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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9 |
[서평] 『에덴동산을 떠나며』
관리자(2010-09-03 14:21:24)
『에덴동산을 떠나며』 이상향에 대한 진지한 사유 - 서철원 소설가 세상 섭리 가운데 남녀의 사랑만큼 오래 가는 것은 없다. 형체도 없고 빛깔도 없어서 보이지 않는 그것. 소리도 없어 언제 왔다가 갔는지도 모를,바다처럼 가엾고 막막한 그것이 사랑이다. 또한 가장 빨리 사라지는 것이 사랑이라 하였으니, 돌아갈 수도 버릴 수도 없다.최근 출간한 장편소설『에덴동산을 떠나며-이하‘에덴동산’』은 이병천 소설가가 창조해낸 가상의 땅, 다솜터를 배경으로 불꽃같은 사랑이야기를그린다. 이글거리지 않고, 맹렬하지도 않은 꽃잎 문양의 불꽃. 그것은 불꽃 안쪽에 피어오르는 잉걸의 빛깔이기도 하고, 아궁이에서 혼신으로 타오르다 꺼진 고요한 잿덩이 같은 소설이기도 하다. 세상 마루 호젓이 걸터앉아 모악산 서편 능선 아래 금산 땅 비류동과 황지동을 배경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다솜터라 불리는 이곳은 지상의 낙원같기도 하고, 에덴동산처럼 세상에서 지워진 세계처럼 멀고아득하기도 하다. 정갈한 문체가 돋보이는『에덴동산』은 담백함과 솔직함이 묻어난다. 그것이 오랜 날 우리지역에서 활동해온 이병천의 맛깔스러움이고 멋스러움일 것이다.읽다보면 문득 비류동과 황지동 어느 자락을 거닐어 보았거나 살아본 적이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되는데, 질퍽한전라도 사투리 때문이지 싶다. 어쩌면. 그 문득한 기분이 이병천 소설이 내뿜는 사실적 판타지가 아닐까. 소설집『사냥』을 비롯해『모래내 모래톱』, 장편소설『마지막 조선검 은명기(전3권)』, 소설집『저기 저 까마귀떼』, 장편소설『신시의꿈(전3권)』, 소설집『홀리데이』등 특유의 스토리텔링과 타고난 이야기꾼으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한 소설들과함께『에덴동산』역시 단단한 구성과 유연한 흐름이 감지되는 소설이다.주인공‘구문보’를 통해 공동체 삶에 관한 이야기랄지, 그속에서 일어나는‘오초혜’와의 애틋한 사랑이야기, 이러한삶의 방편들이 작가의 시선아래 묻히지 않고 독자에게 공감을 주는 소설로 평가된다. 특히나 모악산을 둘러싼 여럿의고사와 설화에 얽힌 이야기는 이병천만의 고집일 것이다.거기다 선, 도, 풍류 등 사색 같은 깊이의 이상세계를 펼쳐보임으로써 인간의 사유는 한갓 머릿속을 떠도는 보풀에 지나지 않음을 역설한다. 이처럼 다솜터를 둘러싼 체제와 배경모두가 낙원으로 유도하듯 감미롭다. 모악산 한 자락 얹어보도록 하자.모악산은 풍수적으로 닻을 내리고 뭍에 정박해 있는 배의 형상으로 흔히 비유됩니다. 그런데 배의 정박은 항상 출항을 예비하고있지요. 여기 모악산이 개벽(開闢)의 우뚝한 도폭이면서 동시에 풍류도(風流道)의 아늑한 자궁으로 꼽히게 된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본문 79쪽)어떤 사람은 좋은 소설을 읽고서 그것을 좋다고 말할 때,필자처럼 빙빙 돌리지 않고 신경을 집중해서 모으거나 가능한 촉각을 곤두세워 말할지 모른다. 그것은 작가에 따라 글의 속도감이나 무늬가 다르고, 글 속에 심는 정신적 요소들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필연적으로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게 되고 자기만의 문장을 직조해나가기 때문에, 거기에서 받게 되는 느낌도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이병천은 이 모든 것을 관장하고 사유하면서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소설을 풀어간다. 느슨하면서도 늦추지 않은 긴장감을 가지고 일관되게 흐른다. 다솜터에 입문하는 설정부터가 우연처럼 진행되지만,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오초혜와만남 또한 독자의 생각을 전복하기 위해 주도면밀한 공작을바탕에 둔다. 이처럼‘우연’에 관한 작가주의적 태도는 감탄그 이상이다. 촌장과 설립자, 송이향과의 입체적 소통을 또한 다의적인 행로와 일탈의 복선, 갈등과 연민 사이에 드러나는 작가의 신념은 가파른 산문정신으로 승화된다. 이러한서사력이 이병천만의 작가정신이 될지 모른다. 그것들 모두『에덴동산』에서 홀연히 빛을 발하고 있으니 아름답다 말 할만하다. 또 다른 유토피아를 만나다 또한 작가의 서정적 감수성과 섬세한 관찰자적 필치를 들여다볼 수 있는『에덴동산』은 현대 도시민의 건조한 삶의 양식을 벗어던진 비도시계열 소설이다. 생태학적으로 인간은자연을 떠나 살 수 없듯 문명을 떠나서도 살 수 없다. 과연다솜터의 환경은 실제 가서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사실적인 환경을 보여준다. 그처럼 독립된 곳에서 공동체 삶을 누리는 이가 있다는 사실성에 놀라울 뿐이다. 그렇다고독립된 환경이 고립된 환경을 의미하진 않는다. 어쩌면 환경적응도가 상당히 높거나 문명의 이기로부터 떠나온 사람들이야기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토마스 모어의‘유토피아’와 달리 다솜터에는 불꽃같은 삶의 여정이 깔려있다. 냉소와 위악의 깊이가 적당한 선에서등고선을 그린다. 결국 공들여 세운 이상사회에도‘음모’와‘위악’이 있음을 알게 하는데, 어느 편에 서든 세상과의 싸움은 끊이질 않고‘허위’와‘시기’와‘배반’은 존재한다는 역설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작가가 구현하고자 하는 이상사회는, 이 모든 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보다 진화된 운명공동체적 이상사회를 말하고 싶은지 모른다. 필경, 세상 어디에도그러한 사회나 국가는 존재할 수 없으니 말이다.연인은 이별 뒤의 아픔마저 아름다워야 제격이다. 곁에서지켜보는 자들의 편에서는 비극 같아서 가슴 졸이지만, 그것조차 계획상의 일처럼 명징해야 그럴싸하다. 구문보와 오초혜의 사랑은 소나기 퍼붓는 한여름 저녁처럼 매력적이다. 끝내 잔인하면서도 허망한 결말을 드러내 보이지만, 그마저 작가주의에 입각한 정교하면서도 치밀한 구도를 보여준다. 그사랑의 빛깔이 얼마나 따스하고 애틋하였다면 이런 문장이가능할까, 싶다.지금 이 사랑은 왜 황홀한가? ……왜 치사량의 수면제처럼 아득한 것인가? (본문 170쪽)그러나 과연 작가는『에덴동산』을 통해 현 시대 연애담론에 대한 솔직함을 안겨주었다는 생각이다. 아득하고도 아름다운 생의 여지, 다솜터. 사랑하는 여인 오초혜를 남겨두고홀연히 돌아서는 일은 아무래도 버거웠을 것이다. 언제든 전복과 혁명이 잠재하는 다솜터의 운명적 생활패턴은 공동체라는 원시인류적 결속감마저 구문보의 가슴에서 앗아간다. 이는 자연발생 터전이 아닌 인위적 공동체에 대한 반기일 것이며, 감시와 통제 하에 움직이는 다솜터에 관한 나르시시즘적몰락을 의미한다.『에덴동산』을 통해 이병천은 시대적 각성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시대의 끝을 간파해낸다. 역사든, 운명이든, 공동체든,작가의 진정으로써 혹은 당대적 본연으로써, 문화적 소산으로써 시대정신을 반영한다.봄날 아지랑이 같은 소설이다. 가을날 새들이 빠져나간 숲의 정령만큼이나 외로운 소설이기도 하다. 참 간절한 소설이다. 정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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