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화가. 소래 박홍규 兄의 세 번째 개인전이 지난해에 이어 서신갤러리에서 열렸다. 농사일을 하면서 작업을 한다는 것이 무척 힘겹겠지만 한편으론 자신의 전공을 살려 창작의 즐거움을 지속한다는 흥분도 클 것이다. 하지만 무역개방이후 고된 농사일 뒤로 얻는 수확의 기쁨은 점점 신통치 않은 비관적 걱정으로 허탈하기 일쑤다. 올해는 추석을 앞두고 태풍 ‘볼라벤’과 뒤이은 ‘산바’의 피해가 여느 때보다 농촌에 집중피해를 입혔는데, 전시개회식 때 23년차 농업인 여성의 고충을 짧게 전하는 떨리는 목소리가 현장감을 더했다. 전시장에 메아리치듯 울리고 벽에 걸린 작가의 그림 속 풍경은 그대로 지금 농촌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이번 전시의 부제인 <新 농가월령도>는 역설적으로 노래가 끊긴 지금 농촌의 모습이다. 고령화된 농촌, 일손이 귀한 농촌. 모든 것의 척도에 자본이 중심이 된 현실에서 농사짓는 일도 돈 없이는 턱도 없는 작금의 농촌현실에 꽹가리치며 일하던 잔칫날 같은 모내기 풍경이나 추수풍경은 벌써 사라졌고 배달음식으로 점심을 때우고 새참역시 부실해진지도 오래되었다. 한국인의 민족적정서의 근간이었고 문화의 원형이었던 농촌이 산업화에 밀리면서 마을이 붕괴되고 가족이 해체되고 세태도 변했다. 명절이 되어도 썰렁한 마을은 온기가 없다.
전시 팸플릿 앞 장에 처음 수록된 작품 ‘아침에’는 화가가 살고 있는 전북 완주군 이서마을에 들어서는 혁신도시를 건설하려는 타워크레인들을 볼 수 있는데, 이 지역은 원래 낮고 완만한 구릉이 발달한 지형적 특징으로 오래전부터 과수농가가 밀집해 붉은 황토와 사과와 배꽃이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그림 중앙의 양쪽길가에 서있는 낡은 집은 회벽이 벗겨지고 모퉁이가 무너져도 언젠가는 사라질 집이기에 굳이 그냥 서있다. 오토바이로 빠르게 지나가는 동네아저씨. 앞쪽에 구부정하신 노모는 이른 아침에 밭에 물 주려 하시는지 조리개를 들고 가고 아주머니는 벌써 새벽일을 마쳤는지 목장갑을 끼고 돌아간다. 20여점에 이르는 이번 전시의 출품작에서도 작가는 예의 그 특유의 말투로 이웃들의 땀내와 고단한 삶을 담아내었는데, 나는 그중에 작품 ‘찔레꽃’과 ‘정미소 앞’ ‘고구마 심는 날’ 들이 보이는 색체와 구도.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이 참 좋았고 작품이 주는 울림이 공명했다. 무엇보다 20여명의 사람들이 늘어서서 백수피해를 입은 논을 트랙터로 갈아엎는 풍경을 바라보고 서있는 모습을 그린 작품 ‘무제’의 빈 여백이 많은 것을 생각게 해주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너무 무겁지 않게.../ 너무 가볍지 않게.../ 그냥 농민의 평범한 일상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라고 썼지만 그 속엔 자신과 이웃의 농촌의 삶에 대한 불안과 회한 사랑과 연민, 안타까운 마음 등이 짙게 담겨있다. 그러면서 작가는 예의 낙천적 태도로 작품 ‘오동동타령’ 한 점을 전시장 입구에 걸어 놓았는데, 이는 아마도 농촌에 대한 희망가가 아닐까 싶다. 무슨 날일까? 마을 잔칫날? 아니면 부녀야유회나 단합대회… 스물다섯에 이르는 할맘 아줌씨들은 거개가 비슷한 남방이나 쓰봉에 월남치마나 물방울무늬 꽃무늬 셔츠와 민소매차림에 춤판을 벌인다.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요~ 오동도 술타령에 오동동이요...가, “호남벌의보리농사오동동이냐충청도의고추농사오동동이냐아니요아니요수입쌀싣고오는화물선소리오동동오동동그침없이農民가슴타는간장오동동이냐” 라는 가사로 바뀌었음을 읽게 되면 그것도 헛웃음이 되어버리지만 시골농부들 중에 강인한 이 여성들은 이렇게라도 힘겨운 삶에 애환을 달랠 것이다. 그러면서 작가는 전봉준과 동학농민혁명 관련 작품 3점을 곁에 걸어 놓았다. 이는 아마도 미완의 농민혁명에 대한 안타까운 동경이리라 싶다.
화가는 최근 발표된 이광재씨의 신작소설 <전봉준 평전-봉준이, 온다>의 표지 삽화를 그렸다. 이는 그가 현실과 사회를 분명하게 인식한 대학생 때부터 졸업 후 농사와 농민운동을 함께하며 현장에서 얻은 경험과 현실인식을 여러 저널과 신문에 오랫동안 만평을 연재하였고 이 사회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교류하며 지금도 ‘한국농정신문’에 만평을 연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비추어볼 때 지극히 자연스럽고 여전히 사회개혁적 의식을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또한 농부화가로서 태도와 주관을 건강하게 견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세상이 이토록 야박해저감에도 변함없이 그 마음을 지켜간다는 일이 마냥 좋아서 할까마는 그는 이 지역에 정착한 이래 한 결 같이 실천미술인의 전형적인 삶을 일궈가는 지역에 흔치않은 유일한 화가이다.
그 건강함과 뜨거운 열정과 의지. 진정성에 박수를 보내면서 감히 경계해야할 점에 대한 생각을 덧붙이고 싶다. ‘99년 첫 개인전 <들에서 여의도까지> 이래 3회에 걸친 개인전에서 일관되게 작가가 천착하려드는 우리농촌의 현실세계에 대한 시각과 태도에선 충분히 공감하게 되지만, 양식적인 측면과 완성도 면에선 오히려 첫 번째 개인전에서 보여주었던 신선함과 붓끝의 예리함 등이 반복되면서 무뎌지고 시간이 흐르며 편안해지고 양식화되면서 작품의 힘이 일반화 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다. 여기에서 나는 양식적 변화의 방법 즉, 캔버스가 종이로 붓과 아크릴이 모필 채색으로 대체되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예술성의 측면과 그 에너지의 발현이 함께 더 구현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만평과 작품은 달라야한다. 물론 작가도 고민하리라 생각되지만 만평이나 삽화와 같은 형식을 넘어 작품이란 언제나 예술의 본질성과 작품성의 고민이 함께 드러나야 하는 것으로 농촌일상의 구현을 넘어 그 지역의 삶과 문화를 형식적 측면의 실험과 더불어 이러한 미술의 본질적 측면에 대해서도 늘 재고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끝으로 이 지역 미술문화에 있어서 비평의 중요성이 강조되어야 함을 덧붙이고 싶다. 문화가 발전하기 위해선 사회 각층의 다양한 관심과 건강한 비평이 이루어 저야 하며 전시가 이루어지고 끝나는 일 또한 대중의 평가를 얻어야 하는데, 언젠가부터 작금의 이 지역의 미술행사는 비평의 부재와 일방적 소통에 의한 자기과시. 메아리 없는 무의미한 반복이 지속되고 전시의 성과라는 게, 어디 전시에 참여했고 누가 몇 점을 팔았으며 얼마를 벌었는가 하는 것에만 관심을 둘뿐이다. 전시의 내용과 형식 평가가 어떠한지에 대한 얘기는 사라진 결과 이젠 개인전에 서문을 쓰거나 비평이 사라지고 자비로 공간을 임대하여 전시하고 판매하는 행위 또한 너무 일반화 되어 누구도 비판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 스스로 지역의 문화를 낙후시키는 행태로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미술인의 각성이 필요한 시점인데 이 동네는 평론가가 없을까? 지역의 건강한 미술문화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저널과 언론 또한 머리를 맞대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