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의 문화예술공간은 예술인과 일반인의 경계가 없다. 누구나 어떤 형태로든 작가가 되어 작품을 내놓고 전시할 수 있다. 자신의 고향이자 삶의 터전인 진안의 풍경과 흔적을 담아내는 모든 사람들이 작가가 되는 그곳, 그래서 진안은 더 아름답다.
한 때 열심히 쌀을 찧던 정미소는 박물관이 되어 마을 사람들의 추억이 담긴 물건을 보여준다. 마을주민들이 찍어두었던 결혼이나 회갑잔치 때 사진은 물론이고, 어느 시어머니의 보따리 속에 꽁꽁 담아두었던 버선 본, 결혼 전 남편이 보내온 연애편지, 큰아들의 초등학교 성적표와 받아쓰기 시험지가 전시 되었다. 용담댐으로 수몰된 950만 평의 땅.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물속으로 가라 앉아 버린 고향땅을 용담호 미술관에서 그려볼 수 있다. 창작공간을 제공하고 그 공간에서 작품 활동과 예술인들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진안 예술창작스튜디오는 올해 그 이름을 창작공예공방으로 바꾸어 새롭게 단장했다. 주민들에게 체험학습을 제공하기도 한다. 진안의 문화예술이 꾸준히 꽃피울 수 있는 사람과 공간과 갖추어져 있다면 이제 절실히 필요한 것은‘창작에 대한 지원’과‘타 지역과의 교류와 소통에 대한 지원’이다.
사소한 것들의 경이로움 - 진안 공동체박물관 계남정미소
정미소와 전시관. 언뜻 떠올려보면 절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장소가 아주 그럴듯하게 어울리는 곳. 바로 진안의 <공동체박물관계남정미소>다. 마령면에 위치한 계남정미소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곡식을 찧고 빻던 방앗간이었다. 오랫동안 힘차게 쌀을 쏟아내던 정미소는 어느새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해져 방치되었다. 그러던 곳이 사진작가 김지연의 손길을 거쳐 2006년 5월 <공동체박물관계남정미소>라는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기억 속으로 사라져가는 정미소를 문화체험공간으로, 새로운 소통의 장으로 만들고자 한다. 지금까지 문화적으로 소외 되었던 지역 주민을 위한, 그리고 주민 스스로가 참여하는 생활문화 공간으로 만드는데 큰 의미를 두고 있다”고 김지연 관장은 말한다. 이곳에 걸린 작품들은 마을 사람들이 안방 장롱서랍 속에 넣어놓고 가끔씩 꺼내보며 지난 세월을 반추하는 손 때 묻은 물건들이다. 개인적인 물건들을 공개적으로 전시하겠다고 하면 할머니, 할아버지는“뭐, 그런 것을 남사스럽게 걸려고 한디야”라며 손사래를 치지만 결국 못 이긴 척 넘겨주신다. 그리고 어떤 사연이 담겨 있는지 옛 이야기들을 조근조근 한 자락 펼쳐 내신다.물론 값비싼 물건은 아니지만 이를 보관하고 바라보는 사람들의 손길과 눈길이 모여 옛 사람들의 삶은 잊히지 않고 계속해 기억되는 것이다.
수몰로 사라진 그리운 고향을 담은 곳 - 진안 용담호 미술관
전북의 젖줄인 용담댐. 2000년 11월부터 담수에 들어갔던 용담댐 물 밑에는 사람들이 살았었다. 물에 잠겨 사라지기 전의 마을모습을 글과 그림에 담아 고향을 잃어버린 이들의 향수를 달래주는 곳, 용담면 수천리에 자리한 <용담호 미술관>이다. 이곳은 용담호 주변에 있던 수천 휴게소를 리모델링한 곳으로 2010년 5월에 개관했다. 1층은 진안이 고향인 한국화가 김학곤 씨와 서예가이자 이곳의 관장인 여태명씨의 작업실이다. 이들은 고향을 기억하고 그리워하고 남기기 위한 방법으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2층에는 이들의 작품인 수몰마을 기록화와 시화가 전시되어 있다. 지역작가와 주민들의 기획전시전이 열리기도 한다. <용담호 미술관>에서는 잊혀져 가는 마을의 옛 모습을 반추해볼 수 있다. 작품을 통해 학교와 방앗간, 기름진 들녘, 눈 덮인 마을 풍경 등 수물 전 모습 그대로를 떠올리게 한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위안을 주는 장소다. 그곳에 살았던 이들의 마음속을 제외하고는 물에 잠겨버린 고향이 존재하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진안예술인들의 창작공간, 주민들의 예술체험장 - 창작공예공방(구 예술창작스튜디오)
지역예술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우선 작업 공간이 확보되어야 한다. 때문에 외국에서는 이미 활발히 시행되고 있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진안에는 예술인들을 비롯해 관심 있는 일반인이 모여 작업 할 수 있는 공간으로‘예술창작스튜디오’가 운영돼 왔고 지난 2008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 공모사업에 선정돼 <창작공예공방>이 조성되어 2011년 8월 말 개관했다. 은천마을의 폐교를 이용해 지은 <창작공예공방>은 진안 예술인들의 창작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 공간은 작가뿐만 아니라 미술에 관심 있는 일반인들에게 문화공간으로 호응을 얻은 곳이다. 도예에 관심 있는 이들이 모여 흙을 이용해 생활도자기를 만들기도 하고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미술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서각회를 이루어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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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안창작공방육성회 대표이자 도예가인 유종구 씨는“현재 진안의 예술 공간은 외곽지역에 자리하고 있어 접근성이 낮다. 찾아오는 사람이 많지 않다면 공간으로서의 의미도 없다”며 폐교나 구 관공서 건물 등 비어있는 공간을 이용해 진안지역의 부족한 예술 공간을 확보할 것을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