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의미는 충분히 다의적이고 변화무쌍하다. 무엇을 담을 것인가, 누가 쓰는 것이냐에 따라 공간의 쓰임은 다양해지고 그 영역 또한 무한한 확장성을 갖게 된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예술가들에게는 특히 그렇다. 여럿이 복작거리는 공간에서 부대끼며 작업을 하기도 하고, 대학 연습실에 공간을 마련하기도 한다. 자신만의 공간을 꿈꾸는 예술가들에게 그 곳은 창작의욕을 북돋는 곳일 수도, 삶의 에너지를 얻는 곳일 수도, 화려했던 젊은 시절로 돌아가는 곳일 수도 있다.
일곱 명이 모여 공동작업실을 꾸린 ‘자가발전소’, 27년간 실험적 무대를 만들어온 현대무용단 ‘사포’나 대학 동아리방에 둥지를 튼 직장인 밴드 ‘어게인’은 그들만의 공간에서 서로 다른 창작을 한다. 그들에게 창작이 공간은 무엇일까. 많고 많은 공간 중에 그곳에 서 있는 그들에게 창작을 한다는 것, 그리고 ‘공간’의 의미를 물었다.
춤으로 삶의 힘을 얻는 사람들 - 현대무용단 사포
현대무용단 사포는 1985년 창단 이후 실험적 무대를 선보여 왔다. 최근 전주 한옥마을 카페 공간 봄과 익산 N갤러리에서 진행한 카페 춤은 사포가 추구하는 실험적 무대의 단면을 보여줬다. 무대의 경계를 무너트리는 현대무용의 흐름을 넘어서, 무대가 아닌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카페 춤은 같은 주제를 가지고 춤을 춰도 보는 사람마다 그 느낌이 다르다.
“봄에서의 공연은 많이 힘들었어요. 연습실에서 준비한 아무리 준비를 해도 막상 현장에서는 또 다른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많았죠. 한 공연이 끝나면 김화숙 교수님이 ‘이 부분 수정하자, 저 부분 뭘 더 넣어보자’하시니 단원들이 힘들 수밖에요. 그래도 공연하는 동안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어요. 무대는 여전히 우리에게 카타르시스이고, 또 하나의 기록이었습니다. 공연을 하는 내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더 긴장되고 재미있는 것도 있었죠.”
김자영 대표는 공간봄이나 N갤러리 같은 경우 소극장 중에서도 아주 특별한 곳이라고 했다. 무대 세팅이 없기 때문에 더 자유로웠고, 그래서 동선을 더 세심하게 짜야했다. 물론, 사포에게 ‘무대없는 무대’는 새삼스런 일도 아니다. 부산에서 해마다 열리는 여름무용축제에서는 모래밭에서 춤을 추기도 하고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비추고 공연을 벌인 적도 있었다. 처음보는 사람들은 아주 새로운 시도라 생각할지 몰라도 지금까지 사포가 섰던 실험적인 무대들을 본 사람이라면 그저 ‘무대없는 무대’의 한 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포는 공연으로 돈을 벌어본 적이 없다. 정기공연할 때는 십시일반 돈을 거둬서 보탠다. 결혼을 했거나 직장을 갖고 있는 단원들의 경우는 오롯이 사포 공연에만 매달릴 수가 없는 상황. 전념하기 어려운 한계와 어려운 생활의 연속으로 단원들도 많이 빠져나갔다. 그래서인지 원광대 무용학과 출신 무용수들이 이끄는 사포에는 무대를 즐기는 사람만이 살아남았다.
사포는 사실 정식 연습실을 가져본 적이 없다. 85년 창단 때부터 지금까지 학교 연습실이 유일한 연습공간. 밤늦게까지 연습하다가 경비에게 쫓겨나기도 하고 눈칫밥 먹은 것도 한두번이 아니다. “단원 모두 스무 살부터 학교를 계속 다니고 있는 셈이죠. 김화숙 교수님이 퇴직을 앞두고 있어서 그때쯤엔 새로운 연습실을 구해야겠지만 아직까지 별 걱정은 없어요. 단원들 중에 무용학원을 운영하는 사람도 있고, 연습실이야 어디 언제든 빌릴 수 있거든요.”
사포에게 창작의 공간은 정해진 물리적 공간이 아니다. 학교 연습실이던 모래밭이나 카페가 되었던 춤을 출 수 있는 공간은 창작의 무대가 되고 무대는 단원들의 꿈을 이루는 공간이 된다. 무대 밖에서 선후배지만 무대에서 만나면 지위 평등한 춤꾼이 된다. 손만 스쳐도 단원들의 몸이 하나가 되는 것을 느낀다. 무대에 들어서면, 신체움직임이 달라지고 표정부터 진지해진다.
그들에게 ‘무대’는 춤의 이유이자 물음이다. 무대는 단원 한명 한명의 꿈이자 영원히 가야할 길이기 때문이다. 사포는 그 힘으로 지금껏 버텨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돈 안되는 무대에 매달리는 사포를 두고 무의미하고 어리석은 짓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무대에서 그들은 정체성을 찾아나간다. 그들은 춤꾼으로서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정체성을 찾는 열쇠가 거기 있다고 믿는다. “공연하는 긴장 속에서 희열을 느끼고 또 그 힘으로 열심히 돈 벌고, 또 공연하고, 그렇게 사는 거죠. 지금 이 나이에도 춤을 출 수 있다는 것이 어디인가요.”
사포는 25년 넘는 역사를 갖고 있고 전국적으로도 돋보이는 활동을 해왔지만 아쉽게도 지역은 사포를 활동역량만큼 주목해주지 않는다. 그러한 무관심 때문에 그들은 때로 지치기도 하고 의지를 잃기도 한다. 하지만 사포는 무대에 서야 한다는 열정을 버린적이 없다. 무대는 그들만의 공간이고, 그 공간에서 그들은 언제나 최고이기 때문이다.
지친 마음 쉴 수 있는 7인 공동작업실 ‘자가발전소’
전주동문거리는 예술인들의 오랜 터다. 다른 지방으로 거처를 옮기거나 수도권으로 떠난 이들도 많지만 동문거리 곳곳엔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숨쉬고 있다. 김대환 미디어작가와 6명의 청년예술가가 함께 생활하는 공동작업실 ‘자가발전소’도 그중 하나다. 스무 평 남짓한 공간. 출입문 옆 소파·테이블과 잇닿은 화장실과 각각 컴퓨터와 노트북이 올려져 있는 책상과 의자, 한쪽 벽에 붙은 2단 옷걸이와 접이식 간이침대, 그 옆에 선 온난방기까지. 없는 것 없는 작업실이다. 가구도 만만치 않은데다 최근 세 명의 살림이 더 들어간 상태라 공간은 이미 포화상태다.
3년 전, 동문거리에 있는 선배작가의 작업실에서 생활하던 김대환 서완호씨는 각자 작업실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해오다 기회를 잡아 가까운 건물로 독립하게 됐다. 선배 작업실에서 동고동락한지 2년 만이었다. 그 무렵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던 최창우씨를 소개받아 2010년 10월 세 명이 작업실을 꾸렸고, 2011년 여름엔 대학후배인 성예진씨를 새 식구로 들여 네 명이서 생활했다. 그러다 올해 1월엔 이권중, 김종명, 김훈씨까지 3명의 지인을 더 맞아 일곱의 대가족이 됐다. 자가발전소 대표 김대환씨는 처음엔 이 정도로 식구가 많아질 줄은 예상치 못했다. 하지만 그만큼 공간을 필요로 하는 또래 예술가들이 많고, 혼자서 작업실을 얻기엔 경제적 부담이 큰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남일 같지 않았다. 그래서 작가들에게 입주를 먼저 권한 경우가 많다. 그는 작업실이 필요하다는 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지쳐 있다는 신호라고 믿는다. 그동안의 작업으로부터 얻은 경험이다.
공동작업실은 ‘작업’만 하는 공간이 아니다. 어떤 날엔 컴퓨터 앞에 앉아 하루 종일 멍하니 있기도 하고 같이 빈둥거리며 놀기도 하고, 어느 날엔 머리를 쥐어짜며 사흘 낮밤을 새기도 한다. 자가발전소는 이곳 청년예술가들의 쉼터이자 놀이터, 때론 전쟁터로 돌변하기도 하는 곳이다. “이곳은 일종의 사랑방이죠. 작품 활동을 하기도 하지만 구상이나 회의를 더 많이해요. 어떤 날엔 하루종일 사무일을 볼 때도 있어요. 작업실에서 작업만 하면 좋겠지만 현실도 인정해야 하니까요.”
이곳 청년예술가들은 대부분 생활에 쫓겨 개인작업을 미루다가 정체성을 잃을 정도로 스트레스가 극심했을 때 문을 두드린 경우가 많다. 같이 생활하는 불편함이나 수고를 알면서도 스스로의 재충전을 위해 찾아오는 것이다. 혼자 사용하는 게 아니라 집중도는 떨어질 수 있지만 서로 작품 얘기를 하며 자극도 받고 저절로 영감을 주고받게 되는 것이 개인작업실과는 또다른 매력이다.
자가발전소에 들어와 이뤄낸 성과도 다수다. 김대환씨는 2011년 국제창작애니메이션 공모전에서 ‘캣맨’으로 우수상을 받아 작가로 정식 데뷔했고, 예고에 출강하는 기회를 얻었다. 서완호씨는 첫 번째 개인전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대학원에 진학, 충주레시던시에 입주하게 됐다. 최창우씨는 벤처창업기업에서 캐릭터디자이너로 활동하며 성과를 쌓았고, 성예진씨는 대학생 신분으로 드물게 동화 일러스트를 맡아 곧 출간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지역특성화문화예술교육지원사업 문화예술교육 기획자 겸 강사를 맡아 아이들을 가르친 것은 모두에게 소중한 경험으로 남았다.
선배 작업실 귀퉁이에서 간이침대를 펴고 살았던 김대환씨는 “원룸과 어엿한 작업실이 생겨 기쁘다”고 말한다. 자신만의 공간에서 창작에 열중하는 것에 대한 기쁨일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힘은 같은 고민을 나눌 사람이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이다. “공간갈증이 심한 예술가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면서 대화시스템도 갖춘 일석이조의 작업실”이라는 최창우씨의 말은 곧 자가발전소의 핵심이기도 하다. 젊은 작가들의 창작의욕을 북돋고 지친 마음을 쉴 수 있게 하는 자가발전소. 이곳은 창작의 공간을 넘어 작가들 스스로에게 힐링캠프장이 되고 있다.
젊음으로 돌아가는 시간 - 직장인밴드 ‘어게인’
대학 밴드 활동을 했던 사람들이 다시 모였다. 같은 캠퍼스에서 음악으로 청춘을 보내던 선후배가 2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다섯 명이 한 데 뭉친 ‘어게인’. 딱히 음악색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어도, 그들이 음악을 하는 이유는 다시 한 번 음악을, 청춘을 불사르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옛날 음악을 했던 기분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는 뜻을 모아서 밴드를 구성한지 칠년 째입니다. 직장인 밴드이다 보니 연습을 못해 틀릴 때 ‘어게인’을 외치고 다시 연주를 하는 경우도 있어요. 다들 귀엽게 봐주세요. 다 밴드이름을 잘 지은 덕이죠.”
직장인밴드니 모두 각자의 직업을 가지고 있을 터. ‘어게인’에서 기타와 보컬을 맡은 김정일씨는 전북대학교 88학번으로 무주리조트에서 근무를 한다. 그보다 한 학번 선배인 옹성만, 김종채씨는 드럼과 기타를 담당하고 한화생명 지점장, 개인사업을 한다. 89학번인 양진환씨는 실용음악학원 원장답게 베이스와 기타, 건반을 두루 연주한다. 밴드의 막내인 94학번 이지현씨는 키보드와 보컬을 맡고 있고 댄스강사를 직업으로 두고 있다.
이들은 2주에 한번 연습을 한다. 이 밴드의 가장 큰 적은 함께 모이기다. 직장을 가진 사람들이다 보니 딱 맞춰 연습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밴드연습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고 한다. 직장인 밴드를 7년간 꾸려올 수 있었던 것도 밴드를 일순위로 두고 서로 이해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모이는 곳은 대학 동아리방. 변변한 연습실 하나 갖추지 못해 후배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일까?
“전혀요! 우리가 동아리방을 찾는 것은 후배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원했기 때문이에요. 20여년 차이가 나는 후배들과 함께 음악으로 교감하고 저희도 그 때 기분으로 돌아갈 수 있잖아요, 여기에서는.”
그래서 이때만큼은 직장에서, 가정에서 받은 모든 스트레스를 잊고 음악만 할 수 있다. 연습 시간이 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거기서 기다릴 재미를 생각하며 건강한 삶을 꾸려나갈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증언이다. 이 동아리방에서 그들은 20대 청춘으로 돌아간다, 음악과 함께 말이다. 그래서 이들은 매년 돈을 모아 후배들의 악기 구입을 돕는다. 동아리방에 마련된 갖가지 장비들은 각지에서 직장인 밴드를 하는 선배들이 마련해준 것이 대부분이다. 동아리방에 이렇게 많은 악기가 갖춰진 이유다. “남들이 데모한다고 고춧가루 마실 때 방앗간 지하에서 고춧가루를 마시며 음악을 했던” 기억때문인지 후배들이 좀 편하게 음악을 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물론 그들도 음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으니 일석이조였다. 선후배들이 함께 음악을 하며 끈끈한 유대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들 모두에게 행운일 것이다.
“꿈이요? 찢어지기 전에 직장인밴드 경연대회에 꼭 나가고 싶어요. 예선에서 떨어지더라도 창작곡 하나 만들어서 나갔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나이 들어 실버나이트, 콜라텍에서 함께 연주를 계속할 수 있다면 바랄 것이 없겠죠.”
그렇다고 이들이 음악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동아리방은 또 즐기고 노는 공간이다. 음악을 하고 밀린 이야기를 나누며 술 한 잔 하는 재미, 삶의 활력소다. 그들에게 이곳은 음악을 하는 공간인 동시에 젊을 되찾는 공간, 삶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복합공간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