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는 진화하고 있다. 서사의 완성도나 플롯의 짜임새를 차치하고서 테크놀로지 측면만 본다면 이는 자명한 사실이다. 3D영화의 신기원을 이록하며 역대 최고의 전세계 박스오피스 성적을 기록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2009)에서부터 최근 개봉한 피터 잭슨 감독의 <호빗>(2012)에 이르기까지 3D를 기반으로 한 시각 혁명은 멈추지 않고 있다.
특히 <호빗>은 초당 24프레임이라는 기존 영화의 불문율을 깨고 관객들의 눈을 보다 편안하게 하기 위해 초당 48프레임으로 촬영하는 새로운 실험을 감행했다. 베일을 벗은 <호빗>은 세심하게 차려진 시청각적 매혹의 상찬에 신체의 모든 감각세포가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그만큼 캐릭터와 서사는 단조로워졌다. 역으로 말해 ‘종합선물세트’ 같은 스펙터클에의 완벽한 몰입을 위해 두뇌를 최소 용량으로 가동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아니, 길들이고 있다. 문제는 그 길들임에 대한 일말의 반감, 즉 지적 쾌락에 대한 요구가 내 안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 이것이 정말 영화의 미래, 미래의 영화일까? 그리하여 나도 언젠가는 이런 영화에 길들여지고 말까? 아니, ‘진화’할 수 있을까?
워쇼스키 남매와 톰 티크베어가 공동연출한 <클라우드 아틀라스>(2012)는 이러한 스펙터클의 ‘종합선물세트’라는 블록버스터 영화의 최근 추세를 포기하지 않고서도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영리한 방법을 찾아내며, 나의 근심을 덜어줬다. 데이비드 미첼의 동명소설을 각색한 이 영화는 영화적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한 절묘한 편집과 연출로 원작을 창의적으로 스크린 위해 풀어냈다. 참고로 이 글은 <클라우드 아틀라스>에 대한 논의에 머물지 않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의 독창적 진화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고찰하고자 한다.
<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500년의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각기 다른 장르, 즉 시대극, 코미디, 스릴러, SF, 멜로, 액션 등이 뒤섞인 6개의 이야기로 구성된 블록버스터 영화이다. 먼저 19세기 중반, 뉴질랜드에서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는 선박에서 공증인 애덤 어윙이 죽음의 고비와 마주한다. 1930년대 벨기에, 방탕한 생활을 하던 젊은 천재 작곡가 로버트 프로비셔는 당대 최고 작곡가의 조수 생활을 하며 평생의 역작 ‘클라우드 아틀라스 6중주’를 완성한다. 1970년대 미국, 열혈 여기자인 루이자 레이는 핵발전소를 둘러싼 거대 음모의 단서를 우연히 발견하며 목숨이 위태롭다. 2012년 현재의 영국, 출판업자 티머시 캐번디시는 큰 성공에도 불구하고 사채업자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어 요양원에 숨게 되지만, 그곳에는 또 다른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2144년 미래의 서울, 식당에서 평생 손님을 접대하며 소모될 운명의 복제인간 손미-451은 반군인 장혜주를 만나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다. 끝으로, 모든 문명이 파괴된 미래의 지구, 양치기 자크리는 식인을 일삼는 코나족으로부터 자신의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거시적 관점에서 윤회사상을 바탕에 두고 있는 만큼 각 이야기들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에 영향을 미친다. 편의상 개별 이야기를 시대 순으로 나열했으나, 영화는 이 6개의 이야기가 절묘하게 교차편집되어 전개된다. 따라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 가는 문’이라는 대사를 통해 명징하게 전달하는 주제의식은, 전생과 이생, 혹은 이생과 후생이 뒤얽힌 플래쉬백과 플래쉬포워드라는 편집의 묘미를 살려 보다 효과적으로 뇌리에 각인된다. 여기에 톰 행크스, 할리 베리, 배두나, 휴 그랜트, 짐 스터게스, 벤 위쇼 등의 주연배우들이 일인다역으로 개별 이야기에 등장하며 이해를 돕는다. 이야기가 뒤섞여 있는 만큼 개별 스토리의 플롯은 명료하고 단순하며, 각 장르적 특성을 충실하게 재현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결국 관객은 한편의 영화 안에서 6편의 각기 다른 장르영화를 ‘종합선물세트’처럼 즐기되, 치밀하고 개연성 있는 구성으로 인해 그 영화들을 하나의 영화 안으로 재차 수렴시키는 지적 유희를 놓칠 수 없다.
<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독립적 사건이 전생/이생/후생이라는 내적 원리 안에서 펼쳐진다는 측면에서는 현실/꿈/무의식의 긴밀한 연쇄에 근거한 <인셉션>(2010)을, 독립적 장르의 중첩이라는 측면에서 다양한 장르의 은유적 활용으로 주인공의 심리를 대변하는 <써커펀치>(2010)를 각각 상기시킨다. 꿈 속 꿈의 장면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펼쳐지는 <인셉션>의 경우, 영화의 전체 맥락을 배제한채 각 단계별 꿈을 따로 떼어보면 스펙터클한 묘사는 여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에 비해 약하다. 즉 1단계 꿈의 자동차 추격씬, 2단계 꿈의 호텔 안 결투씬, 3단계 꿈의 눈 덮인 산에서의 총격씬은 사실 별로 새로울 것이 없다. 대신 정교한 플롯 구성과 충분한 극적 개연성으로 그 스펙터클한 장면의 흡입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다.
반면에 <써커펀치>는 줄거리라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탄탄한 플롯 구성에는 무관심하며, 더욱이 의도적으로 영화의 시공간을 모호하게 하고 있다. 소녀들이 지도, 불, 칼, 열쇠, 그리고 ‘자기 자신’이라는 총 5개의 아이템을 찾는 영화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일단 정신병원/매춘 클럽에서 탈출하고자 매혹적인 춤을 추는 한 소녀의 성장 드라마가 현실의 층위에 있다. 그 소녀가 매번 춤을 출 때마다 그 모습은 블록버스터 영화 속 스펙터클한 시퀀스로 대체된다. 거대한 무사를 상대로 칼을 휘두르는 액션 사극이 되었다가 독일 나치군을 상대로 총을 휘갈기는 전쟁영화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불을 내뿜는 전설의 용을 상대해야만 하는 판타지 영화가 되기도 하고 로봇과 전쟁을 벌이는 SF영화이기도 하다. 영화 전체적으로 보면, 아이템을 획득하며 단계를 밟아나가는 컴퓨터 게임을 닮기도 했다. 여기에서 장르 왕복은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수사로서 주인공의 감정 상태나 극적 사건을 과도하게 수식해 줄뿐, 서사에 깊이 종속되거나 연루되어 있지는 않다. 두뇌를 자극할 만큼 아이디어가 반짝이긴 하지만, 영화 자체의 긴장감과 몰입도는 떨어진다.
이러한 연유들로 인해 <인셉션>은 흥행에 성공했고 <써커펀치>는 참패했다. 흥행 여부를 떠나 두 영화 모두 교착상태에 빠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를 구원하기 위한 유의미한 시도임은 분명하다. 앞서 언급한 <호빗>이 테크놀로지의 강화라는 정공법으로 돌파구를 찾으려한 것과는 다른 독창적인 진화이다. 그 두 영화의 전략을 적절하게 안배한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한국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사뭇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