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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4 | 특집
[기획특집] 지역문화 다시보기 - 정읍 2
관리자(2011-04-12 15:52:14)
지역문화 다시보기 - 정읍 2 
혁명의 정신을 축제로 꽃 피운 땅 - 조광환 정읍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동학농민혁명 계승사업의 발자취

1894년 고부고을의 농민봉기로 시작된 동학농민혁명은 반봉건, 반외세의 기치로 떨쳐 일어나, 이 땅의 민중들이 역사의 주인임을 대내외에 천명했던 우리 근현대사의 분수령을 이룬 사건이다. 동학농민혁명은 수십만의 희생자를 낸 채 비록 좌절되었지만 조선후기 농민항쟁을 통해 성장한 농민대중이 스스로 나라의 진정한 주인임을 자각하여 조선왕조의 착취와 폭정을 타파하고 일제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반봉건·반외세의 기치를 높이 든 우리 역사상 최대 규모의 민중항쟁이었다. 그러나 한국 근대사 속에서 가장 빛나는 민족 민중운동이었던 동학농민혁명의 실패는 결국 1910년의 국권강탈과 이로 인한 한국 근·현대사의 굴절로 이어졌으며 동학농민혁명의 의미 역시 철저하게 왜곡되어왔다. 

일제 치하와 해방 직후에 일정부분 한계를 안고 있긴 하지만 김상기의‘동학과 동학란’를 필두로 임화, 이청원, 전석담, 박경식, 강재언, 김용섭 등의 학자들의 학술연구와 채만식의 소설‘제향날’‘, 어머니’‘, 옥랑사’등의 발표를 통해 동학농민혁명을 새롭게 조명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미미하게나마 있었다. 해방의 혼란을 겪은 이후 1960년대에 이르러서는 4·19라는 역사적 사건으로 인해 동학농민혁명의 역사가 다시 부각되기 시작하여 동학농민혁명의 문학적 형상화 작업에서 가장 획기적인 성과로 꼽히는 신동엽의 서사시‘금강’이 발표되기도 하였다. 그러다 반봉건 민주정신과 반외세 자주정신인 동학농민혁명이 역사의 전면에 다시 등장하게 된 본격적인 계기는 1963년 정읍 황토현에‘동학혁명기념탑’을 건립하면서부터 이다.

가람 이병기 선생, 김상기 박사 등과 뜻있는 지역민들의 노력에 더해 군부독재 정권의‘정통성’확보차원에서 묵인 내지는 협조에 기인한 것이지만 이를 시작으로 1974년 5월 11일에는‘만석보 유지비’를 건립되는 등 농민군들의 정신이 이 땅에 우뚝 설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정읍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와 황토현동학축제 동학농민혁명기념제는 1990년대 이후 양산된 일반축제와는 달리 40여년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황토현에 갑오동학혁명기념탑 건립 사업을 계기로 정읍에서는 1967년 최초의 민간단체인‘갑오동학혁명기념사업회’가 발족되고, 이듬해인 1968년부터‘동학혁명기념제<황토현동학축제의 전신>’의 일환으로 각종 기념행사를 갖게 되어 1980년까지 전국적인 행사로서 정읍지역민 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민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행사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1980년 행사에서 정치인 김대중을 초청하여 정치연설을 하게 했다는 이유로 1980년 광주 민중항쟁에 대한 진압을 통해 집권한 신군부 에 의해 기념사업회는 강제로 해체되고 동학혁명기념제는 13회 기념제를 마지막으로 형식적 관제 행사로 전락하였다. 

관에서 주도하는 기념식과 노래자랑, 읍면동 체육대회 등의 행사를 정읍군 신태인읍(당시 정주읍은 시로 승격되어 정주시가 되어 동학관련 기념행사는 정읍군에서 주관함)에서 개최하였다. 이에 1993년 정읍의 뜻있는 젊은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동학농민혁명 정신이 정읍 시민뿐만 아니라 전 국민들의 삶의 지표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갑오 선열정신을 실천하고 전파시킬 것을 다짐하며 순수 민간단체인 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를 창립하였다. 마침내 1994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맞이하여 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와 동학농민혁명100주년기념사업회,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과 더불어‘고부봉기 역사맞이굿’을 성대하게 치르게 되면서 동학농민혁명기념제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였다.

동시에 1994년 전국 최초의‘무명동학농민군위령탑 건립’과 1996년‘동학농민군 영솔장 최경선 묘역정비 사업’등을 추진하면서 동학농민혁명 정신 선양사업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한편 1995년 정읍군과 정주시가 정읍시로 통합하면서 정읍군과 정주시의 각각의 사업회도 (사)정읍동학혁명계승사업회란 이름으로 통합되었으며 1995년 제28회 동학농민혁명기념제부터 마침내 민간주도 행사로 환원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황토현동학축제의 의미와 기획의도 현재의 황토현동학축제는 1968년 동학혁명기념제를 그 뿌리로 두고 있으며 올해 44회를 맞이하였다. 황토현동학축제는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혁명정신을 계승하는데 의미를 두고 있다.

축제의 주최가 지역 내에서 성장 발전하여 (사)정읍동학혁명계승사업회란 민간조직에 의해 이루어지고 정읍시가 지원하는 형태로 이루어짐으로써 발전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다. 타 지역에서 행해지는 형식적 민간주도 방식에 비하면 매우 발전적인 모습이며, 이를 지속할 의지 또한 강하다. 익히 알고 있듯이 동학농민혁명은 1894년 갑오년 1월에 일어난 고부농민봉기를 시발점으로 한 반봉건 반외세 농민혁명이다. 이는 고부군수 조병갑의 수탈에 대한 저항으로 시작되었지만 삼남은 물론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 지역까지 동참한 전국적인 혁명이었다. 동학농민혁명은 규모뿐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 최초로 민중의 자각에 의한 농민항쟁으로서 근대사회를 여는 계기가 되었다. 비록 무력한 조정과 간교한 외세의 공격에 의해 반봉건, 반외세 항쟁이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 정신은 이후 활빈당 운동, 영학당 운동으로 이어졌으며 항일 의병항쟁 및 3.1운동 등의 원동력이 되었고 현대의 민주화 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황토현동학축제는 이러한 혁명 정신을 오늘에 계승하고, 117년 전 시대상황에서의 반봉건, 반외세 정신을 오늘에 재해석하여 자주통일의 정신을 일깨우는데 그 축제의 의미와 가치를 두고 있다. 44회에 이르는 축제를 진행하는 동안 다양한 고민을 했던 (사)정읍동학혁명계승사업회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기본적인 고민을 담아 축제를 기획하였다. 첫째, 동학혁명정신을 현대에 재해석하여 평화 통일 정신으로 계승하여 정체성을 확립한다. 둘째, 축제가 주는 재미를 통해 대중성을 확보하되 정체성이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극대화한다. 셋째, 동학혁명 정신의 발전적 계승을 위한 학생 프로그램의 확대와 참여에 노력한다. 넷째, 축제의 준비에서 진행은 물론 참여의 장에 이르기까지 대동제적 의미를 추구한다. 앞서 말한바와 같이 황토현동학축제는 근대 역사의 정점인 동학혁명 정신을 계승하고자하는 취지를 가지고 탄생한 축제이다.

또한 이를 지켜내기 위해 많은 희생이 있었고, 정치적인 해석에 의해 많은 좌절을 겪은 축제이다. 따라서 축제 자체는 매우 진지하고 무겁다. 그러나‘동학농민혁명 정신계승의 대중화’라는 생각을 가지고 축제 자체를 가볍게 보이고, 편하게 보이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정치적, 사회적 접근방식으로 대중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놀이적 요소로 대중에 다가서고자 했다. 즉, 주제의 무게와 역사적 부피에 비해 매우 활동적이고 생동감 있게 진행되었다. 학생 청소년 중심의 학생축전은 역사학습의 장이자 체험, 놀이마당이었고, 연예인이 참여하는 기념무대와 공연 등은 대단한 대중적 흡인을 줄 수 있는 볼거리이자 참여의 장이었으며, 횃불행진 및 공연행사는 상징성과 예술성을 담보하고자하는 퍼포먼스라 할 수 있다. 이렇듯 대중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또한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동학농민군 위패봉안례, 동학농민혁명 국제학술토론대회, 무명농민군위령탑 참배 등의 사업 또한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이뿐만 아니라 축제 주최 측인 사단법인 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는 단체 이름 그대로 미래 역사의 주인공인 청소년들의 올바른 역사의식 확립을 위한 현장체험학습 기회를 제공하고자 황토현전국청소년토론대회와 1박 2일 황토현숙영캠프, 전봉준역사캠프, 역사의 길 걷기대회 등의 사업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그 결과 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회원들은 오랜 세월 부침을 겪은 축제를 되찾아 다시 시민의 손으로 개최한다는 자부심이 매우 강하고, 시민들 또한 동일한 역사·문화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황토현동학축제와 정읍 정읍은 내장산 단풍과‘샘골’이란 이름 그대로 물이 맑고 깨끗한 천혜의 자연적 조건을 그리고 정읍시민들의 자부심인 동학농민혁명의 고장이라는 역사성과 백제가요‘정읍사’의 문학사적 의의를 지역 활성화의 자원으로 삼아 충분히 활용해야 할 것이다. 그 중에서도 동학농민혁명의 중심지란 지역성과 정신사적인 측면은 타 지역에서는 따라올 수 없는 무한한 가치를 지닌 문화자원이다. 동학농민혁명이 정읍시민들의 잠재의식 속에 자리하고 있는 정읍의 정체성임을 부인하는 이는 없다. 다만 이를 개인의 생활속에 내면화되게 하여 지역의 공동체의식으로 자리하게 하는 작업이 필요할 뿐이다. 

끝으로 요즘 같은 지방자치시대에는 자치단체장의 역사·문화의식이 매우 중요하다. 역사와 문화를 관광과 이를 위한 개발 중심으로만 바라보거나 정치적 목적에서 적당한 지역안배차원의 문화정책 일변도의 시각에서 지역민들이 향유하고 지역정신으로 계승하여 고유의 특성 있는 지역문화를 창조하기 위한 관점의 시각으로 바뀌어야 한다. 문화부문에 대한 투자가 교육 분야와 마찬가지로 그 투자회수기간이 길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대민서비스를 목적으로 하는 축제부문에서 만큼은 상업적 이익에 너무 연연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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