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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 |
얘기보따리의 소리로 엮는 전주이야기 - 전주맛타령
관리자(2010-10-04 18:38:59)
얘기보따리의 소리로 엮는 전주이야기 - 전주맛타령 숨은 손맛에 길 가던 나그네도 멈춰서니… 전라도의 수부 전주는 사불여(四不如)1)에 사불여(四不如)2)를 더해 팔불여의 고장이라. 사또가 아전만 못해 관불여리 아전은 기생만 못해 리불여기 기생은 소리만 못해 기불여성 소리는 음식만 못해 성불여식 양반이 아전만 못해 반불여리 기생은 통인만 못해 기불여통 배맛은 무맛만 못해 이불여청 술맛은 안주만 못해 주불여효 전주가 자랑할 것이 많기도 많지만, 그중에서 음식이 첫 손에 꼽힌다는 말이렷다. 그도 그럴 것이 비빔밥, 콩나물국밥, 백반, 한정식, 돌솥밥, 오 모가리탕은 그 이름 앞에 전주자가 붙어야 제 맛이 나는 것을 상식 있는 사람이면 어찌 모를까. 헌디, 음식 맛의 근본이 그 재료에 있었으니, 이를 일러 전주십미라 허는가보더라. 게딱지 하나에 밥 세 그릇 뚝딱 금강참게 한내 게 임금님의 수라상엔 서원너머 돌미나리 민초들의 식후삼경 대흥리으 서초담배 한줄기에 스물두통 신풍리으 애호박에 혀끝에서 사르르르 선왕골으 파라시라 통통하고 고소한맛 사정골으 콩나물 난들난실 샛노랗다 오목대으 청포묵 청정한속 전주천변 모래무지 지천이고 연하고도 사각사각 기린봉으 열무배추 배보다도 더달다던 삼례봉동 둥근무시 전주십미 하나같이 한민족의 미식이라 하나라도 맛못보면 두고두고 한이되리 허나, 세월 따라 입맛도 변하는 법. 전주십미 중에서도 지금 은 사라지고 없는 것이 있고, 더 맛난 것이 그 자리를 대신한 것도 있으니, 열 개를 더하야 전주 이십미가 등장했으니, 미나리에 콩나물, 고들빼기 열무라, 녹두묵에 생강, 곶감, 복 숭아, 애호박에 홍시가 새로운 전주십미요, 그 뒤에 대추, 무, 삼례 게, 황토묵, 파라시, 서초, 배, 사과, 피라미, 장어가 긔 아니냐. 복탕 즐기는 주객들이 단연 미나리를 앞세웠고, 숙취 풀리는 콩나물이 두 번째가 되었으니, 예나 지금이나 전주는 참으로 술 맛 나는 고장이요, 전주에서는 누구나 한량이 될 수 있음 을 증명하는 것이 이 아니겠는가. 세월 따라 입맛은 자꾸자꾸 변하는 법. 전주사람 좋아하는 이천년대 신팔미도 있으니, 평양의 냉면, 개성의 탕반과 함 께 조선 삼대 음식의 하나라 일컬었던 전주비빔밥이 맨 앞에 서고, 그 뒤를 별의별 음식들이 침 꼴깍꼴깍 넘어가게 늘어 섰는디, 펄펄 끓는디도 시원허다 콩나물국밥, 상다리가 후덜덜덜 전 주한정식, 누룽지 박박 긁어먹는 영양돌솥밥, 포근포근 순두 부백반, 고봉으로 솟은 냄비 감자탕, 찰랑찰랑 칼국수, 넘싯 넘싯 순대국밥, 뚝배기의 사투리라 오모가리탕, 사시사철 추 어탕, 사시장철 미나리복탕, 서민들의 사철음식 시래깃국, 전 주양반 폼내는가 메기탕, 너잘났다 동치미, 구수하다 청국장, 엄마손의 김치찌개, 임산부의 영양음식 선지국밥, 중앙시장 닭내장탕, 청포묵무침, 도토리묵무침, 홍어무침, 미나리잡채, 참게장, 화심두부, 고들빼기김치에 전주의 오랜 간식 정과유 과라. 막걸리와 이강주, 모주는 전주를 대표하는 술이니, 애써 술꾼 아니라도 반주 한 잔 입안에 돌려봄이 어떠한가. 식은 밥도 성찬이 돼 나오는 곳, 문을 열면 만찬이요 문 닫으 면 극찬이라. 전주 음식의 특징은 다양한 부재료들, 즉 양념과 고명의 화려함이라 할 수 있다. 똑같은 음식이라고 하더라도 양념에 따라 그 맛이 확연히 달라진다. 그것은 우리의 미각이 음식 재료를 파쇄(破碎)하는 방법의 차이까지도 찾아낼수 있을 만큼 민감한 탓이다.대표적인 양념인 마늘과 파만 해도 칼로 썰었을 때와 칼등으로 으깼을 때와 손으로 문질렀을 때의 맛이 확연히달라진다. 영양학적으로는 무쇠칼의 철 성분이 비타민을 파괴한다고 설명할 수 있지만, 옛 어른들은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다. 쇠를 대면 채소 안에 든 생명력이 달아난다고 믿었기 때문에 조리과정에서 칼을 대는 것을 금기시했다. 되도록이면 손을 썼고 손이 안 되면 나무나 돌을 썼고 그게 정 안 되는 최후의 순간에만 생명체의 몸에 쇠붙이를 댔다.이처럼 음식 재료에 대한 경외감, 그리고 생명에 대한 공경이 전라도 음식을 만들었다. 그러니 어찌 양념의 색과향에 반응하는 코와 눈이 예민하지 않으랴. 그래서 맛이라고 하면 입맛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손맛, 눈맛, 마음맛 등 인간이 감각할 수 있는 모든 기관은 나름의 맛을 느낄 수 있다.맛과 관련하여 <능엄경>에 이런 대목이 있다.약왕과 약상 두 법왕자가 모임 가운데 있다가 오백의 범천(梵天)과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한량없는 세월 동안 세상의 훌륭한 의사가 되어서 입으로 이 사바세계의 풀, 나무, 쇠붙이, 돌을 맛본 그 가지 수가 무릇 십만 팔천이나 되니 이와 같이 쓰고, 시고, 짜고, 담담하고, 달고, 매운 것등의 맛과 아울러 화합해서 생긴 맛, 함께 생긴 맛, 변하여 생기는 맛과 찬 맛, 더운 맛, 그리고 독이 있고, 없고를두루 맛보아 알 수 있었습니다만, 여래를 받들어 모시면서 맛의 성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며, 몸과마음에 붙어있는 것도 아니고 몸과 마음을 떠나 있는 것도 아님을 깨달았으며, 맛의 원인을 분별하여 이로 인해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여래께서 저희 형제를 인가하시어 약왕, 약상 두 보살로 이름하여 주심을 받자와 지금 모임 중에서 법왕자가 되어서 맛으로 인해 깨닫고서 보살의 지위에 올랐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제가 증득한 바로서는 맛으로 닦는 것이 으뜸인가 하나이다.”이 대목의 핵심을 한마디로 말하기는 곤란하지만, 표면적으로 보면‘맛’을 통해 부처의 경지까지 이를 수 있다는깨달음을 읽어낼 수 있다. 화합의 맛, 함께 생긴 맛, 변해서 생긴 맛 등을 두루 섭렵한 후, 그 성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의 맛, 즉 인간의 주관적인 판단의 영역에 속하지않는 순수한 맛의 지경에 도달할 때 비로소 제대로 된 맛의 경지에오를 수 있다는 정도로만 읽어내도 좋을 듯싶다.한 가지 더. 우리 선조들은 맛을 이야기하면서 미(味), 형(形), 색(色), 향(香), 기(器) 다섯 가지를 들었다. 먼저‘미(味)’이다. ‘미’는 <능엄경>에서 말하는 것처럼 순수한 의미에서의 맛이다. 좀더 설명하자면, 음식 재료가 가진 고유한 맛이다. 인간의 손길이닿기 이전의 자연으로서의 맛, 햇살과 바람, 비와 서리가 키우고길러낸 생명체로서의 맛이 바로‘미’인 것이다. 다음은‘형(形)’이다. ‘형’은 그릇에 담긴 음식의 모양새를 말한다. 입보다는 눈으로 먼저 음식의 맛을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색(色)’은 음식 재료들간에 색의 어울림이다. 여기에 양념과 여러 가지 고명이 올려져 조화로움을 추구한다. 다음은‘향(香)’으로, 음식이 풍겨내는 냄새를 이야기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갓 지어낸 밥 냄새를 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기(器)’이다. 우리 조상들은 음식뿐만 아니라 음식을 담아내는 그릇까지도 맛의 영역에 설정해두었다.그러나 하나 빠진 것이 있다. 바로 음식을 조리하는 사람이 그것이다. 아무리재료가 신선하고 색과 향이 아름답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음식은 손맛에서 나온다. 또한 손맛은 마음씨에서 나오고, 마음씨는 그 사람을 키워낸 하늘과 땅, 바람과 햇살에서 나온다. 그런 점에서 온고을 전주는 그 온화한 풍토가 사람의 마음씨를 길러내고 온갖 음식 재료들의 생명을 키워내니, 그 마음씨와 손끝 맵시와 음식 재료들이 베풀어내는‘맛’의 향연이 가벼울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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