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공사에 몸살을 앓다
지난 해 내내, 그칠 줄 모르는 도로공사에 전주 한옥마을은 몸살을 앓았다.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랑하던 한옥마을은 차라리 하나의‘커다란 공사장’또는‘누더기 길’이란 표현이 더 잘 어울렸다. 길을 파내고 뚫는 공사는 한옥마을 곳곳에서 끝날 줄 모르고 약 1년여 가까이 지속됐다. 작년 3월에는 최명희길, 8월에는 경기전길, 또 9월부터는‘동문 상점가경관거리 조성사업’을 시작해 한옥마을에서 동부시장으로나가는 길목 공사가 진행 중이다. 도시가스, 상·하수도, 지중화, 경관정비, 도로정비 공사 등 각기 다른 명목의 공사들이 일정이 조율되지 않은 채 중구난방으로 진행되다 보니 불편은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공사로 인해 주요 거리는 모두 파헤쳐져 관광객은 물론 그곳에서 생활하는 주민들과 상인들은 큰 불편과 피해를 입었다. 공사가 진행되는 거의 1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차량 진입은 불구하고 보행자들이 길을 걷는 것조차 여의치 않았다. 인근상가의 상인들 또한 도로 공사로 통행이 제한되면서 공사가 시작되고 나서 매출액이 50% 이상 감소하였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곳 주민과 상인들은“공사 계획과 일정에 대한 안내도 없었고 공사로 인한 피해에 대한 배려 또한 없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공사가 계속됐고 이에 대한 문의를 할 사람은 공사현장의 인부뿐이었는데 들쑥날쑥한 공사 일정 때문에 이마저도 제대로 된답을 듣기는 어려웠다”고 얘기했다. 이렇게 난립하는 도로굴착공사에 대해 오평근 시의원은 작년 12월 21일, 전주시의회 정례회에서“2011년 전주시가 허가한 도로굴착공사는 399건으로 잦은 도로굴착공사로 도시 이미지 훼손과 세금이 낭비되고 있다”고 지적하며“도로굴착공사에 대한 심의 강화와 도로굴착 총량제를 실시할 것을 제안했다.
한옥마을, 왜 돌길인가?
이러한 도로굴착공사는‘한옥마을 문화적 경관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노후한 도시기반시설과 경관을 정비해 쾌적한 생활·관광여건을 만들겠다는 취지다. 공사가 마무리 된 한옥마을 거리는 사뭇 달라졌다. 전주시 한옥마을 문화적 경관조성사업 담당자는“인도와 차도 사이에 가로수를 심어 구획정리를 하고, 보행자 중심의 거리를 조성하기 위해 차도는 일방통행으로 바뀌었으며 불법주정차를 막기 위한 석재화분을 설치했다”고 설명했다.이 사업으로 한옥마을 거리 곳곳은 돌길이 되었다. ‘굴림보도판석’이라는 돌을 깔고 돌과 돌 사이를 흙이나 작은 입자의 자갈로 메운 것이다. 돌길이 조성된 이유는 무엇일까.전주시에 따르면‘한옥마을 거리를 전통적인 이미지로 개선시키기 위해 돌길이 조성’됐다. 전통적인 이미지에 어울리고 친환경적 소재인 돌을 이용해 길을 만들고 거리 곳곳에 돌을 이용한 시설물을 설치했다는 것이다. 또한 전주시는 주민과 관광객에게 쾌적하고 아름다운 환경을 제공하겠다는 취지로 한옥마을의 자투리 공간에‘녹색쉼터’를 조성, 수목과 휴게시설을 설치하였다. 도로와 주차장 조성 후 남아 있던 잔여부지에 가로수를 심고 꽃을 심어 놓기 위한 석재화분, 앉아서 쉴 수 있는 돌 벤치 등을 만들었다.이 경관조성사업에 따라 지중화공사로 경관과 통행에 방해가 되었던 전봇대가 사라지고 낙후되었던 기반시설이 정비,깔끔한 거리 조성이 되었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부정적인 평가 또한 만만치 않다. 좋은 취지와는 별개로 이들이 실제로 효용성을 발휘하는지는 의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더해 한옥마을이 정말 갖춰야 할‘편안함’이나‘안전함’같은 미덕을 놓친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돌길 자체가 울퉁불퉁함을 주는데다가 돌 사이를 메꾼 자갈과 흙이 새어나오면 이는 더욱 심해진다. 차량은 물론이고 자전거, 유모차, 그리고 바닥이 얇은 신발이나 높은 굽을 신고 걷는 이들, 캐리어를 들고 다니는 여행객이나 학생들에게 이 돌길은‘걷고 싶은 거리’가 아니다. 일반 보행자나 차량운전자 외에도‘장애인 이동권 확보’라는 점에서도 문제였다. 휠체어 통행을 어렵게 하는 돌길, 그리고 화단과 가로수로 좁아진 인도는 한옥마을을 찾으려는 장애인들의 발길을 어렵게 만들었다. 보행자 중심으로 조성되었다는 돌길이 실제로는 걷기에 평탄하지 않다는 점과 돌이라는 소재가 인체에 주는 충격이‘걷고 싶은 한옥마을’이미지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여기에 공사 후에 이뤄져야 할 안내 및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도 문제로 제기됐다. 제대로 된 안내표지판이 없어 일방통행으로 변경 된 후 이 곳을 처음 찾은차량 진입에 문제가 잦다는 것이다. 그리고 돌길에 벌어진 틈을 메우기 위해 다시 자갈과 흙을 깐다고 해도 이로 인해 생기는 먼지피해를 감당하는 것은 결국 이 거리를 찾고 이곳에 사는 이들이다.
한옥마을 경관조성에 있어서의 큰 문제점으로 행정과 주민의 의견 충돌에서 오는 갈등이 지적된다. 한옥마을을 관광지로 부상시키는데 중점을 둔 전주시와 주거지로서의 쾌적함을추구하는 주민의 욕구, 이 두 가지가 부딪히는데서 갈등이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전주시정발전연구소의 김인순 박사는“한옥마을 문화적 경관조성사업’은 2006년도부터 시작되어 2012년까지 진행되는 사업이다. 5,6년 전의계획이 지금 시점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에 대한 문제가있다. 경관조성에 관한 주민과 관광객의 요구 및 정비 상황등과 관련해 달라진 변수가 어떻게 수용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부재했다. 행정과 주민의 입장이 어떻게 절충되고수용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2006년부터 한옥마을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미술가이근수 씨는 한옥마을 거리 공사에 대해“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경관 조성”이 문제점이라고 이야기 했다. 그는“보이는 것에만 치중해 이곳을 실제로 걸어 다니고 이곳에 터를잡고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이해나 배려가 없었다”며 적절한공지나 안내 및 배려 없이 긴 공사기간에 따른 불편을 감수한 주민과 방문객에게 지금의 한옥마을 경관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지금의 한옥마을 거리는 모두 새로운 것들로 뜯어 고쳐졌다. 이곳이 과연‘전통’과 어울리는 곳일까? 자연스럽게 보존된 전통이 아닌 만들어진 전통이 한옥마을을 채우고 있다. 한옥마을에 중요한 것은그럴듯한 경관보다는 이곳 사람들이 생활하고 살아나가는 자연스러운 모습일 것이다. 이곳을 찾고 이곳에 살고 있는 이들을 배려하지 않은 한옥마을, 과연 누구를 위한 곳인지 생각해 볼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