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한 서너 분 모여서 막걸리 한잔 나누자는 취진 줄 알았는데요. 많이 와주셨네요. 저한텐 한 분도 많습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달 16일 저녁 최명희문학관 비시동락지실은 시인을 아끼는 사람들의 온기로 훈훈했다. 얼마 전 일곱 번째 시집 <따뜻한 외면>을 낸 복효근 시인을 축하하기 위한 자리. 시인의 팬들이 SNS로 지인들을 초대하고 입소문을 낸 것이 50여명의 사람들을 불러 모았고, 대관부터 다과, 기념품까지 모두 팬들이 준비했다. 시낭송부터 공연, 사인회까지 여느 출판기념회와 다를 것 없는 행사였다. 2명의 지인이 새 시집에 수록된 시 한편씩을 읽고 내려오자, 금강방송MC 임인환씨가 무대에 서서 판소리를 한다. 교과서에 수록 돼 학생들에게 더 유명한 시 ‘토란잎에 궁그는 물방울 같이는’이다. 고수의 장고소리가 천정을 울리고, 사람들은 생소한듯 즐거워했다. 문화평론가 박상미 씨는 “팬들이 직접 준비하고 계획했다고 해 깜짝 놀랐다”며 “서울에서 행사처럼 치르는 기념회나 북콘서트만 봐오다 전주에서 이런 진심어린 자리를 만나니 무척 감동적이다”라고 했다. 복효근 시인은 이번 시집에 수록된 ‘따뜻한 외면’, ‘문심당에서’를 차례로 읽고, ‘꽃 앞에서 바지춤을 내리고 묻다’,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 등 이전 시집들 시도 몇 편 낭송했다. 낭송이 끝나곤 시를 쓴 배경과 그에 대한 이야기를 조곤조곤 풀어놓는데, 앉은 사람들은 재미있는 초청강의를 듣는 학생들처럼 즐거운 표정이었다. 이번 시집의 발문을 쓴 박두규 시인은 “복효근의 시적 성찰의 진원은 ‘사람의 온기’”라고 적었다. 시인이 이번 시집 <따뜻한 외면>의 ‘시인의 말’에서 “우물 청소하는 떠나보낸 원고들” 은 바로 그런 성찰의 결과일 것이다.“복효근 시인의 시는 따뜻하고 투명해요. 그 속의 울림은 더 크고 넓지요.” 이번 출판기념회를 마련한 임미성 씨의 말. 사회를 본 이우정씨는 이렇게 말했다. “따뜻한 외면, 참 와닿는 말이에요. 아끼자는 말은 유치하고 사랑하잔 말은 촌스럽잖아요. 외면이지만 외면이 아닌 방식. 모두 따뜻한 외면을 마주했으면 좋겠어요.”
비를 그으려 나뭇가지에 날아든 새가
나뭇잎 뒤에 매달려 비를 긋는 나비를 작은 나뭇잎으로만 여기고
나비 쪽을 외면하는
늦은 오후
「따뜻한 외면」 전문
행사는 시인의 사인회로 마무리 됐다. 그는 팬들의 정성이 고마워 새 시집을 박스째로 가져다 놓았다. 그 사이 다과가 놓였던 탁자는 깨끗하게 치워지고 사람들은 기념사진을 찍느라 동분서주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응원하는 사람이 있다. 보잘 것 없는 것에서도 삶의 무게를 재며 고민하는 자가 있다. 따뜻한 외면은 멀리서 마주볼 때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그날 출판기념회 모임이 꼭 그랬다.