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0 |
[신귀백 영화엿보기] 원빈! 졌다. <아저씨>
관리자(2010-10-04 18:38:02)
원빈! 졌다. <아저씨>
▶▶익숙한…
한 사내가 있다. 혼자 산다. 큰 키, 더부룩한 머리지만 잘생겼다. 세상을 등진 채 살아가는 태식(원빈)은 어둡고 좁은 빌딩 구석에서 물건 담보로 돈을 빌려 준다. 전당포 남자다. 고리타분하게시리, 젊은 놈이 사채업자도 아니고 이 시대에 무슨? 그에겐 불행한 과거가 있을 것 같다. 여기 그의 삭막한 둥지에 작은 소녀가 새처럼 날아든다. 거의 <레옹> 버전이다. 장르의 새로움이 없는 익숙한 컨벤션.<레옹>의 마틸다가 메리야스 걸친 젖 돋는 소녀의 롤리타 콤플렉스 스타일로 간 반면, 소미(김새론)는아직 한참 아이다. 연약하고 부드러운 선을 가진 아이 역시 상한 날개를 가진 한 마리의 새다. 도벽에 익숙한 소녀는 이 우울한 남자에 의해 고통과 위험에서 벗어나고, 불우한 남자는 소녀를 통해서 구원 받는 형식으로 흘러 갈 것이라는 예상은 쉽다. 과연?술 아닌 우유 마시기를 좋아하는(레옹처럼) 전당포 사내의 유일한 말벗 소미는 옆집 사는 댄서의 딸이다. 엄마가 약을 먹고 취하거나 집에 불량한 사람이 찾아오면 이 소녀는 아저씨를 찾는다. 손버릇 나쁜 데다, 없이 사니 친구도 없다. 레옹이 소시지 반찬에 밥을 차려주면서 묻는다.“너도 내가 나쁜 사람처럼 보이니?”사연 많은 마틸다가 대답한다. “감옥이 잘 어울릴 것 같긴해요. 아저씨 별명은 전당포 귀신이래요”라고 천진하게 말하던 아이가 도둑으로 몰리자 이 남자 모른 척한다. 아이의 절망스런 눈빛은 후일 그가 크게 갚아야할 빚이고 연결고리다. 맹목적 운명이 아닌 존재들 간의 상호적 관계라는 말씀인데, 조금 허하긴 하지만 감독은 그냥 밀어붙인다. 왜? 주인공이 미남이시니까.만사가 귀찮은 은둔자를 다시 세상에 나오게 하는 동인(動因)은 소미의 유괴사건이다.태식의 유일한 말벗이 갑자기 엄마와 함께 사라지는 것. 소미 엄마가 나이트클럽의 스트립걸이자 마약 운반 역할이라는우연으로도 영화가 된다니, 쯧쯧. 하필 태식이 전당잡은 물건이 소미 엄마 것이고 소녀가 아저씨에게 마지막으로 선물한 것은‘암흑의 기사’카드라니. 설정이 빤하지만, 희망 없이 살아가는 사람에게 공포는 없다는 데, 동의한다. 아니, 우리는 이 미남의 우수에 젖은 얼굴 때문에‘그까짓 것’다 봐주기로 한다. 하이에나의 먹이에 손을 댄 소미 엄마가 장기가 척출된 채로 잔인하게 살해되고 소미의 행방을 알길 없자태식은 물불 안 가린다. 한 발 늦게 뛰어 든 경찰과 범죄 조직의 추격을 받게 되자, 이 남자는“소미를 찾아도 너희 둘은죽는다”며 악의 소굴을 청소하기 시작한다.
▶▶질투
배짱과 무술로 야차들을 하나씩 제거하면서 한국판‘레옹’의 불행했던 과거와 이력이 드러난다. 그는 깡패는 아니고무관출신으로 전직 국정원 요원이었던 것. 특수작전부대에서 재능과 열정을 인정받던 살인병기였던 이 남자는 작전 수행 중 사랑하던 아내가 비통하고 억울하게 죽었으니 이제 더이상 잃을 것도 두려울 것도 없다. 이 베테랑은 자신의 열정을 나쁘게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단순하게 쫓고 쫓길 뿐이니우리는 어렵지 않게 그의 불우한 상황에 동화되고 그 용기에고양된다. 별 능력이 없는 공적 영역의 형사들은 그의 프로필을 소개해주는데 그치고 항상 버벅거리지만 그리 큰 방해를 하지는 않는다.‘독고다이’는 힘들다. 혼자 뛰니 어시스트나 세트피스도없고 믿을 사람이 없으니 배신도 없다. 스토리 라인에 복선이나 반전을 깔 여유도 없다는 말이다. 원수를 갚는 <킬빌>의 베아트리스처럼 하토리 한조의 검을 구하러 갈 이유도 없고 전직‘섬멸 요원’이니 무술 비급을 찾거나 도사의 도움을받을 필요도 없다. 원톱이니, 원빈 고생 좀 해야겠다.무술과 작은 무기를 사용하는 액션 영화의 배경은 적당한홀을 가진 복층‘객잔’이 제격이다. <킬빌 1>에서의 전투신은 객잔의 좁은 공간을 아크로바틱하게 쓰기 위함인데, 여기서는 공장과 목욕탕 신으로 황량하게 때운다. 가죽재킷의 태국남자 타나용 윙트라쿨의 절제된 표정은 좋으나 무술 고수가 죽어야 하는 데는 설득력이 또한 부족하다. 그래, 악당 부하가 어설프게 착해지는 것 등 작은 것쯤 눈감아 주자. 왜?원빈이니까.검푸른 배경에 맞추어 끝까지 감색 수트 한 벌로 가는 원빈! 그 슬픈 눈에 눈물이 고일 것 같은데, 그의 손에서는 총알과 칼이 튀어나간다. 인간병기인 그가 보여주는 필살기는동맥 자르기와 관절 꺾기, 거기다 사람의 뼈를 부러뜨린다.그 징한 소리라니! 살을 파고드는 칼과 총의 기계작동이 깊은울림을 만들어내는 과도한 사운드가 원톱 배우의 고단함과불안함을 상쇄시킨다. 자동차가 시멘트 바닥을 돌 때 나는불쾌한 소리를 비롯 영화 전반 에코를 너무 많이 넣은 사운드는 스토리의 세련됨보다는 출혈과 총소리 등 총체적 잔인함만 남는데…. 이 폭력 남용을 정의의 실천으로 슬쩍 치환하는 것은하이에나들의 도를 넘은 탐욕과 잘생긴 배우의 멋진 복근이다. 에이!
▶▶또 질투
<마더>에서 모자란 청년 역이었는데, 턱선이 아직 반듯한데, 머리도 안 빠지고 배도 안 나왔는데 무슨 아저씨야? 했는데‘오빠’에서‘아저씨’로 잘 넘어가는 서른네 살 배우는 그이름도 멋있다. 원빈. 이 귀때기 새파란 아저씨 비를 맞아도,쉼표도 없이 사람을 패고 스타카토로 쑤셔대도쿨하다, 참….버스창에 기대어 음악을 듣는 원빈, 푸른 조명의 지하도를 걷는 원빈의 뒤를 춤추듯 따라가는 카메라는 분노의감 정 보 다 는우수를 자아낸다.비 내리는 골프장 그물 위로 떨어지던 고독한 사나이를 잡는 부감샷은 아름답고, 총알 제거수술을 받거나 머리를 깎아도 원빈은 멋지다. 셀프 삭발신은 사실 복근과 우수의 눈빛을 보여주는 여성들을 위한 서비스 숏인 것. 공들인 조명으로 피부는 검게, 눈동자는 더욱검어 그의 결기는 의연해진다. 머리를 길러도 예쁘고 머리를깎으면 얼굴선이 더 잘 보이는 데다 거기 피범벅이 되면 안쓰러워 꼭 안아주고 싶다. 긴 기럭지를 훑던 카메라가 세심한 클로즈업으로 삭발의 얼굴을 돋보이게 하는데, 피 흘리는옆모습은 더욱 비장하다. 그러니, 영화 끝 장면에서“한 번만안아보자”처럼 어색한 대사마저도 감격일 수 있다.
▶▶숙제
생사람을 죽인 후 냉동고에 보관하는 장기척출용 시신 같은 상상을 뛰어넘는 잔혹함은 독하게 장사해야 먹고 사는 우리나라 영화판의 현주소다. 태식을 정의의 사도로 간주해 쑤시고 자르는 사형(私刑)을 용납하게 만드는 것은‘개미굴’에서 마약을 만드는데 일조를 하던 아이들의 장기척출 밀매라는‘끔찍한’설정이다. 도를 넘었다. 이것도 원빈 때문에 용서되어야 하는가?한국영화에서 남자 배우로 뜨려면 조폭 액션은 필수과목이다. 강철중의 인기가 시들해진 후부터일까? 계몽이야 진즉포기했고 실정법을 따르는 것이 정의라는 등식이 무너진 지오래. 한국의 액션 영화들은 무능한 공권력을 대신하는 집행자들의 활극판이다. 잘생긴 배우가 살인병기 역할을 하거나음험한 살인자(박해일)라는 설정은 꽤 오래 되었다. 장동건은 <친구>에서, 조인성은 <비열한 거리>에서 또 최민식은 <올드보이>에서 그 역할을강하게 수행했다. 이병헌의 <달콤한 인생> 이후이제는 한국영화에도 총기류가 장난감 수준을 넘어 제법 잘 소화한다. 이 영화 속 총격신은 제법세련됨으로 다가갔지만 그리 달갑지 않은 질주다.공간성으로도 딸린다. 현대적 이미지를 담은 의미 있는 공간도 아닌 데다 이 영화 속 칼과 총을휘두르는 장면들은 깔끔하지만 연결성으로서는솔직히 <올드보이>의‘장도리 신’만 못하다. 강한 악당보다 더 강한 주인공만 살아남듯 단지 독하고 강한 영화만이 살아남는 것이 한국영화의 현실이라면 안타깝다. 그러니 앞으로의 한국영화는 덜 잔인하게, 우아하고 품위 있게 가야 하는 숙제가 생겼다. 부디 배우의 외모로 여성관객을 부르고 독한 액션장면으로 남성관객을 유도하는 영화는 이것이 마지막이었으면 하는데….
▶▶용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저씨가 피를 흘리며 아이를 구하는 모습을 보며 동생을 잃은 잔인한 악당이 묻는다. “너,정체가 뭐냐?”고. 이 남자“나 옆집 아저씨다”고 말한다. 보통명사를 고유명사처럼 사용하려면 그 정도는 잘생겨야 하고 무술신공은 풀타임을 소화해야 한다. 아, 키 크고 잘생기지 못하면 동네 아저씨도 해먹지 못하는 더러운 세상이다.그런, 대표단수를 이르는 보통명사를『술꾼의 품격』을 쓴 전직 기자 임범은‘애주가’로, 유성용은‘여행생활자’로 자신을 표현한다. 이 영화를 통해 나를 표현할 보통명사의 틈새를 찾아야 하는 고민만 하나 늘었다.원빈. 액션영화의 원톱이라면 외모가 몰입을 방해할 확률이 높은 배우다. 구태여 찾자면, 얼굴이 조금 길다. 키도 너무 크고. 아니, 그런데, 그 큰 눈을 갖고도 클래스가 다른 액션이 되다니. 원빈은 한국 폭력영화의 거룩한 계보에 차태식이라는 이름을 올렸다. “내일만 보고 사는 놈들은 오늘만 사는 놈한테 죽는다”짧게 끊어 치는 대사가 바닥에 깔려야 하는데, 아직 목소리 멀었다. 그런데, 그것이 원빈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꽃짐승’이란다. 여성의 미모는 자본에 앞선다더니, 원빈의 눈빛행동 모든 것이 영화의 성긴 스토리텔링과 플롯의 엉성함을 구원한다. 내 너무 구질구질했다.졌다. 그리고 용서한다. 원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