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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 |
옹기장이 이현배의 생활의 발견 - 내 손
관리자(2010-10-04 18:38:21)
내 손 손을 내밀기가 민망하다. 지난 여름, 딸애들이 들여 준 봉숭아물 때문이다. 그렇잖아도 흙을 다루는 일이라손이 거칠고, 타고나기를 투박하게 타고나서 손에 대해 한마디씩 들어왔었다. 그런 손끝에 봉숭아물을 들여놓았으니 내가 봐도 우습다. 그런데 왠지 싫지가 않다. 손끝의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마음으로는 여성성을 지닌 것에 대한 흐뭇함일 것이다.내가 못 이기는 게 셋이 있다. 잠을 못 이기고, 술을 못 이기고, 여성을 못 이긴다. 그 중에 여성을 못 이기는 것은 내가 남성으로 애를 낳아보지 못했다는 것, 낳을 수 없다는 것 때문이다.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아무리 내가 잘나 어쩌고저쩌고 해도 애를 낳아보지 못 했다는 대목에서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산다는 것에서‘숨’의 최고 가치가‘생명’이고, 사람에게는 사람이 최고의 가치이니 또 다른 생명을 낳을 수 있는 여성을 어찌 이겨먹을 수 있겠는가.그것은 옹기를 두고‘숨 쉬는 그릇’이라 하지만 엄밀하게 보자면 옹기가 숨을 쉬는 게 아니라 옹기에 담긴게 숨을 쉰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다. 이 남성 애 낳을 때 문밖에서 서성이기만 했듯이 옹기는 그냥 가만히 있을 뿐이다. 다만 안에 담긴 게 숨을 쉴 때 옹기의 자격으로 물이 새는 걸 막으면서 공기를 소통케 할 뿐이다. 옹기는 담아 놓기만 하면 죽은 자식도 살려내는 영험한 그릇이 아니라 안에 담긴 게 순전히자기 본성으로 살아날 놈 살아나게 하고, 죽을 놈은 오히려 더 죽게 하는 그릇인 것이다.우리가 먹는 것 중에 으뜸이 물이듯이 좋은 옹기그릇은 바이오, 울트라, 슈퍼 이런 게아니라 그냥 옹기다. 왜냐하면 우리가 숨이 턱 막혔다가 숨통이 터질라 할 때 주변의 그어떤 영향력도 필요가 없으며, 아니 오히려 그런 요소들이 방해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자가발전, 자가증식의 우리식 발효에서는 저 스스로의 자기 완결 구도를 갖고 있기에 결국 믿음의 문제라 하겠다.어려서 읽은 이야기다. 영조임금인가 정조임금인가가 당신과 똑같은 사주팔자를 타고난 사람을 찾아보았더니 강원도 어느 산골에서 벌을 치는 이였다 한다. 그래 그 이를불러 똑같은 사주팔자를 타고 낳는데 당신은 어찌 그리 사느냐고 했더니 무어가 다르냐고 반문하는 이야기다. 임금이 다스리는 백성이나 당신이 다스리는 벌이나 스케일이같다는 거다.같은 식으로 한국 여성의 스케일 또한 장독대를통해 하늘의 별 만큼이나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의 미생물을 다스리며 형성된 게 아닐까.얼마 전 일본잡지사에서 일박 이일간의 취재가 있었다. 취재말미에 일본인 기자는 조심스럽게 당신의 의견을 내놓는데 우선 놀랍다는 것이다. 옹기가 가지고있는 한국문화의 함축성이 놀랍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러운소멸에 가까운 위축과 또 그만큼의 갑작스러운 관심이 놀랍다 한다. 우리사회가 가지고 있는 역동성으로 변명을 했지만 우리의 소중한 문화의하나가 거의 형식만 남을 꼴이 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은 여전하다.요즘 생각으로 옹기일을 많이 들었다 놨다 하게 된다. 얽매임 없이 살고픈거다. 그래 옹기일을 놔보게 되는데 역시나‘옹기, 참 아까운 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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