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신앙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사회적 차원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이 마을신앙, 마을지킴이들이다. 마을을 지키는 당산, 솟대, 장승, 성황당 등은 지역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고,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어주었다.
당산은 마을신앙의 구심점이 되는 특정한 장소나 신령을 일반적으로 부르는 명칭이다. 일반적으로 자기 마을 근처의 산이나 언덕을 당산으로 삼았다. 자연현상에 대한 경외심으로 시작됐을 것으로 보이는 당산은 물론 마을의 평안을 지켜주는 힘을 가진 존재로 믿어 제사를 하는 풍습으로 발전했다.
당산의 핵심이 당산나무 마을 지킴이신이 깃들여 있는 나무를 가리킨다. 당산나무는 밑동에 왼새끼와 백지를 감아 다른 나무와 구별하고, 당집이나 신줏돌과 짝을 이루기도 한다. 어떤 마을에서는 당산나무가 정자나무이면서 신목이 되기도 하고 마을 공동체의 구심점, 심리적인 마을의 중심역할을 하기도 한다.이러한 당산나무는 단군신화의 신단수, 북유럽 신화를 비롯한 북반구의 세계수등과 같이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잇는 축이나 기둥으로써 의미도 지니고 있다.
솟대 기원은 여러 설이 있으나 <삼국지> 마한전에 나오는 소도(蘇塗)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신성한 구역을 표시하는 형태로써 솟대는 민간으로 전해져 소줏대, 표줏대, 솔대, 거릿대 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렸다.
솟대의 형태는 일반적으로 긴 장대 꼭대기에 세 갈래로 된 나뭇가지 위에 세마리의 새를 세운다. 새는 기러기, 원앙등이 대부분이며 일부 지역에서는 까마귀를 조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정한새의 종류를 지칭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솟대는 수호신의 상징과 성역의 경계, 또는 이정표의 기능을 한다. 솟대는 개인이 임의적으로 세우기도 하고 마을 입구나 경계에 세우거나 과거에 급제한자가 자기의 과시와 가문의 행운을 기원할 목적으로 세우기도 했다.
마을 지킴이로써 솟대는 마을에서 공동으로 세우는 것이다. 마을에서는 마을 수호신의 몸체 앞에서 매년 동제를 지내며 마을사람들이 질병과 재앙으로부터 풀려나고 농사가 잘되고 고기가 잘 잡히게 하여 달라고 빌었다.
솟대와 마찬가지로 장승 또한 마을 지킴이의 노릇을 하면서 이정표, 경계표시의 역할을 동시에 했다. 장승의 가장 큰 기능 역시 수호신의 역할인데, 마을이나 절 앞에 세워 터 안으로 나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장승은 지역마다 부르는 이름도 달라서 벅수, 법수, 수살막이, 수살목로 다양하게 불렸고 할아버지 당산, 할머니 당산, 미륵 등으로도 불렸다. 일반적으로 남녀 한 쌍이 서 있으며 장승의 몸체 전면에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가장 흔하게 보는 장승들은 나무로 깍아져 있지만 창녕 관룡사, 남원 실상사, 나주 운흥사와 불회사, 영암 쌍계사지 등에는 돌장승을 세우기도 했다.
장승을 만들기 위한 작업에도 정성과 예를 다했다. 나무에 술 한 잔을 붓고 정중히 절을 한 뒤 나무를 잘라 장승을 만들었으며 정월 대보름에는 장승제를 지내고 대보름 굿을 하기도 했다.
마을의 수호신을 모신 신당을 성황당 또는 서낭당이라 했다. 마을 어귀나 고갯마루에 잡석으로 누석단을 쌓거나, 서낭나무를 모시기도 하고 큰 돌을 세워 성황당으로 삼기도 했다. 성황당은 성을 뜻하는 ‘성’과 그 주변으로 판 물길인 ‘황’의 뜻으로 짐작컨대, 투석전투가 벌어졌던 부족국가시대 마을을 지키기 위한 무기 저장소와 방어지였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이러한 기능은 대를 거듭하며 자신과 가족, 마을의 안전을 책임지는 수호신과 같은 존재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곳을 지날 때는 그 위에 돌 세 개를 얹고 세 번 절을 한 다음 침을 세 번 뱉으면 재수가 좋다는 믿음도 민간에 널리 퍼져 있었다. 전문가들은 성황당 주변을 무섭고 음침한 장소로 인식하게 된 것은 일제 강점기와 기독교 복음화, 새마을 운동을 겪으며 민속신앙이 ‘미신’으로 여겨지던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해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