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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 | 칼럼·시평
꿈꾸는 노년
관리자(2011-01-06 14:34:04)
‘꿈꾸는 노년’ 
인생의 나이듦에 대하여 - 이청준 노년소설의 경우 - - 전흥남 한려대학교 교수 

필자는 이청준 선생과의 개인적인 친분은 없지만, 순천대 문창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문학 얘기를조곤조곤할 때 얼굴에 화색이 도는 느낌을 몇 차례 목격한 경험이 있다. 가까이에서 본 이청준 선생은“참 곱고 기품 있게 나이를 드셨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그럼, 그의 소설 속에서의 노년상을어떻게 그려갔을까. 궁금해진다. 

인간적 화해로의 도달 이청준의 노년소설의 원형(原型)에 해당하는 작품으로「눈길」을 꼽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 작품의 의미는 노년소설에 국한되지 않는다. 「눈길」의 노인은 한국모성의 아픔과 희생, 이청준의 특성인 손사래치는 어머니의 존재적공간을 의미하고 있다. 그런데 몇 십 년이 지나 작가 역시노년기에 접어들어 쓴「꽃 지고 강물 흘러」를 분석해 보면「눈길」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눈길」「축제」그리고「꽃 지고 강물 흘러」는 유의미한 상관성을 지니기때문이다. 이청준의 노년소설「꽃 지고 강물 흘러」는「축제」의후일담적성격을지닌다.「 눈길」에서「꽃지고강물흘러」에 이르는 도정은 이청준의 작품세계가 여러 가지변화를 겪지만「눈길」이 갖는 원형성을 짚지 않고는「꽃지고 강물 흘러」의 분석도 제약점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청준의「눈길」에 눈길을 돌려본 것이다.

「눈길」은 겨울을 무대로 쓰여진 작품이다. 어머니가 고향집이 아닌 곳에 아들을 재울 수 없어 고향집을 산 사람에게 양해를 얻어 옛집에서 밥을 해먹이고 잠까지 재어보낸 기억을 되살리는 한편 아들을 서울로 올려 보낸 후아들의 발자국을 그대로 되밟으며 돌아왔다는 이야기는새삼 작가의 사려 깊은 심지와 어머니의 심성을 생각케한다. 

“간절하다 뿐이었겄냐. 신작로를 지나고 산길을 들어서도 굽이굽이 돌아온 그 몹쓸 발자국들에 아직도 도란도란 저 아그의 목소리나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는 듯만 싶었제. 산비둘기만 푸르륵 날아올라도 저 아그 넋이새가 되어 다시 되돌아오는 듯 놀라지고, 나무들이 눈을 쓰고 서 있는 것만 보아도 뒤에서 금세 저 아그 모습이 뛰어나올 것만 싶었지야. 하다 보니 나는 굽이굽이 외지기만 한 그 산길을 저 아그 발자국만 따라 밟고 왔더니라. 

내 자석아, 내 자석아, 너하고둘이 온 길을 이제는 이 몹쓸 늙은 것혼자서 너를 보내고 돌아가고 있구나!”이청준,「 눈길」,『 눈길』눈앞이 가리도록 아들의 발자국 위에 눈물을 뿌리며 신 새벽의 눈길을 걸어가는 어머니의 모습은 바로 작가 이청준의 원형질이라고 할 수 있다.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에 대한 깨달음과 화해는 사라져가는 효 정신을 나타내 보이지만, 작가의 치밀한 묘사는 계속 사건의 내부에 이끌려 들지 않으려는 능청과 비정함으로 더욱 극명하게 어머니의 사랑을 담기게 하고 있다.특히 이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중의 하나로 옷궤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그것도 어머니와 나의 갈등의 상징이자 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배려의 매개체로 의미를 띤다.‘ 옷궤’는 남의 집이 되어버린 고향집에서 아들에게 여전히 그 집을 지키고 있는‘어머니’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어머니’의최소한의 배려이자 자존심인 것이다.한편, 소설 속에서 아내는 나와 어머니의 갈등을 해결하여 화해로 이끄는매개자의 역할을 한다. ‘아내’와 ‘나’의 갈등은 사실, 소설 속에서 문제적갈등이라기보다는‘나’를 어머니와의화해로 이끌기 위한 역할을 수행하는과정에서 나와 발생하는 갈등이다. 

다시 말하면 이 소설 속에서 어머니와 나의 갈등이 주 갈등이며, 이 갈등 사이에서 두 사람을 화해시키는 중개자로서 아내가 존재하는 것이다.위의 작품을 일별(一瞥)하는 과정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청준 소설의 특징은 외형적으로 눈에 보이는 현실을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감추어진 세계를 끊임없이추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역시 끊임없는 어머니의 사랑과 그것을 애써 외면하려는 아들 사이의 갈등과 그 갈등의 해소과정, 즉 인간적 화해에 도달하게 되는 눈에 보이지 않는감추어진 세계를 그리고 있다. 

「꽃 지고 강물 흘러」역시 이러한 맥락에서읽힌다. 꽃도 피고 또 진다 「꽃 지고 강물 흘러」는 그가 등단하지 40년이 되는 해에 출간된 소설집『꽃 지고 강물 흘러』(문이당, 2004)의표제작이기도 하다. 이 소설집을 출간한 후 한 일간신문사와 인터뷰에서“세월은 강물이지요. 강물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깨끗한 것도 더러운 것도 모두 씻고 내려갑니다. 이제 원망,죄지음, 욕심, 싫음, 미움을 모두 씻고풀어내고 싶어요.

 삶 자체를 용서하고싶어요. 소설은 이렇게 삶을 씻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문화일보, 2004. 10. 19)”라고 밝힌 바 있다.소설집은 그의‘씻김론’위에 흐른다.수록된 소설 6편 중에서 이러한 그의‘씻김론’의 생각이 가장 잘 드러난 표제작이「꽃 지고 강물 흘러」라는 작품이다. 동시에 어머니의 죽음을 다룬「축제」(1996)와 어머니의 애틋한 기억을 그린 단편「눈길」(1977)의 후속편이자 마무리 편으로, 어머니가 돌아가신뒤 홀로 남은 형수에 대한 원망과 미움의 씻김 이야기이다.

못된 형이 집을 팔아먹어 노모가 남의 집 헛간 신세를 지고 있을 때, 외지에서 중학교를 다니던 둘째 아들이 그것도 모르고 옛집으로 찾아오자 노모는 잠시 옛집을 빌려 둘째 아들과 함께자고 새벽 눈이 하얗게 난 길로 읍내차도까지 가서 그를 보낸다. 그 노모가죽어 무덤 속에서 둘째 아들이 지어준,이제는 늙은 형수가 혼자 사는 이 집을「꽃 지고 강물 흘러」에서 내려다보고있다. 삶에서 부끄러움이 뭔가를 알고살았던 노인 이야기로 요약되는 이 작품을 작가 이청준 문학의 뿌리 중 하나라 함은 그 노모의 죽음 뒤에도 변함없이 지속되는 것에서 새삼 확인 된다.

그 노모의 죽음을 두고 작가는 장편『축제』(1996)를 썼다. 그『축제』의 후일담이「꽃 지고 강물 흘러」인 셈이다.배경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기슭외진 마을. 문학 강연 차 서울에서 내려온 중년의 작가‘나’가, 노모는 죽고없지만 아직 젊었을 적에 홀로된, 지금은 노모만큼 백발이 된 형수가 홀로 살고 있는‘집’에 들른다. 이 집은 노모를 위해 가난한‘나’가 아주 고심하여지어 준 초가삼간이다. 그 사연은 이러하다. 못된 형이 집조차 팔아먹어 추운곳으로 나선 노모를 위해 둘째인‘나’가 긴 세월이 흐른 뒤에야 지어준 집이기에, 이 집은 집이긴 해도 노모 자체라 할 것이다. 

1인칭 시점으로 쓰여진소설에서 주인공‘나’는 말년에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타박했던 형수에 대한 미움과 풀리지 않는 응어리를 갖고있다. 하지만 그는 고향 산밭에서 형수로부터 어머니와 함께 콩밭걷이를 하고 있다는 어머니에 대한 지독한 그리움의 말을 듣는다. 주인공은 형수에게서 돌아가신 어머니의 형상을 찾아내고, 형수에게 품고 있던 원망을 풀어낸다. 자전적 요소가 강하게 드러나는 이작품의 주인공에게서 바로 소설을 통해이제 모든 것을 씻어내고 싶다는 작가의 모습이 투영외고 있음을 알 수 있다.세월은 강물처럼 흐르는 법, 꽃도 여지없이 지는 법. 

노모도 죽자 그 산기슭에 산소를 만들었다. 그 무덤에서 보면 살던 집이 내려다보이는 곳. 집에서보면 무덤이 올려다 보이는데, 무덤(노모)과 집(형수) 사이에 꽃이 피었다 지고 무엇보다도 그 꽃잎을 실어 나르는강물이 흐르고 있다.삶이 지녀야 할 기품. 곧 부끄러움이라 불리는 인간적 품격이 노모에게서노형수에게로 어김없이 강물이 흐르듯, 꽃이 지고 피듯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이어짐은 늙어감이 자연 그대로임을 보여주는 뚜렷한 배려에 속한다.

주제는 작품 속에 이렇게 녹아있다. 자연의 섭리를 따라서 하나 더 첨가할 수 있는 것은 햇빛아래 부끄러움 없기를 몸에 익히며 살아온 마음. 그것이야말로‘자연’이라할 것이다. 새 집을 지어 옮기고 나서한동안 형수가 집안일을 노인에게 맡기고, 그 노인과 아이들을 거두기 위해십 리 밖 장터거리 갯것 장사를 다니던무렵에 일어난 다음 장면은 이‘자연’현상을 실물 그대로 보여준다.

그날따라 형수의 밭 귀갓길이 유난히 늦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 노인의 어둠 속 길마중도 여느 때의 산모퉁이를 훨씬 지나고 있었다. 하지만노인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그 어두운 밤길을 혼자 터벅터벅 고적하게돌아오고 있을 며느리를 생각하며 아직도 한걸음 한 걸음씩 계속 앞으로나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저만큼 까마득한 어둠 속에서 문득보이지 않는 노인을 향해“엄니, 지금어디 계시오?”짐짓 무서움을 떨치려는 형수의 부름소리가 들려왔다.

“오냐. 나 여기 있다!”인제 맘 놓고 천천히 오거라.”이어 노인의 반가운 반응이 이어지고 잠시 후 두 사람은 어둠 속에서서로 만났다. 그런데 그렇게 지쳐 돌아오는 며느리의 갯것 광주리를 빼앗듯이 받아 인 노인이 앞장을 서고 마지못해 머릿짐을 넘겨준 며느리가 뒤를 선 채 한동안 둘이 함께 남은 발길을 돌아오던 참이었다.(고딕표시-인용자) 이청준, 「꽃 지고 강물 흘러」,『꽃 지고 강물 흘러』이러한 자연을 세월이 가로막을 수있는 것일까. 짐짓 작가는 이런 투로말해 놓고 있다.세월이란 그렇듯 참으로 가차 없고잔인한 것이었다. 

하지만 내겐 그 잔혹한 세월의 해악이 내 답답한 심사를 좋게 달래고 넘어갈 미덕이기도하였다. 노인은 아예 그 체념성 다짐마저 지켜갈 수 없을 만큼 이후로 더급속히 정신력이 떨어지고 말았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그 육신과 정신간의 균형이 무너져가는 노인 앞에형수 또한 마지막 자제력을 잃고 말았으니까. (31쪽)이런 진술은, 이청준식 역설의 일종이 아닐 수 없다. 자연이란 세월 따위가 흠집을 내거나 훼방놓을 수 없음을드러내는 이 작가 특유의 수사학이기에 더욱 그러하다.이청준 선생은 갔어도 그가 남긴 문학에 흐르는 따뜻함과 화해, 그리고 인생에서의 나이듦의 의미가 오래도록남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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