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5 |
마을이 희망이다 - 고창군 신기마을
관리자(2011-05-06 08:52:58)
함께 일군 희망, 공동체를 재건하다
- 이세영 자유글쓰기전문 시민기자
‘예전 시골 인심 같지 않더라’는 푸념이 아니더라도 농촌의 각박함 속에는 공동체의 붕괴라는 심각함이 있음을 안다. 경제적이고사회적인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나타난 농촌 지역 공체의붕괴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전라북도에서 시행하는 사업이‘향토산업 마을만들기’다.이제 시작한 사업이어서 수정 보완해 가야할 부분도 많았지만 현장에서 만난 마을의 주민들은 새로운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고창군 신기마을의 향토산업 마을만들기현장은 아직 경제적 성과를 보일 수 있는 단계는 아니었지만 공동체적 성과를 예견할 수 있는 좋은 사례였다.
문수산 단풍숲 아래 자리한 작은 마을
신기마을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문수산과, 문수사를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문수사는 고창과 전남 장성과의 사이에 놓여 있는 문수산(621m)중턱에 있다. 고창군 고수면소재지에서 고수도요지를 지나 위로 올라가면 조산 저수지가 나오고, 왼쪽 골짜기를 타고 한참을 구불구불 길을 올라야 문수사에 다다른다. 당나라청량산에서 문수보살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신라의 명승 자장율사가 우연히 이곳을 지나다가 산세가 당나라청량산과 흡사해 문수산 굴속에서 며칠간 기도했다고한다. 이 때 문수보살이 나타나 가르침을 주자 이곳에절을 지었다고 전하지만 지어진 시기는 확실치 않다.문수사는 은사리 애기단풍숲으로 유명하다. 문수산입구에서부터 중턱에 자리한 문수사 입구까지의 진입도로 약 80m 좌우측 일대에 수령 100년에서 400년으로 추정되는 단풍나무 500여 그루가 자생하고 있다.숲은 오히려 유명세에 비해 그 경치가 빼어난데 2005년 천연기념물 제463호로 지정되며 비로소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문수사에는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 지방유형문화재인 대웅전과 문수전, 소규모의 건물로 맞배지붕이 특이한 대웅전이 계곡과 단풍의 오묘한 조화 속에 고즈넉이 자리한다.이 산 좋고 물 좋은 문수산 아래 마을이 신기마을이다. 물이 맑고 숲이 좋은데도 인적이 드물어 오염이 전혀 되지 않은 신기마을은 살기에 좋은 마을은 아니었다. 마을 사람 대부분은 문수사에 속한 땅에 소작을 하거나, 산 약초를 채취해 생계를 꾸려 왔다. 농사지을 땅이 부족해 해마다 농가수는 줄어갔고, 나이든 노인들의 수만 들었다. 70-80년대 100여 호에 달하던 마을이 이제는 30여 가호로 줄었으니 그간힘든 삶의 여정은 그들에겐 한으로 남는 상황이었다.그러나 단풍숲이 유명세를 타며, 새로운 돌파구가 보이기시작했다. 마을의 젊은이들이 발 벗고 나섰다. 고창군의2009년 마을가꾸기 사업을 통해 버려진 하천을 정비하고 휴식공간도 만들었다. 마을 옆을 흐르는 작은 하천이 사계절시원함과 여유를 주는 공간으로 변하면서 문수사를 찾는 외지인들로부터 먼저 반응이 왔다. 버려졌던 하천은 훌륭한 계곡이 되었고, 마을을 찾는 손님의 수도 늘었고, 전국적으로도 성공한 사업으로 인정받았다.
땀과 희생으로 다시 세운 신뢰
마을이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의 싹을 본 마을은 다음을 준비했다. 2009년 마을가꾸기 사업의 추진위원장을 맡았던 오종근 씨가 추진위원장이 되어 전북향토산업 마을만들기 사업에 뛰어 들었다. 마을의 대소사를 도맡아 온 오 위원장은“선두에 서서 지휘도 해야 하고, 듣기 싫은 소리도 들어야 하는자리인 만큼 마을을 위해 희생할 각오”로 봉사의 역할을 자임했다.한번 무너진 신뢰와 공동체를 다시 세우는 일은 보통일이아니었다. 오 위원장은 사심을 버리고 봉사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주민의 마음을 얻고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갈 수있다는 신념을 가졌다. 마을 어르신들의 굳어진 패배감을 걷어내고 불화의 싹을 사전에 차단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돈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오 위원장은“돈이 없는 사람일수록 적은 돈에도 마음을 상하기 마련”이라며“모든 사업은 투명하게 진행하고 돈의 사용 내역이나 사업내용을 마을 주민모두가 볼 수 있도록 마을 회관에 게시”하며 사업을 진행했다.이때가지 데면데면 하던 마을의 분위기도 일변했다. 상실감으로 희망을 잃고 공동체가 사라지던 마을에 의견교환이활발해지고, 울력에 서로 참여하는 열성이 되살아났다. 변변한 땅도 없이 하늘만 바라보던 마을에 생기가 더해졌다. 마을 사람들끼리의 대화도 잦아지고 나이와 상관없이 울력에참여하는 마을 주민들도 늘었다. 오 위원장은 마을 주민과의교감율이 70%이상이 될 것이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신기마을이 잡은 테마는 문수사와, 애기단풍숲을 자원으로한 팜스테이. 5천㎡의 땅에 5동의 통나무집을 짓고, 여름에는 신기계곡의 물놀이, 가을에는 단풍과 문수사, 겨울에는문수산의 설경이라는 천혜의 자원을 활용한 가족 휴양지를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인근에서 채취한 자연산 약초와 임산물을 가공해 공동생산, 공동판매한다면 부가적인 소득도 올리고 농촌과 도시의 직거래도 활성화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복병은 의외의 곳에서 튀어나왔다. 부지선정에 어려움이따랐던 것. 팜스테이 마을이 문수사의 경관을 헤칠 것이라는우려로 사찰의 반대에 부딪쳤다. 현재는 부지를 새로이 선정하고 늦은 공사일정을 서두르고 있다. 오 위원장은“처음에는 허탈하기도 하고 원망도 생겼는데, 오히려 마을 사람들을하나로 묶어주는 계기가 되었던 하나의 사건”이었다며“덕분에 마을 어르신들과 더 가까워 질 수 있었다”고 말한다.어떤 일을 하던 많은 사람이 함께 참여하게 되면 의견 충돌이 있기 마련이다. 신기마을은 이 의견차를 좁히는 데 공동체 재형성의 길을 가고 있다. 화가 복으로 바뀌는 행운도 마을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결과였다. 그리고 향토산업 마을만들기를 통해 마을의 의견을 하나로 모으고 발전의 초석을 쌓는데 성공했다. 오 위원장도“사업의 최대 성과는 공동체 활성화”라고 평한다.이름처럼 새롭게 일어서는 마을, 신기. 향토산업 마을만들기 사업은 주민의 열정과 수려한 자연환경이 더해져 어두웠던 산촌마을에 희망의 빛이 되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