 모짜르트를 연주하면 호엔짤쯔부르크 성 위의 황소 오르간 연주가 이어진다고 한다. 내 기억 속 어린 시절의아침은‘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밝았네…’로 이어지는 동네 스피커소음으로 얼룩져 있는데…. 과연 음악의도시인가보다.모짜르트의 고향이며 오스트리아의가장 아름다운 도시인 짤쯔부르크에서는 일년내내 음악이 끊이지 않지만 그절정은 아무래도 7월과 8월 사이 5주간 벌어지는‘짤쯔부르크 음악축제’일것이다. 1920년 <예더만> 연극으로출발하여 1960년에 짤쯔부르크 태생인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을 감독으로맞이하면서 세계 최고의 음악제로 성장하여 올해로 90주년을 맞이한 이 음악축제에, 결혼 30주년을 맞이한 우리부부도 관객으로서 족적을 남기고 왔다. 양 손으로 지휘봉을 맞잡고 약간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긴 카라얀의흑백사진에 매료되었던 청춘시절을 떠올리면서…. 돌이켜 생각해보니 새삼감개무량하다.우리 일행은 특별히 축제극장내에설치중인 <돈죠반니>의 공연무대도미리 볼 수 있었고, 음향 테스트중인또 다른 극장까지 들어가 보는 특혜까지 누렸다. 그곳의 복도에 배병우님의소나무 사진들이 걸려 있어 다들 사진한 컷씩을 남기기도 했다.이러한 호사가 가능했던 것은 박후남 선생님 덕분이었다. 그 분은 독일에서 철학, 문학, 예술사학 등을 공부하고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신데, 곧 스위스와 독일 출판사에서 역사소설을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팀을 위해 축제극장 근처의짤쯔부르크대학 세미나실을마련하여 음악제에 관한 말씀을 들려주셨다. 왜 짤쯔부르크인가에 대한 해답은 이곳이모짜르트의 탄생지이기도 하지만, 도시 자체가 아름답고, 바로크시대에 형성되어 그 원형을 거의 유지하고 있어도시자체가 무대화될 수 있으며 또한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을 무대에올리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공감이갔다.그날 저녁, 우리는 볼프강 림의 음악과 자샤 발츠 무용단의 현대적 앙상블을 관람하였다. 특이한 체험이었고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 공연이었다. 그러나 지금 무엇보다 눈에 아른거리는 것은 미라벨 정원과 게트라이데 거리의아름다운 이미지 간판들, 호엔짤쯔부르크 성에서 마시던 슈티글 맥주맛, 눈아래로 펼쳐지는 호사한 풍광과 저 멀리 보이는 알프스산 자락들이다. 야외 원형경기장에서 ‘카르멘’을 만나다 다음 여정은 베로나행. 짤쯔부르크역에서 기차를 타고 인스부르크에서유레일을 환승하였다. 점심은 역사에서 피자 한 쪽씩. 기차 안에서 <카르멘> 영화를 보며 저녁공연 대비 워밍업을 했다. 그러나 아름다운 창밖의 풍경을 어찌 놓치랴. 오스트리아-스위스-이탈리아로 이어지는, 같은 듯하면서 달라지는 풍광을 즐기며 어느새 베로나 도착. 김좌진(장군?) 가이드의 안내로 아레나로부터 에르베 광장, 마찌니 거리, 줄리엣의 집 등을 돌아보았다. 관광상품인 줄 알면서도 줄리엣 동상의 가슴을 만지며 사진을 찍었다.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데야 누가 거부하리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답게 아름답고 웅장한 건축물들 속에서 단테의 동상을 발견하고 남편을 세워놓고셔터를 눌러댔다. 광장을 어슬렁거리다가 온통 블랙으로 치장한 키 큰 일가족의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지기도 하고, 분수대에 몸을 담그고 흡족해하는불독의 모습에 키득대기도 하면서 속없는 관광객 노릇을 하였다.베로나에 온 주목적은 야외 원형경기장에서 펼쳐지는 오페라 <카르멘>관람이었다. 로마의 콜로세움에 버금가는 이 아레나는 2만 5천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하는데 주말이면 만석이된다고 한다. 아쉽게 별을 볼 수는 없었지만, 딱딱한 돌계단좌석이 전혀 의식되지 않는 유쾌한 경험이었다. 3막이 끝나갈 즈음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하자 악단은 바로 연주를 멈추고 공연이 중단되었다. 아쉽지만 자리를 뜰 수밖에. 옆자리에는 볼로냐에서 온 모녀관객, 뒷줄에는 15살 때 처음 발레 구경을 온 이후로 지금껏 35년에 걸쳐 여섯 번째 이 오페라 축제에왔다는 두 명의 독일 여성관객이 있었다. 아침에 버터를 잘못 삼키는 바람에영어가 저절로 나온다는 김 선생과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웃음이 절로 나왔다. 아름다운 라인강에서의 추억 다음날은 이른 조식 후 점심 도시락을 픽업하여 바젤로 향했다. 전날에 기차로 왔던 길을 이제 버스를 타고 되돌아서 스위스로 입국하는 것이다. 휴가철이 끝나가는 무렵이라 교통체증이심해 예정보다 2시간이 더 걸려 바젤시내에 진입했으나 호텔을 찾느라 방황. 결국 경찰차를 앞세워서 우여곡절끝에 체크인 성공. 라인강이 한 눈에들어오는 전망 좋은 방이었다. 로비에서 임안자 선생님과 만나 땅글리미술관에서 잠시‘분수’를 감상하기로 했다. 20여 분간 솔리튜드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면서 우리들은 누가 먼저랄것 없이 감탄사를 연발했다. 라인강변의 건물과 풍광은 그야말로 필설로는도저히 옮길 수 없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상류지역이라 제법 빠른 물살을따라 옷가지를 넣은 노란 튜브에 몸을맡기고 떠내려가는 사람들, 강변에 앉아 담소하는 사람들, 자전거로 퇴근하는 사람들, 아름다운 전통 건축물을 배경으로 어우러지는 이들의 모습이 부러웠다. 아니, 그런데 이곳에도 한국의접시꽃이? 꽃 전문가 유 선생님을 따라 나도 살짝 씨앗을 훔쳐왔다.키네틱 아티스트 땅글리의 재미있는작품 <분수>를 보고 근처에 있는 임선생님 댁으로 향했다. 한동안 전주국제영화제 부조직위원장으로 일했으며영화평론가로 활동 중인 선생님 댁에서 모처럼 맛난 한식으로 포식. 너무도친절하신 부군과 따님, 사위 모두 함께식사하며 환담 후 다시 우리는 선생님을 모시고 호텔 앞 라인강 수상무대에서 펼쳐지는 락 콘서트를 감상하였다.다리 건너편 구시가지에서는 재즈공연이 벌어졌고 그곳에서 바젤 재즈대학에 유학중인 전송이의 공연을 관람하였다.이튿날은 가이드와 구시가지 구경에나섰다. 짤쯔부르크도 그렇듯이 바젤도 강을 사이에 두고 신·구 시가지가펼쳐져 있다. 시청사 부근에서 트램을내려 엘리자벳 성당을 구경. 성당 앞광장에는 어제 보았던 미술관의 분수보다 규모가 더 큰 땅글리의 작품이 있었다. 성당 반대편의 피라미드형 조형물을 보고 다시 걸어서 뮌스터대성당으로 올라갔다. 예쁘고 독특한 자갈 포도를 걸어서 야외극장을 지나니 성당이 보였다. 고딕양식의 멋진 성당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나룻배를 타고서 라인강을 건너왔다. 뱃노래를 합창하면서. 신기한 땅글리 미술관을 좀 더 자세히 둘러보고 임 선생님의 전송을 받으며 취리히로 출발. 버스 속에서 가이드는 스위스의 여성파워에 대해 긴 설명을 덧붙였다. 자유와 열정의 에딘버러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꼽힌다는 취리히는 많은 예술가들의 피난처요, 영감의 생산지 역할을 했던 곳이다. 이 도시의 색다른 멋은 매년 여름에 열리는 스트리트 퍼레이드인데우리가 간 날이 마침 이 퍼레이드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그래서 우린 페스탈로치 동상을 보고 잔디밭에서 할로윈데이 복장을 한 젊은이들과 사진도 찍고, 퍼레이드 중인 젊은이들과 함께 걸어보기도 했다. 그냥 맥없이 걷는 것이었다. 그래서 즐거웠다. 아쉬움 속에취리히를 뒤로 한 채 꿈에 그리던 런던을 향했다, 일단 오늘은 에든버러에 가기 위한 경유지로 히드로공항에 점을찍는 길. 한데 에든버러행 항공기가 1시간 이상 지체되었고, 남편은 그 와중에 미리 준비해간 합죽선에 기행 동료들로부터 축하메시지를 받아냈다! ‘30주년이니까!(이해해주세요. 저를 위해애를 쓰고 있는 겁니다)’결국 12시가넘어 숙소에 들 수 있었다. 스코틀랜드의 전통 성채 일부 잔해를 옆에 두고지어진‘에어스 캐슬’호텔이었다. 마침 결혼식이 있어서 하객들이 늦게까지 유쾌하게 담소하고 있었다.스코틀랜드의 수도인 에든버러는600년의 역사를 지닌 에든버러 성채로부터 홀리루드 팰리스로 이어지는로열 마일 중심의 구시가지와 1760년대에 개발된 뉴타운인 프린세스 스트리트 중심의 신시가지로 구성된다. 여기에는 월터 스콧 기념탑이 우뚝 솟아있다. 총면적은 우리가 흔히 영국이라고 부르는 브리튼섬 전체의 삼분의 일에 해당되지만 런던 중심의 잉글랜드 인구가 4,500만 명인데 비해 이곳 스코틀랜드의 인구는 500만 명에 불과하다.북해의 유전과 관광, 그리고 위스키 생산으로 지역의 경제적 부를 창출하고있다. 가이드에 의하면 한국인을 겨냥하여 생산하는 죠니워커 골드도 있다고한다. 한 공장에서 생산된 몰트(맥아)로 만드는 싱글몰트 위스키의 한 종류인글렌모란지를 그가 추천하여 귀국길 히드로공항에서 우리들 대부분이 동그란노란 병에 담긴 이 위스키를 기념품 삼아 구매하였다.에든버러 시내로 향하는 도로변은 목장과 목초지가 아득히 아침 햇살 속에펼쳐지고 있었다. 시내가 가까워지면서 특유의 건물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경탄과 감탄 속에 바라보던 건물들이 수없이 이어지자 종내 질릴 정도가 되어버렸다. 석탄을 주 연료로 사용했던 과거역사가 말해주듯‘칫솔로 싹싹 닦아주고 싶을 만큼’외관이 거무스름하게 착색된 집들이 많았다. 로열 마일에서는 프린지축제에 참여한 각 공연 팀들의 쇼케이스 시범공연이 진행되고 있었고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로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다. 비도 오지 않았다. 우리 기행 팀에는 염력이 대단한 분들이 많아서 감히 비도 우리를 피해갈정도였다. 전주에 도착할 때까지 쭈욱! 버스 속에서 폭우를 걱정하던 우리가공설운동장에 도착하자 거짓말처럼 비가 개인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 유명한 런던의 비도 우리를 두려워했으니 더 말할 나위가 없을듯하다.에든버러의 첫날밤은‘혁명’이라는 제목처럼 새롭고 기이한 춤과 연극과제의가 결합된 무대공연 관람으로 마무리하였다. 스코틀랜드의 둘째 날은 글래스고우의 스털링 지역으로 애국자 윌리엄 월러스의 자취를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했다. 월러스가 잉글랜드의 에드워드왕을 대파한 스털링 캐슬과 인근의 월러스 기념탑에서‘프리덤’을 외쳐보고 에든버러로 향하였다.이날 점심은 우리에게는 특별한 추억이 될 것이다. ‘랑데부’레스토랑에서의 30주년 기념 연회는 매니저가 특별찬조한 폭죽 케익으로 완전한 이벤트가 되어버렸다. 기행 처음부터 끝까지 30주년 기념이므로 참아주신 팀원 여러분께 다시감사드린다.화기애애한 점심식사를 마친 후, 문서기록소 옆에 마련된북 페스티벌 행사장을 둘러보고 책도 몇 권 구매하였다. 일정표에 의하면 명망있는 영문학 비평가와 작가의 대담이 마련되어 있었으나 시간이 맞지 않아 아쉽게 발을 돌려야 했고, 문서기록소에 보관중인 로버트 번즈 관련 편지들을 훑어보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고풍스런 호텔에서 보내는 에든버러의 마지막 밤이 아쉬운 우리일행은 닥터 문의 방에서 조촐한 마무리 파티를 가졌다. 이 준비를 위해 호텔로 오는 도중에‘슈퍼 습격사건’이 있었다. 짧지만 길이 기억될 2010 유럽축제기행 기행의 마지막은 런던. 과거의 도시 안에서 현재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 인류 문명이 시작된 이래 동서고금의 소중한 보물을 모아놓은 영국박물관. 효용가치가 떨어진 화력발전소를 허물지 않고 개조하여 순수미술과 대중미술의 경계를 허문 작품을 전시하는 테이트모던 미술관. 이 모든 것 속에 런던의 정신이 깃들어있는 것 같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며 서로를 존중하는 곳. 신천지 미국을 뒤로하고 런던에정착한 시인 T. S. 엘리엇을 이해하고도 남는 시간이었다.‘황무지’에 등장하는 세인트 폴 성당과 런던 브리지 등을 보면서, 로이드은행 출근길 버스에서 퍼즐을 풀고 있는 시인의모습이 눈에 밟혔다. 다시 찾으리라, 그때까지 잘 있으라 런던이여. 행복한 우리들의 길고도 짧은, 짧지만 길이 기억될유럽축제기행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여행은 누구와 더불어 하는가에 따라 즐거움이 배가되는법. 각 분야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전문가들, 특히 흔들리는 버스에서 그토록 훌륭한 성가와 함께 열강해주신‘양몰이’닥터 문, 궂은 일 마다않은 미스터 홍, 어여쁜 젊은이 고등학생 황군, 우리 3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생일까지 맞은 김 교수님, 예쁜 사람이 예쁜 짓만 하는 동생을 둔 언니와꽃동네 친구분들, 사이드촬영의 대가 전 과장님, 황소마스코트 선물 주신 김 부위원장님, 생뚱맞은 모습으로 웃음 준 김선생님 등 모든 분들과 아름다운 추억을 오래 나누고 싶다. 배숙자 성균관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후 전북대 등에서영어를 가르쳤다. 현재 전북대학교 입학사정관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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