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처음 본 것은 지난해 여름, 전주남부시장에서 열린 야시장축제에서였다. 청년장사꾼 몇몇이 좌판을 펼쳐 옷과 액세서리를 파는 동안 그는 작은테이블 위에 커피도구를 올려놓고 정성스럽게 핸드드립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커피를 기다리는 손님들과 이야기하는 모습이 살갑고 정다워 보였다.
진안이 고향인 김현두씨. 그는 커피트럭을 타고 여행을 다닌다. SNS에서 그는 이름보다 커피트럭을 타고 떠나는 여행자인 ‘건국청년’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건국청년’이란 닉네임은 김대중 대통령이 내세웠던 ‘제 2의 건국’에서 얻어온 것이다. 그가 건넨 명함에는 ‘커피로 그리는 건국청년의 이야기’가 써있다.
두 계절이 지나 다시 만난 그는 카페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만나기로 한 장소는 전주 객사 거리에 있는 한 카페. 시인 기형도가 들러 유명하기도 한 이곳은 1979년에 문을 연 유서 깊은 카페다. 커피를 배우며 알게 된 형이자 이젠 멘토에 가까운 서보성씨가 몇 년 전 이곳을 인수해 그 역사를 잇고 있다. 전북도청과 전북대 앞 지하보도에서 낮 장사를 마치고나면 어김없이 이곳에 들른다는 그는 책도 읽고 사람도 만나고 현재 계획하고 있는 ‘여행자 카페’에 관한 아이디어를 정리 중이다.
현두씨는 전주에서 대학을 다니다 졸업 후 다시 진안으로 돌아가 8년 동안 직장생활을 했다. 대학에선 공업디자인을 전공했고, 회사에선 컴퓨터 데이터베이스 관련 일을 하며 경력을 쌓았다. 어릴 때부터 진안 동네에 사랑방 같은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온 그는 늘 ‘내가 사람들에게 무엇을 나누고 베풀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살았다. 회사를 다니며 학사편입으로 사회복지학을 공부한 것도 그 이유였다. 직장생활 동안 그는 누구보다 치열했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 행복했다. 하지만 안정된 직장과 연봉도 스스로 결심 앞엔 무의미해졌다. 직장생활 8년차 되던 해, 일을 저질렀다. 커피여행자의 길을 선언하고 회사에 사표를 낸 것이다.
졸업 후 진안에 직장을 잡고 발을 붙인 이유는 평생 고향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살겠다는 다짐에서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아버지는 그의 삶에 절실하고 큰 존재였다. 그러나 서른을 한해 앞둔 여름, 갑작스럽게 아버지까지 세상을 떠나셨다. 형제도 없이 세상에 혼자가 되었다는 외로움으로 살길조차 막막했다.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 아득했다. 그때부터 ‘내가 과연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뭔지’ 고민하게 됐다. 마음을 추스르고 주위를 둘러보니 또다른 길이 보였다.
그가 우연히 본 책 한권. 보통커피가 아닌 핸드드립커피만을 파는 어느 커피노점상이야기를 담은 책이었다. ‘바로 이거다’ 싶었다. 여행과 사람, 커피까지. 좋아하는 것이 다 있었다. 머신으로 뽑는 커피가 아니라 더 신선하게 다가왔다. 트럭에서 핸드드립커피를 팔며 여행하는 상상, 생각만 해도 신이 났다. 그날 이후 커피를 배우기 시작한 현두씨는 커피콩을 사서 직접 볶고, 커피가 맛있다는 카페는 수십 군데도 넘게 다녔다. 그 동안 집에서는 틈틈이 주전공을 살려 트럭디자인을 구상했고, 명함도 직접 디자인 했다. 내친 김에 인천으로 올라갔다. 첫 번째 마련한 것은 중고트럭. 미리 잡아놓은 디자인을 트럭에 입혀 창고에서 몇날 며칠 개조했다. 커피도구, 집기, 물품을 장만하며 즐거운 한 달을 보낸 그는 지난해 4월, 그의 커피트럭 ‘공간이’를 데리고 손님을 찾아 나섰다.
시작은 녹록치 않았다. 장사도 장사지만 여행에 뜻을 두고 있던 그는 노점의 생리를 잘 몰랐다. 어딜 가든 쫓겨나기 일쑤였던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상적으로만 생각한 게 아닌가 싶었다. 겨우겨우 자리를 잡은 곳이 전북대 지하보도와 전북도청 근처.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장사를 하고 낮에는 주로 카페탐방을 다녔다. 좋은 곳은 블로그에 포스팅도 하고 매일 사진일기도 남겼다. 하지만 장사는 생각만큼 되지 않았다. 밑천도 거의 바닥 나고 마음의 여유가 사라져 회의만 들었다.
그를 지켜보아온 친구가 쓴소리를 했다. 여행을 하려고 시작한 것 아니었냐며 지금 당장 떠나라고 했다.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현두씨는 그 길로 구례, 하동, 사천, 남해 등지로 떠났다. 열흘간의 남도여행은 그의 초심을 잡아준 중요한 계기가 됐다. 다시 돌아와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일상을 여행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이 몇 시간이 나에겐 또다른 여행이라 주문을 걸고 또 걸었다.
마음이 중요했을까. 그 무렵, 일이 좀 되기 시작했다. 지인에게 축제나 공연마당을 소개받아 커피트럭에서 장사할 수 있는 공간을 얻기도 하고, 전주남부시장 야시장 축제 땐 청년장사꾼을 신청해 며칠간 트럭 없이 테이블을 두고 커피를 팔기도 했다. 그렇게 건국청년 이야기는 입소문과 SNS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가 SNS에 올리는 글들은 친구들의 새로운 관심사가 됐다. 블로그 방문자수가 눈에 띄게 늘고, 응원군도 생겼다. 페이스북과 블로그는 그에게 없어선 안 될 소통공간이 됐다.
“지금 지하보도 앞인데 언제 오시나요?” 페이스북 친구로부터 메시지가 오면 “곧 갑니다. 5분이요!” 하는 식으로 예약손님도 받았다. 처음에는 얼떨떨하고 신기했지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늘 즐거웠다. 단골손님과 책이랑 커피를 바꾸기도 하고 트럭에서 점심도 먹고 수다도 떨면서 사람 사귀는 재미를 다시 느꼈다. 얼마전 작심하고 다녀온 제주여행에선 평생 잊지 못할 추억과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다. 처음 만난 게스트하우스 룸메이트들과 모닥불 앞에 앉아 밤새 이야기꽃을 피우며 인연을 쌓았고, 떠나는 비행기 삯만 들고 간 도시를 시작으로 2년간 유럽을 돌며 일러스트로 돈을 벌었다는 한 친구와는 전주에서 다시 만날 정도로 각별해졌다. 카페 앞에 트럭을 세우기 미안한 그의 마음을 알았는지 오히려 뛰어나와 그가 만든 커피를 나누며 든든히 응원해준 카페사장과 식구들, 누구보다 소탈하고 유쾌했던 기업대표와 사진작가, 배우까지 모두 소중한 인연이 되었다. 이미 서울에서 모임을 가질 정도로 이제 인연은 더 깊어졌다.
그가 지금 안고 있는 목표는 전주 구도심에 ‘여행자 카페’를 차리는 일이다. 현두씨처럼 전국을 여행하는 여행자들이 카페에 들러 마음 놓고 잘 쉬다갔으면 하는 바람을 실현할 공간이다. 커피트럭은? 초심을 잃지 않도록 가게 앞에 늘 두고 떠나고 싶을 땐 언제든 함께 떠날 것이다. 이야기가 단단히 묶이면 여행 관련 책을 내고 싶다는 현두씨. 그 꿈은 커피와 여행 그리고 사람, 나 자신을 찾기 위한 마지막 순례가 될 것이다.
그는 요즘 얼떨떨하다. 지역블로그에 자신의 이야기가 소개되고 방송사에서 잇따른 촬영제의가 들어오면서 바뀌어버린 그의 일상 때문이다.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단다. 부담되고 두렵지만 이것 또한 여행이라고 생각하며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로, 트럭을 타고 전국을 누비는 여행자로, SNS에서 인기를 누리는 소셜테이너로 언제나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을 그에게 무한긍정의 힘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은 그에게 행운이다.
“첫인상이요? 되게 따뜻했어요. 알면 알수록 참 인간적인 친구죠. 그래서 주변에 좋은 사람이 넘쳐요. 하고 싶은 일을 결단하고 해나가는 것. 누가 봐도 멋지잖아요?” 그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는 서보성씨의 말이다.
그와 인터뷰를 위해 만난 카페 벽면엔 이렇게 쓰여져 있다.
“지금 네 곁에 있는 사람, 네가 자주 가는 곳, 네가 읽는 책들이 너를 말해준다” -괴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