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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 |
[문화시평] 연극 < 만인보>
관리자(2010-10-04 18:39:19)
연극 < 만인보> 한국소리문화의전당 (9월 18일~19일) 전쟁으로 훼손된 순결함을 다시 찾다 - 홍석찬 창작극회 대표 어렸을 적부터 역사 속에서 웃고 우는 인물들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연극을 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내 고향 군산을 배경으로펼쳐지는 전주시립극단의 <만인보>는 단번에 시선을 끌었다. 또 추석연휴를 코앞에 두어서 그런지, 공연을 보러온 사람들도 남녀노소 다채로웠고 추석선물을 받는 사람들처럼 기다림과 반가움이 묻어있었다. 공연 평을 해달라는 부탁과 전주시립극단 공연에 대한 기대, 20년 전에 공연되었던 <만인보 1탄>의 추억으로 일찌감치 관람준비는 다 되었다. 극작의 모티프가 되었다는 고은 시인의『만인보』중 16, 17권을 미리 구해서 읽어보기도 하고, 재구성한 대본을 읽고, 무대화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도 들었다. <만인보 1탄>의 공연비디오테이프까지 어렵게 구해 보면서 비교를 하니, 결과적으로는 많은 공부가 되었다. 치열했던 삶의 현장을 담다 공연을 안 보신 분들을 위해 극 내용을 밝히면 <만인보 1탄>이 일제강점기, 한 마을사람들의 삶을 다루었다면, 오늘의 <만인보>는 1950년 전쟁이 터지고 나서부터 휴전까지의이야기다. 극작가(곽병창, 우석대 문예창작과 교수)는 전쟁에 휩쓸린 남쪽사람들의 이야기를‘원작시의 성격에 연극적상상력을 덧입혀’, 대한민국 어디에나 있을법한‘용말’이라는 마을에 모아 놓았다. 기승전결형 플롯과 거리가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극의 25개 장면의 줄거리를 말할 필요는 없겠지만,‘ 용말’사람들이피난민과인민군을대하는태도, 변화되는 모습이 주로 다루어지며, 막간극은 스스로 완결성을 가졌다.왜 이 작품이 전주시립극단의 89회 정기공연으로 올라갔는지에 대한 답은 팜플릿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는데, 전쟁60년, 분단 60년, 전주시립극단 창단 25주년 기념공연, 이것 말고도 20년 전 전북연극계에 시도되지 않았던 새로운형식과 제작방법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만인보> 이야기를다시 해보고 싶었던 생각이 간절했으리라. 그 당시 공연제작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이 작품에서 극작, 연출, 기획으로 참여하고 있고, 여전히 배우로도출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년 전 작품이 전북연극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후배들에게 계승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염려와 전주시립극단의 제작방식에서 참여예술인들이생산적으로 응집할 수 있을까, 짧은 연습기간에 비추어 걱정이 되었다.뚜껑을 열자 작품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첫 공연을 본 원작자 고은 시인은“마치 그리스 비극을 보는 것처럼 위압적이었으며, 사무엘베케트의 연극처럼 깨끗하였다”고 한마디로 표현했다. 극작가는 본 극과 막간극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음을 아쉬워했다. 또 누구는 배우들의 소리가 작았다, 만인보니까 1인 1역만 해야 하지 않나, 관객이 상주하면서 볼 수 있는 대하연극의 가능성을 보았다, 강난옥의 마지막 투신장면은 마치 심청이나 예수를 연상하는 장면처럼 숭고했다, 마지막 하얀 빨래가 날리는 장면에서애틋한 감정을 느꼈다, 원인과 결과가 명확해야 한다, 브레히트의 서사극을 보는 것 같았다, 현대연극은 웃겨야 한다 그것이 현대드라마의 비극이라는 말도 나왔고, 결말을 불같이 몰아쳐서 끝내고, 이 작품은 해외로 가야한다는 말까지 나왔다.공연에 대한 여러 가지 평들은 이 작품이 레퍼토리 작품으로서 생명력을 갖기 위해서는꼭 참고해야할 말들인 것 같다. 이에 덧붙여, 작품을 이뤘던 중요한 몇 가지 요소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먼저 극작부분에서, 이미 익숙해져있던 원작시의 인물들과 상황들을 현재 관객과 신선하게 만나게 함으로써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비극적인 상황이지만 매 장면이 위트있게 그려졌으며, 반 민중세력이 등장하는 몇 개의 막간극은 비식비식 웃음 짓게 하면서도 연민을 자아냈다. 이는 원작시가 악한이나 민중 억압적 태도를 지닌 등장인물조차도연민과 자비의 시각으로 그린 것과 통하는 것으로 이 시대에 우리가 <만인보>를 통해 깨달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극작가의 희곡을 연출이 무대화하는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쯔쯔영감이나, 엄면장 마누라와 진복남 할머니, 어린 인민군, 빨갱이 귀신들 등 등장인물은 개성이 확연히드러나지 않아서 그들이 등장하는 장면도 방향을 잃고 헤매는 듯 보였으며, 이는 비슷한다른 사람들을 한 인물에 섞어 넣으면서 인물창조에 혼란이 있었던 것도 있지만, 합이 이루어져야 나오는 연극 특성상, 제작과정에서 정반의 과정이 약하게 반영된 것 같았다. 이는 <만인보 1탄> 제작과정에서 등장인물을 먼저 캐스팅하고, 자신이 맡은 인물과 관련하여 장면을 구성해서, 대필자가 총합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던공동창작방식과의 차이에서 발생한 것이라 볼 수 있다.연출자(조민철, 전주시립극단 상임연출)가 연출의 변에‘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 내몰린 인간의 대응과 변화를 그리고 싶다’고 말한 바에 따르면, 가장 많은 변화를 겪는 극중인물은 머슴 도섭이일 것이다. 전쟁통에 인민군 편에서 활개치고 다니다가, 곧 인공시대가 끝나자 후환이 두려워 집단학살을 자행하는 인물이다. 역사는 이러한 도섭의 행위가 또 다른 살육을 불러온다는 것을 경고한다. 숨어 생활하던 우익쪽 사람들의 피의 보복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본극의 초점이 도섭의 심리변화에 할애된 것 같았다.그 때문인지 극은 연기, 음향, 장면넘김에서 사실주의극방식을 따르고 있는데, 이야기가 옴니버스 식으로 진행이 되면서 산만해질 수 있는 진행을 피하고, 극의 완결성을 유지하기 위해 택한 방법일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점점이흩어져있고 파편화된 민중이라는 돌들을 한곳에 쌓아 돌탑을 만들기에는 극형식이 견고하리만치 닫혀 있었다. 시종일관 비극적인 분위기 음향과 포 소리, 비행기소리. <만인보 1탄>에서 많은 등장인물이 한 장면에 등장하여 그야말로 일제강점기의 어려움을 마을공동체가 똘똘 뭉쳐 이겨내고 있구나 하는 그림을 만들었지만, 1950년 전쟁부터 시작한 오늘의 <만인보>는 이미 파괴된 공동체로 한마을을 배경으로담아낼 수 없는 환경조건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광대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만인보>와 딱 맞아 떨어지는 형식은 무엇일까.무대 위, 이제는 역사가 된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모습을 보면서 타데우즈 칸토르의‘역사의 문’을 통해 무대로쏟아져 들어오는 무리들이 생각났다. 내용만큼 친근감을 느끼게 하고, 공동체와 참여의 마음을 유도하고, 전쟁 속에서도 따뜻한 정을 느끼게 하는 형식은 무엇일까. 사건의 소재를 과거에서 찾았지만, 현재의 변화된 가치와 진화한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형식은 무엇일까?전주시립극단의 배우들의 연기는 안정되어 있으며, 간혹매너리즘에 빠졌다고 할 정도로 습관화된 연기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것은 어떻게 액션해야할지 모를 때 나타났다.오늘, 고은 시인은 전주시립극단의 배우들에게‘한시대의인간상을 마음껏 형상화하는 그 재현의 마술을 보여 달라고’하였다. 광대란 무엇일까? 우리에게 문제의식이 있는가. 문제의식을 외칠 무엇이 있는가. 외침에 답할 무엇이 있는가.최근의 전주시립극단의 여러 시도 가운데 주변의 많은 관심을 갖게 한 공연임에는 분명하지만, 대작이라는 점, 우리지역 이야기라는 점, 레퍼토리의 충분한 자양분을 지니고 있다는 점 말고도 이 작품의 성공가능성을 추측할만한 것이 더있어야 한다.시『만인보』에「옥순이 옥분이 자매」라는 시가 있다. 전쟁통, 시골버스가 비포장 자갈길에서 멈추고 운전수와 조수가수리하는 동안, 승객 30명이 후줄근히 저마다 가수되어 노래하고 춤추는 대목이 나온다. 공포에 떨며 증오가 일상이되어버린 사람들이 옛정이 처음으로 묻어나 서로 노래하고춤추는 한세상을 이룬 것이다. 전쟁으로 훼손된 순결함을 다시 찾은 것이다. 우리의 관객들도 저마다 상처를 안고 불신하고 있다면, 그들과 함께 춤추고 노래하면 되지 않겠는가.가을의 시작점에서 무대에 오른 <만인보> 공연은 전북연극의 현주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홍석찬 전북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했다. 연극 <필례 미친꽃> 등 30여 편에 출연했으며, <광팔자> 등 10여 편을 연출했다. 현재 창작극회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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