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군 번암면, 남원과 맞닿은 이곳에 논곡(論谷) 또는 논실이라 불리는 땅이 있다. 높은 산자락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들판 사이로 요천이 북에서 남으로 흘러간다. 이 산자락에 나지막하게 자리 잡은 마을은 그 형국이 주경야독의 선비처럼 낮에는 들에 나가 일하고, 밤에는 등불아래 모여앉아 학문을 강론하는 것과 같다고 하여 논할 논(論)자를 붙여 논실이라 불렸다고 한다. 이 범상치 않은 이름의 땅에 우연찮게도 특별한 학교가 자리 잡게 됐다. 지난 2006년부터 폐교된 대론초등학교를 되살려 문을 연 논실마을학교다.
선입견을 버리고 함께 탐구하는‘연찬’
한 달에 한번 이 학교에서는 인문학을 주제로 열띤 강연과 토론이 펼쳐진다. 인문학이라고 해서 고전을 놓고 강론하는 방식은 아니다. 고전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특별한 교재 없이 강연과 토론, 질문과 답변이 이뤄진다. 배움과 앎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에서부터 마을공동체에 대한 실천적 고민이 이어지고, 인간 의식의 진보를 탐구하기 위해 명상과 자연과학의 전문가들이 강사로 나선다. 이 자리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전주, 광주 등 도시지역의 사람들이 한참을 차로 달려온다. 먼 걸음을 보상받기 위함일까. 한번 강연이 열리는 날이면 10시간이 넘도록 서로의 생각들을 주고받는다.“강연이라기보다 우리는 그걸 연찬이라고 하는데, 이론이나 사상, 방법, 실천의 모든 영역에서 뭔가 하나로 단정 짓지 않고 열린 자세로 함께 진리를 탐구한다는 뜻입니다. 누가 일방적으로 가르침을 주고 받는 게 아니라 서로 들어주는 자세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강사나 참석자들이나 놀랄 정도로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하더군요.”논실마을학교 이사장의 이남곡 선생의 설명이다. 평범한 산촌에서 시작되고 있는 이 심상치 않은 운동의 중심에 선생이 있다. 민주화투쟁에 앞장서다 1979년 남민전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선생은 출옥 이후 물질적 진보가 아닌 인간 의식과 생활의 진보에 대해 탐구해왔다. 1996년부터 8년 동안은 무소유 공동체인 경기도 화성의 야마기시 실현지에서 생활했으며, 이후 그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해 2004년부터 장수군 번암면 유정리에‘좋은 마을’을 일구고 있다. 2009년에는 그동안의 사유를 바탕으로『진보를 연찬하다』를 발간했고, 출옥 이후 공부해온 <논어>를 주제로 또 한권의 책을 준비 중이다. “야마기시 공동체에서 생활하면서 느낀 것이 있습니다. 무소유를 바탕으로 한 공동체라는 게 좋기는 하지만 아직 자본주의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기 힘든 부분이 있어요. 의식이 성장하지 않았는데 시스템이 먼저 만들어지면 무리가 되고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특별한 규칙과 규율 없이먼저 좋은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마을을 만들어보고자 전국을 돌아다니다 장수에 터를 잡게 됐지요.”시스템의 진보 이전에 의식의 진보가 필요하다는 깨달음은 곧 논실마을학교의 정신과도 일치한다. “인간이 물질과제도에 기반을 두고 발전을 해오다보니 실질적으로 엄청난성장을 했지만 부작용 또한 크지 않습니까. 대안을 제시해야할 진보 역시 마찬가지로 물질과 제도를 중심으로만 사고하다보니 마땅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요. 이제는 의식과생활의 진보를 먼저 실천해야할 시기가 왔다고 생각합니다.”이것이 바로 선생과 논실마을학교가 추구하는 신인문운동이다.
한 노동운동가의 꿈, 인문학교의 기반이 되다
그러나 선생 역시 처음부터 인문학교를 구상하고 장수에 정착한 것은 아니었다. 우연히도 이곳에서 비슷한 뜻을 품은 이를 만나 인연을 맺은 것이다. 처음 논실마을학교를 꾸린 것은 노동운동가였던 故조문익 씨. 전북지역 내에서 이론과 실천 모두 뛰어난 노동운동가로 치열한 활동을 펼쳤던 그는 2004년부터 생명공동체 운동에 눈을 돌려 2006년에 대론초등학교 폐교 리모델링해 논실마을학교로 문을 열었다. 그안에서 처음 펼친 활동은 결혼이주여성 의 정착지원과 교육.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그 성과를 다보지 못하고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후 그의 유지는 부인 이현선 씨가 장수다문화가족지원센터 소장을 맡으며 이어가고있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장수읍에 자리 잡으면서 논실마을학교는 운영에 난관을 겪게 됐다. 그 시기 뜻있는 이들이 인근에서 공동체를 꾸리고 있는 이남곡 선생을 모셔 지난해부터 논실인문학교로 새롭게 태어나게 된 것이다.“조선생이 잘 닦아놓으신 덕분이죠. 조선생하고는 참 우연이라기에는 신기한 인연이 있어요. 제가 처음에는 진안에 자리를 잡으려 알아보고 있었는데, 그때 조선생도 진안 쪽에 터를 알아보고 있었어요. 그렇게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가 조선생이 함께 해주십사 제안을 해주셨는데 제가 장수에서‘좋은 마을’을 꾸리게 돼서 어렵게 됐죠. 그런데 조금 있다 조선생이 장수로 온다 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봤더니 바로 옆 마을에서 터를 잡았더라고요. 서로 의논을 한 것도 아닌데, 인연이 되려고 그랬나봅니다.”논실마을학교를 꾸려가고 있는 또 다른 주역들은 유기만 운영위원장을 비롯한 논실인문학교 기획단이다. 6명 가량으로 구성된 기획단은 인문학 연찬의 기획부터 실행, 평가를맡고 있다. 인문학교가 열리지 않는 시기에는 청소년 캠프등을 유치해 학교를 활용하기도 한다. 탈학교 청소년네트워크‘학교너머’도 논실학교 식구다. 버스로 전국을 유랑하며 학교 밖 배움을 실천하고 있는‘학교너머’의 베이스 캠프가 바로 논실마을학교. 청소년들에게는 어려워 보이는 인문학 연찬에도 종종 참석해 귀를 기울이곤 한다고. 덕분에 논실마을학교의 인문학 연찬은 10대 후반부터 50~60대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장이 된다.실상사에서 생명평화공동체 운동을 이끌고 있는 도법스님도 논실학교의 든든한 힘이다. 인문학 연찬의 취지를 듣고 기꺼이 논실마을학교의 고문을 맡아줬다고.
의식과 생활의 진보를 위한 신인문운동
지난해 인문학 연찬의 전반기는 화엄경을 바탕으로 한 도법스님과 논어를 바탕으로 한 이남곡 선생의 강연이 중심이 됐다. 경전과 고전에서 비롯되지만 그것을 교재로 활용하는 강연은 아니다. 별도의 예습 없이도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어려운 이야기만 오가는 것도 아니다. 뒷풀이 자리에서는 서로의 고민을 나누며 작은 공연도 즐기곤 한다. 지금까지 연찬에 참석한 이들은 도시에서 노동운동이나 시민운동에 종사하고 있는 활동가부터, 인근에서 마을공동체를 꾸리고 있는 젊은 이장과 농촌운동가, 또 인터넷을 통해 접하고 호기심을 느껴 참석한 이들까지 다양하다.“아무래도 평소에는 이런 자리가 흔치 않으니까, 그간에 쌓여있던 인문학적 욕구들을 채워 가시려는 분들이 많이 오세요. 각자 활동하는 분야는 다르지만 서로의 고민을 나누기도 하고요.”유기만 위원장의 설명이다. 이남곡 선생은“장기적인 목표는 이렇게 연찬에 참석한 사람들 사이에 인적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말한다.“한번 연찬으로 끝나지 않고 서로 네트워크를 만들어서 지속적인 운동을 만들어 가는 게 목표지요. 예전부터 만인회 형태를 생각해왔는데 만명 정도가 네트워크로 묶일 수 있다면 새로운 운동에 추진력이 충분히 될 거라고 봅니다.”올해 인문학교 계획은 기획단을 중심으로 준비 중이다. 지난해 첫발을 떼었다면 올해는 지난해의 평가를 통해 보다 본격적인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다. 먼저 4박 5일 일정의 집중연찬회가 2월 8일부터 12일까지 열린다. ‘논실연찬회 기본과정’이라 이름 붙여진 이 집중 연찬은 먼 거리에 거주하고 있어 월 1회 연찬에 지속적으로 참석하기 어려운 이들을위한 프로그램이다. 월 1회 가량의 인문학 강좌는 장수와 남원 등 인근 지역을 비롯해 차로 한 시간 거리 이내인 전주와 광주 등 도시 거주자들이 대상이 될 예정이다. 현재 인문학강좌의 성격상 인근 농촌지역의 주민들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 장기적으로는 이 거리를 좁히기 위한 프로그램도 고민 중이다.논실마을학교에서 일으킨 작은 파문이 곳곳에 퍼져나가고,또 다른 파문을 일으키는 것. 그것이 바로 이들이 바라는 신인문운동이다. 그 날을 위해 산골의 작은학교는 오늘도 분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