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0 |
[저널초점] 공공미술 2- 4
관리자(2010-10-04 18:36:55)
‘신뢰’와‘믿음’이 ‘변화’를 부른다
- 이상훈 문화공동체 감 대표
‘바다를 바라본다’는 해망동은 군산 서북쪽에 위치한 산동네다. 이곳은 한국전쟁 때, 전쟁을 피해 온 피난민들이 정착하면서 형성됐다. 비록 피난민들이 모여 살긴 했지만, 해망동은 한때 군산의 대표적인 동네로꼽혔었다. 바로 앞에 군산 내항이 있어 수산업과 합판업으로 호황을 이루었던 덕분이다. 그러나 군산 내항이 쇠락의 길을 걸으며, 해망동의 봄날도 갔다.지난 2006년, 해망동에 작은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문화관광부에서 주관한‘아트 인 시티’에 선정된 것이다. 프로젝트에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활동하는‘공화국 리라’와 몇몇 전북지역 작가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천야해일(天夜海日)을 주제로 석달동안 해망동 구석구석에 그림을 그리고 시를 적었다. 천야해일은‘하늘은 밤이로되 바다는 낮이로다’는 뜻으로, 한때 번성을 누리며 밤에도 빛이 찬란했던 군산항을 의미한다.그렇게 조용했던 동네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해망동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실패
4년이 지난 지금, 군산 해망동은 어떤 모습일까.지난23일,‘ 천야해일(天夜海日)’을만나기위해해망동을찾았다. 겨우 4년이 지났을 뿐인데, 대부분 그림과 글씨는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돼 있었다. 프로젝트의 사후관리가 이뤄지지 않으며 오히려 흉물로 전락, 동네의 미관을 해치고 있었다.멀티미디어 아티스트인 이상훈 씨는‘기획자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공공미술의 경우 그 공간의 역사와 특징을 제대로 파악하고, 아울러 그곳의 정서까지 느껴야 합니다. 그런데 군산출신이 아닌 외지의 전문가들이 와서 그 공간에 대해 얼마나파악할 수 있었을까요? 그러니 기획자의 의도조차도 제대로전달되지 않은 것이죠. 지역작가도 있는데 외부인에게 기회를 놓친 것부터가 문제죠.물론 이면에는 지역작가들의 이기심과 같은 문제도 있습니다.”결국 군산 해망동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막대한 비용만 들인 소모성 사업이라는비판을 면치 못했다.
‘관’주도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문제점
이후 군산시는 새만금 개통에 대비해 관광상품으로 개발한 도보코스‘구불길’에 공공미술 프로젝트 작업을 펼쳤다.이 작업은 각 마을의 노후된 벽면에 주제가 있는 그림을 통해 마을 분위기를 활기차게 만들기 위해 시작됐다. ‘희망근로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이 사업에는 멀티미디어 아티스트인 이상훈 씨가 중심이 돼 2개월 동안 진행됐다.“2009년 진행된 군산 구불길 코스 공공미술 프로젝트는성산면 등 6개면 10개 마을의 담과 벽면에 각 마을의 특성에맞는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었어요. 대개의 마을은 각각 역사성을 지니고 있죠. 당시 작업은 마을에 숨겨진 이야기를 수집해 이미지로 형성하는 작업이었습니다.”공공미술 작업이 시작된 성덕마을은 비단강 길과 울창한나무가 마을을 감싸 아름답기로 정평이 난 곳이다. 이곳은군산의 명물인 오성산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성덕마을은 오성산 바로 옆 마을입니다. 오성산은 군산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 다섯 성인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곳이죠. 하지만 대부분 오성산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는데저희는 그 이야기를 이미지를 통해 구체화하고자 했습니다.일종의 스토리텔링 작업인 셈이죠.”군산시 성산면 도암리의 군장대학 뒤편에 자리한 오성산은 삼국시대 나당연합군이 침공해 올 때 죽음을 무릅쓰고 소정방에 항거했던 다섯 성현에 대한 기록이 전해지고 있는 곳이다. 프로젝트 팀은 이곳에 오성인의 묘,구름, 달, 학, 자연 등을 이미지화해 오성산에 담긴 이야기를 구체화했다.하지만 순조롭지 않은 작업이었다. 당시 프로젝트 팀은 적은 예산과 주민들의부정적인 시선 등등 예상치 못한 문제에부딪혔다.“벽화작업의 경우 쉽게 떨어지기 때문에 5~10년은 지속될 수 있는 타일작업을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작업을 진행하다 보니 타일이 부족하더군요. 예산은 적고, 재료는 모자라니 직접 폐 타일을 수집하러 다녀야 했죠.”그보다 더 큰 문제는 주민들과의 의사소통이었다.“대부분 시골인심은 후하다고 하지요. 저 역시 그런 생각으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다른차원의 문제가 생기더군요. 왜냐면 주민들의 경우 각자 요구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정해져 있고, 예산은한정돼 있는데, 주민들을 설득하는 과정 때문에 굉장히 애를먹었습니다.”그는 공공미술 작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주관하는 관의 태도라고 지적한다.“저희 역시 작업을 진행하며 주민들과의 소통 자리를 마련하려고 했지요. 하지만 관에서의 반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관에서 주도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경우, 관의 태도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아요. 공공미술 작업 팀은관의 직원이 아닌데도, 강압적인 태도로 대하죠. 그들이 수평구조 없이 수직구조만 내세울수록 공공미술 작업은 점점더 어려워집니다.”이 뿐만이 아니다. 2009 군산 구불길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경우 그가 모든 작업을 이끌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매체에서도 그의 이름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그때 시에서는 소속단체가 없는 개인에게 사업을 맡기기에는 위험부담이 크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관해 보이지 않는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이죠. 결국 작업은 제가 진행하고, 모든 매체에는 한국미술협회 군산지부의 이름으로 기사가 나갔죠.”공공미술 본래의 취지와 목적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이씨가 앞으로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더욱 활성화되기 위해서는‘서로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