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 다시보기
- 완주 4 마을에서 재밌게 살 궁리를 하다 -
소영식 희망제작소 연구원·비비힐사업추진단 총괄PM
시간과 이야기를 심는 땅, 농촌 오래된 농촌마을의 주민들은 삶의 고리 하나하나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엮어가며 살아왔다. 봄이 되면 논에 물대고모를 심고 밭에 종자를 뿌리고 김을 매며 삶을 지탱해주는땅을 터전으로 서로 도우며 일구고, 아침 저녁사이로 맞대어있는 집 담 너머로 서로의 살림을 가늠하며 소근 소근 이야기를 쌓아가며 살아왔다.그러나 세월은 흘러 청년들은 학교로, 공장으로, 도시로떠나고 급격한 도시화 속에서 갑자기 생산이란 잣대위에 놓여 새로운 종자에, 영농법에, 보다 많은 생산이란 조급증에,그래도 땅을 지켜내야 한다는(마을에서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비틀비틀 걸어온 듯 하다. 지금 농촌마을에서 삶의 질, 삶의 공동체, 미래는 무엇일까? 또 다시 자본적 속성의 소비와 문화가 폭주하는 도시에 견주어 보고 있지 않나?
농촌마을이 가지고 있는 온전한 그것만의 문화를 과거에도(근대 산업화) 그랬듯이 또 다시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개발에 대한 갈증, 고령화에서 초 고령화로 인한 강박증, 계량적 생산에 대한 절망감이 뒤섞여 있다. 어쩌면 농촌마을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온전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할지 않을까?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공공미술과 문화사업에서 그 계기를 찾아보고 새롭게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마을 문화를 고민하다 기존 농림부 농업정책은 농촌마을을 생산단위로만 봐왔다.
그러나 2009년 마을개발에 문화를 포커스로 한 신문화공간조성사업이 시행되었다. 신문화공간조성사업 정책의 롤모델은 진안 계남정미소였다. 그 사례가 보여주듯이 마을의내재된 문화, 역사적 자원을 제대로 파악하고 현 마을의 새로운 문화로 발굴하자는 문화사업의 일환이었다. 주민들이살아온 삶의 결과 정서를 녹여내는 문화창출과 더불어 실천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완주군 삼례읍 비비정 마을의 신문화공간조성사업은 역사적 자원(양수장, 비비정 등)과 만경강과 함께 터전을 일군 작은 소외된 마을의 정서와 문화적 배경 등이 조합된 바탕아래현재 진행되고 있다.비비정 마을을 감싸고 흐르는 삼례천. 그 천을 내려다보는정자가 바로 비비정이다.
옛날‘한내’로 불린 삼례천과 주변백사장에 내려앉은 기러기 떼를 바라다 본다라는 뜻의‘비비낙안’(飛飛落雁)은 완주8경중 하나로 꼽힌다. 만경강이 시작되는 지점인 삼례천과 주변 금모래는 풍류를 더하는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마을의 가난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다.마을이 언덕으로 형성되어있고 대지가 없어 큰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한국전쟁 때 피난민이 모여들기도 했고, 건설붐이 일던 시절에는 강 주변 모래와 자갈 채취해 트럭으로파는 품을 하러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먹고살기 턱에 차던시절에 형성된 마을이다.
그렇게 삶의 터전이 되었던 비비정 주변 언덕 마을의 삶은푸지고 기름진 삶은 아니었다. 만경강주변에 공장단지가 들어서면서 모래채취가 어려워지자 주민들은 가까운 공장으로, 가게로, 농장으로 남의 땅을 빌어 농사와 일용직 노동으로 사셨다. 넉넉지 않은 삶이였고 이웃에 대한 여유와 관심을 가지기에 벅찬 생활이었다 한다. 마을마다 흔한 마을회관도 없는 이곳에서는 마을 마다하는 회의나 논의가 순조롭게이루어지지 않았다. 마을공동 일을 함께 한 경험도 없는 그곳에 신문화공간조성사업이 떡~ 들어오게 되면서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은 서로 싸우며 논의하기도 하고 안 해본 돈벌이도 해보며 여름과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맞이하고 있다. 마을에서 공공미술장르 새로운 해석의 농촌문화를 가꾸다 마을의 공간적 구조, 정서적구조가 단순하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마을 속에는 경제공동체, 생활/문화 공동체, 노동공동체 등 여러 속성의 행위가 복합적이고 미묘하게 경계를 이루며 보존 지속되어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을에서는 다양한 정책적 자금을 지원받은 사업들이 단순 목적화 되고 있다.
땅을 근거로 한 공간에서 수십 년 혹은 수백 년을 같이 살아온 마을주민들이 어떤 일정한 기간에 일정 성과를 내어야하는 사업을 효율성 있게(순발력, 조직력으로서) 진행하기에는 어렵고, 빠른 시기에 쉽게 판단내릴 수 없는 미묘한 속성들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을주민의 정서가 배어나고삶, 생의 이야기와 생활 속에서 문화와 예술영역의 창작 작업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기존의 전통 예술적 의미와 가치를 논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만일 공공미술을(커뮤니티문화 예술사업) 작가들이 마을이란 장소를 주제로, 혹은 사람과 이야기를 주제로 하는 새로운 장르적 실험무대로 보기만 한다면 많은 오류가 생길 수도 있다.
정작 살고 있는 주민들은 대상화 되고 박제된 벽화와 설치물만이 덩그러니 남을 수 있고그런 사례가 적지 않다. 결국 장르적 속성의 논리와 시점으로 접근하는것 보다 마을에서 살아가는 살아내는 데 있어서 혹은 살 궁리에 있어서뭔가 재미난 일을 꾸미고(어르신들은 모다 모여 용돈 벌이하며 수다 떨며서로 간섭하여 일하실 때 절대 무릎 아프다고 안하신다.) 즐기셔야 한다.생활 속에 편리성과 예술성 문화적 가치 등이 고부가가치로 활용되려면 일단 주민이 즐겁게 일하고 문화를 받아들이는 여유를 만들어야 한다.공공미술이 장르적 허울에서 벗어나 마을의 생활, 그 속에서 배어나는 소소한 이야기와 사건을 새롭게 바라보고 즐기는 관점을 확보한다면 우리네 생활 속에서 서로 즐길 수 있고 좀 더 나아가 마을공동체에 대한 사유의 영역까지도 확장 될 수 있지 않을까?
마을에서 재밌게 살 궁리를 하다 우리 삶의 장을 사유하고 즐길 수 있는 상상력과 실천력을 예술이라 볼수 있다면, 마을에서 이루어지는 공공미술 내지 문화 창작활동은 흔히 얘기되는 미술비평의 담론적 가치보다 고단한 우리네 현실을 다시 볼 수 있게 해줘야 하는 새로운 역할이 갖게 된다. 한정된 공적자금 지원으로 행해지는 문화사업들은 목적을 완수하는 것으로 단기적이며 달콤한 맛만보여 지는 경우가 많다.현실에 농촌의 문화적 희망을 안겨주려면 공간적 예산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수용하고 즐기며 창출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그것은짧은 시간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주민들이 살아온 삶의 가치를 존중하는 태도가 있어야 한다.농촌마을의 문화적 본질은 생산과 생활이 땅이란 경작지를 근거로 그삶이 지속돼 왔다는 것이다. 마을에서 땅을 디디고 먹고산다는 정주감(생산과 소비, 일과 생활이 동일시되는)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 그곳에서 마을의 문화적 상상력과 실천력을 발휘하고, 그것을 즐기고 성장시킬수 있는 힘을 키워내는 역할은 행정이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며 몇몇의기획자나 예술가가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비비정 마을의 공동체 사업을 진행해온 1년 넘는 시간 동안 주민 몇몇 분의 변화는 이 사업을 성공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이 될 것이다.
마을은 현재를 사는 주민들의 몫이었다 2009년에서 2010년 겨울동안 마을주민들은 20명도 들어 앉아있기 힘든 공간에 모여 비비정 마을을 바꿔 바라보는방법, 먹고 살았던 이야기들을 나눴다. 각자 집에서 만들어먹던 음식을 레시피화 했고, 그걸 이용해 장터도 하며 뷔페도 하며 보냈다. 지역의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진행한 비비정마실학당 프로젝트는 주민들이 자신감을 처음 맛보는 계기가 되었다.그리고 맞이한 2010년 여름, 우리 가난한 마을에 서울과완주군의 어린 손님들을 초대해 80여명이 5박6일간 청소년미디어 캠프를 진행하는 모험을 했다. 아이들이 머무를 시설, 장소, 교육 여건이 마련되지 않는 상태의 무모한 실험이었다. 하지만 주민들은 각자의 집을 열고 천막을 치고 음식도 하며 돈도 벌고, 아이들과 예술가들이 하는 마을을 대상으로 한 미디어교육도 즐기면서 캠프를 진행했다.
오랜만에마을에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리는 새로운 사업 시도였다. 이것은 기존의 방식의 틀을 깨는 계기로서 어르신들에게 자신감과 상상력, 실행력을 키워주는 작업이 되었다. 실제로 신문화공간조성사업과 별개로 진행되었지만 오히려 신문화공간조성사업을 주민들이 새롭게 재해석하며 논의 할 수 있는사고의 지점이 열렸고 다음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공동체사업의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했다.앞으로 비비정 마을에는 농가형 레스토랑 운영과 공연장환경개선, 문화공간조성 등 많은 사업과제들이 남아있다. 문제는 주민 스스로 직면한 과제들을 매우 버거워 하며 큰 고민으로 받아들이신다는 것이다.
공간이 조성되기 전 부지런히 준비해야 될 첫 번째 과제로교육과 캠프 장터 등 많은 작은 사업들을 거치면서 마을 공동체가 스스로 논의하는 과정, 회의구조 만들기, 투명한 재정 관리하기, 오래된 낡은 습성을 버리고 새로운 손님을 맞이하기를 들 수 있다.마을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사업들을 준비하면서 난생처음부녀회장님은 수익 배분의 문제를 고민하며, 언니 동생들과함께 참여시키고 리드하는 방법 등을 생각하기도 한다. 마을사업을 준비하는 주민들은 수많은 고민과 의견을 들고 서로마을회관에서 또는 비비정에 상근하는 희망제작소 사무실에서 북적북적 찾아오신다.오늘도 쉽게 지나가지 않고 새롭게 또는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반복과 변화의 물결 속에 놓여있다. 계획만으로 마을이바뀔 수 있을까? 계획으로 마을의 문화와 삶이 새로워질까.사람들의 노력과 숨이 보태져 그것이 쌓여야만 살만한 곳이되는 것 같다. 그걸 뭐라 규정할 수 있을까? 규정할 수 없기때문에 마을은 재밌게 살 궁리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