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8 |
[서평] 「왜 예술가는 가난해야할까」- 한스 애빙 저
관리자(2011-08-17 19:04:54)
‘신성함’이 가려온 예술경제의 현실
- 김동영 문화포럼 이공 대표
자본주의의 발전과 모더니즘 가치의 형성은 이익추구와 합리적 판단과의 연결고리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적은시간을 들여 최고의 이익을 남기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경제는 물론이고 정치, 사회 심지어는 교육부문까지 스며들었다. 그 결과 가내수공업, 가정교육 등과같이 효율성이 떨어지는 많은 분야들이 사라졌다.하지만, 여전히 투자대비 생산효율이 매우 낮은 비효율적인 분야인 예술분야는 사라지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예술가가 되겠다는 후보군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 대부분의예술가들이 예술활동을 통해 생계조차 유지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예술과 상관없는 일을 하면서 까지 굳이 예술가라는 직업을 유지하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실제로 예술적 활동과 일반적인 경제활동과 차이가 있기는있단 말인가?사실 예술경제와 일반경제는 모두 수요와 공급이 가격을 결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거래가 이루어진다는 측면에서 크게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일반경제활동은 경쟁에서뒤처지는 사람은 도태되고 사라지지만 예술경제에서는엄청난 기부와 지원이 존재하며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예술가들이 작품활동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이러한 차이를 만드는 것은 예술경제가 돈과 상업성을외면하면서 신성함을 강조해야만 더 많은 돈을 버는 예술경제의 특수성에 기인하고 있다. 예술가들도 예술작품을팔아서 생계를 유지하지만 예술작품이 여타의 생산품처럼 돈과 거래되는 상품으로 인식되는 순간 예술작품의 아우라는 사라지고 만다. 벤야민은 아우라를 아무런 작위적의지가 기능하지 않는 순간 마치 어떤 쇼크처럼 일시적으로 떠오르는 하나의 영적인 기운이라고 정의했는데, 많은예술가들과 애호가들은 예술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신성함을 작품의 핵심적 가치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그렇다면 예술과 신성함은 언제부터 하나의 짝을 이루게 되었으며, 예술의 신성함은 예술과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을까?르네상스 이전에 개인이란 집단의 구성원에 불과했다.하지만 르네상스 이후 사회적으로 고유함의 가치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자 고유함의 가치는자유분방한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더욱 더 널리 퍼졌다.내면에서 우러나온 관조적인 시선과 창조적 영감으로 피안의 세계에서 진리를 발견하는 능력은 낭만주의 예술가들의 전유물이었다. 19세기 초반에 들어서면서, 신흥자본가세력과 함께 자유분방한 예술가들이 예술세계의 중심세력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그러나 신흥자본가가 기술과 재화 등 물화된 이데올로기를강화한 반면에, 낭만적인 예술가들은 감성적인 차원에서 대안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낭만주의 시대 이후, 예술세계의 고유함과 신성함에 대한 사회적 가치는 꾸준히 높아졌고, 예술세계를 향한 신흥자본가세력들의 존경심 역시 꾸준히 커졌다.여기서 영화 <카핑 베토벤>에서 베토벤의 대사와 행동을한번 보자. 베토벤은‘신께서 어떤 사람 귀엔 속삭이지만, 내게는 고함을 지른다. 그래서 귀가 멀었다’고 한다. 그리고‘신의 목소리를 듣고 신의 입술을 읽어 신의 자식들을 태어나게 하는 것이 음악가’라고 이야기한다. 자신을 도와 악보를 정리하는 안나 홀츠의 애인인 건축가가 심혈을 기울여 설계한 다리 모형을 지팡이로 부수고는‘그 다리엔 영혼이 없다. 너는 육지를 잇지만, 나는 영혼을 잇는다’고 말한다. 그옆에 있던 건축전시관은 비서에게 베토벤의 말을 적어놓으라고 지시한다.귀머거리 베토벤이 신의 목소리를 듣고 작곡한 합창 교향곡의 성공은 예술의 신성성을 더욱 강화하는 신화의 역할을한다. 또한, 베토벤이 살았던 18세기에 예술은 신성한 영역에 있었으며, 그 당시 새롭게 떠오르고 있던 신흥자본가들은예술가들의 신성한 지위를 필요로 했다. 신흥자본가세력은예술작품으로 집안을 가득 메우거나 뛰어난 예술가의 음악을들으면서 예술가의 초월적 영혼을 공유하고자 한다.여기서 자본가와 예술가의 밀월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한다.자본가는 돈이 되지 않더라도 영적인 영역에 있는 예술작품을 구매함으로써 부족한 문화적 자본을 채우고, 예술가는 대중들에게 상업성을 강조하지 않음으로서 신흥자본가에게 더높은 경제적 가치를 보상받는 시스템이 형성된 것이다.19세기 신흥자본가와 예술가들이 만든 예술의 신성성에대한 의미화는 이미 그 세계에 진입한 소수의 예술가와 다수의 가난한 예술가들이 소수의 예술세계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 게이트 키퍼(교수, 평론가 등)에 의해‘상업성은 예술의품격을 떨어뜨린다거나 예술은 현실과 동떨어진 초월적 존재이다’라는 식의 재의미화를 통해 더욱 강화된다.또한, 20세기 들어 예술에 대한 정부지원정책이 추진되고정부가 최대의 후원자가 되면서 예술경제는 시장영역보다 후원영역의 비중이 더욱 큰 특수한 영역으로서의 특징을 더욱강화한다. 정부의 예술지원은 예술의 신성성과 더불어 공공성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면서 예술가의 수를 더욱 증가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 결과 최근 예술분야에 대한 1인당 정부지원 및 국민 1인당 지출규모는 크게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들의 소득수준은 정체되어 있거나 오히려 더 감소했다.역사적으로 인류는 항상 신성한 영역을 만들어 두었고, 신성한 영역에 특정한 가치를 부여한다. 합리성으로 가득 찬현대사회는 예술이라는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가치를 신성한 영역에 남겨 두었다. 그러나 신성한 영역에 부여된 특정한 가치는 특정집단의 이해관계와 관련되어 있으며, 예술에 대한 정부지원이 예술의 과잉공급을 생산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