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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 | 연재 [김의수의 상식철학]
상식과 철학은 어떤 사이인가?
김의수 전북대 명예교수(2013-01-04 15:05:05)

일반 상식은 공무원 시험 등 각종 취업 시험 과목이다. 상식은 아주 기초적인 지식이다. 다양한 분야의 기본 정보들이며 시험을 보고 나면 대부분 그냥 잊어버리는 수준이다. 그나마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조금은 관심을 갖게 하는 과목인지 모른다. 모든 시험은 학습과 생활의 자연스런 결과로 평가가 나와야 하지만, 우리사회에서는 시험을 위한 시험이 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스펙만 쌓는 청년들에게 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우려 여러 해 전에 나온 책(88만원 세대)마저 당사자들에게는 시험공부를 위한 교재로 읽히고 있다는 웃지 못 할 보도도 있다. 그런데 내가 상식철학을 말하고 있으니,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철학자들 중에는 괴짜들이 더러 있다. 알렉산더 대왕이 찾아와 필요한 것이 있으면 도와주겠다고 말하자 거기 햇빛을 가리지 말고 좀 비켜달라고 말했던 디오게네스를 필두로, 엄청난 유산을 시인과 음악가들에게 다 나눠주고 시골학교 선생님을 하던 비트겐슈타인까지, 그리고 한 겨울에 맨발로 걸어 다니고 한 여름에 코트를 입고 다니던 우리세대 철학도나 어느 노숙자 철학자에 이르기까지 상식을 벗어나 보이는 사람들 중에 철학자들이 종종 발견된다. 그래서 철학은 비상식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리고 상식은 엉뚱하고 잘못된 경우도 허다하다. 공무원이 일이 바빠서 사업 허가 공문 결재를 며칠 늦추면 매일 백 여 만원 씩 손해를 보는 건설업자가 몇 십 만원 촌지를 건네 당일로 처리되게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방식처럼 보인다. 조금 심약한 아이가 학교에서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선생님에게 촌지를 건네며 부탁하는 것은 인간적인 방법이 된다고 볼 수도 있다. 이렇게 자연스런 논리로 촌지라는 관행이 생겨나고, 일단 관행으로 자리 잡으면 그 세계에서 상식이 되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상식철학은 이 모든 일들과 무관하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촌지’라는 상식은 좁은 계산으로는 합리적이지만 폭을 넓혀보면 불합리한 일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것은 비윤리적이다. 미신적 태도로 신앙생활을 하는 종교인들은 입시나 질병을 초월적 힘으로 해결하려고 기도하고 헌금하지만, 그건 과학 지식과 모순되는 일이므로 더 이상 현대인의 상식이 되지 못한다.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내용들은 논리와 윤리 그리고 문화의 기반 위에 서 있다. 그런 것이 상식이며,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아직도 법과 문화와 윤리가 무시되고 비상식과 몰상식이 횡행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새삼스럽게 상식을 강조하게 되고,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갈구하는 것이다.

상식의 이중적 의미 때문에 우리는 상식 개념을 긍정적으로 쓸 수도 있고, 부정적으로 쓸 수도 있다. 지금 서점에 나와 있는 책들 중에는 이런 개념들이 혼재돼 있다. <상식의 배반>, <상식과 싸운 사람들>은 부정적 상식의 개념을, <상식의 힘>, <상식의 역사>는 긍정적 상식 개념을 말하고 있다. 비록 긍정적 의미라고 하더라도 상식의 세계는 당연하고 뻔한 세계이어서 사람들은 상식을 넘어서는 높은 수준과 깊고 새로운 이론이나 능력을 강조한다. 그러나 우리 삶의 대부분을 지탱하는 힘은 상식이다. 상식을 지키면서 새로움과 훌륭함을 추구하지 않고, 상식은 무시한 채 최고와 1등만 추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낡은 상식의 질서를 뛰어 넘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이론이라도 그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면 그대로 상식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상식을 존중하고,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유지해가야 한다. 21세기에 필요한 창의성도 상식의 토대 위에서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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