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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 |
[문화시평] 2010 아시아 그리고 쌀
관리자(2010-10-04 18:39:10)
2010 아시아 그리고 쌀 전북예술회관(9월 10일~16일) 상상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 안승택 전북대학교 쌀, 삶, 문명(HK) 연구교수 『문화저널』로부터 간단한 관람소감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9월13일 점심시간을 이용해 일행 4명과 함께 <2010 아시아 그리고쌀>전이 열리는 전북예술회관을 찾았다. 『문화저널』에 필자를 소개한 구혜경 선생으로부터는, <농업기술과 농민문화를 연구하는 문화인류학자>라는 필자의 성격을 감안한 섭외라는 설명이 있었다. “쌀은 좀 알지만 미술은 전혀 모른다”는 필자의 고백에, 전시취지를설명해준 진창윤 작가는“현대미술에서 작품의 의미나 메시지는 작가 자신조차 해석 못할 수 있는 것”이라며 자유로운 감상을 당부하였다. 이 말씀에 기대어 몇 자 적기로 한다. 관람소감에 오독이나착시가 있더라도, 미술 관람층의 아주 자그마한 확대가 있었던 결과라는 점에 비추어 너그러이 헤아려주시길 바란다. 쌀, 비판 주체인가 복제 대상인가 이 전시는 전북 민예총에서‘아시아와 쌀’을 주제로 3년째(초기의 실험적전시를 포함하면 4년째) 이어온 것이다. FTA 협상의 본격화를 계기로, 글로벌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 아래 놓인 지역의 농업·농촌·농민 문제를, 쌀을축으로 삼아 아시아적 시야에서 포착한다는 기획이다. 대단한 혜안이라 생각하며, 주최 측의 집요한 문제의식과 끈기에 경의를 표한다. 이 전시의 관람이지역의 시민과 농민사회가 결합하는 하나의 운동이자 축제가 된다면, 지역의농업을 위해 이보다 더한 선전수단이 있을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미술인의노력에 부응하는 농업인의 호응이 있었어도 좋았던 것이 아닐까.전시도록은“지난 100년의 아시아는…비약적 성장을 위해 인간의 중요한가치들을, 인간의 고유한 감수성, 상상력을 제한했다.…전시의 60여 작품을통해…복제 생산물들의 거대구조의 이데올로기적 물량공세, 몽환적 현실 속에서 잃어버린 자아를 쌀과 생명, 인간 사이에서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 취지를 적었다. 단순한 이슈 파이팅이 아니라, 대량복제시대의 산업문명이 야기하는 문제들을 쌀을 매개로 비판함으로써 생명의 가치에 대한 환기로 나아가겠다는 뜻이라고 생각되었다. 따라서 이 전시의 요체는 무엇보다도 쌀이라는 물질이 감동을 주는 힘, 그 환기효과의 어떤 점을 집어내어 얼마나 적절히 작품안으로 끌어들이느냐에 있을 것이다. 작가들이 쌀이라는 화두에 대해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상상할지, 필자에게도 이 점이 관람의 포인트였다.기본적인 소감은, 이 전시에서 쌀은 무엇보다도 똑같은 모습을 하고떼거지로 몰려있는 놈들이었다는 점이다. 다량의 쌀튀밥을 지름 1미터이상의 원으로 바닥에 뿌려놓거나(박진희, 지금_여기), 리히텐슈타인의<행복한 눈물>을 116×80㎝의 화폭 가득 쌀을 박아 재현한 뒤 하단에헐벗은 어린이를 쭈그려 앉혀놓거나(김병택, 행복한 눈물), 수상한 눈을가진 똑같이 생긴 밥알들이 밥그릇 위로 솟아올라와 우리를 쳐다보는(김기호, 밥) 식이다. 때로 똑같은 무표정의 얼굴을 그려 넣은 쌀알들이 줄지어 여러 겹의 산 능선을 구성하고(이봉금, 무제), 쌀알의 형상화처럼느껴지는 손톱만한 크기의 서로를 구별해낼 수 없는 수백의 사람들이 떼지어 서있기도 하였다(정하영, Rice-People). 손가락 두 마디만한 크기에 똑같이“당신이 참 좋아요”라고 적어 쌀알을 형상화한 종이 수백 장을만들고 이를 둥그렇게 붙여 구성한 지름 2미터에 육박하는 꽃도 있었다(박은주, 당신이 참 좋아요). 이 경우 뭔가 따뜻함이 전해오기도 했으나,쌀의 이미지 자체는 이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그 외에도 많은 작품들이 이러한 쌀의 이미지를 반복하고 있었다. 사태가 이렇다면, 쌀은 대량복제시대의 산업문명을 비판하는 매개가 아니라, 작가들이 비판하려던 산업문명의 대량복제 현상 자체인 것이 아닐까. 작가들이 이를 의도한 것이라면, 필자는 그것이 급진적일 뿐만 아니라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정곡을 찌르는 인식—전체를 포괄할 만한 표상이라고는 못해도—이라고 평하고 싶다. 일부 작품들은, 소재나 주제가다를지라도, 이 같은 문제의식을 보다 정면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독일에서 대량 유통되는 포장판매용 쌀 상자를 캔버스 삼아 작가의 일상생활을 덧그려나가거나(고보연, 그림일기), 위키백과의 쌀 설명지문과 몇 개의 이미지—그 자체로는 상투적이지 않지만 되풀이됨으로써 상투화되는—를 반복적으로 나열하거나(유대수, 쌀에 대하여), 휴경보상에 들어간 것으로 보이는 버려진 논 한구석 석축에 처박힌 고물 TV에 푸르른논을 전개시킴으로써 논의 예찬 배후에서 농민의 삶이 방기되는 현실을비판한 기획(이안수, 논의 기억) 등이 그러한 경우이다. 눈감은 흰 가면을 중앙에 배치하고 그 면상과 유사한 크기·모양의 쌀알을 여러 장의은판에 찍어 가로 세로 줄을 맞추어 배치함으로써 쌀 단작화와 품종획일화에 얽힌 식민주의의 과거와 산업문명의 현재를 상기시키는 작품도 눈에 들어왔다(스가하라, Asian Porraits 2010).그러나 이렇게까지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면, 다소 과녁을 빗나간 작업이었다는 평을 듣게 될 것이다. 많은 작가들은 밥상에 오르는 하얀 더미의 쌀밥 이외에 쌀과 결부된 어떤 별다른 기억이나 기획을 갖고 있지도,찾아내지도 못한 것이 아닐까. ‘FTA’나‘아시아’란 기획이알파벳을 상기시킨 것인지 <RICE>란 영문자를 활용한 작품이 지나치게 많았던 점과 더불어, 이는 기획과 조직에 일종의 피로감이 쌓여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했다. 만일 앞서 인용한 진창윤 작가의 당부를 상기한다면, 작가들이 이를 의식했든 아니든, 우리의 현실세계에서 쌀은 이미 작가들을 포함하는 시민의 삶에서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기억과 상상의 계기들을 상실한 채 대량복제되는 산업의 한 부문으로만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쌀이란, 비판의 무기이기보다는, 이미 그 과녁이 되어버린 것인가. 쌀과 생명의 가치를 환기시키다 물론 전시 전체를 이렇게 도매금으로 넘길 수는 없다. 가령 쌀 한 톨의 의미에 주목함으로써 쌀을 바라보는 시선을바꾸려는 기획들이 있었다. 사방 1미터 가까운 화폭 가득한낱알의 쌀눈에 시각기관인 눈—결과적으로 다크 서클이 낀눈처럼 보이는 부작용(?)도 있었지만—을 그려 넣어 관람자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거나(이영학, 늘), 온통 검은 배경한 귀퉁이에 상념에 잠긴 소녀의 하얀 얼굴을 쌀알처럼 띄워올리는(최경필, 낱알) 식이다. 작품 자체의 완성도나 미술사적 의미에 무지한 채로 말한다면, 전시장 전체의 분위기에대해 이단적이라는 의미에서 참신하게 생각되었다. 여전히떼 지어 있기는 했지만 쌀과 소금과 콩을 아울러 배치함으로써 실제 삶에서의 쌀의 지위를 상대화하며 지역성을 드러낸설치(이혜숙, 하의삼도)나, 50원 주화의 통일벼 도안을 활용하여 냉소와 온정이 빙글빙글 맴을 돌지만 기본적으로는 싸구려인 우리의 감성을 요샛말로 대단히‘시크’하게 풍자한유화(조영대, 정보이용료)도 눈에 들어왔다.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이리 저리 검은물감이 번진 흰 한지 위에 남편의 트랙터와 밀짚모자, 셔츠를 몇 톨의 벼와 함께 띄워 올림으로서 남편의 부재에 따른스산함을 표현한 <남편의 쌀>(김미경 작)이었다. 여기에서낟알들은 곧 터져버릴 듯한, 그러나 터지지는 않는 어떤 강력하면서도 절제된 힘을 느끼게 하였다. 이 힘의 원천이 아마도 일차적으로 작가 개인의 경험과 관련이 있으리라는 점은 중요하다. 쌀이라는 물질이 감동을 주는 힘, 쌀이라는 물질을 통해 작가들이 무엇을 느끼고 상상하는가 하는 점은,전시 전체는 물론 이 관람소감의 취지와도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마 작가들 대부분도 포함될 도시민의 삶에서, 쌀이나 논은 일상생활의 밥상 너머로는 어떤 현실적인연관관계도 떠오르지 않는 추상적인 실재일지 모른다. 비 내리는 사하라(타코마, Lines of Flight to the Sahara)처럼이질적인 시공간에 가서야, 맹폭하는 가을바람에 꺾일 듯 드러눕는 갈대들 저 너머에서야(이기홍, 9월 들바람) 아득히 모습을 드러낸다. 이 상태에서는 쌀이 환기시켜낼 수 있는 환경과 생명의 가치 역시 아득하고 추상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흙이 솟아 빚어진 육신에, 풀이 뻗어 엉킨 뽀글뽀글 파마머리에, 논물을 빨아올려 걸친 내의셔츠(진창윤, 봄의 들)는, 결코농민의 몫으로, 혹은 리얼리즘 미술의 영역으로 한정될 얘기가 아니다. 농민의 삶과 쌀/밥의 의미를 조명하려는 연구와창작의 노력이 서있을 자리이기도 하다. 새로운 가치의 상상과 생산이란, 도시 쪽에서든 농촌 쪽에서든, 그런 개인적이고구체적인 계기들을 확보함으로써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안승택 서울대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인류학 박사를 수료했다. 지역문화연구소 연구원 및 연구위원과 역사문화연구소 특별연구원을 역임했다. 현재 전북대 쌀·삶·문명연구원 HK교수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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