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8 |
[기획특집] 배움이 있는 여행 1
관리자(2011-08-17 18:56:35)
춘향이 따라 광한루 거닐고, 명창들 흔적 찾아 지리산 자락까지
최동현 군산대학교 국문과 교수
전라북도는 판소리 전통이 살아 있는 곳이다. 가는 곳마다 판소리 명창들의 일화가 얽힌 유적지가 있고, 판소리에 등장하는 설화의 현장이 있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 때나 소리를따라 여행을 떠나볼 수도 있다. 그저 소리꾼이 살았던 마을,소리꾼이 피를 토하며 수련했다는 폭포나 토굴을 찾아가는일은 힘들기만 할 뿐이지, 별다른 감흥은 없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곳이 또 다른 역사의 현장이거나, 이름난 명승지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소리 찾아, 명승지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면 한 번 가봄직하지 않은가.그런 곳 중에서 남원은 가장 가볼 만한 곳이다. 남원은 판소리의 고장이다. 남원은 <춘향가>와 <흥보가>의 배경이되는 곳이다. 춘향이나 흥보, 놀보는 남원 사람이다. 그런가하면 노래의 왕으로 일컬어지던 송흥록, 그의 동생 송광록,아편중독자였지만 일제강점기 대명창이었던 김정문, 근세최고의 여창 박초월, 동편제 판소리의 전통을 고집스럽게 지켜왔던 강도근, 현재 최고의 인기 소리꾼인 안숙선에 이르기까지 판소리사에 길이 남을 명창들을 줄줄이 배출한 곳이다.남원에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시립국악원과 우리나라민속음악의 총본산임을 자처하는 국립민속국악원이 있어서,열년 열두 달 판소리와 전통음악의 향기가 피어오르는 곳이기도 하다.남원은 또한 지리산 발치에 놓여 있는 고을이다. 여름 피서철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어머니의 품과도 같은 넉넉한 지리산 골짜기에서 지친 몸들을 쉴 것이다. 이 시기에 남원을찾는 사람들은 남원시립국악단의 국악공연을 덤으로 볼 수있는 기회도 제공된다. 올해는 7월 15일부터 8월 23일까지매주 화, 금, 토요일 춘향테마파크 앞 사랑의 광장 야외공연장에서는 저녁 8시 20분부터 1시간 동안 국악 공연이 펼쳐진다.남원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혼불문학관에 들러도 좋다. 최명희가 쓴 <<혼불>>의 실제 배경이 되는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에는 문학관 외에도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집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혼불문학관이 있는 사매면부터는 판소리 관련유적지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남원으로 들어가는 춘향이고개를 넘기 직전 오른편으로 아담한 정자가 하나 나온다.그것이‘오리정’이다. 춘향이가 이곳까지 와서 이도령과 마지막으로 이별을 한 곳이다. 오리정 앞에 있는 작은 연못이눈물방죽이다. 이도령과 이별할 때 춘향이가 눈물을 흘린 곳이라고 한다. 또 오리정 약간 못 미친 곳에는‘버선밭’이라는화단도 가꾸어 놓았다. 이별차로 왔던 춘향이가 이곳에서 버선을 벗어 던졌단다.춘향이 고개를 넘어 옛길을 따라 남원을 들어서면, 정유재란 때 왜적을 맞아 남원성을 지키다가 순절한 민·관·군을합장한 무덤인 만인의총이 나온다. 선조 30년(1597) 8월 오만육천의 왜군과 싸워 장렬하게 전사한 만 명의 시신을 모셨는데, 그 무덤을 다시 이곳으로 옮기고, 사당을 지어 기리고있다. 남원은 소리의 고장이라기보다 충절의 고장이라는 의미로 먼저 다가온다. 남원 하면 곧 떠오르는 곳이 광한루다. 광한루는 조선조초기 황희가 건립하였고, 정인지가 이름을 광통루에서 광한루로 바꾸었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탔다가, 인조 13년(1635년)에 중건하였다. 광한루는 영주각, 오작교 등과 함께 신선세계를 모방하여 만든 곳이다. 광한루원 안에 있는 오작교는지금도 견우와 직녀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를 전해준다. 그러고 보면 춘향과 이도령이 광한루에서 만난 것은 우연만은 아니다. 남원 시내에는 <춘향가>에 나오는 선원사, 관왕묘, 교룡산성, 만복사(지금은 터만 남아 있음) 등등이 다 남아 있다. 모두 값진 문화재가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광한루에서 승월교를 건너면 춘향테마파크이다. 임권택감독이 <춘향전>을 찍은 곳이다. 춘향과 몽룡이 첫날밤을보낸 부용당과 월매집, 관청이었던 동헌, 그리고 춘향이가갇혀 있던 옥까지 다 만들어 놓았다.춘향테마파크 안쪽에는 국립민속국악원이 있다. 여기에는국악기를 전시해 놓은 시설이 있어서 각종 국악기를 설명과함께 볼 수 있다. 역대 명창들의 사진과 이력도 소개되어 있다. 이곳은 공연단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언제나 소리와 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물론 정식 공연이 아니고 연습하는 광경이긴 하지만, 미리 신청을 하고 가면 참관이 가능하다.남원 시내를 벗어나 남한 최적의 패러글라이딩 장소라는적령치 가는 길로 가다 보면 춘향묘가 나온다. 물론 가짜 묘이다. 춘향이는 실제 인물이 아니고 소설 속의 인물이기 때문에 묘가 있을 리 없다. 그러나 남원 사람들은 춘향이가 실제 인물이기를 바란다. 그 간절한 마음이 춘향 묘까지 만들어 놓게 했다.춘향묘에서 조금만 더 가면 육모정이란 정자가 나온다. 육모정 곁에는 명창 권삼득이 판소리를 수련했던 곳이라는 표석이 있다. 육모정에서 구룡폭포까지 이어지는 골짜기는 피서객들이 자주 찾는 명소이다. 물론 예전에는 소리꾼들이 한여름에 이곳에 와서 소리를 수련하기도 했다. 고인이 된 강도근도 6.25 후에 날마다 도시락을 싸가지고 이곳에 와서 소리를 연습했다고 하였다.육모정에서 적령치를 넘으면 바로 노고단으로 가는 성삼재다. 이곳으로 바로 가지 말고 국악의 성지로 알려진 운봉을 들러 잠시 쉬었다 가는 것도 좋다. 운봉에서 함양 쪽으로가다보면 왼편에 황산대첩비지를 알리는 큰 돌이 서 있다.황산대첩은 고려말 이성계가 왜구 아기발도와 싸워 대승을거둔 전투를 가리키는데, 이를 기념하는 비각이 있는 곳이운봉면 화수리이다. 본래 황산대첩비는 여러 조각으로 깨진채 버려져 있고, 그 곁에 새로 비석을 세웠다. 일제강점기에일본인들이 자기들의 조상들이 대패한 것을 기리는 비라는이유로 넘어뜨려 깨버렸다고 한다. 비를 무너뜨린다고 패배한 역사가 사라질 리 있겠는가. 바로 이 비가 있는 마을이 동편제 판소리의 시조이자 가왕으로 일컬어졌던 송흥록이 살았다는동네이다. 그러니까 송흥록의 동생 송광록도 당연히 이곳 출생이다. 그뿐인가. 근세 최고의 여창 중의 한 사람인 박초월도 이 마을에서 자랐다. 그래서 최근에 송흥록과 박초월의 생가를 복원해 놓았다. 복원 생가 마당에는 소리를 하는 송흥록의 동상이 세워져있다. 잔디밭에는 판소리 장단을 표시한 화강암 조형물이 아름답게 놓여 있다.박효관과 함께 <<가곡원류>>를 편찬한 안민영의 <<금옥총부>>라는 시조집에는, 그가 1842년 가을 순창에 내려왔다가 주덕기와 함께 남원 운봉의 송흥록 집에 들러, 신만엽, 김계철, 송계학등 명창들을 만나 수십 일을 잘 놀았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은 큰길에서도 한참 들어가야 하는 한적하고 보잘 것 없는 마을이, 한때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창들이 모여 소리를 주고받던 곳이었던 것이다.이 마을 건너편 산자락에는 국악의 성지가 조성되어 있다. 국악전시체험관, 독공실, 야외공연장, 국악인의 묘역, 사당 등이 배치되어 있으며, 기악, 정악, 명창들의 기증 유물 등이 전시되어 판소리를 비롯한 우리 음악의 모든 것을 엿볼 수 있고 체험할 수 있는곳이다. 남원시립국악단이 이곳에 들어 있기 때문에 연습하는 광경도 볼 수 있다.함양 쪽으로 더 가다보면 동면 성산리에 이르는데, 이곳이 흥보가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인근에 있는 아영면 성리 또한 흥보가살았던 곳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말썽이 생기자, 동면 성산리는흥보·놀보가 본래 살던 곳, 아영면 성리는 흥보가 쫓겨난 후 부자가 된 곳으로 정리하였다. 흥보·놀보가 실제 인물이 아니니 살던 곳 또한 있을 리 없지만, 아무리 허구라 할지라도 실제를 기초로 해서 만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 부근을 둘러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남원은 소리의 고장답게 곳곳에 판소리 관련 유적과 시설이 많다. 마음만 먹으면 소리도 쉽게 들을 수 있다. 게다가 남원은 지리산이라는 좋은 산을 곁에 두고 있다. 육모정 계곡에 몸을 담그기위해 가는 길에, 아니면 지리산 뱀사골이나 달궁계곡, 칠선계곡을가는 길에 몇 군데 더 들러 잠시 전통의 향기를 떠올려 봄 직하지않은가? 가는 곳마다 시원한 솔숲과 정자가 있어 잠시 땀을 식히기에도 좋다.올여름엔 피서 가는 길에 우리 문화 역사의 현장도 꼭 들러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