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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 |
장미영·전흥남의‘꿈꾸는 노년’
관리자(2010-10-04 18:38:31)
생명을 대접하는 법 - 박완서의「해산 바가지」- - 장미영 전주대학교 교수 우리나라의 노인 부양은 기본적으로 자식 된 도리로 간주되기 때문에 주로 가족 부양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 가족 부양은 부모-자식간의 애정을 바탕으로 자식의 부모에 대한 보은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가족 부양에 대한 본질적인 의의를 운운하기에는 현실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난점이 많아 가족 부양이 반드시 바람직한 형태라고 단정 짓기 어렵다. 노인 부양과 가족 갈등 노인 부양은 신체적으로뿐만아니라 정신적, 정서적으로매우 힘든 일이다. 그것은 노인의 신체적 의존성과 함께각종 질환, 인지력 부족, 문제 행동, 세대 차이 등으로말미암아 부양하는 가족들이부정적인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노인 부양은 부양 과업의수행에 따른 어려움 때문에 피부양자의 희생이 수반된다. 이로 말미암아 피부양자가 겪는 부당한 감정, 울분, 분노, 소외감, 우울증, 노인 혐오증, 허탈감 등은 피부양자의 삶을 파괴하는 극단적인 양상으로 나타나기까지 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부양에 따른 경제적 부담감과 노인의 돌출 행동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노인 부양을 기피하는 가족 간의 신경전으로이어지면서 심각한 가족 갈등을 야기하게 된다.소설가 박완서는 노인 부양에 대한 어려움을‘군식구를 섬기는 고통’으로 표현한 바 있다. 성인이 된 자녀에게 노부모는가족이 아니라 군식구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가족의 노인 부양이 애정에 기초하기보다는‘자식이 부모를모셔야한다’는 세태를 외면하기 힘든, 체면치레 정도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기에 부양을 받는 노인 당사자나 피부양자 양측 모두, 삶에 대한 희열은커녕 일상의 기쁨과 평화를 누릴 수 없는 잔혹한 나날을 감내해야만 한다.박완서는 단편소설「해산 바가지」를 통해 피부양자의 정신적고통과 나름의 해법을 묘사함으로써 노인 부양에 대한 가족문제를 여실히 드러내었다.그분의 망령은 여전히 해괴하고 새록새록해서 감당하기 힘들었지만 나는 효부인 척하는 위선을 떨지 않음으로써 조금은 숨구멍을만들 수가 있었다. 너무 속상할 때는 아이들이나 이웃사람의 눈치볼 것 없이 큰소리로 분풀이도 했고 목욕시키거나 옷 갈아입힐 때는 아프지 않을 만큼 거칠게 다루기도 했다. 너무했다 뉘우쳐지면즉각 애정표시에도 인색하지 않았다.「해산 바가지」는 노인 봉양에서 빚어지는 여러 가지 사건들이 우리의 삶 가운데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라는 점에서 공감을 이끌어낸다. 동시에 망령든 시어머니를 모시는작중 인물의 솔직한 고백은 독자들로 하여금 생활 속에서 우러나는 감추고 싶은 시커먼 속내가 거울처럼 반사되는 듯한민망함을 느끼게 한다. 이로 말미암아 노인 문제를 속 깊게다룬「해산 바가지」는 특히 늙고 병들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를 통해 우리의 삶을 일깨우는 힘을 발휘한다. 보살핌과 뒤치다꺼리의 가치 「해산 바가지」는 평범한 것처럼 보이는 가족의 일상이 보살핌과 뒤치다꺼리에 의해 이루어진 것임을 강조한다. 누가 봐도 편안하고 평화스럽게보이는 삶은 생명에 대해 정성을 다한 결과라는 것이다.「해산 바가지」의 며느리가‘보이기 위한 삶이 아니라 추구하는 삶이 더욱 필요하다’고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생명을 대접하는 시어머니의 태도였다.나는 내가 낳은 첫아이가 딸이라는 걸 알자 속으로 약간 켕겼다.외아들을 둔 시어머니가 흔히 그렇듯이 그분도 아들을 기다렸음직하고 더구나 그분의 남다른 엄숙한 해산 준비는 대를 이을 손자를위해서나 어울림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퇴원한 나를 맞아들이는그분에게서 섭섭한 티 따위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잘생긴 해산바가지로 미역 빨고 쌀 씻어 두 개의 해산사발에 밥 따로국 따로 퍼다가 내 머리맡에 놓더니 정성껏 산모의 건강과 아기의명과 복을 비는 것이었다. 그런 그분의 모습이 어찌나 진지하고아름답던지, 비로소 내가 엄마 됐음에 황홀한 기쁨을 느낄 수가있었고, 내 아기가 장차 무엇이 될지는 몰라도 착하게 자라리라는것 하나만은 믿어도 될 것 같은 확신이 생겼다.시어머니는 외며느리가 연거푸 네 번째 딸을 낳은 상황에서도 아들을 못 본 서운함 대신 희색이 만면한 채 경건하게 생명을 맞이했다. 남아를 선호하는 풍습에 상관없이, 딸이든아들이든 똑같은 영접을 받은 것이다.작가는‘그분은 어디서 배운 바 없이, 또 스스로 노력한바 없이도 저절로 인간의 생명을 어떻게 대접해야 하는지를 알고있는 분이었다’고 평가하면서 산후 수발의 뒤치다꺼리를 흔쾌히 도맡았던 정성스런 보살핌을 아름다운 정신으로 표현했다.그분은 어디서 배운 바 없이, 또 스스로 노력한바 없이도 저절로인간의 생명을 어떻게 대접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분이었다. 그분이 아직 살아 있지 않은가. 그분의 여생도 거기 합당한 대우를받아 마땅했다. 나는 하마터면 큰일을 저지를 뻔했다. 그분의 망가진 정신, 노추한 육체만 보았지 한때 얼마나 아름다운 정신이 깃들였었나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지금 빈 그릇이 되었다 해도사이비 기도원 같은 데 맡겨 있지도 않은 마귀를 내쫓게 하는 수모와 학대를 당하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중략…) 임종 때의 그분은 주름살까지 말끔히 가셔 평화롭고 순결하기가 마치 그분이이 세상에 갓 태어날 때의 얼굴을 보는 것 같았다. 나는 마치 그분의 그런 고운 얼굴은 내가 만든 양 크나큰 성취감에 도취했었다.생·로·병·사를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삶은 보살핌과 뒤치다꺼리 없이 영위될 수 없다. 한 생명이 태어나서 귀한 자식이 되고 존엄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은 부모의 헌신적인 보살핌과 쉴 새 없는 뒤치다꺼리 덕분이다. 마찬가지로늙고 병들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진 인간이 누군가의소중한 부모로 인정받고 그 죽음까지 애도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 또한 애정 어린 보살핌과 뒤치다꺼리를 궂은 일로 여기지 않는 사람들의 사랑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세대 간 상호 돌봄의 인간관계 「해산 바가지」의 바탕에는세대 간에 서로 돕는 상생적실천이 행해져야 생명이 존중 받고 인간애가 그 진가를발휘할 수 있다는 돌봄의 미학이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오늘날 흔하게 볼 수 있는 산부인과 입원실의 풍경은 그런 맥락에서 의미심장하다.출산한 사람에게 축하인사를 하러 간 한 중년 부인은 며느리의 출산 축하를 하러 온 친구가 어린 생명을 두고 단지 두 번째로 태어난 손녀딸이라는 이유만으로 함부로 말하는 것에분노한다. 생명을 남성, 여성, 두 가지 성으로 구분해 놓고경박한 말을 하는 친구와 달리 젊은 시절의 시어머니는, 딸만 넷을 내리 낳고 마지막에 아들을 본 주인공에게 극진한 정성을 다했었다. 게다가 그녀는 세간의 편견을 깨고 아들, 딸모두의 생명을 하나의 인격체로 경건하게 사랑했다.시어머니의 높은 성품을 떠올린 주인공은 노망 든 시어머니의 인격을 모독했던 자신의 얄팍한 행위를 깊이 반성하게 된다. ‘나의 신경세포를 줄이게 만들었던 노인에 대한 혐오감,귀찮음, 짜증’은 시어머니의 성품을 떠올리면서 교정되고 치유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애정 없는 수발은 노인 학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절감하는 주인공이 시어머니의 평화롭고순결한 죽음 앞에서 성취감에 도취하는 장면은 이 작품의 백미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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