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 | 문화현장
127회 백제기행
관리자(2011-01-06 14:35:19)
127회 백제기행 즐거운 반항에 취하다 - 한지영 전주세계소리축제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현재에 만난 미래
일정은 서울에 도착해서 바로 순두부로 점심식사를 한 뒤, 삼성에서 운영하고 있는 미술관 리움의 기획전시를 관람한 후 댄스컬‘사랑한다면 춤을 춰라’를 보는 것이었다. 리움은평소 궁금했던 곳이고, 이번 기획전시‘미래의기억들’에 실제로 꼭 보고 싶었던 권오상 작가의 작품이 있어 반가웠다.
물론 삼성이라는 대기업의 찝찝한 면이 있지만,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미술관은 구석구석 감탄을 할수 밖에 없도록 구성되어져 있고, 주차장 안내를 위해 직접 차에 올라 안내하는 직원들의 태도는 감동이었다.
언젠가 꼭 한번 패키지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을 타고 가야할지, 어디서 자야할지, 무엇을 먹어야할지 고민하지 않는, 그야말로 유유자적 여행. 더 이상 저장 공간이 없는USB처럼 꽉 차있는 일상은 쉼, 혹은 여행에 대한 욕구를 높게 한다. 바로 그때, 스치듯 백제기행 소식을 접하고 망설임 없이 신청했다.문화저널에서 백제기행을 진행한다는 것은 수년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직접 참여하는 것은 처음이다. 몇 번은 기행 장소에 흔들려 참가하고싶었고, 몇 번은 친한 지인들이 동행하자고 제안을 했지만 때로는 1박2일이어서, 때로는 일이 바빠서 미루고, 미루었다.
이번에는 아마도 내 자신에게 하루여행을 선물하고 싶었을 것이다. 네 살 아들녀석과 남편을 위해 새벽부터 반찬을 만들고, 오늘 하루는‘내·시·간!’.오랜만에 단체 답사가는 기분, 제법 설레고 즐거웠다. 꼴찌로 허겁지겁 버스에 오르자 운전하시는 기사분 빼고 100% 여성 참가자!
토요일하루 여행을 마음먹은 사랑스러운 여자들을 실고, 버스는 서울로 향했다.
기획전시‘미래의 기억들’은 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미술의 영역을 탐구하는 현대미술을 만날 수 있는 전시다. 현재 이러한현대미술의 양상을 잘 보여주고 있는 한국 작가 6명과 외국 작가 5명(곽선경, 권오상, 김홍석, SaSa, 신미경, 잭슨 홍, 소피 칼, 디르크 플라이쉬만, 로랑 그라소, 마이클 린, 창 킨-와)이참여했다.
미래의 단어와 과거의 단어가 합쳐진전시 제목은 해금 연주자 강은일의‘오래된 미래’를 연상시킨다. 이 전시 제목은 참여 작가인 로랑그라소(Laurent grasso)의 작품 이름을 사용한 것인데, 작품 또한 제목처럼 모호하다. 기억은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다시 생각해 내는 것인데,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미래를 어떻게 기억해 낼 수있을까?
작품 또한 제목을 그대로 네온싸인 만들어 놓은것이다. 어떤 고급스러운 와인 바의 간판 같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서울 하늘 아래 반짝이고 있는 이 작품은 작품을 보는 그 시간, 필자가 이 글을 이 시간 역시 빠른 찰나에과거가 되고, 내일 일어날 그 어떤 일은 미래에는 내 머릿속의 기억이 될 것임을 알려주고 있다.
거대한 드로잉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드로잉이 아닌 테이핑(곽선경), 묵직한 조각이라고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평면(사진)을 모아서 많은 입체작품(권오상),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유머스럽게 표현한 작품(창 킨-와), 쓰레기봉투와 쇼핑백, 골판지 상자를 재활용한 <개같은 형태>과 같은 작품(김홍석)은 정말 개를표현한 것으로 봐야할지, 그저 쓰레기봉투 인지, 정말미술 작품 맞는 것인지 난감한 웃음을 짓게 한다.
웃음나오게 하는 작품은 더 있다. 단순한 삼각형 조형물에‘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라고 써 있는 작품(SaSa)은 호랑이해를 기념(?)하고자 호랑이에 대한 속담과 옛‘해태 타이거즈’구단의 깃발을 연상시키도록했지만 어째 작품을 보는 사람들은‘기념비성’이 오히려 해체됨을 느낀다.
이 작품을 보면서, 늘 인상 쓰며보았던‘착하게 살자’, ‘바르게 살자’와 같은 기념석을 이런 관점(기념비로 만듦으로, 더 이상 기념비적이거나 이상적이지 않은, 혹은 우스꽝스럽게 변모하는)에서 보면 더 이상 한숨 나오지 않겠구나하는 생각을했다.
전시를 관람하며, 많은 것들이 변화를 직면하고 있고 너무나 다양한 형태로 뒤섞이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뒤섞이다’는이단어또한애매하다. 어찌보면‘발전’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이 즐거운 반항들을 그 재미없는 단어로 함축하는 것은 예술작가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지….
리움 화장실에서 비너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거대한 비누로 만든 비너스상, 작품이지만 실제로 화장실에서 사용하도록 만들어짐, 점점 살아져가는 작품성과 그것에 동참하는 관람객), 어떤 예술적 기준도 진리는 아니며, 눈에 보이는 것도 관점에 따라 진실이 되기도 거짓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더 절실히 느꼈다.
아쉬운 작품성 그러나 뜨거웠던 열정
리움에서도 하루를 보낼 수 있겠지만, 아쉬운 마음을 접고 공연을 보기위해 나섰다. 서울 한복판의 교통체증을 뚫고 간신히 댄스컬‘사랑한다면 춤을 춰라’공연장에 도착. 일본 관광객도 보이고,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2008’에 진출해 매진 열풍을 일으켰다니, 기대를 하고 오프닝 음악에 박수를 쳤다.
하지만,아무리 마음을 열려고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공연내용. 여자 댄서가 섹시미와 관능미만을 내세워 춤 출때는‘이건 아니잖어~’라는 괴성을 마음속으로 지르기도 했다. 하지만 끝까지 공연을 볼 수 있었던 것은,춤에 미친 그 젊은 출연자들 때문이다. 종교나 취미활동이나 하다못해 게임에도 잘 미치지 않는 필자로서는, 춤에 폭 빠져서 스스로 주체할 수 없이 움직이는그 젊은 무용수들의 열정에 박수를 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무대 위의 삶을 사랑하는 그들을 부럽게 바라보며, 공연의 구성이나 예술성은 내려놓고 관람할 수있었다. 모든 공연이 예술성으로만 똘똘 뭉쳐야 하는것은 아니고, 봐도봐도 날씬한 다리 말고는 매력 없는‘OO시대’가 올해 가장 인기 가수였다니 비단‘사랑한다면 춤을 춰라’가 그저 그런 작품이었다고 하기 보단필자의 시금털털 구식 취향을 탓해야겠다.
수다도 떨고, 차 창밖 풍경도 보고, 스마트 폰으로는저장해 놓은 E-Book 한권을 읽었고,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전시에 공연까지! 이런 날을 올곧게 잘 썼다고 할 것이다. 하루는 그렇게 지나갔다. 비우면서 풍성했던 하루다. 백제기행이 원래 어떤 모습이었는지, 참가자들이 어떤 기대를 하고 참여하는지 잘 모른다. 하지만, 필자에게 그날의 백제기행은 마음 편한 나의 하루였다. 다음 백제기행은 어딜 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