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창조하기 위해선 융합해야 한다
박근혜정부의 성패를 좌우하는 새로운 부서로 ‘미래창조과학부’가 출범하였다. 그 수장으로 미국 루슨트 벨연구소 김종훈사장을 지명하였다. 일부에서는 그의 이중국적 문제와 CIA 자문으로 활동했던 과거 경력을 문제 삼아 한국과 미국의 첨예한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상황에서 국익에 해가되는 의사결정을 하지도 않을까 우려하기도 하지만 별 문제없이 국회통과가 될 것 같다. 대한민국의 성장동력이 될 기초과학과 방송통신업무, 그리고 일자리 창출이라는 막중한 업무를 담당할 새로운 부처의 장관에 내정되고 난 후의 인터뷰에서 그가 한 첫마디는 바로 ‘융합’이었다. 융합만이 대한민국이 미래에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해야 할 첫 번째 일이고, 일자리 창출을 위해 해야 할 최우선 과제이자 미래창조과학부의 핵심영역이라는 것이다.
컨버전스, 융합, 하이브리드의 시대
바야흐로 ‘컨버전스’의 시대다. 컨버전스란 원래 전기 전자공학상의 용어로, 3개의 전자빔(scanning beam)을 쓰는 3색 수상관에서 3개의 전자빔은 1화소를 구성하고 있는 1점에 집중되어야 하는데, 이 집중되는 것을 컨버전스라 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이것이 여러 기술이나 성능이 하나로 융합되거나 합쳐지는 일로서 요즘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융합이라는 말로 번역되고 있다. 디지털 컨버전스, 스마트 컨버전스란 말은 이제 우리 곁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용어가 되었다. 또한 하이브리드란 말도 광범위하게 사용되는데 이것은 이질적인 요소가 서로 섞인 것으로 이종(異種), 혼합, 혼성, 혼혈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보다 넓은 의미로는 이종을 결합, 부가가치를 높인 새로운 무엇인가(시장이나 영역 등)를 창조하는 것을 말한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미래는 잡종, 즉 하이브리드의 세상이다. 잡종적 방식이 창조를 낳는다”라고까지 이야기하면서 비비고 섞고, 합쳐야만 새로운 창조의 세상이 펼쳐진다고 주장하였다.
컨버전스보험, 컨버전스가구, 하이브리드영화
요즘 마케팅에서는 컨버전스와 하이브리드라는 말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소비자가 원하는 보장 혜택을 다양하게 결합한 컨버전스보험, 수납기능과 전시기능을 합친 컨버전스가구, 심지어 몇 년 전 방영됐던 ‘쏘울 스페셜’이라는 드라마는 국내 정상급가수인 바비킴, 케이위, 럼블피쉬가 참여하고 노래와 드라마가 절묘하게 앙상블을 이뤄 컨버전스드라마라고 홍보하였다. 또한 영화계에서도 하이브리드영화가 대세다. 하이브리드영화란 말 그대로 두가지 이상의 장르가 혼합된 것을 말하는데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가 대표적인 예다. 가상과 현실을 다룬 SF장르이면서 로맨스, 전쟁활극 등이 적절히 섞인 영화이니 말이다.
교육계에서의 컨버전스, 하이브리드
안철수교수가 원장으로 있었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도 컨버전스와 하이브리드의 시대에 대비한 교육계의 준비라 볼 수 있다. 또한 학부에서도 공과대학에서 경영학이나 인문학을 전공필수로 하는 대학도 많아지고 휴머니타스대학원이 생기는 것도 모두 이러한 시대에 대비한 대학들의 몸부림일 것이다. 또한 법학과가 로스쿨로 전환되면서 그 정원을 채우기 위해 개설된 자유전공학부라는 것도 어떻게 보면 이 융합과 컨버전스시대를 대비하여 학문 간의 경계를 없애기 위해 학생들이 마음대로 전공과 수강과목을 짜서 공부하는 제도일 텐데 아직까지는 예전 법학과의 인기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대학도 이제는 학문 간의 경계가 뚜렷한 단과대학별 전공제도에서 벗어나 더 적극적인 융합학문의 시대로 나아가는 시도를 하고 있다.
우리의 뼈 속에 흐르는 비빔밥 DNA
이러한 ‘융합’이라는 키워드가 우리나라에서 트렌드로 자리잡은 건 불과 몇 년 전이다. 세계를 주름잡던 한국의 핸드폰업계가 스티브잡스가 개발한 아이폰이라는 스마트폰으로 한방 얻어맞고 난 후, 이래서는 안되겠다라는 위기의식의 발로로 어떻게 하면 스티브잡스 같은 인재를 키울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튀어나온 개념이다. 그렇다면 이 융합과 하이브리드라는 개념이 우리에겐 없던 개념이었을까. 아니다. 몇 십년 전 이어령교수는 이미 우리 민족에게는 비빔밥DNA라는 것이 뼈 속 깊이 흐른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따로따로 보면 야채와 밥과 고추장일 뿐인데 이것을 섞어 비빔밥이라는 음식을 만들어 먹었던 우리 민족이야말로 이 융합의 시대를 가장 앞서나갈 수 있는 DNA를 가지고 있다라고 한 말이다. 기초과학이나 원천기술에서는 일본과 미국, 독일을 앞서갈 수 없지만, 이 기술들이 뒤섞이는 과정에서는 얼마든지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있는 신제품이 생기고 아이디어가 생길 수 있다고 갈파했던 이어령교수의 비빔의 문화가 바로 우리 몸에 흐르고 있는 것이다.
합치고, 비비고, 섞어 보자!
‘아이디어를 어떻게 낼 것인가.’ ‘생각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사람들은 고민한다. 요즘 시대 생각의 힘은 융합에서 나온다. 쉽게 말해 비빔밥 DNA에서 나온다. 그것은 아마도 기초기술에서는 이미 정점에 도달하였기 때문에 이제는 그러한 기초기술의 진보로서는 더 이상 새로운 기술혁신을 이루어 낼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우리도 이제 아이디어가 없다고 말하기 전에 일단 비비고, 섞고, 합쳐보자. 우리 민족에게 흐르는 비빔밥 DNA를 가지고 이 세상의 낡은 요소들을 융합한다면 거기에서 무한한 아이디어가 창출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새롭게 출범한 미래창조과학부에 거는 기대가 크다. 김종훈장관 내정자가 우리 민족에게 흐르는 비빔밥 DNA를 잘 활용하여 이 융합과 하이브리드의 시대에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하여 진정한 선진국으로 가는 발판을 마련하길 바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