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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3 | 특집 [연중기획]
“우리는 가더라도 골목은 남을 것 아닌가”
공간 길 2 - 전주 기자촌 골목과 사람들
임주아 기자(2013-02-28 11:39:50)

전주 ‘기자촌’은 육이오 직후 피난민들이 집단으로 거처를 옮겨 난민촌으로 불리다가 이후 기자들이 모여 살면서부터 이름이 바뀌었다. 완산구 중노송동에 위치한 작은 마을, 이곳엔 유독 좁다란 골목이 많다. 입구 초입에는 상가가 죽 늘어서 있다. 주인 없는 채로 남아 있는 가게들이 앞쪽 뒤쪽, 한집 걸러 한집, 점포가 팔리지 않아 그냥 몸만 나간 사람들도 수두룩하다. 남은 가게는 약국, 이발소, 방앗간, 슈퍼, 미용실이 전부였다.

양팔을 벌리면 양손이 벽에 닿을 정도로 좁은 골목. 벽은 때가 끼고 색이 바랬고 키도 예전보다 훨씬 낮아졌다. 담 높이는 2미터쯤 될까. 담에 등을 맞대보는데 어릴 때로 돌아간 것 같아 웃음이 나오려 했다. 처음온 사람이 보기엔 다 똑같아 보이는 골목이겠다 싶어 특별한 골목길이 찾아나섰다. “쩌기로 올라가봐. 할마이들 앉아있을 거여. 거그 가믄 골목이 훤햐.” 방앗간 할아버지가 알려준 대로 언덕길을 따라 올랐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지나니 ‘6시 내고향’의 한장면처럼 할머니들이 쪼롬히 플라스틱의자에 앉아 볕을 쬐고 있다. 앉은 자리 옆으론 콘크리트로 뚜껑이덮인 우물이 땅에 박혀 있었다. 이곳은 우물터였다.우물 뚜껑을 여니 오십미터 쯤 밑, 물이 찰동거리고 있었다. “요 사인 잿물로만 써야.” 빨래터로도 썼는지 떼다 만 수도 흔적이 남아 있었다. 고개를 드니 훤하다던 길도 보였다. 우물터를 중심으로 좌우앞뒤 네 갈래로 골목이 나 있었다. 우물과 골목의 묘한 조화. 꼭 드라마세트장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미용실 주인아주머니가 그 얘길 꺼낸다. “얼마 전에 드라마 ‘보고 싶다’ 촬영도 여기서 했었어요. 가난한 여주인공 집으로.” 여주인공을 잡으러 가는 남자는 한강변에 있더라며 깔깔 웃었다. 기자촌에서 56년을 살고 있다는 박순정 할머니(85)는 “우물터에 줄을 서서 물을 받아갈 만큼 동네에 사람이 많았고, 골목길엔 아이들이 몰려다녀 늘 정신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슈퍼 주인 할아버지도 당시 기자촌 거리를 ‘장 속’이라 말했다. 시장통처럼 사람이 많았다는 것이다. 골목은 사람 사는 냄새로 가득했고, 늘 화기애애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골목은 담벼락이자 소식통이었다. ‘계’를 하던 사람들이 담에 벽보를 붙이면 그것을 보고 누구집에 모여 회의 아닌 작당모의를 했고, 좋아하는 사람 집 앞에서 꼬깃한 편지를 들고 기다리기는 사내들도 몇 보이곤 했다. 어떤 날엔 담 사이 노끈을 달아 빨래를 널다 남의 집 빨래와 뒤섞여 싸움이 나기도 하고, 학교를 다녀온 아이들은 가방을 내려놓기 무섭게 골목에서 숨바꼭질을 했다. 그뿐이랴. 명절엔 온 동네사람들이 풍장을 울리며 놀던 무대이자 놀이터였고 언덕빼기 골목은 눈 오는 날 썰매장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삼 십년이 흐른 지금, 분위기가 영 다르다. 재개발이 되지 않은 탓에 도시가스 가 없어 겨울엔 그야말로 걱정태산이다. 기름을 사다넣으면 요금이 폭탄이요, 전기요로 버티자니 온몸이 쑤셔온다. 대부분 요 하나로 겨울을 나는 사람이 태반이다. 여름엔 곳곳에서 나는 악취로 고생이고 폭우가 내리는 날엔 지붕에 물이 새 발을 동동 구른다. 기자촌 바로 옆 동네인 아중리가 먼저 개발되면서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나고, 동네엔 상권이란 말 자체가 사라졌다. 명절이면 창고에 채워둔 과일박스가 몇 시간도 안 돼 동날 정도였다는 슈퍼는 이제 가뭄에 콩 나듯 손님을 받는다. 건물이 낙후되고 장사 해봐야 손핸데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낼 모레 칠십인디 어디 써먹어 주기나 하겄어? 여그가 내 집잉게 못 버리고 사는 거지 뭐.” 할아버지는 지난 설에 팔다 남은 사과박스를 쓰다듬었다. 나가 쉬고 싶어도 거동이 불편해 길 건너 경로당까지 갈 수 없는 할머니들은 딱 한가지 소원이 있었다. ‘쉼터’를 만들어 달라는 것. 갑자기 뭘 짓는 게 아니라 많고 많은 빈집 하나를 빌려 쓰자는 것이다. 그러면 주인도 세 받으니 좋고, 건물도 관리되니 안심에다 주민들은 공간이 생겨서 좋고. 여차저차해서 일석삼조가 아니겠냐는 것이었다. 남편은 떠나고 소일 삼아 고물을 주우러 가는 것이 전부인 할머니들은, 아무쪼록 서로 자주 보고 모여 대화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자 힘일 터였다. “골목은 남아도 우리는 갈 몸 아닌가.” 할머니의 마지막 말이 마음에 남았다.

우리 시대는 골목길을 반기지 않는다. 골목길 하면 가난한 여주인공이 사는 가난한 동네쯤으로 바라보거나 범죄현장에 노출된 뒷골목쯤으로 소비할 뿐 골목길이 주는 여유와 여운은 느낄 여력이 없다. 이미 짧은 동선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굳이 돌아가는 길을 좋아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앞으로 골목길을 다시 걸어보자는 권유나 회유도 촌스러울 구호일 뿐 와닿지 않는다. 다만 남아있는 것들 중 무엇을 택하고 무엇을 뺄 것이며, 어떤 지혜를 기준으로 골목길을 가꿀지 세대 간 고민이 절실해졌다.기자촌은 지난해 6월 재개발과 재건축 정비 예정구역에 해제되면서 주민들은 또 다시 개발을 기다리게 되었다. 전주 기자촌 골목엔 골목을 배반하지 못한 사람들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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