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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 | 칼럼·시평 [서평]
「1980년대 한국 사회와 지배구조」
사회과학 연구모임(2003-09-08 11:06:25)

1.
지난 88년 6월 '학계의 민주화와 진보적 학술연구'를 표방하는 10여개의 학술단체가 모여 '80년대 한국 인문사회과학의 현 단계와 전망'을 주제로 심포지움을 개최한 바 있다. 여기에서는 소위 '제3세대'학자들에 의한 기존의 사회과학의 몰 역사적, 반민중적 전통에 대한 집단적 문제제기가 이루어졌고 '민족적, 민중적 학문'의 민족현실과 민중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민중의 고통을 최소화시키는 실천적 작업에서 사회과학(또는 사회과학자)이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학문의 당파성선언 또는 학술운동의 원칙수립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제 1회 심포지움에서의 이러한 선언은 기성학계의 보수성에 대한 비판 및 기존의 한국 사회과학 전통의 부정을 통해 비판적 과학을 정립함으로써 변혁운동의 객관적 요구에 부응하는 학문의 실천성을 확보해야한다는 주장으로 나타났지만, 전반적으로 주장에 비해 과학의 실천성을 구체적, 실증적 분석을 통해 채워나가는 작업은 미약했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제1회 심포지움은 '주장'을 '내용'을 통해 현실적인 힘으로 전화시키는 일을 남겼다 할 수 있다.
89년 9월 연세대에서 개최되었던 제 2회 학술단체연합심포지움은 제 1회 심포지움에서 남겨진 이러한 과제를 부분적으로나마 해결하는 자리였다고 볼 수 있겠다. 제 2회 심포지움의 주제였던 '1980년대 한국사회와 지배구조'는 한국사회의 지배구조의 본질을 구체적, 실증적 수준에서 밝힘으로서 변혁운동의 과학적 토대를 마련하려는 목적에서 선정된 것으로, 이는 진보적 학술단체들이 민족적, 민중적 학문의 내용을 채워나가는 과정에서 얻은 지난 1년간의 성과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2.
심포지움에서 발표된 글들을 묶어 같은 제목으로 풀빛사에서 펴낸 '1980년대 한국사회와 지배구조'는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에서는 한국사회 지배구조의 형성 및 변화과정에 대한 이론적이고 역사적인 고찰을 행한다. 특히 한국정치연구회의 「신식민지파시즘의 이론구조」에서는 1980년대 정치체제의 성격을 신식민지파시즘으로 규정한다. 이 글에서는 신식민지파시즘(이하 신식파지즘)이란 신식민지(종속) 자본주의국이 종속적 국가독점자본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배태되는 구조적 위기를 해소하려는 부르조아적 반동의 한 형태라고 규정하면서 사회구성론으로서의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이하 신식국독자)의 상부구조로서의 신식파시즘을 1980년대 한국사회 지배구조의 성격으로 제시한다. 1부의 두 번째 논문인 산업사회연구회의 「1980년대 한국사회의 지배구조 변화」에서도 한국사회의 기본성격과 국가권력의 성격을 '파시즘 유형의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라고 규정하고 5공화국의 지배구조를 70년대 말의 위기구조에 대한 반동적 대응형태로서의 신식파시즘체제로 본다. 대체로 1부에서는 본서의 전체에 일관되고 있는 두 가지의 내용상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로 80년대 중반 이후 지속적으로 확대, 발전되어 왔던 사회 성격논쟁의 구도 속에서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론'으로 학계에서의 논의가 집약되고 있음이 확인된다. 물론 현재까지도 한국사회의 성격과 변혁의 내용 및 변혁주체를 둘러싼 다양한 논쟁이 진행 중이지만 사회인식의 과학방법론에서 우위를 확보한 신식국독자의 입장이 하계에서의 대세라는 점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학계의 입장이 본서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어 제국주의 세계체제내의 신 식민지적 종속이란 상황 속에서도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발전은 진행된다는 '종속의 심화/독점의 강화'태제를 이론적 전제로 하거나 또는 실증적으로 입증하고자 하는 시도가 본서 전체에서 일관되고 있다.
둘째로 심포지움의 주제 자체에서 확인되듯이 본서의 모든 논문들이 국가권력의 성격(구체적으로는 국가와 내외독점자본으로 구성되는 지배구조)규명을 연구대상으로 택하고 있다는 점이 확인된다. 국가란 (자본주의)사회의 총체적 모순의 집약된 표현으로 곧, 계급비화해성의 산물이며 따라서 모순해결(=변혁)의 결절점이라는 사실을 중시하면서 그 성격을 정책적 차원에서 규명하는 작업이 본서의 전체적인 특성이다.
제2부에서는 1980년대 지배구조의 성격을 정책의 차원에서 사회제부문별로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사회보장정책, 언론정책, 노동, 농업, 여성정책 및 통일·북방정책, 교육정책, 입법정책 등 사회전부문을 통해서 검토한 80년대 지배정책의 기본방향은 대체로 내외 독점자본 및 정권의 요구를 반영하면서 제계급계층의 정치적 진출과 요구를 배제 또는 선별 수용하는 것으로 정리될 수 있다. 2부에서 확인된 한국사회 지배정책의 성격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겠다. 첫째 '종속의 구조적 심화 속에서 진행되는 독점의 강화'라는 제국주의 세계체제 속에서 한국사회의 지배체제는 자본운동의 원활한 전개를 위하여 제반 법적, 제도적 정비를 행하였으며, 뿐만 아니라 체제적 차원에서 까지 공권력의 확립을 통한 자유시장경제체제의 영속화라는 자본주의 운동의 논리는 관철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이러한 지배정책의 특성은 물리적 억압과 정치적 배제가 설득과 동의 보다 주요한 정책방식이며, 6공화국 정권에 의해 부분적 개량(의사개량화)의 시도가 나타나고 있으나 그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체제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제반 정책들 간에 어떤 유의미한 일관된 계획과 전망을 발견할 수 없다는 점 등으로 나타난다.
제3부는 종합토론을 위한 발제문으로 1,2부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서 한국사회의 80년대를 70년대 말의 경제위기로부터 촉발된 한국자본부의의 구조개편과 그에 조응한 군부파시즘체제의 등장기라고 보면서, 이러한 사회경제적 정치적 변동과정은 군부독재체제의 내용을 견지함에도 불구하고 민중운동세력의 확대에 의해 외형적인 지배방식에 상당한 변화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과도기라고 규정한다. 3부에서는 이러한 규정 속에서 현 단계 한국사회의 발전전망을 몇 가지로 정리하면서 변혁운동의 역사적 과제를 종합토론으로 이끌어내고 있다.
3. 이번 제2회 심포지움은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몇 가지 의의를 지닌다. 우선 지적될 수 있는 것이 진보적 학술단체 간에 한국사회의 성격에 관해 대체로 합의에 이르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것은 합의 그 자체의 의미 보단 기존의 사회과학에 대한 진보적 사회과학의 방법론적 차별성을 분명히 드러내 보였다는 점에서 일차적인 의미가 주어져야 한다고 보여진다. 둘째로 형식의 수준에서 연구자 및 단체 간의 공동연구가 진행되었다는 점도 학술연구의 집단화를 통한 과학의 운동화(또는 역량의 강화)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성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지배구조 및 정치체제의 성격규정과 지배체제의 지배정책 분석에 논의가 한정됨으로써 민중운동의 내용 및 단계에 대한 구체적 분석이 생략되고 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1부에서 잠깐 언급되었던 PD(민중민주)권력의 성격 및 변혁과정에서의 단계, 그리고 과제 등이 (물론 종합토론과정에서는 논의되었지만) 문건화되지 못함으로써 논의의 대중화를 이루지 못한 것은 이번 심포지움의 한계로 남는다. 마지막으로 논의가 (특히 제 2부에서) 부문별 정책분석에 치중됨으로써 제부문 간의 논의가 분리되는 감을 주는 것도 하나의 아쉬움이다. 대체로 이러한 것들은 현재 학문연구의 과학화와 운동화라고 하는 동시적인 작업이 이제 막 시작되었으며, 부단한 발전의 과정에 놓여 있음을 이해한다면 조만간 극복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3회 심포지움에 주어진 과제라는 점도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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