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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 | 특집
[기획특집] 지역문화 다시보기 - 군산 2
관리자(2011-01-06 14:32:03)

지역문화 다시보기 - 군산 2 문학의 도시, 그 역사를 빛나게 하는 일 - 류보선 군산대학교 교수


여전히 어정쩡한 상태이지만, 군산에서 생활한지 거의 15년이 되어 간다. 고백하자면, 나는, 고향이 없다. 물론 태어나고 자란 곳은 있다. 서울 이곳저곳이다. 하지만 그곳들은 어느 순간에도 나에게‘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으로 추억된 적이 없다. 도시에서 자란다는 것은 모든개인을 각자 고유한 개인이 될 수 있는‘생애 최고의 기억’이 없는 채로 사회적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사람들 사이의 감정적인 유대와 공동체 의식 같은 것을 경험하지 못하고 나만 배려하는 기계같은 사물이 된다는 것을 함축한다. 그러므로 나에겐, ‘그립고 정든’기억의 성소가 없다. 

간혹 문득 떠올라 애수에 젖게 하는 풍경들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 아득한 목가적 풍경마저도 사라진지 오래다. 이래서, 여하튼, 나에겐,떠나온 곳은 많아도, 돌아갈 곳은 없다. 그렇게‘그립고 정든 곳’하나 없이 서울의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새롭게 접하게 된 곳이 바로 15년 전의군산이었다. 문학의 도시, 군산 하!, 그런데, 군산은, 달랐다. 처음에는 서울에서 볼 수 있는 많은 곳이 보이지 않아 낯설었다. 하지만 서울에 없는 많은 것이 있었다. 그래서 내게 군산은 너무 많은 것이 없거나너무 많은 것이 있는‘놀라운 신세계’였다. 우선 군산 이곳은한국의 역사, 더 나아가 세계의 역사가 무슨 축약도처럼 펼쳐져 있었다. 우리 문명의 중요한 발상지였는가 하면, 오래전부터 중국 교류의 중심지였고, 중국이나 왜로부터 나라를지킨 흔적이 넘치는 곳이기도 했다. 대한제국이 주체적 근대화를 위해 열었던 개항장이었지만 이후 일본제국에 의해 식민지배의 전략적 요충지로 활용된 한 곳이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해방 직후 극심한 좌·우익의 대립으로 후방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의 상처가 임리한 곳이기도 했다. 이후 갑작스레 시간이 멈춘 듯 한국 역사와 한국경제의 중심지에서 변방으로 밀러나다가 지난 세기 말 군장산업단지의 완공 등으로 한국경제의 또 하나의 중심 권역으로 부상했던 지역이기도 하다. 여기에‘인류의 새로운 문명을 여는 도시’가 될 새만금이 탄생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군산은 저 멀리문명의 기원에서부터 포스트모던 사회까지가 압축적으로 펼쳐져 있는 곳이었다. 매력적일 수밖에. 매혹될 수밖에.그러나 군산이 무엇보다 매력적이었던 것은 이곳이 바로문학의 도시였기 때문이다. 

군산에는 위대한 문인이 많이 나고 자란 곳이었다. 군산은 식민지 시기부터 해방직후까지 한국문학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채만식이 나고 자란 곳이며,동시에 1960년대 이후 한국문학, 그리고 최근에는 세계문학의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고은이 그 특유의‘우주적 감수성’을 키운 곳이기도 하다. 아마도 군산에 유독 위대한 작가가 많은 것은 군산 특유의 혼돈스러운 상황, 그러니까 혼종성 때문일 것이다. 식민지 시기 군산은 제국의 논리에 의한 근대화, 그러니까 식민지 민중의 인간적인 삶과는 무관한 일방적인 근대화가 무자비하게 진행된 곳이었다. 해서 군산은어느 곳보다 먼저 인간(특히 여성 섹슈얼리티)의 상품화가 노골적으로 진행되었다. 이 때문에 군산은 모든 것을 등가화시키고 상품화시키는 자본주의적 경제학과 한국의 민중이 오래전부터 지녀왔던 증여의 윤리가 첨예하게 맞서는 곳이었다.

하지만 자본주의적 경제학이 제공하는 물질적 풍요는 이것이가져다주는 인간의 상품화라는 치명적인 폐허를 덮어버리기에 충분했으며 때문에 식민지 조선 전체는 그것을 경계하는대신 물질적 풍요를 위해 스스로를 상품화하기에 혈안이 되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동시대 대부분의 사람들이 폐기하고자 했던 민중들 사이의 증여의 윤리를 귀환시키고자 했던 작가가 바로 채만식이며, 『탁류』는 그러한 치열하고도, 그렇기에 초월적인 진리내용을 위대한 수준에서 구현한 소설이다.이런 점에서 보자면 군산이라는 혼돈과 혼종의 공간이 없었더라면 채만식의 위대한 소설『탁류』는 불가능했으리라. 이에 대해 작가 채만식 또한『탁류』라는 소설을 통해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난 곳 군산을 비로소 인류의 새로운 문명을 열수 있는 공간으로 다시 탄생시키는 것으로 화답한 경우라 할수 있다.이처럼 도시의 역사 속에서 한 작가가 탄생하고 그 작가가자신이 성장한 도시를 새로운 문명의 신기원으로 재탄생시키는 과정은 생존하는 시인 중 세계적으로 가장 명망 높은시인인 고은의 경우에도 나타난다. 

고은 역시 군산, 그것도목가적 풍경이 짙게 남아 있는 군산의 변두리에서 태어났다.고은은‘노래섬’같은 공간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합일의 오묘함을 깨닫는 한편, 자연스레 자연과 인간이 합일되는 삶을살아가는‘머슴 대길이’혹은‘선제리 아낙네들’을 통해 더낮은 존재들을 배려하는 삶의 필요성과 필연성을 철저하게내면화한다. 그러나 그 자연에 순응하는 삶은‘째보선창’가로 삶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깨져나간다. 그곳에서 고은은 자연과 인간이 합일하는 증여적 삶 대신에 오로지 자기 한 개인만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들과 그러한 괴물을 만들어낸 자본주의 경제와 조우하게 된다. 그리고 한국전쟁기의 처절한경험을 통해‘전쟁하는 인간’에 대한 깊은 불신과 홀로 살아남았다는 원죄의식을 동시에 짊어지게 된다. 

이 대속의식은고은을 승려의 길로 또 끝내는 시인의 길로 이끈다. 고은은서서히‘전쟁하는 인간’들 속에서, 또는 전쟁을 강요하는 남북분단의 상황 속에서‘선제리 아낙네들’을 기억해내기에 이른다. 고은이 거의 60년 동안 써낸 그 엄청나고 위대한 작품들은 모두 이러한 정신으로부터 촉발된 것이라 할 수 있다.흔히 고은 문학의 위대함의 근원을 보다 낮은 존재들에 대한(접신에 가까운) 역사철학적 호명과 그들과의 조화를 통한우주적 질서의 회복이라고 했을 때, 이 모두는 고은이 태어나고 성장한 군산의 혼종성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 

군산이 없었다면, ^문의마을에 가서_, ^백두산_, ^만인보_,^ 이상평전_,^ 한용운평전_,^ 1950년대_,^ 화엄경_,^ 나,고은_등의 위대한 문학적 성취는 불가능했을 것이며, 또 고은이 없었다면 군산에 축적되어 있는 그 값진 역사적 전통은그야말로‘연기처럼’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작가 문학정신의 정수부터 발견하고 공유하라 그런데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충분히 매혹적인 문학의 도시 군산이 채만식과 고은과 같은 위대한 문학적 유산을 충분히 기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의 안타까움이라니! 한마디로 관심이 없는 듯했다. 

간혹, 관심을 보일 때도있으나 그것은 진정한 관심은 아닌 듯했다. 채만식의 경우는이렇다. 현재 군산에서 진행되고 있는 채만식 기념사업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채만식문학관 운영이고, 다른 하나는 채만식문학상 운영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사업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더할 나위 없이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고있다. 채만식문학관의 경우 우선 위치부터 채만식과는 관련이 없는 후미진 곳에 있다. 그런데다 그 안에 있는 자료들은빈약하기 짝이 없고 그마저도 무질서하고 자의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해서, 채만식문학관은 전국에 흩어져 있는 문학관 중 가장 사람의 발길이 뜸한 한적한 장소가 되어버렸다.

관람객이 거의 없는 이유는 단지 위치 문제만은 아니다. 도대체 문학관을 지어놓고 거의 아무런 행사도 열지 않는다.채만식 문학에 관한 심포지엄은 말할 것도 없고 채만식 문학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어떤 행사도 없다. 그러니 점점 더 한적해질밖에. 어설픈 관심 때문에 채만식 문학 정신을 두 번왜곡시키는 경우는 채만식문학상도 마찬가지이다. 2003년제정, 2010 현재 제 7회 수상자를 낸 채만식문학상은 채만식문학상 운영의 분명한 철학도 없고 또한 운영상의 비합리성 때문에 현재 한국에서 주어지는 수많은 문학상 중 가장이름 없는 상으로 전락한 형편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전적으로 어설픈 관심에 따른 전시행정 탓이다. 채만식 문학 정신의 정수가 무엇인지를 확인하지 않고 단지 지역사회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여 한 번 해보자는 식의 기념사업이 결국 채만식의 위대한 문학적 자산을 계승하는 대신에 치명적인 흠집을 내고 있는 셈이다.이에 비해 군산의 역사와 정신적 가치를 전세계에 알린 고은 문학의 경우는 그나마 상황이 좀 나은 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직까지는 고은 문학을 기리기 위한 사업이 제대로진척되지 않은 까닭이다. 그러니까 고은 문학을 기리는 작업이 별로 시행되지 않은 까닭에 고은 문학 정신은 상대적으로덜 훼손되었다고나 할까.한데, 최근, 군산 이곳저곳에서, 고은 문학 정신을 기리는사업에 착수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아마도 몇 해 전부터시인 고인의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전언들 때문일 터이다.

이유야 어쨌건, 즐거운 일이고 우선 반기고 볼 일이다. 하지만 마냥 반가워할 수는 없으니 딱한 사정이다. 채만식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 한 작가의 위대한 문학을 기리는 일이 그 작가의 위대한 정신을 보이는 형태로 전시하는 일에 집중될 경우, 그것은 그 위대한 정신을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오염시키는 일이 될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예전의 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고은의 경우 먼저필요한 작업은 고은 문학의 무조건적인 예찬이나 기념이 아니라 고은의 문학정신의 정수를 발견하고 공유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이 치밀하게 행해지고 공유되어야만 고은 문학은전시행정의 오염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으며, 또한 다른 지자체의 모방이 아닌 고은만의 고유한 기념사업 모델을 발명할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토록 독자적이고 독창적이어서 위대한 고은 문학이 틀에 박힌 전시행정에 의해 박제화될 가능성이 높다. 문학의 중심도시로 빛나야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채만식과 고은의 문학이 위대한 것은 그들이 군산에서 나고 자랐으며 군산의 역사를 기록했기때문이 아니다. 그들의 문학이 위대한 것은 그들이 군산의역사를 기록하고 계승하되 그 혼란스러운 군산의 역사 속에서 진정으로 새로운 문명을 창조할 진리내용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리고 계승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진리내용이고 그것에 기초한 이들의 문학정신이다. 그래야만 저 먼기원에서부터 미래까지 세계의 역사를 축약하고 있는 도시군산은 그저 평범한 도시가 아니라 인류의 새로운 문명과 문화를 창조하는 도시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군산이 낳은 위대한 작가인 채만식과 고은의 문학 정신을 진정으로 계승할 때에만 군산은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는 도시가 될 수 있다는 것. 만약 정말 그러하다면, 이제우리의정언명령도분명해지는셈이다.‘ 군산, 문학의 중심 도시로 거듭나라!’는 것. 그렇다. 군산은 문학의 중심 도시로 거듭나서 새만금과 더불어 인류의 새로운 미래를여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채만식과 고은의 문학이 한국문학뿐 아니라 세계문학에 우뚝 섰듯, 그래야만 이 매혹적인 도시 군산이 세계 속에서 빛나고 세계의 문화를 선도하는 도시로 거듭날 수 있다. 정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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