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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 | 특집 [문화저널]
특집방담 백제기행을 말한다
유문옥, 채왕석, 황의순, 윤덕향, 김은정, 이병천, 이종민(2003-09-08 10:14:22)

때 : 1989년 10월 20일
곳 : 문화저널 사무실
참석자 : 유문옥·본지 정기구독 회원
채왕석·  
황의순·  
윤덕향·고고학·전북대 교수
김은정·본지 편집위원
이병천·  
이종민·본지 편집주간·사회

사회 : 안녕하십니까? 바쁘신 데 이렇게 나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 좌담의 주제는 한마디로 '백제기행의 회고와 전망'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열 번째 백제기행을 맞으면서 그 동안의 기행을 반성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된 것입니다. 이는 기획의 문제도 되겠지만 실행의 차원에서도 문제가 되겠습니다. 저희 기획팀에서는 기행을 마친 후 나름의 반성평가회를 갖고 있습니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내부적인 것이어서 한계가 있기 마련이지요. 실제로 기행에 참여하셨던 여러분들의 솔직한 비판과 의견이 백제기행의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우선 백제기행을 맨 처음 기획했던 이병천씨께서 '기획의 변'이랄 가. 한 말씀하시지요.

이병천 : 백제기행과 같은 형태의 역사기행은 전국적으로 여러 가지가 있지만 많은 영향을 받은 건 한길사에서 주관하는 '한길역사기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익산으로 왔을 때 한번 참가한 적이 있었는데 기대가 컸었던 탓인지 많은 실망을 했었습니다. 우선 예비지식이 부족해서도 그랬겠지만 한길사 측의 사전준비도 소홀했던 것 같고, 날씨조차 을씨년스러웠고요…. 제대로 역사기행이 이루어지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이 지역을 중심으로 이 지역의 역사를 바르게 조명 할 수 있는 역사기행을 하나 꾸며 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게 되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마침 문화저널 편집진이 구성되어 그 작업을 맡을 수 있게 되고 해서 우선 시작을 하고 봤습니다. 그러니까 장기적이 뚜렷한 목적의식이 미쳐 갖춰지지 못한 상태에서 시작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며 시작했다는 말이죠.

사회 : 백제기행의 취지랄까, 의미는 저희 광고에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백제기행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역사와 삶의 현장을 찾아봄으로써 민족공동체적 사상과 문화, 정서와 논리를 실천적이고 총체적으로 인식해 나가고자 하는 마당입니다.….' 등등. 그러나 그 성격을 좀더 구체적으로 규명해 보기 위해서 백제기행에 참여할 때의 기대감 등을 얘기해 보죠. 이 자리에 나오신 분들은 모두 두 번 이상 참여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떤 기대와 의미를 부여하며 참여했고 그 결과는 어땠는지 얘기해 주시죠.

황의순 : 몰랐던 것을 알게 될 것이라는 기대와 여럿이 함께 여행하는 재미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처음 참여하게 되었는데 좋았어요.

유문옥 : 저는 이제까지 세 차례 다녀왔습니다. 맨 처음 부안 주류산성에 갔을 때 전혀 사전지식이 없이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백제부흥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는 현장을 실제로 다녀오니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더군요. 이 지역에 일어났던 일들을 너무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과 이러한 기행을 통하여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삶의 터전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일인가,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귀한 경험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그 뒤 가능하면 빠지지 않고 참여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지리산에 갔을 때는 상당히 실망했습니다. 섭외된 연사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 진행에 차질이 생겼고 현지 주민의 증언도 기대했던 만큼의 감동은 적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하지만 회원들의 친목을 다지는 기회는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저녁에 계곡에서의 모닥불 모임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세 번째가 부여·공주기행인데 윤 교수님께서 매우 열성적으로 해설을 해주셨습니다만 참석자가 너무 적지 않았나 합니다. 주제와 장소에 따라 참석 인원에 많은 변화가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널에서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회원을 널리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사회 : 윤선생님의 경우는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된 것이 아니라 저희 초청연사로 참여하셨기 때문에 입장이 다소 다르겠습니다만, 그래도 나름대로 성격규정을 하셨을 것 같은데요.

윤덕향 : 백제기행이 저널 측에서 지역사회에 대해 서비스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달리 말해서 이 지역인 들에게 우리가 누구인가, 이 땅이 어떤 땅인가를 알려주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강연보다는 실제현장을 밟음으로써 이 지역의 문화가 어떠했는가, 여기 살던 옛 조상들의 삶은 어떠했는가를 같이 느껴 보자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초청연사로서 우선 전문적으로 깊이 있는 얘기보다는 재미가 있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재미없는 얘기는 지루하기 만 할뿐이고 기억에도 안 남거든요. 좀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은 나중 얘기고요.
또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가 문화라고 하면 상당히 고급스런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 문화거든요. 보편적인 문화 말씀이지요. 그런데 문화활동이니, 문화행사라고 하면 괜히 주눅이 들고 하는 느낌이 저희들에겐 있는 것 같습니다. 역사기행이라는 것도 그런 것이 아니고 누구나 와서 들었을 때 보편적으로 알아들을 수 있고, 또 재미도 느낄 수 있는 것이어야겠지요. 일상생활을 떠나 여행을 함으로써 얻는 스트레스 해소-제가 연사로 나서면서 그런 재미까지 망친다면 연사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서 제 딴에는 신경을 썼습니다만 아마 망친 것 같습니다(일동 웃음).

김은정 : 백제기행의 취지랄까 이런 것이 또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문화적으로 굉장히 소외되어 있는 이 지역 생황에서, 전통적인 문화의 모습들이 어떠했고 그 터전이 되었던 우리 조상들의 삶의 형태는 어떠했는가 하는 것들을 찾아가 확인함으로써 우리 나름의 건강한 문화를-외래문화에 찌들려 있는 상황에서-새롭게 이루어 낼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 보고자 하는 것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회 : 우선 기행에 참여하면서 느꼈던 인상과 소감, 특기할만한 장점이라든가 잘못된 점 등을 자연스럽게 말씀해 보도록 하지요.

채왕성 : 제가 백제기행에 참여하면서 인상 깊었던 일은 '쌀의 수난사-그 현장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옥구 성산의 창오리, 군산 미루장터, 계화도 간척지를 찾았던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주제도 무게가 있었고 한창 민중의식과 민족혼이 고개를 들던 당시 사회 분위기와 맞아 떨어져서 시종일관 땀을 쥐는 긴장 속에서 호남벌판을 달렸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뒤에 들으니 그런 현장감은 제1회 '갑오농민운동의 현장을 찾아서'가 최고였다는데 불행히도 참석을 못했고요.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기행은 회문산과 강천사행(제4회 : 회문산의 삶과 섬진강의 문학)이었는데 그것은 처절한 민족수난사의 한복판을 걸어 들어가는 듯한 현실감으로 차라리 큰 아픔이었던 것 같습니다.
원래는 남부군의 이태선생을 모실 예정이었던 듯 싶은데 대타 격인 박종호선생이 더욱 실감나게 역사적 현실에 참여했던 그날을 재현해 주었습니다. 강천사 입구 숙소에서 부른 '그날의 여인'-고 박소대장 동무를 위한 애절한 판소리는 이제는 퇴역한 늙은 '구빨치'의 한 대목 만가로 구원의 여인상이자 사경을 함께 넘긴, 이제는 먼 과거의 추억이 된 자신의 인생을 합한 절창이었습니다. 밤 깊은 줄도 모르고 청중도 울고 산심(山心)도 울리던 그 명창이 오래 가슴에 남습니다.

황의순 : 회문산의 경우에는 기회 측에서 잘못한 점도 있었지만 돌발적으로 박종호씨가 등산코스도 아닌 곳으로 무작정 올라갔던 것-그 고생이 오히려 지나고 나니까 더 기억에 남는데요. 그땐 정말 힘들었지요. 그때 경험들을 많이 했을 거예요. 산이라는 것, 또 옛날 빨치산들이 이렇게 다녔으리라는 것 등 우연이었지만 오히려 산행을 잘했다는 기억입니다. 반대로 만일 사고라도 생겼었다면 어땠을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해요. 사고가 없었던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에요.

김은정 : 멋모르고 뒤따라 나섰다가 벼랑에서 내려오지도 못하고 죽자 살자로 기어올랐지요. 지금 생각하면 소중한 추억이지만 그땐 정말 힘들고, 몸에 상처도 나고, 눈물이 나올 정도였어요.

이병천 : 그때가 8회땐데요, 7월 23일날 다녀왔는데 참 무더운 날씨였어요. 가만히 앉아있어도 땀이 흘러내릴 정도 였으니까, 그때 우리가 부여·공주 여기저기 많이 둘러보지 않았습니까? 특히 정림사지를 찾았을 때 그늘 한 손 없는 불볕에도 아무도 망설이는 기색 없이 모여 서서 윤선생님 설명을 다 들으시더군요. 그때 저는 나무그늘에 있었는데(웃음), 그걸 보니까 백제기행을 기획했던 보람 같은 것이 느껴지면서 우리가 게을리 해서는 안될 만큼 저분들이 저렇게 열정을 가지고 참여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아찔하고 큰 감동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황의순 : 더 알차게 기획해야겠다고 다짐도 하셨겠죠.

이병천 : 그 다음에 좀더 잘된 것 없었습니까? (일동 웃음)

사회 : 황선생님, 지리산 맨 처음 갈 때 가셨던가요?

황의순 : 1회,4회 기행만 못 가고 다 갔어요.

사회 : 그때 비 많이 오고, 밖에서 모닥불 피우려다 못 피우고, 밤새도록 술 마시고 그리고는 나와서 섬진강 변에서-비 개인 후 강의 모습과 그 분위기가 참 좋았지요.

황의순 : 그래요. 모래사장이 좋았고 장호 교수가 비틀비틀했던 것도 인상에 남고…(웃음).

이병천 : 다음날 아침까지도 취기가 다 안 가셨는지 "미안합니다. 내가 죽어야 하는 건데…"하시는 거예요(일동 웃음).

윤덕향 : 9회 땐가 그때 우리 아이들이 갔었는데-저는 그때 다른 일로 못 갔습니다만, 아이들이 집에 돌아와서 부스럭거리더니 그릇쪼가리를 하나 주머니에서 꺼내 가지고는 "아빠, 이게 뭔지 알아요? 이게 고려청자예요" 하는 거에요(일동 웃음).

이병천 : 혹시 진품이었습니까?
윤덕향 : 상당히 좋은 것이었습니다. 그 후에도 아이들이 그때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글쎄요, 백제 기행이 이 지역 아이들에게 바로 산교육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 : 인상 깊었던 얘기라니까 좋은 것들만 말씀하시는데, 발전적인 얘기가 되기 위해서는 잘못된 점, 미흡했던 점들도 지적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채왕성 : 한 말씀 더하지요. 긍정적인 면으로는 주최 측의 성의 있는 참가권유(전화로), 초청연사들의 진지한 해설, 거부감을 주지 않는 융통성 있는 진행, 그리고 철저한 사전 답사로 의미 깊은 역사적 공간에 섰을 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조촐하고 맛깔스런 점심을 대했을 때 도 좋았고요.
부정적인 면으로는 일정 운영이 비효율적인 때가 있었던 것 같고, 아는 사람끼리 주로 말하고 함께 다니는 끼리끼리라는 친목적 인상이 너무 짙었을 때 정도 아니었나 합니다.

황의순 : 예정된 초청연사를 못 보셨던 점등은 철저하게 보완 돼야 하지 않을까요?

유문옥 : 참석자도 적극적으로 늘려나가야 되겠다는 생각입니다.

윤덕향 : 저는 좀 특수하게 다녀온 경우라 얘기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두 가지 정도가 제기되어야 할 것 같은데요. 참가인원 수가 적다는 점은 초창기이기 때문에 겪게 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 주위에서 보면 기행에 참여하고 싶은데 그런 곳에 가도 되겠느냐, 갔다가 괜히 무식하단 소리나 듣는 것 아니냐 하는 불안을 느끼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거 어찌 보면 이쪽 기획팀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일반 사람들이 생각할 때 역사기행이라든가 백제기행 혹은 문화기행을 한다고 하면 그건 조금은 높은 사람들의 모임이고 고급놀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제 나름으로 이해할 때는 일반인들을 끌어 들여서 알려 준다는 측면도 있을 것 같은데 오히려 그쪽에서는 약간은 거리감 같은 걸 느끼는 것 같아요. 또 하나는 기행 중 차안에서의 시간이 상당히 무료합니다. 어찌 보면 그날만큼은 모닥불 피우고 노래 부르기 등을 통해서 일체감을 느끼는 것이 백제기행이 갖는 재미중의 하나일 것이고 또 그것이 차츰 조직을 확대해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될 법한데, 이것을 해결하는 것이 과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사회 : 그 문제는 후에, 문제점에 대한 대안이나 해결책을 얘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제기가 될 텐데요, 원래 기획하기는 차안에서의 프로그램을 준비는 했지요. 그런데 이것이 경비문제와 연결되는 것인데, 차량사정이 좋았을 경우에는 연사가 도중에서 설명을 한다던가, 주제와 관련된 테이프를 들려주던가 하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판소리 동현제의 맥을 찾아서'의 경우처럼 오고가는 동안 예정했던 프로그램을 전혀 진행시킬 수 없을 때도 있었지요. 제 생각에도 그것이 중요한 문제점이지 않았나 싶군요.

이병천 : 아까 나왔던 연사섭외 문젠 데요, 대개는 우리가 세웠던 주제들-길게는 1년, 짧게는 반년동안의 계획을 미리 세웁니다만-에 알맞은 연사를 찾기 위해 저희들이 얘기를 나누고, 그리고는 구체적으로 섭외를 해서 모시고 가는데요, 그런 과정에서 연사는 제대로 섭외가 되었는데 연사 개인의 사정 때문에 참석을 못한 관계로 그것을 감당할 수 없게 되어버린 일도 있었지요. 앞으로는 한 번 초청연사 섭외를 하면 여러 번 다짐을 하려고 합니다.

채왕성 : 초청연서 건에 덧붙여서, 대담자로서 기행 가는 지역의 향토사학자나 학교 교사, 주민 등 한사람과 도 한사람 주최 측에서 대화로 풀어 가는 진행자 겸 기록자로서 참여했으면 합니다.
황의순 : 지금가지는 백제기행이 횟수도 많지 않았지만 저같이 그냥 가고 싶어서 간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마 거의가 주최 측의 권유에 의해 갔을 거예요. 그렇게 어쩌다 한번씩 띄엄띄엄 가다보니(웃음) 연결이 잘 안되잖아요? 광고방법이나 기획 등 지금까지 지적된 점들을 보완하면 앞으로 차츰 나아지겠지요.

사회 : 참여자들이 적은 문제의 원인은 일단 참여자들이 기행자체에 얼마나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느냐는 점, 즉 그저 단순한 방관자로 따라 갔느냐 아니면 기행의 중요한 일원으로서 같이 이끌어 갔느냐 하는 것이 중요 요소가 아닌가 싶어요. 그냥 뒤에서 따라 다녔다면 재미도 못 느꼈겠지요,. 적극적 토론자가 되어 문제의식을 갖고 질문도 하고 했다면 상당한 의미도 가졌을 겁니다. 이번 9회 기행 때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는데 직접 도요지에 가서 그릇을 빚을 수 있다는 광고안내가 호소력을 갖지 않았나 싶어요.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주최 측에서 토론의 분위기를 좀더 긴밀하게 잡아주고 참가자들이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김은정 : 앞으로의 장기적인 기행계획이 제시된다면 나름의 연속성도 있고 참석하는 분들도 자기 관심사가 있으면 관심을 갖게 되리라 보고 그런 연결도 꾀해야겠지요.

유문옥 : 그런 내용을 참석자들이 모인 자리나 토론과정에서 알려줌으로써 스스로 준비할 수 있는 마음자세를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윤덕향 : 그렇기도 하고 다음 번 주제에 대해서 밝히고 그 의미도 알려 좀더 나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제시해 달라고 하는 식으로 하면 적어도 다음 번 기행에 대해서 나름대로 준비를 할 수는 있겠지요. 뭔가 준비를 해오고 토론을 해봄으로써 차츰 관심도 깊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회 : 저희 포스터 광고에 다음 기행에 대한 주제만 소개가 되는데, 그 주제에 관련된 참고문헌, 필독도서(일동웃음) 등을 소개해 주고 취지를 좀 더 풀어서 설명하고 한다면 가능하겠지요. 내년부터는 그런 것이 좀 필요하겠습니다.

황의순 : 백제기행이 역사를 알기 위해 시작이 되었지만 꼭 역사기행만이 아니라 어느 부분은 문학기행과도 연결을 시켜 놓고 또 문학기행을 할 때도 역사기행과 연결을 지어놓고 하다 보면…

윤덕향 : 결국 주제는 이 땅의 우리는 누구인가 하는 것 아닐까요.

일동 : 예. 그렇지요.

윤덕향 : 그건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조금씩은 다 관심이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아까 젊은 사람들 말씀을 하셨는데 연세가 많으신 분들도 그분들대로 관심이 있으실 수가 있거든요. 오히려 그분들한테는 이런 기행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됩니다. 살아오시면서 그냥 지나쳤던 것들도 다시 생각해 보고, 젊은 사람들한테 하시고 싶은 얘기가 있을 수도 있고요.

유문옥 : 그리고 주최 측만의 문제가 아니라 참석자들 역시 좀 더 관심을 갖고 애정을 가진 주위 사람들에게 백제기행의 취지를 알려주고 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나 싶군요.

사회 : 지금까지 문제점들이 여러 가지 지적되었습니다. 이제 기행지역과 코스문제, 기행 정리 문제-저널 특집으로 계속 실리고 있습니다만-등 이런 말씀을 좀 해 주시죠.

이병천 : 저는 우선은 우리 고장-그것이 전북이냐, 전라도냐, 아니면 옛 백제지역이나 했을 때, 가고 오는 문제 등을 감안하고 또 우리가 백제라는 이름을 빌려 왔듯이 백제지역을 대상으로 했으면 어떻겠느냐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 집 울타리 안의 일을 먼저 알자는 것이 원래의 기획의도이기도 했고요.

황의순 : 동감입니다. 등잔 밑이 어둡더라고 항상 가까운 것은 못 보거든요.

유문옥 : 저도 주체적인 것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백제기행이 이제 10회를 맞이하고 횟수로도 3년째가 되므로 말하자면 젖 뗄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되는데요, 그렇다면 다른 문화권 예컨대 가야·신라 등과 비교해 보는 기회가 있었으면 싶어요. 인력이나 경제적 면에서 자주 실행하기는 어려울 테고 특집으로 1년에 1회 정도로, 확대 해석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면 어떨까요. 예컨대 익산 미륵사지를 보고 다음 기회에 황룡사에 가서 직접 비교해 보는 특집이 있음으로써 활력소가 되었으면 해요. 마치 학창시절에 수학여행 가듯이 말이지요.

사회 : 소풍 쭈욱 가다가 수학여행 멀리 한 번 가보자…(웃음)

윤덕향 : 저는 그런데 백제기행이라 이름 붙인데 대해 시비를 거는 것은 아니지만 좀 불만이 있습니다. 본래 이 기행이 우리가 살고 있는 전북지역, 이 땅에 사는 우리와 우리 조상들이 어떠했고 우리 현재 삶이 어떻고, 우리가 갖고 있는 문화가 어떤가 하는 것들을 알아보고자 하는 것이어서 백제 기행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했는데, 백제라는 영역에서 본다면 유감스럽게도 이 전북지역은 사실 변두리 지역에 해당됩니다. 백제의 왕도는 서울과 충청도에 있었거든요. 전북에서 백제유적이라 하면 익산군 빼고는 거의 없습니다. 나머지는 무덤이나 산성 정도가 몇 군데 있는 정도지요. 그렇다면 그 이전, 즉 백제라는 나라가 생겨나기 이전의 그 사람들은 누구였는가, 그들의 삶은 어떠했는가, 그 백제가 망한 후에는 이쪽은 어떻게 되었는가…. 사실 이 백제라는 나라는 이 전북지역에서 볼 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백제가 전북지역에 영향을 미친 건 2,3백년 정도 밖에 안 되는 셈인데 이 땅에는 적어도 2천년 이상 사람들이 살고 있었을 것이거든요. 아마 어떻게 표현하기가 곤란해서 백제기행이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선 그 점에서 아까 코스 말씀을 하셨는데, 이런 기행에서 코스를 잡는 데는 몇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가령 동학혁명 또는 동학 농민전쟁이라고 할 때 그 주제에 따라 전적지들을 주욱 돌아보는 방법이 하나 있겠습니다. 그것과 달리 한 지역을 대상으로, 물론 그 경우에도 주제는 있겠지요, 그 지역 전체를 파악해 보려는 노력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또 하나는 장기적으로 볼 때 시대 순으로 늘어놓고 돌아보는 식이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는 주제 중심으로 했던 것 같은데 보다 일체감을 느끼게 하고 참여의식을 높이기 위해서는 가급적 지역을 좁히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령 자기를 직접 구워본다든가, 때에 따라서 그림을 그려 본다든가, 그릇쪼가리를 주어 본다든가 하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닐까요.
그리고 지금까지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거기에 기층민중들의 삶이 드러나 있다고도 볼 수 있는 그런 것들을 찾아보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요. 판소리 같은 것도 잘 알려지지 않은 것들-소멸되어 가는 과정에 있지만 살아 있는 것들이 지역마다 남아 있거든요. 대상범위를 좀 좁히고 거기에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그 맥을 어떻게 이어오고 있는가 하는 점까지 같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채왕석 : 코스 선정은 역사적 의미성, 눈요기나 바람도 되는 관광성, 휴일을 적당히 운동케 한 후의 유쾌한 피로, 적절한 시간적 범위 안에서 이루어 졌으면 하는 바람이고 너무 전문적인 학술성만 고집하지 말고 사라져 가는 풍물이나 명가(名家), 전통음식, 장구경, 옛날식 수공업 산품 등(함열 찹쌀엿 같은) 폭넓은 문화탐방이면 더욱 좋겠습니다.

이병천 : 그런 의미에서 민족놀이 기행도 좋겠습니다.

김은정 : 사실 임실 필봉농악 같은 것은 우리는 잘 알고 있지만 조금 동떨어진 사람들만 해도 잘 모르거든요. 정월대보름날 큰 마당을 연다고 하면 백제기행을 그 일정에 맞춰서 함께 참여해 본다면 좋을 것 같아요.

사회 : 기행의 결과물로 글이 실리는데 그 기행문에 대해서도 말씀을 해보시죠. 여지껏 실린 글도 읽어 보셨겠지요.

황의순 : 주최 측에서 쓰시기도 하지만 끝에 참가자들의 느낌 같은 것을 덧붙이면 좋지 않을까요.

사회 : 기행문을 공모하는 식이면 어떨까요.

황의순 : 기행문이라면 너무 거창해서 못쓰실 분도 많으니까 느낌 한마디 정도가 어떨까요. 그 정도는 누구나 쓸 수 있는 거니까?

김은정 : 우리가 싣는 기행문 말고 느낌이나 소감 같은 것을 200자 원고지5∼6매 정도로 한 분에게 받아서 소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사회 : 여러분한테 받아서 컨테스트로 하지요(웃음).
저희 저널 편집진의 입장이기도 합니다만 이 기행문도 가능하면 다양한 필진이 참여할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윤덕향 : 오시는 분 중에도 아까 그 한마디 정도가 아니고 미리 얘기를 해서 원고를 부탁할 분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소감이라든가 기행 중 잘못 된 점 등이 지적될 수도 있겠고 그런 글들을 다소 수정해 실을 경우 자기의 글이 실린다는 데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거든요.

이병천 : 그러니까 집단창작 형태군요.(웃음)

사회 : 앞으로 백제기행은 누구를 대상으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하죠. 젊은 층에만 지나치게 한정되어 있다는 지적과 앞에서 윤선생님께서 어머니나 어린이들이 참여할 경우 어린이들에게 산교육이 되겠다는 말씀을 해 주셨는데 그와 관련해서 참석자들을 어떻게 이끌어 낼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좀 말씀해 주시죠.

윤덕향 : 누구를 대상으로 하느냐는 문제는 결국 저널과 연결되어 생각되어야겠지요. 저널이 회원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인가, 아니면 저널이 지역사회에 기여를 한달까, 서비스를 하는 행사인가 하는 문제일 텐데 원래는 저널 회원을 대상으로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다면 참여대상은 한정이 되겠지요. 그런데 그 범위를 뛰어넘고자 한다면 대학생들, 중고생, 그리고 국민학생까지도 포함할 것인가 하는 문제, 혹은 나이가 드신 분들-지금껏 먹고사느라 바빠서 관심이 없었지만 이제 여유를 갖고 문화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분들 같은 예비 회원들까지도 대상으로 할 것인가가 먼저 밝혀져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 문제는 저널 편집진이 할 일이 아닐까 싶군요.

사회 : 여러 가지 귀한 조언들을 해주셨습니다. 이제 대충 마무리를 해야 되겠군요.
이번 11월 기행을 마치며 열 번째가 되어 나름대로 그간의 기행을 반성해 보고 보다 적극적인 계기를 찾아보고자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문화저널의 문이 항상 열려 있듯이 백제기행도 마찬가지로 열려있지요. 그 열려있음이 두리뭉실하여 때로 그 성격규정에 장애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제 나름대로 그 성격도 자리 잡게 되고 다시 한번 우리의 원칙을 확인해 볼 수밖에 없는데요. 처음 세웠던 원칙, 즉 우리는 누구인가, 이 땅은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한 탐구는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까지 미비한 점이 많았습니다만, 좀더 알차고 유기적인 기행이 되도록 애쓰겠습니다. 사실 경제적 어려움도 많습니다만 차차 나아지겠지요. 그 나아진다는 것이 단순히 사람들을 좀더 끌어 모으고 간식을 나눠주는 기행이 아니라, 한 번 다녀오면 우리 마음속에서 따뜻한 감정이 일어나는 그런 기행이 되어야겠지요. 오랜 시간 애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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