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전북을 살찌운다
19대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총선은 대선과 같은 해에 치러져 어느 때보다‘전초전’의 성격이 강하다. 진보와 보수라는 기존의 대립구도도 잔뜩 날이 서 있는데다, 복지와 정치개혁, 야권연대 등‘큰 이슈’들이 늘어서있어 자칫 짚어봐야 할 다른 의제들이 묻히는 것 아닌가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지역 문화계에도 함께 풀어 갈 난제들이 산적해 있다. 《문화저널》은 오랫동안 지역문화를 고민해 온 전문가들과 좌담회를 통해 이번 총선에서 논의해봐야 할 아젠다를 꼽아봤다.이번 좌담에는 김성환 군산대 철학과 교수, 원도연 전북발전연구원장, 이종민 전북대 영문과 교수, 조법종 우석대 역사문화관광학과 교수가 참석해 지역문화의 과제와 정치인들에게 기대하는 역할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지역의 구체적인 문화정책은 국회의원보다는 지자체장과 지방의회에 의해 결정된다. 하지만 국회의원의 의지와 이해도에 따라 그 역할은 크게 확장될수도 있다. 참석자들은 정치계에서 지역발전에 대한 문화적 해석이 늘었지만, 여전히 어렵고 부가적인 요소로 인식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때문에 경제·복지 등의 부문경계를 넘어‘넓은 의미의 문화’에 대한 이해를 새로운 지역일꾼의 전제조건으로 꼽았다. 이들 전문가들은 문화부문의 아젠다를 선정하면서 다른 부문과 경쟁하거나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너지를 낼 수있는 요소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이종민 교수는“국회의원의 의지와 진정성에 따라 지역문화에 굉장히 심대하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수도 있다”며“국회의원이 지역문화현안에 관심을 갖고 포럼만 하나 조직한다 해도 단체장들을 충분히 움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국회·지자체·민간을 잇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과제로 꼽힌 것은 각 지역구 국회의원과 지자체장, 민간전문가를 아우를 수 있는 컨트롤타워 구성이었다. 현재 전라북도 내에는 다양한 문화자산들이 산재해있지만 이를 하나로 묶어 발전시킬 종합계획이 없다는 지적이다. 중앙의 지원 없이는 지역의 계획들이 실행불가능한 현실을 생각할 때 이는 중대한 약점이다. 기본적으로는 광역단체인 전북도의 역할이지만 중앙정부와의 교섭창구 역할을 하는 국회의원들과의 협의 없이는 원활한 계획과 추진이 어렵다. 전문가들은 어떤 형태로든 각 주체들의 논의가 긴밀하게 진행될 시스템 마련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김성환 교수는“각개 지자체의 전략이 하나로 종합되지 못하고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있다. 하다못해 같은 국에서도 과가 달라지면 협조가 잘 안 된다. 이런 식으로는 각개격파 당할 수밖에 없다”며“조정을 해서 전략을 짜고 구체적인 과제들을 배분해 실행할만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2000년부터 유교문화권 관광개발사업을 추진해온 경상북도와 안동시가 참고할만한 사례로 꼽혔다. 경상북도의 경우 중심지인 안동은 물론 도내 지역구 의원들이 함께 국회에서 유교문화권 사업을 제안하고 실행과정에 밀접하게 결합해왔다. 개별로 떨어져 있는 지역사업들은 국회에서 제안할 규모의 사업이 아니었지만 한데 묶어서 광역문화권으로 제시하자 문광부 뿐 아니라 국토부 등에서 폭넓은 원을 받을 수 있었다. 경북도는 유교문화권 사업이 성과를 거두자 경주권 화랑불교, 고령권 가야문화, 안동권 유교문화를 잇는 삼대문화권 개발사업을 수립하고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도 경북권 국회의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참석자들은 과거 전주시의 전통문화추진위원회와 같은 활동이 지속되지 못한것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조법종 교수는“문광부 관계자들은 전통문화추진위 활동을 인상적으로 기억 하더라”며“시나 도에서 사업이 올라오면 중앙에서 이걸 살필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말 그대로 중앙부처 관계자들을 괴롭힐 정도로 적극적인 요구를 해야 관철될 수 있다. 국회의원과 지자체와 결합이 돼야 그런 활동들이 시너지가 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북을 아우를 광역문화권을 구상하자
전문가들의 논의는 자연스럽게 광역문화권 구상으로 이어졌다. 경북이 추진하고 있는 3대문화권이나 공주와 부여를 중심으로 한 충남의 백제문화권과 같이 전북의 문화자산을 하나로 엮을 수 있는 장기적 계획이 필요하다는 것. 현재 전북권에는 전주를 중심으로 한스타일 육성종합계획과 전통문화중심도시 조성 사업이 추진되고있다. 전통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은 지난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1단계로 인프라구축을 위한 사업들이 진행됐다. 한옥마을 경관조성, 3대문화관 건립, 아·태무형문화유산전당 건립 등이 핵심이다. 올해부터는 2단계 사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정부의 한스타일 육성종합계획 역시 지난해로 마무리되는 모양새다. 올해 전주의 한스타일진흥원이 완공된 이후 중앙정부의 후속계획은 아직 세워지지 않았다. 일련의 사업들을 통해 전주와 전북권이 전통문화라는 브랜드를 확립했다는점은 성과로 남았다. 그러나 이후의 전망은 아직 미지수다. 전통문화중심도시 조성의 핵심인 한옥마을은 이미 타 지자체의 벤치마킹 대상이 돼 차별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스타일진흥원의 경우완공 이후 운영비가 확보되지 않아 자칫하면 애물단지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특히 문광부가 한스타일 육성종합계획의 후속격으로 전통문화산업진흥계획을 준비하고, 안동이 지역구인 김광림 국회의원이 전통문화산업진흥법(안)을 대표발의하면서 어렵게 만든 전통문화라는 브랜드마저 타 지역에 내줄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존의 브랜드를 지켜가면서 전주 외 시군을 포함하는 광역문화권 확대가 총선과 이후의 중심 아젠다로 제시되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조법종 교수는“문광부에서는 한류의 지속가능성이 결국 전통문화에 달려있다고 인식하고 있다”며“어차피 전주와 전북권이 전통문화라는 아이템으로 승부를 던졌다면 중앙의 아젠다를 우리지역의 아젠다로 가져올 수 있도록 선제적인 전략마련이 필요하다. 한 템포만 늦어진다면 그 기회를 놓칠지 모른다”고 말했다. 원도연 원장은“전북발전연구원과 전라북도의 세미나에서‘한류원형문화권’이 제안됐다”며“아직은 아이디어 수준이지만 한류의 원형인 전통문화, 그 중에서도 전북에 풍부한 자원인 전통의 맛과멋, 흥을 부각시키자는 제안이다”고 설명했다.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고도보존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익산을 중심으로 전북권에 일대에 산재한 백제말과 후백제 문화유산을 포괄하는 신백제문화권과 새롭게 가야고총이 발견된 장수를 중심으로 진안·남원의 가야문화권에 대해서도 해당 지역구 의원을 중심으로 일원화된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보편적 문화복지, 적극적 문화권리를 고민하자
전문가들은 19대 총선의 쟁점이 될 복지에 대한 논의에서도‘적극적 문화권리’와‘보편적 문화복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무상급식 논쟁 등을 거치며 복지의 개념이 기존의 시혜적 차원에서 보편적 복지로 넘어갔듯이, 문화부문에서도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 문화복지를 별도의 영역으로 생각하기보다 보편적 복지라는 큰 틀 안에서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민 교수는“문화는 특권층만이 향유하는 어떤 것이라는 인식은 많이 바뀌었다. 이제는 보편적 복지 개념과 문화권리가 연결될 것”이라며“문화바우처로 대표되는 시혜성 복지를 넘어 문화 향유를 시민의 적극적 권리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성환 교수는“현재는 문화와 관광의 영역이 중첩돼 산업으로서의 문화와 권리로서의 문화가 구분되지 않는다”며“대형 사업보다는 생활권의 10분 거리 이내에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문화 인프라 확충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전라북도가 올해부터‘삶의 질’을 강조하며 추진하고 있는 문화복지 확대도 중앙정부의 아젠다안에 포함됐을 때 더 실효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었다. 지난 2006년 이광철 국회의원에 의해 발의됐다가 사장된‘지역문화진흥법’도 19대 국회의원들이 재추진해야할 과제로 꼽혔다. 국토균형발전의 일환으로 발의된‘지역문화진흥법’은 수도권에 집중된 문화기반을 지역으로 분산이전하고지역문화 육성을 지원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원도연 원장은“단순히 나눠먹기식 분산이라도 현재와 같은 수도권 편중상황에서는 의미 있는 정책이 될 수 있다”며“그 안에 적극적 문화권리와 보편적 문화복지에 대한 내용을 보강한다면 지역의 문화생산자와 시민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