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끝난지 이제 겨우 두 달여가 지났지만, 아픈 기억은 빠르게 잊혀지고 있다. 생각도 하기 싫다던 사람들이 이제 조금씩 도대체 왜 그런 결과가 나왔을까 조금씩 고민을 시작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먼저 시작하고 민주당에서도 여러차례 평가토론회를 열었다. 많은 문제들이 나왔고 처방도 나왔으며 처방대로 실천하려는 의지도 보인다.정치는 정치인들의 손에 맡겨둔다 치고, 우리는 우리대로 할 이야기들을 풀어야 할 시점이 온 것 같다. 다만, 민주당의 바람대로 지난 패배의 원인을 짚어 ‘다음 선거는 꼭 이기자’ 이런 차원의 문제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정치권력의 변화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내 삶의문제들에 관한 것이다. 나는 바로 이 관점에서 보통사람들의 대선평가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보통사람들의 대선평가라는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척도는 50대의 보수화 성향이었다. 1987년 넥타이를 매고 거리에 나왔고 2002년 노무현을 지지했던 50대는 정말 보수화되었을까. 그러나 지난 대선의 선거과정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보수와 진보의 논쟁은 참으로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박근혜후보와 문재인후보의 정책은 거의 차별화되지 않았다. 정책에서 진보와 보수의 차이는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1971년 대선에서 김대중후보가 4대국 보장 중립화통일론, 민족자립 대중경제론과 같은 깜짝 놀랄만한 담대한 이슈를 들고나와 국민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것에 비하면 이번 선거는 정말 자잘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생활정치의 이슈가 활성화된 것도 아니었다. 청년실업을 해결할 전망이 나온 것도 아니고, 골목상권을 살릴 단호한 정책이 나오지도 않았으며, 사회적경제를 구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도 없었다. 복지제도의 확산에 앞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청장년기의 불평등을 넘어 노후의 불평등까지도 제도화하는 현재의 연금제도를 어떻게 혁신할 것인지 등등의 문제들은 변화를 외쳤던 진보진영이 분명히 짚었어야 할 문제들이었다. 예컨대 연금제도를 혁신함으로써 100세 시대의 노후에 대한 불안을 줄인다면 청년들은 훨씬 더 창의적이고 상상력 넘치는 인생을 살아갈 것이고 우리 사회는 비로소 창조적 에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원칙적 정책이 단기간에 어렵다면 임금격차를 줄이는 동시에 기업의 부당한 이익을 어떻게 환수하여 그 재원을 마련할 것인지 고민했어야 했다. 그리고 그런 생활진보의 가치 위에 민족의 미래를 결정지을 통일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용기있게 말하고 설득했어야 했다.
18대 대선에 모든 것을 걸었던 민주당과 너무 많은 것을 걸었던 한국의 진보진영이 가장 뼈아프게 고민하고 돌아봐야 할 지점은 이곳이 아닐까. 국가의 미래에 대해 담대한 비전과 아젠다를 던지지 못했다면 생활상의 요구에 더 본질적으로 들어갔어야 했지만 그마저도 성공적이지 못했다.또 하나, 이번 대선에서 더 뼈아팠던 것은 지역문제에 대한쟁점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것이었다. 어떤 후보에게도 지역을 표를 얻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을 구성하는주체로 바라보고 있다는 믿음이 없었다. 지역문제는 참여정부의 혁신전략 이후 한 걸음도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지방자치제가 시행된지 20년이 넘었지만 지방정부의 권한과 예산은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광역이건 기초이건 지자체 단체장의 능력은 국가사업을 얼마나 많이 따오느냐 하는 것이고, 여기에는 보수도 진보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선거에서 정당의 공천은 무슨 의미가있는 것일까. 문재인후보를 둘러싼 친노세력이 가장 먼저 반성해야 하는 지점은 참여정부의 지역혁신전략이 지방에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다 주었는가 하는 문제였다. 다른 후보는 몰라도 문재인후보는 이 문제에 대해서 정말 깊은 성찰과 대안을주었어야 했다.지방자치제가 회복된지 2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지방은 한국의 재벌에 기대는 대기업유치와 그들을 끌어들이기 위한R&D 지원을 지역혁신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골목상권의 대기업 지배와 첨단미래산업의 이름으로 이뤄진 대대적인 고용감소와 향토기업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70년대의 산업화시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의 성장논리가여전히 지방을 지배하고 있고 그 논리는 지금도 아무 의심없이계속 반복되고 있다. 대선은 지방의 현실에서 지방을 바라보면서 그 악순환을 끊어주는 계기가 되었어야 했다.지역 스스로도 무기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지역의 문제는서울의 관점으로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지역은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지역문제의 본질적 한계에 대한 공동의 인식과 대응도 부족했고, 결과적으로 지역발전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채 결국 대선후보들에게 ‘선물’을 요구하는데 그치는 산타클로스 이벤트로 귀결되었다.
지역에 단기적이고 일회적인 선물을 달라 할 게 아니라, 지방정부에 과다하게 전가되는 복지재정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지,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해 재벌의 대형마트를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 지방 향토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대기업의 업종규제를 어느 정도로 요구할 것인지, 인구 과소지역의 삶의질을 보장하기 위해 작은영화관이나 작은목욕탕같은 프로그램에 정부가 어떤 기여를 할 것인지 등 절실한 생활상의 문제를지방정부 모두가 힘을 합쳐 요구했어야 하지 않았을까.아쉬움은 끝이 없다. 그리고 선거는 끝났다. 정권이 바뀌고그로써 세상이 좀 더 달라지기를 기대했던 사람들은 다시 또 5년을 기다려야 한다. 기다림은 고통이지만 비전과 기대감이 없이 기다리는 것은 더 괴롭다. 지금이라도 민주당과 진보진영은새로운 가치를 생산하고 파급시켜야 한다. 5년이 지루함이 아니라 기대감의 5년이 될 수 있게 해야 한다.답은 늘 현장에 있다. 먼저 판을 흔들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진보의 역할이다. 상대방의 실수를 기다리면서 5년간을 보내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렇게 보낸 5년의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번 대선에서 진보세력이 얻은 48%의 지지는 충분히 가치있는 결과다. 3.5%의 차이는 정치적 발언권 자체를 포기해버릴 정도로 약한 결집이 결코 아니다.그런 점에서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지금 가장 절실하게 봐야 하는 현장은 지역이다. 서울도 당연히 공간적으로 하나의 지역이지만 삶과 생활의 공동체로 보기는 어렵다. 지역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떠났지만 공동체가 붕괴된 것은 아니다. 한국사회의 현상적인 문제는 서울에 있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지역에 있다. 그런 점에서 진보가 기반할 터전은 지역에 있다. 지역에서 신자유주의에 맞설 수 있는 대안적 경제모델을 만들고 그것을 저해하는 악법들을 투쟁해서 고쳐나가며, 고령사회에서 노인들의 삶의 질을 어떻게 높이며, 지역의 중소기업과 일자리를 어떻게 연결시킬 것이며, 영세상인과 골목상권을 살리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찾아낼 수 있으면 한국은 혁신될 것이다. 협동조합과 사회적경제를 진흥시키고 농촌문제의 핵심인 유통문제를 해결해내면 서울의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