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살아온, 살고 있는 공간에 대한 추억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 평범한 이야기꺼리들을 특별하게 풀어놓은 작업이 바로 <동동동>이다. 동문거리와 동부시장 일대를 삶터로 삼아온 상인과 주민들을 조사해, 그것을 다양한 예술양식으로 풀어내겠다는 야무진 프로젝트다. 12월 17일부터 1월 15일까지 동문거리‘장가네 왕족발’에 붙어있는 작은 스튜디오에서 이 프로젝트의 1차 결과물이 전시되고 있다.
인문학도도 디자이너도 모두 작가
이 작업의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은 동문거리 토박이로 살아온 사진작가 장근범 씨. 그는“내가 살아온 이 거리에 대해 다른 주민들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궁금했고, 더 시간이 지나기 전에 그 기억들을 기록해 보존하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농촌마을과 시장, 골목 등에 대한 조사는 최근 다양한 형태의 마을과 공동체 사업이 늘면서 종종 진행돼왔다. <동동동>은 기존의 마을조사와 사뭇 다르다. ‘동네’라 이름붙인 프로젝트 팀의 구성에서부터 드러난다. 문화인류학을 전공하는 인문학도, 아마추어 화가, 시를 쓰는 교사, 디자이너, 베이스연주자. 쉽게 생각하기 힘든 조합이다. 장근범 씨는“주민과 골목에 대한 조사는 함께 진행하지만 서로 다른 매체를 활용하는 사람들들은 서로 다른 표현을 할 것이라 생각했다.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궁금했다”고 설명했다.2011년 초부터 모인 이들은 한 해 동안 동부시장과 동문거리를 쏘다니며 주민들의 증언을 채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각자의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문화인류학도는 전공을 살려 이야기 수집을 맡았고, 화가는 그것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사진작가는 상인들의 사진을 찍었고 베이스연주자는 바하의 무반주 첼로 조곡을 수집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재해석해 연주했다. 디자이너도 자신의 해석대로 책을 만들었다. 연구분야를 맡았던 양귀영 씨는“조사에는 모두가 참여하되 결과물을 만들 때는 서로의 해석을 존중했다. 책이 나올 때도 디자이너의 해석을 존중하기 위해 시안도 보지 않고 온전히 그의 작품으로 만들도록 했다”고 말했다. 예술과는 거리가 있는분야의 팀원도 있었지만 서로의 작업을 존중하기 위해 모두를 작가로 불렀다고. 양 씨는“우리 모두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 프로젝트를 통해 함께 성장하고자 서로를 작가로 불렀다”고 설명했다.
희노애락이 배어있는 상인들의 이야기
1년간의 노력은 한권의 책과, 한편의 뮤직비디오, 9점의 그림, 그리고 여러 장의 사진으로 남았다. 그 안에는 동문거리와 동부시장에서 살아온 이들의 기억들이 고스란히 담겼다. 목공예와 서예를 취미로 하는 철물점 사장님의 이야기. 다른 동네에서 주차장 관리인으로 생계를 꾸리면서도 가게 문을 닫지 못하시는 양복점 사장님의 이야기. 한 때 동문거리와 동부시장에 50여개의 양복점이 있어 양복거리로 불렸다는 이야기와, 어찌나 사람이 많았는지 비오는 날 창밖으로 내다보면 알록달록 우산이 그렇게 예뻤다는 이야기를, 이곳에 터 잡고 살아온 이가 아니라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 건물이, 그 건물 같고, 그 사람이 그 사람 같던 골목도 이렇게 색색의 이야기를 입혀놓으니 새롭게 보인다. 양귀영 씨는“이 거리에 살아온 분들 모두 하나하나 애절하고 유쾌한 사연들을 간직하고 있었다. 우리끼리만 알고 있는게 아까울 정도다. 이번 작업을 통해 이 거리의 이야기를 아시게 된 분들이라면 오며가며 주민분들께 한마디씩 자연스럽게 건넬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동네’팀은 이 프로젝트를 매년 이어갈 계획이다. 올해 주민들 개개인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들었다면, 내년에는 관계에 보다 집중할 생각이다. 주민들의 사진첩에서 수집한 동네의 옛사진들도 따로 전시회를 통해 선보일 예정이다. 동부시장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연극이나 영화 등도 고민 중이라고. 장근범 씨는“언제까지가 될지는 몰라도‘동네’팀 모두가 함께 꾸준하게 이 거리의 이야기들을 기록할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이 기록들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을 모아 아카이브나 박물관처럼 꾸미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