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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4 |
[문화현장] 카페 ‘그래도 희망입니다’ 문 연 문규현 신부
관리자(2011-04-12 16:15:58)
카페 ‘그래도 희망입니다’ 문 연 문규현 신부 길 위의 신부, 카페 점장 되다 - 황재근 기자 지난 5일, 전북대 정문 앞 상가에 특별한 공간이 문을 열었다. 다종 다양한 문화공간이 곳곳에 생겼지만 이곳은 또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이곳을 지킬‘주인’때문이다. 지난 1월 23일 35년간의 본당 사목직을 은퇴한 문규현 신부가 이번에는‘무보수 비정규직 카페점장’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전북대 앞 북카페‘그래도 희망입니다’가 그가 새롭게 둥지를 튼 공간이다. “카페 점장으로 인생 3막 시작한다” 문규현 신부의 책 제목에서 이름을 따온 이 카페는 문신부가 대표로 있는 (사)생명평화마중물(이하 마중물)에서 운영하는 카페다. 마중물은 지난해부터 문신부가 본당 사목 은퇴 이후“사람들과 더불어 계속 생명평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마중물 회원들의 상설 만남 공간으로”카페를 준비해왔다. 2008년 발간했던 <그래도 희망입니다>의 서문에 적힌“세상이 모두 끝난 것처럼 보일 때에도 우리 곁에 희망이 있다. 희망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따뜻한 마음으로 옆 사람의 손을 잡고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한다”는 문신부의 바람은 이 카페의 운영취지이기도 하다. 문 신부는 개업식에서“사제 생활 전 공부를 하던 인생 1막과 사제생활을 한 2막을 마치고 새롭게 인생 3막을 시작하게 됐다”며“이 카페를 마련하게 된 것을 은총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날 개업식에는 문신부의 형인 문정현 신부를 비롯해 지역의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과 신자들이 카페를 가득 메우고 개업을 축하했다. 몸이 부서질 때까지 외친 생명·평화 문규현 신부는 지난 1976년 사제서품을 받은 이래 성당 안에만 머물지 않고 통일과 인권, 생명과 평화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거리로 뛰쳐나오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던 시대의‘큰 어른’이다. 1989년 방북한 임수경 씨를 데리고 북쪽에서 판문점을 넘어와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됐고 1998년에도 평양통일대축전에 참가해 다시 한 번 국가보안법의 굴레에 묶이기도 했다. 지난 2001년과 2003년, 수경스님과 함께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한 삼보일배로 전국을 순회했고 2003년에는 부안 핵폐기장 반대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2008년에는 124일간‘평화의 길, 생명의 길, 사람의 길을 찾아나서는 오체투지’순례에 나섰고, 2009년에는 용산참사 해결을 위한 단식투쟁 중 쓰러져 심박동이 멈추는 등 위중한 상태까지 빠지기도 했다. 아직도 그 후유증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상태. 문신부는 개점 소감을 밝힌 글에서“예전과 달리 이젠 대놓고 피로가 겉으로 드러나네요. 부르튼 입술이 가라앉으며 시커멓게 딱지가 앉으니 저도 참 민망하고, 주위사람들에겐 심리적 민폐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나이도 속이지 못하고, 부실해진 몸도 더는 아닌 척 하기 힘든 것 같습니다. 참 정직한 것들입니다”라고 적기도 했다. “재능과 인연 나누는 문화공간 되길” 항상 길 위의 사목에 열중했던 그이기에‘카페 점장’이라는 직함은 다소 낯설기도 하다. 그러나 문신부가 전처럼 길 위에서 사람들을 만나기 어려워진 대신 사람들이 쉽게 찾아올 장소에 머무르게 된 것이라 생각하면 인생 3막 역시 그가 걸어온 여정 위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그래도 희망입니다’에서는 3백여권의 책을 구비하고 각종 유기농 허브차와 공정무역 커피를 판매한다. 단체모임을 가질 공간과 문화행사를 진행할 수 있는 작은 무대도 갖춰져 있다. 매주 한 번씩 청소년을 위한 영화상영도 진행할 예정이다. 문 신부는“많은 사람들이 쉽게 오고갈 수 있는 공간을 찾다가 전북대 앞에 자리를 잡게 됐다”며“학생들의 워크샵부터 기자회견과 공연까지, 모두가 함께하는 문화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쉽게 드나들며 재능을 나누고 인연을 돈독히 하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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