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과 피자展>(2월 14일~26일. 교동아트스튜디오)
도전과 실험정신, 젊은 미술을 꿈꾸다
이다혜 기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이제는 더 이상 특별한 문장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특히, 예술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예술가의 작품세계에 있어 한 곳에 고여 있기 보다는 지속적인 자기변화를 추구하는 예술가가 매력적인 것은 이 때문이다. 지난달 26일까지 교동아트스튜디오에서 열린 <전과 피자展>은 20대에서 50대까지, 6명의 작가들이 모여 넓은 스펙트럼의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였다.
갤러리의 신년 기획전은 보통 신예·신진작가 전으로 구성되기 마련이다. 여기에는 힘찬 한 해의 시작을 앞으로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들과함께하겠다는 의미가담겨 있을 터. 교동아트 스튜디오의 <전과피자展>을 기획한 이문수 큐레이터는 이런 관행이 식상하다고 생각했다. 나이가어려야만, 이제 막 미술계로 발걸음을 떼었어야 만이‘젊은 작품’을 한다고 할 수 있을까? ‘나이’와 같은 수치적 잣대가 아닌‘젊음’이 지닌 의미의 본질에 다가서서 보고자 한 그는 2012년 교동아트 신년기획전으로‘전과 피자전’을 선보였다. 보는 이로 하여금“미술전시에 웬 음식이야?”라며 호기심을 품게 하는 제목이다. 미술전시로서는 이례적이고도 신선한 재미를 주는 이름에 담긴 의미는 다양하다. 서양의 피자와 우리 전통음식인 전을 조합해서양화와 한국화가 동시에 걸린 것을 비유하기도 하고, 피자를좋아할 것 같지만 전을 즐기는 젊은 작가와 전만큼 피자를 좋아하는 중년의 작가가 함께 어울린 전시임을 뜻하기도 한다.이 전시가 얘기하는 미술가의‘젊음’이란 자신의 세계관을 형성해 가는 지속적인 실험과 도전정신을 통해 구현되는 것이다.
젊은 미술언어를 만들어 가고 있는 작가들
이적요(서양화), 이건호(서양화), 임희성(한국화), 이현경(서양화), 조은지(서양화), 김영배(조각). <전과 피자展>의 초대작가 6인은 모두 작품을 통해‘젊음’을 드러내는 이들이다. 53세의 이적요 부터 24세의 이현경과 조은지 까지. 작품만으로는 작가의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나이가 아닌 작품으로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이들의 그림 속에는 <전과 피자展>이라는 전시제목만큼이나 그들만의 개성이 잘 드러나 있다.전시장을 들어서면 바로 정면으로 보이는 벽면에‘맨드라미’,‘ 모든 사랑은 닮아있다’등 6작품을 선보인 작가 이경태.그는 작년에 이적요로 이름을 바꿨다. 적적하고 고요하다는 의미의‘적요’처럼 살고 싶은 소망으로 개명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에“이제부터는 마음속에 품어왔던 이름 이적요로초심을 헤아려 본다/내가 나를 능동의 줄기로 사랑하리라”는글로 개명에 대한 소회를 남기기도 했다. 이러한 마음을 담아작업한 작품들은 이전 보다 더욱 짙어진 감수성으로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물감과 붓뿐만 아니라 주변에 버려져있는소재들을 이용한 오브제 작품을 선보이며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작업으로 잘 알려진 작가는 사랑에 있어서 기쁨이나 풍요로움 보다는 연민이나 쓸쓸함 같은 감정을 어루만지고 있다. 이번 작품 속 인물의 눈은 유독 이질적인 소재로 표현되어 이 감정을 더욱 잘 드러낸다. 유명 커피 체인점 로고가 새겨져 있는 세 개의 커피잔 연작을 선보인 이현경의‘놀아볼까’는 위트 넘치는 작품이다. 거대한 커피잔 주위로 작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흡사 커피 잔의 형상을 띤 수영장에 모인 이들 같기도 하다. 광고 속 삽화 같기도 한 이 예쁘장한 그림에 담긴 의미는 씁쓸하다. 밝고 부드러운 표현 뒤에 숨은 반전인 것이다. 커피잔 주위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차 한 잔의 여유도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표현했다. ‘놀아볼까’라는 제목은 사람들이 조금은 여유 있게 즐겁게 살아가길 바람을 담았다.이외에도 하루에도 몇 번씩 금속을 녹이고 붙이는 작업이 일상인 김영배 씨는‘삶- 그 현장의 끝에서’라는 작품에 그 일상을 녹여냈다. 너트를 이용해 용접 마스크를 형상화한 조각 작품이다. 또한 조은지 씨는 수녀, 전사, 황진이, 인디언등의 모습으로 그려낸 6개의 자화상을 일렬로 전시해 내면에 숨어있는 다양한자신을 표현해 눈길을 끌었다.정체되어있기보다는 자신만의 고유하고도 젊은 미술언어를 만들어 가고 있는작가들의 <전과 피자展>. 각기 다른 개성을 작품을 통해 즐겁게 풀어낸 전시에서 활기찬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