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군에서 2008년부터 매년 한여름에 진행되는 마을축제는 기존의 축제와 비교하여 형식이나 내용 측면에서 아주 판이하다. 처음 기획단계에서부터 농촌 주민이 구경꾼이 아니라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또 외지 기획사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 주민 역량이 축적될 수 있도록, 그리고 행정과 민간이 협력하고 다양한 주체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여러 시행착오를거치고 수정하면서 이러한 방향성은 강화되고, 프로그램은 세련되어지고 있다. 또 마을만들기 10년경험과 맞물려 농촌형 축제의 철학을 정립하고 더디지만 지치지 않고 조금씩 계속 진화하고 있다.
농촌이 살아야 문화도 산다
농촌이란 공간에서 자연환경과 농업 생산, 문화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 자연환경은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없고 항상 인간 사회와의 상호작용(농업) 속에서 재생산되고 확장되어 왔다. 이런 상호작용은 생산과 생활의 다양한 측면으로 확장되고 지역마다의 고유한 문화가 생성되는 셈이다. 먼저 농촌 공간의 기본 구성요소인 흙과 사람, 땅을 매개로 각각 농업, 농민, 농촌이 존재한다. 그리고 각각이 상호작용하면서 농촌 문화는 농경문화, 생활문화, 민속문화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여기에 가족과 마을, 자급이라고 하는 농촌적인 고유한 생활양식이 발현된다. 물론 자연적 특징이나 역사적 과정 속에서 각각의 상대적 크기나 상호작용 및 결속력, 외부와의 개방 정도 등에는 지역적인 편차도 존재한다. 그렇지만 도시와 달리 농촌은‘흙(자연)’을 상대로 한 노동이 있고‘땅(공간)’에 상대적으로 고착되어 있으며, ‘사람(노동)’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또 농촌 문화는 이러한 구성요소가 서로 강하게 결합되어 있고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중요한 특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농촌 문화를 재생한다고 할 때 문화만을 따로 떼어 바라보아서는 안된다. 농업 생산활동이 건전하게 유지되어 농민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고 농촌 마을이 재미있는 공간으로 바뀌어갈 때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박물관의 박제품처럼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돈(예산)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그래서“농촌이 살아야 문화도 산다”란 표현이 논리적으로 맞는 말이다.
농촌형 축제의 전형을 꿈꾸며
하지만 농촌은 20세기의 자본주의 편입과 식민지, 한국전쟁, 근대화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크게 바뀌었다. 지역사회를 스스로 조직할 수 있는 자치의 힘은 사라지고, 행정이 정책결정과정을 주도하며 예산으로 모든 것을 조율하는 시대가 되었다. 농촌 사회에서 행정의 힘은 너무 비대해져 있고, 지방자치와 주민자치의 역사는 너무 짧아 시행착오가 반복되고 있다. 해야 할 일은 많지만 어디서 어떻게 돌파구를 찾아야할지 난감할 때가 많다. 진안군 마을축제는 이처럼 어려운 농촌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농촌살리기, 살기 좋은 마을만들기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2007년에 개최했던 제1회 마을만들기전국대회의 경험을 받아들이고 확장한 것이 마을축제인 셈이다. 그래서 마을축제는 마을만들기 활동과 매우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다.
“농촌 현실과 축제 원형의 조화”
이처럼 마을축제는 축제의 바람직한 원형을 생각하며, 농촌 현실에 어떻게 접목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해 항상 고민해왔다. 이어받을 전통이 부족하거나 단절되었다는 현실을 인정하되, 지나치게 인위적인 것을 배제하고 주민들 스스로 지역 현실에 맞게끔 새로운 문화를 형성해야 한다는 방향성을 가진 셈이다. 먼저, 마을 주민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방향을 원칙으로 하되, 내부 역량이 부족함을 충분히 인정하고, 행정이나 외부 단체가 조심스럽게 개입하고 도와주며 주민들의 자발적 역량 강화를 의도해왔다. 한 곳에 집중하거나 외부 기획사를 끌여들여 좀더‘폼나게’하라는 외부 요구를 적절하게 조율하면서 마을 주민들의 역량이 축적될 수 있도록‘시간과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둘째, ‘근자열/원자래(近者悅/遠子來)’라는 공자 말처럼 살고있는 주민들이 구경꾼이 아니라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즐길 수 있는 방향을 기본으로 한다. 전야제나 공연 행사에는 최대한 지역주민들이 등장하도록 하는 것도, 또 축제의 주된 초청손님으로 고향을 떠난 출향인을 제1순위로 생각하는 것도 이런 취지 때문이다. 셋째, 마을공동체를 복원하고 지역발전에 기여하는 방향을 지향하면서 일시적 이벤트 중심이 아니라 마을 내부의 역량 강화를 통해 단계적으로 확산시키는 전략으로 접근해왔다.‘지금 당장’에 새로운 축제 문화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긴 호흡을 가지고 축제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선입관을 극복하고자 한다. 마을축제의 지향성과 전략은 이처럼 명확하지만 이것을 현실속에서 풀어내기에는 상당기간 기술적인 훈련이 필요하였다. 축제의 지향성과 현실 사이에서 고도의 기획력이 요구되고 있는 셈이다. 대개는 기존 축제에 대한 고정관념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이지만, 이 또한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 셈이다.
시행착오를 극복하며 진화하는 마을축제
마을축제는 2008년부터 시작되어 축제 시기와 장소, 프로그램 등에서 조금씩 차이가 있어 왔다. 대체로 시기는 7월 마지막 주에서 8월 첫 주에 걸쳐 한여름 휴가철로 고정되었고, 장소는 공모 형식으로 참여하는 20~30개 마을과 진안읍 일원으로 흩어져 진행된다. 특히 전야제 행사는 전체 300개 마을(행정리)의 중심 공간으로 규정한 진안군청 앞 느티나무 광장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프로그램은 주민들 스스로 기획하는 마을별 작은 잔치를 가장 메인행사로 하여, 이를 보완하는 형태로 마을을 주제로 한 공모 행사로 구성된다. 마을을 서로 이어주는 작은 학교, 우체국, 주민자치위원회 등이 매년 참가하고 있고, 출향인잔치나 폐교 동창회, 회혼례, 빠가(동자개)낚시, 한일교류 등도 특색있는 프로그램들이다. 아주 많은 프로그램을 좀더 효과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축제 신문을 별도 발간하는 것도 진안군 마을축제의 큰 특징이기도 하다.매년 공모 형식으로 슬로건을 정하고 있는데, 이 또한 마을축제의 특징과 당시 이슈를 잘 보여주고 있다. 또 매년 집계하는 방문객수(연인원)와 마을수입금 통계를 보면 외형적으로도 계속 커지고 있음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사시사철 마을축제의 천국, 진안 만들기
진안군 마을축제 또한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그래서 끝이 없이 진화하는 축제이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에 있다. 농촌의 구조적 현실과 맞물려 오랜 시간 속에서 풀어가야 할 숙제들인 셈이다. 예를 들어, 전체 마을이 아니고 일부 마을만의 참가라는 점, 주민들의 자발적 참가와 자원봉사가 미흡하다는 점, 축제 조직위가 상근체제가 아니라는 점 등이다. 무엇보다 기존의 대형축제에서 유래된 고정관념을 극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어떤 축제가 바람직하고 좋은 것인가? 여기에 대한 정답은 없을 것이다. 제기되는 모든 논란들은 서로가 농촌발전이란 애정을 가지고 열심히 참여하면서 함께 풀어가야 할 오래된 과제들인 셈이다. 진안군 마을축제는 애정어린 충고와 따가운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면서, 또 상호학습과 토론, 합의의 민주적 절차를 거치면서 계속 진화해 갈 것이다. 이를 통해 농촌 마을공동체가 살아나고‘사시사철 마을축제의 천국, 진안’을 만들어가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