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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3 | 칼럼·시평
[서평] 『조국, 대한민국에 고한다』- 조국 지음
관리자(2011-03-04 18:31:52)

『조국, 대한민국에 고한다』│ 조국 지음 

 그가 다시 우리를 깨운다 - 이광재 소설가


몇 년 전 또래 두엇과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우리 사회의‘잘 난놈’이 화제에 오른 적이 있다.

아마도 스포츠 신문에 실린 홍명보를 보며 시작된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외모면 외모, 학벌이면학벌, 자기 분야에서 이룩한 성취면 성취,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면 영향력……. 그런 측면에서 홍명보는‘잘 난 놈’이 확실하다는게 중론이었다. 그때 누군가가‘잘 난 놈’이 더 있다며 거론한사람이 다름 아닌 조국 교수였다. 그러다 그가 서울대 교수인가, 고려대 교수인가로 내기가 벌어져 결국 서울대가 승리하고서야 이야기는 마무리되었지만, 어쨌거나 조국 교수가‘잘 난놈’이란 것에 이견을 단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그때 조국 교수를‘잘 난 놈’이라고 인정한 우리의 내면은 외모나 학벌보다도 주어진 소명을 다 하려는 한 지식인의모습에 실은 방점을 찍고 있었다. 조국 교수는 오연호와의 대담<진보집권플랜>에서“서민과 보통 사람이 자존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라고 밝힌 바 있다.그런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사회적 약자를 옹호하고, 인간을 억압하는 각종 기제에 분노하며, 최소한의 가치와 상식마저 폐기하거나 왜곡해온 집단에 저항하려는 속내를 그는 누구보다 성실하게 피력해온 지식인이 아닌가. 


우리는 그런 그에 대한 고마움과 찬사를 그런 식으로 드러낸 셈이다. 한국사회의 위기를 헤집다 그런 조국 교수가 <조국, 대한민국에 고한다>라는 책을 펴냈다. 여러 매체에 발표한 칼럼과 기고문을 모아 펴낸 책이란 점을 감안할 때 <조국, 대한민국에 고한다>라는 제목은 다소 거창해 보인다. 그래서인지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독일철학자 피히테의 책 제목이 연상되기도 한다. 그러나 피히테가조국을 침범한 나폴레옹을 어떻게 평가했든, 독일이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이라는 판단으로 그런 제목을 쓴 것을 염두에 둔다면 이번 책의 제목을 그렇게 잡은 저자의 심정도 헤아리지 못할이유가 없다. 쉰 두 꼭지에 달하는 글에서 그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심각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런 상황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경주하지 않을 때 얼마나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할지를 냉정하지만 섬뜩하게 펼쳐 보인다. 피히테가 당대의 독일을 보며 느꼈던 위기의식을 지금 우리 사회에서 느끼지 못하는 지식인이라면 그는 눈 감은 지식인이거나 타락한 지식인이분명하다.


책은 총 여섯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저자는 <정부에 고한다>라는 소제목을 배치하고, 현 정권을 향해‘선전포고’에 가까운 비판을 들이댄다. 그가 과격한 언사로 이명박 정권을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대중적 언어에 힘입고 있지만 그의 논리가 송곳보다 예리하기 때문에 이 경우‘선전포고’란 표현은 적절하다. 청와대가 정권 연장용으로거론하는 개헌 문제, ‘비리종합세트’라 일컬어지는 고위 공직자들의 서민들을 비웃는 듯한 불법 축재, 재야 출신이면서 현정권의 실세가 된 이재오 장관에 대한 진한 아쉬움, 박재완 노동고용부 장관에 대한 일침, 최근에 자행된 공권력에 의한 고문등을 언급하며 그는 이명박 정부를‘조폭국가’로 나아가는 기관차라 명명한다.


 “정치·사회 세력을 적군과 아군으로 선명히나누고 적군에게는 축출과 진압이라는 몽둥이를, 아군에게는자리와 혜택이라는 꿀단지를 안기고 있”는 정권이야말로‘조폭국가’라는 주장은 논거가 뚜렷하고 적확하여 반론을 위한 반론마저 파고 들 여지가 없다.그렇다면 이명박 정부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거론되는 이른바 진보개혁 세력은 과연 대안으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대중적 기반과 내용을 갖추고 있는가. 미안하지만 이에 대한저자의 대답은‘현재로써는 아니올시다’라는 것이다. 대통령탄핵 직후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도 국가보안법 폐지, 정당 명부 비례대표제 강화,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사용을 제한하는 노동법 개정을 이룩하지 못한 민주당(당시 열린 우리당)과 비현실적인 명분을 앞세워 국정에 개입하려는 노력을 소홀히 한 진보정당에 대한 아쉬움을 그는 아프게 직시한다.


그리고 그런범야권의 문제의식이 일부 수정되고 있지만 아직도 진정한 성찰과 반성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연스레 초점을맞추어간다. 민주당의‘좌클릭’과 진보정당의 대중화 노선이현실화될 때 선거연합이나 공동정부를 도모하는 일이 가능해지고, 그럴 때 이명박 정부를 대체할 세력으로 그들이 국민들로부터 용인될 것이란 지적은 따라서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으로 울림을 만든다.조국 교수는 시민들을 향해 당부하는 일도 잊지 않는다. 명실상부한 이 사회의 주인은 일부 특권층도, 정치인도 아니기때문이다.


 그러나‘먹고사니즘’에 빠져 작은 이익에 일희일비하거나 먹이사슬의 함정에 걸려 사람이 아닌 괴물이 되어버리는 일만은 없어야 한다고 단호하게 강조함으로써 사회주체로서의 존엄을 회복하라고 촉구한다. 이밖에 자본에 대한 정치한비판과 고발, 자신의 전공분야인 법과 법조계에 대한 고언 역시적어도 오늘을 사는 사람이라면 곱씹어봐야 할 내용이다. 튼튼한 논거, 유려한 문장, 역시‘잘 난 놈’ <조국, 대한민국에 고한다>는 재론하지만 세부가 튼튼한 논거로 뒷받침되고 있으며, 따라서 틈을 보이지 않는 논리로 독자를 포획한다. 그러기 위해 필자가 얼마나 꼼꼼하게 자료를수집하고,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종다양한 사건에 성실하게 대응하는지를 독자는 글을 읽으며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그는 또 다양한 영화에서 상징들을 끌어와 적재적소에 인용함으로써 내용을 풍부하게 하고, 나아가 독자로 하여금 볼만한 영화를 소개받는 행운까지 누리게 한다. 뿐만 아니라 각종문학 작품을 인용하여 내용 전체가 경화되지 않고 탄력을 유지하도록 배려하는 솜씨 또한 유려하다. 동서양의 고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그 방대한 독서량과 해박함도 놀랍다.그러나 그게 전부라면 아직 그는 이른바‘잘 난 놈’까지는 되지 못할 것이다. 책을 읽으며 진실로 놀라게 되는 일은 문학 작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가 구사하는 문장 하나하나가 팽팽하게 당겨져 있을 뿐 아니라 아름답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사실 문제가 된 일련의 무죄판결은‘MB표 법치’에 대한 법원의성적표이며, 이에 대한 항의는 시험을 못 본 학생이 교사의 멱살을 잡고 행패 부리는 꼴이다.”와 같은 문장은 날카로운 풍자의 멋을 넘어 빙그레 웃음을 머금게 하는 해학의 경지까지를보여준다.


2010년 지자체 선거를 언급할 때의 다음과 같은 문장은 어떤가. “선거 전까지만 하더라도 민주당은 의기소침‘울증’모드가 지배하더니, 뜻밖의 선거 결과가 나오자 갑자기 의기양양‘조증’모드로 바뀐 것 같아 걱정이다.”대구를 이루는문장으로 독서계를 단숨에 사로잡은 소설가 김훈에 필적할 만한 문장이 아닌가. 정치평론이나 시사평론에서 이런 문장을 만나는 것은 덤을 얻는 기쁨이 아니라 크나큰 축복 그 자체다.그의 글이 실린 매체를 보면 다음과 같다. <한겨레>, <한겨레 hook>, <경향>, <위클리 경향>, <시사IN>, <법률신문>, <프레시안>, <부산일보>, <오 마이 뉴스>, <한국경제>. 열거해놓고 보니 특정 매체가 집중적으로 그에게 지면을 할애했음이드러난다. 다른 말로 하면 수많은 매체들이 그를 불온하거나이른바‘좌빨’로 보고 있다는 증거인 셈이니, 한편으로는 씁쓸한 느낌도 없지 않다. 그러나 저편에 똬리를 튼 세력들이 그만큼 그와 그의 논의에 공감하는 사람을 두려워한다는 뜻도 되니, 어찌 풀씨 하나로부터 천지가 꽃으로 뒤덮이는 이치를 모른다 하겠는가.조국 교수의 <조국, 대한민국에 고한다>는 한권의 책에 불과하지만 감동만큼은 결코 한 권 분량으로 끝나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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